안 죽어도 될 환자, 해마다 4만명이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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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참 무섭군요..ㅠㅠ)
사람들은 병원을 '안전한 곳'으로 여긴다. 그러나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인들은 정작 이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부지불식간에 벌어지는 의료 과오로 인해 환자 안전이 위협받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따금 언론이 보도하는 의료 사고는 환자가 의혹을 제기하거나 법정 판가름까지 가는 사례이다. 의료인들은 이처럼 널리 알려진 의료 사고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한다. 수술 실수, 투약 오류, 병원 내 감염 등으로 환자가 영구 장애를 겪거나 사망하지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들이 병원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병원 진료 과정에서 사망하는 사람만 한 해에 최대 4만명에 이른다는 추정치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정부와 의료인은 이 사실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한다. 의료계에는 이른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다.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어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의료계 내부에서 양심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치료도 중요하지만 환자의 안전을 먼저 생각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의료 환경 나아져도 사고 더 늘어나는 이유
일부 의사들은 병원을 전쟁터에 비유한다.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 어린이, 환자에게 병원균이 득실대는 병원은 위험천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의사는 "오래전 일이지만 나도 의료 사고를 냈다. 환자가 몰라서 그냥 넘어갔지만 나는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도 같은 사고가 의료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다"라고 고백했다.
과거보다 위생 관념이 철저해졌고 의료진도 전문화되었지만 진료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의료계에서 나온다. 과거와 달리 한 명의 환자를 여러 의료진이 진료하면서 허점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또 입원 환자에게 삽입하는 의료 장비도 예전보다 많아져서 감염 가능성도 커졌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환자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까? 이상일 울산의대 예방의학 교수가 추정치를 내놓았다. 이교수는 지난해 12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환자 안전의 국내외 동향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의 연구논문에서 사용한 분석 방법을 지난해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나온 건강보험 입원 환자 수에 적용했다. 2009년 입원 환자 5백35만명 중에서 위해 사건 발생 건수를, 위해 사건 발생 환자 중 사망자 수를 각각 백분율로 계산했다. 그 결과 입원 환자가 진료 과정에서 상해를 입는 비율이 평균 9.2%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 43.5%는 예방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위해 사건 발생 환자 중 사망률은 평균 7.4%로 집계되었다. 이교수는 "진료 과정에서 사망하는 사람이 연간 3만6천명에 이른다. 최소로 잡아도 연간 1만1천명을 넘는다.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가 7천명 선인 것과 비교하면 적은 수치가 아니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에어백을 설치하거나 신호 체계를 변경하는 등의 노력을 하지만, 병원에서 이유도 모르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는 노력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미국·영국·덴마크·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환자의 안전 현황 조사와 대책 수립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피해 규모와 심각성에 대한 조사·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의료 사고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의료 사고 중 상당수가 투약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신장에 영향을 주는 약은 그 용량을 정밀하게 조절해서 투약해야 한다. 용량을 과하게 투약하면 신부전 등이 생겨 전신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또 마약성 진통제를 잘못 쓰면 환자가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 항응고제를 과다 투여하면 위장 출혈로 환자가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문제의 심각성은 외부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약 부작용 사고 전문가인 김윤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2005년에 대학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입원 환자의 10%가 약 부작용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5년 통계이지만 호주는 2%, 미국은 6.1% 수준이다. 외국에서는 약 부작용으로 환자가 영구 장애인이 되거나 사망한 사례가 있다. 한국에서는 그런 사례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한국에 약 부작용으로 사망한 사람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의료 과오 밝혀 악순환의 고리 끊어야
