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논리로 설득하고 싶다고?.. 상대방 배려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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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도구 삼단논법도 실제 사유 순서와는 반대
논리적 인간의 핵심요소는 새롭게 통찰할 수 있는 능력
논리란 무엇이며 논리적 사유(logical thinking)는 어떠해야 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기원전 322)가 체계화한 삼단논법을 보자.
대전제: 인간은 모두 죽는다.
소전제: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결론: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대전제가 참이고 동시에 소전제가 참이면 결론이 참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문장 가운데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삼단논법의 순서대로 ‘인간은 모두 죽는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생각을 떠올린 다음 자신이나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 대전제와 소전제를 찾게 된다. 결국 논리의 순서는 실제 사유 순서와 반대로 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살인사건의 예를 들어보자. 보통 수사관은 먼저 용의자를 찾고, 용의자 한 명 한 명에 대해 수사를 진행한다. 그런데 수사를 해보니 용의자 A는 알리바이가 있었고 살인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면 수사관은 용의자 B, C에 대해 같은 수사를 반복한다. 즉, 삼단논법의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결론’부터 먼저 생각하고 난 다음에 이를 뒷받침하는 전제들을 찾는 게 일반적인 수사 관행이다. 이처럼 수사나 재판 과정의 순서는 삼단논법과는 반대로 돼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주장한다. 자신의 주장을 대부분의 사람이 받아들인다면 더는 이를 뒷받침하는 전제들을 찾느라 애쓸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누군가가 그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럴 때 상대방을 설득하고 우리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대전제와 소전제를 찾게 된다.
따라서 논리적 사유에서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얼마나 잘 구성하느냐보다 훨씬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우리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는지다. 오직 그럴 때만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를 찾으려 할 것이고, 마침내 찾은 근거들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사람은 모두 죽고, 소크라테스는 사람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죽는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가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말을 한 사람을 바보 같다고 생각하며 웃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그의 주장이 너무나 분명한 것이어서 아이들까지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사람이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추론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를 논리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사태를 새롭게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진정으로 논리적인 사람이 되려면 우리가 시인처럼 예리한 감수성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논리적 사유와 관련해서 잊지 말아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이성, 즉 근거를 찾고 제시하는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오히려 대화 상대방, 즉 타자다. 타자가 내 주장을 즉각 수용한다면 나는 근거를 찾아 제시할 필요가 없다. 결국 논리적 사유란 타자를 폭력이 아닌 평화스러운 방법으로 설득하려는 의지를 전제로 한다. 논리적 사유는 타자를 대화 상대자로 인정하고 배려하는 정신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고대 그리스에서 논리학이 발달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시 폴리스(polis)는 제한적이나마 민주주의가 실현됐던 곳이다. 따라서 폭력이 아니라 토론과 설득의 정신을 지향했다. 논리적 사유는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것과 전혀 관련이 없다.
강신주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객원연구원 contingent@naver.com
:이 기사의 전문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2호(10월 1일자)에 실려 있습니다.
대전제: 인간은 모두 죽는다.
소전제: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결론: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대전제가 참이고 동시에 소전제가 참이면 결론이 참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문장 가운데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삼단논법의 순서대로 ‘인간은 모두 죽는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생각을 떠올린 다음 자신이나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 대전제와 소전제를 찾게 된다. 결국 논리의 순서는 실제 사유 순서와 반대로 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살인사건의 예를 들어보자. 보통 수사관은 먼저 용의자를 찾고, 용의자 한 명 한 명에 대해 수사를 진행한다. 그런데 수사를 해보니 용의자 A는 알리바이가 있었고 살인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면 수사관은 용의자 B, C에 대해 같은 수사를 반복한다. 즉, 삼단논법의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결론’부터 먼저 생각하고 난 다음에 이를 뒷받침하는 전제들을 찾는 게 일반적인 수사 관행이다. 이처럼 수사나 재판 과정의 순서는 삼단논법과는 반대로 돼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주장한다. 자신의 주장을 대부분의 사람이 받아들인다면 더는 이를 뒷받침하는 전제들을 찾느라 애쓸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누군가가 그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럴 때 상대방을 설득하고 우리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대전제와 소전제를 찾게 된다.
따라서 논리적 사유에서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얼마나 잘 구성하느냐보다 훨씬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우리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주장을 할 수 있는지다. 오직 그럴 때만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를 찾으려 할 것이고, 마침내 찾은 근거들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사람은 모두 죽고, 소크라테스는 사람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죽는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가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말을 한 사람을 바보 같다고 생각하며 웃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그의 주장이 너무나 분명한 것이어서 아이들까지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사람이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추론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를 논리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사태를 새롭게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진정으로 논리적인 사람이 되려면 우리가 시인처럼 예리한 감수성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논리적 사유와 관련해서 잊지 말아야 할 게 하나 더 있다. 이성, 즉 근거를 찾고 제시하는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오히려 대화 상대방, 즉 타자다. 타자가 내 주장을 즉각 수용한다면 나는 근거를 찾아 제시할 필요가 없다. 결국 논리적 사유란 타자를 폭력이 아닌 평화스러운 방법으로 설득하려는 의지를 전제로 한다. 논리적 사유는 타자를 대화 상대자로 인정하고 배려하는 정신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고대 그리스에서 논리학이 발달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시 폴리스(polis)는 제한적이나마 민주주의가 실현됐던 곳이다. 따라서 폭력이 아니라 토론과 설득의 정신을 지향했다. 논리적 사유는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것과 전혀 관련이 없다.
강신주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객원연구원 contingent@naver.com
:이 기사의 전문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42호(10월 1일자)에 실려 있습니다.
http://news.donga.com/3/all/20091010/88495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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