비행기 추락 사고 소식은 실시간으로 전세계에 퍼진다. 블랙박스를 검사해서 사고 원인을 찾는다. 동시에 같은 기종의 비행기 운항을 중단시키고 결함을 점검한다. 이런 조치가 의료계에도 필요하다는 점에 대다수 의료인이 동의한다. 그러나 비행기 사고보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의료 현장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다. 의료 과오를 모르거나, 알아도 밝히지 않는다. A병원에서 일어난 사건은 B병원에서 알 수가 없다. 심지어 같은 병원이라도 옆 병동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환자만 크고 작은 피해를 보는 셈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의료 과오를 밝히지 않아서 같은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러나 나서는 사람이 없다. 의료인, 정부 관계자, 국회의원 등은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자신이 나서기는 싫다고 한다.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환자 안전 문제는 미국국립보건원(NIH)이 1999년 펴낸 보고서가 도화선이 되었다. 연간 10만명에 육박하는 환자가 병원에서 죽어간다는 내용에 세계가 경악했다. 영국과 호주도 환자 안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2002년 세계보건기구(WHO)도 연례 총회에서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며 환자 안전 결의안을 채택하고 회원국에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2004년 미국 부시 대통령은 10년 내 의료 개혁을 진행할 것을 천명하면서 그 첫 번째 목표로 환자의 안전 보장을 꼽았다. 의료의 질 향상과 의료비를 절감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였다. 2005년 미국은 환자 안전에 관련된 법을 만들어 각 병원으로 하여금 환자의 안전사고를 보고하도록 했다. 그 사고에 대한 대안을 세우고 모든 병원에 전파해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한국 정부는 처방 전달 시스템(OCS), 의약품 처방·조제 지원 서비스(DUR)를 마련해두었다. 또 의료 기관이 의료 사고 전담 부서를 갖추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환자 안전이 아니다. 약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판매 승인 취소가 목적이고, 의료 사고가 터졌을 때 수습하기 바쁘다. 전문가들은 의료 사건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첫 단추는 의료 기관이 의료 과오라고 보고하고 그것을 전체 병원이 공유하는 것이다. 김석화 환자안전연구회 회장(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교수)은 "미국처럼 보고하는 개인이나 의료 기관을 무기명으로 해서 비밀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의료 과오에 대한 책임을 묻기보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의료 과오를 분석하고 예방책을 만들어 모든 병원에 알려서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병원 인증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전에 환자의 이용상 편의와 의료 기관의 시설·장비·인력 등 구조적 측면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 영역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비단 정부뿐만 아니라 보험업계, 의료계, 보건의료 업체, 소비자 등 이해 관계자들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은 작은 행동에서 시작한다. 강영주 곽병원 간호부장은 "해마다 환자 안전 캠페인을 편다. 캠페인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이다. 예를 들어, 투약 전과 후에 환자에게 약에 대해 설명한다. 이런 행동을 다른 부서가 점검하고 환자에게 설문도 한다. 작은 행동이지만 환자 안전사고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진섭 / no@sisapress.com
진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해 사건은 수술, 투약, 병원 내 감염에서 주로 발생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시사저널자료 |
의료 환경 나아져도 사고 더 늘어나는 이유
일부 의사들은 병원을 전쟁터에 비유한다.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 어린이, 환자에게 병원균이 득실대는 병원은 위험천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의사는 "오래전 일이지만 나도 의료 사고를 냈다. 환자가 몰라서 그냥 넘어갔지만 나는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도 같은 사고가 의료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다"라고 고백했다.
과거보다 위생 관념이 철저해졌고 의료진도 전문화되었지만 진료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의료계에서 나온다. 과거와 달리 한 명의 환자를 여러 의료진이 진료하면서 허점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또 입원 환자에게 삽입하는 의료 장비도 예전보다 많아져서 감염 가능성도 커졌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환자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까? 이상일 울산의대 예방의학 교수가 추정치를 내놓았다. 이교수는 지난해 12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환자 안전의 국내외 동향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의 연구논문에서 사용한 분석 방법을 지난해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나온 건강보험 입원 환자 수에 적용했다. 2009년 입원 환자 5백35만명 중에서 위해 사건 발생 건수를, 위해 사건 발생 환자 중 사망자 수를 각각 백분율로 계산했다. 그 결과 입원 환자가 진료 과정에서 상해를 입는 비율이 평균 9.2%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 43.5%는 예방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위해 사건 발생 환자 중 사망률은 평균 7.4%로 집계되었다. 이교수는 "진료 과정에서 사망하는 사람이 연간 3만6천명에 이른다. 최소로 잡아도 연간 1만1천명을 넘는다.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가 7천명 선인 것과 비교하면 적은 수치가 아니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에어백을 설치하거나 신호 체계를 변경하는 등의 노력을 하지만, 병원에서 이유도 모르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는 노력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미국·영국·덴마크·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환자의 안전 현황 조사와 대책 수립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피해 규모와 심각성에 대한 조사·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의료 사고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의료 사고 중 상당수가 투약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신장에 영향을 주는 약은 그 용량을 정밀하게 조절해서 투약해야 한다. 용량을 과하게 투약하면 신부전 등이 생겨 전신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또 마약성 진통제를 잘못 쓰면 환자가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 항응고제를 과다 투여하면 위장 출혈로 환자가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문제의 심각성은 외부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약 부작용 사고 전문가인 김윤 서울대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2005년에 대학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입원 환자의 10%가 약 부작용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5년 통계이지만 호주는 2%, 미국은 6.1% 수준이다. 외국에서는 약 부작용으로 환자가 영구 장애인이 되거나 사망한 사례가 있다. 한국에서는 그런 사례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한국에 약 부작용으로 사망한 사람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의료 과오 밝혀 악순환의 고리 끊어야
부정확한 용량이나 엉뚱한 약물을 투여하는 사고가 병원에서 생길 수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시사저널자료 |
환자 안전 문제는 미국국립보건원(NIH)이 1999년 펴낸 보고서가 도화선이 되었다. 연간 10만명에 육박하는 환자가 병원에서 죽어간다는 내용에 세계가 경악했다. 영국과 호주도 환자 안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2002년 세계보건기구(WHO)도 연례 총회에서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며 환자 안전 결의안을 채택하고 회원국에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2004년 미국 부시 대통령은 10년 내 의료 개혁을 진행할 것을 천명하면서 그 첫 번째 목표로 환자의 안전 보장을 꼽았다. 의료의 질 향상과 의료비를 절감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였다. 2005년 미국은 환자 안전에 관련된 법을 만들어 각 병원으로 하여금 환자의 안전사고를 보고하도록 했다. 그 사고에 대한 대안을 세우고 모든 병원에 전파해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한국 정부는 처방 전달 시스템(OCS), 의약품 처방·조제 지원 서비스(DUR)를 마련해두었다. 또 의료 기관이 의료 사고 전담 부서를 갖추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환자 안전이 아니다. 약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판매 승인 취소가 목적이고, 의료 사고가 터졌을 때 수습하기 바쁘다. 전문가들은 의료 사건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첫 단추는 의료 기관이 의료 과오라고 보고하고 그것을 전체 병원이 공유하는 것이다. 김석화 환자안전연구회 회장(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교수)은 "미국처럼 보고하는 개인이나 의료 기관을 무기명으로 해서 비밀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의료 과오에 대한 책임을 묻기보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의료 과오를 분석하고 예방책을 만들어 모든 병원에 알려서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병원 인증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전에 환자의 이용상 편의와 의료 기관의 시설·장비·인력 등 구조적 측면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 영역 기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비단 정부뿐만 아니라 보험업계, 의료계, 보건의료 업체, 소비자 등 이해 관계자들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은 작은 행동에서 시작한다. 강영주 곽병원 간호부장은 "해마다 환자 안전 캠페인을 편다. 캠페인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이다. 예를 들어, 투약 전과 후에 환자에게 약에 대해 설명한다. 이런 행동을 다른 부서가 점검하고 환자에게 설문도 한다. 작은 행동이지만 환자 안전사고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라고 말했다.
"환자 안전법 만들어, 의료 기관이 자발적으로 보고할 수 있게 해야" 미국 보스턴 메트로웨스트메디컬센터의 전진학 감염내과 과장 인터뷰 미국 보스턴에 있는 메트로웨스트메디컬센터의 전진학 감염내과 과장은 환자 안전 문제 전문가이다.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국내외 환자 안전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환자의 안전 문제가 심각한 것 같은데, '안전'의 범주가 어디까지라고 보는가? 병원뿐만 아니라 약국, 양로원, 가정 방문 치료 등 의료와 관련된 모든 환경을 환자 안전과 연계해서 생각해야 한다. 진단이나 치료가 의도한 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을 의료 과오(medical error)라고 한다. 의료인의 단순 실수일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것에 의해 환자가 상해를 입는데, 이를 위해 사건(adverse event)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진료 과정에서 환자에게 의도하지 않은 상해가 발생하는 사고가 생긴다. 환자가 입는 상해는 가벼운 부작용부터 사망까지 다양하다. 상해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큰일 날 뻔한 경우(근접 사고)까지 포함하면 현재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의료 과오는 상상을 초월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위해 사건의 75%는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아무도 드러내거나 밝히려고 하지 않는다. 똑같은 위해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사례들이 있는가? 한국을 포함해 유럽, 호주, 미국 등 각국에서 공통으로 발생하는 위해 사건은 수술, 투약, 병원 내 감염으로 생긴다. 위험도가 높은 수술(심장 수술, 폐 수술, 관절 대치 수술)과 위험도는 낮더라도 많이 하는 수술에서 사고가 발생하기 쉽다. 수술 부위가 감염되거나, 혈전증·폐렴 등에 걸리는 것이다. 심지어 폐 수술할 환자에게 위장 수술을 하는 사례도 있다. 투약 과정에서는 투약 자체를 빠뜨려 환자가 위급한 상황에 몰리기도 한다. 또 처방한 약이 아닌 엉뚱한 약을 환자에게 투약하거나, 환자에게 맞지 않은 용량을 환자 몸속에 집어넣기도 한다. 병원에서는 용량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기기(infusion pump)를 사용하는데, 이를 잘못 조작해서 10ml 투약해야 할 환자에게 100ml를 투약하기도 한다. A에게 줄 약을 B에게 투약하는 사례도 있다. 병원 내 감염은 폐렴, 창상(상처 감염), 패혈증, 요도감염, 대장염(항생제 과용에 의한) 등이 흔하다. 병원 내에서도 이런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곳이 따로 있는가? 대부분 수술실, 병실, 응급실에서 발생한다. 미국 병원에서는 위해 사건의 39.5%가 수술실에서, 21.6%가 병실에서 일어난다. 그중에서 의료 과오, 즉 예방할 수 있는 사고가 각각 18.1%와 45.8%이다. 미국에서는 연간 4만4천~9만8천명이 의료 과오로 사망한다. 매일 여객기 한 대가 추락하는 셈이고, 교통사고나 에이즈로 사망하는 사람 수보다 많다. 한국의 상황은 어떻게 보는가? 한국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의료계에서 더 큰 문제는 현황 파악 자체가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국 하버드 보건대학원 등이 사용한 분석법을 한국에 적용시켜보았다. 2007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미국과 호주의 분석법을 대입해보았더니 연간 1만5천~4만명이 위해 사건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을 가득 태운 버스 한 대가 매일 한강으로 곤두박질치는 셈이다. 여기에 가벼운 부작용, 상해, 장애를 입은 사람 수까지 고려하면 환자의 안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는 관련 조사 자료가 없어 추정한 결론이지만 다른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이 한국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는가. 이를 예방하기 위해 미국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병원은 연합심의위원회(JC)의 환자 안전 인증을 받아야 한다. 병원마다 해마다 50~70가지 지표 항목에 대한 심의를 거쳐 인증을 받고 있다. 이를 받지 않으면 보험 혜택에 제한을 두는 것과 같은 제재를 가한다. 환자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병원에 가지 않으니 병원으로서는 인증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 또 병원은 자발적으로 의료 과오를 정부 기관에 보고해야 한다. 의료 과오의 책임을 묻자는 것이 아니므로 병원은 무기명으로 보고할 수 있다. 의료 과오의 대책을 만들어 전체 병원에 고지해서 같은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다. 한국은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는가? 한국은 의료 사고가 터진 후에 봉합하기 바쁘다. 쉬쉬하면서 어물쩍 넘어가거나 환자가 의료 사고 사실을 알고 항의하면 합의하는 수준이다. 한국이 진정한 의료 선진국이 되려면 치료 성과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료 사고를 예방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현황 파악이다. 심각성을 인식해야 정부와 의료 기관이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책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에는 전국적으로 보건소가 있다. 또 IT 강국이다. 환자 안전에 필요한 인프라는 갖추어져 있는 셈이다. 보건소 망을 이용해 환자 안전에 필요한 기초 조사를 하고 인증 지표도 만들 수 있다. 이를 인터넷망을 통해 전국 병원에 통보할 수 있다. 이런 일들을 진행하는 환자안전청을 만들어 환자 안전에 대해 연구하고 지표나 인증 제도도 갖추면 환자 안전 문제를 지금보다 많이 보강할 수 있다. 또 의료 기관이 자발적으로 사건을 보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의료 기관의 비밀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환자 안전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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