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냉이 죽, 그리고 학교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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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냉이 죽, 그리고 학교빵
들판엔 아지랑이가 아롱거리던 어느 햇살 좋은 봄날이었습니다. 때는 60년 대 중반이었지요. 초등학교 뒷마당 우물가에 무럭무럭 김이 솟아오르는 커다란 솥이 걸려 있고 학교의 수리와 관리하는 일을 보던 아저씨가 활활 타오르던 장작불을 살펴보면서 노오랗게 익어서 퍼져가는 강냉이 죽을 커다란 주걱으로 휘젓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집에서 가져온 벤또라 불리던 양철 도시락을 꺼내어 들고는 솥으로부터 길게 줄지어 차례를 기다립니다. 아주머니 한 분이 긴 국자로 차례를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강냉이 죽을 한 국자씩 퍼 줍니다. 점심 배급을 받은 아이들은 뜨거운 도시락을 받쳐들고는 각자의 교실로 들어갑니다.
멀리서 물끄러미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와 친구 호석이는 그 줄에 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선생님이었던 나는 그 학교로 전학을 오기 전, 예전 학교 옆 초가지붕의 사택에 살면서 그때 보다 더 어렸을 적에 종종 강냉이 죽과 떡을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선지 별로 맛없는 그 강냉이 죽을 특별히 먹고 싶어하지는 않았지만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호석이는 그것을 굉장히 먹고 싶어했습니다.
호석이는 내게 불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네 집은 논이 여덟 마지기인데 저 줄에 서 있는 같은 동네의 친구로 호석이의 팔촌이 되는 호용이네는 논이 11마지기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알기로도 자기 집은 초가집인데 호용이네 집은 기와집이었지요. 생각해보니 나이 지긋한 담임 선생님이 호석이가 낯이 훤하고 깔끔하게 생긴데다 키도 훤출한 것에 비하여 호용이가 보통 체격에 피부가 까무잡잡하였기에 학급 전체의 절반 정도에게만 무상급식으로 주는 강냉이 죽을 호용이에게만 먹도록 하였던 것인데 나이 열 살의 초등학교 당시의 친구와 내가 생각해도 그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종 담임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때 강냉이 죽 무상급식을 하기 전에 가정방문을 통하여 좀 더 공정하게 무상급식이 필요한 아이들을 선정할 기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모두가 오십보백보의 시골 살림살이 시절에 특별하게 유복한 가정이 과연 몇이나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선생님이 제아무리 가정방문을 해서 심사한다해도 강냉이 죽을 지급하는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을 것 같군요. 논밭이 조금 더 많다해도 식구들이 더 많을 수도 있는데 80여 명의 학생들 가운데 절반을 잘라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강냉이 죽을 받아 온 아이들은 그냥 맛있게 퍼 먹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도시락을 싸 온 아이들과 바꿔 먹기도 하였습니다. 또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라 일부 착한 여자아이들은 식어서 굳어진 강냉이 죽을 집으로 가져가 동생들과 나눠 먹기도 하였습니다. 아무튼 강냉이 죽의 배급은 그 이후에도 별로 공정한 방식으로 지급되지 못하던 것이 학년이 바뀐 어느날 아주 반가운 일이 생겼습니다.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 생전 처음 보는 삼륜차가 십리 밖 읍내에서 빵을 가득 싣고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아, 지금 생각해도 그 빵은 너무 맛있었습니다. 우리가 학교빵이라고 불렀던 그 빵은 제법 묵직한 것이 딱딱한 껍질도 고소했지만 부드러운 속살을 조금씩 떼어 먹는 것이 그렇게 맛날 수가 없었습니다. 갓 구워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네모난 그 빵은 한 판에 서른 개 정도씩의 큰 판이 학급의 모든 학생들 숫자에 맞춰서 지급되었는데 선생님이 하나씩 떼어내어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지급하였습니다. 당연히 그날부터 호석이의 불평 또한 사라졌습니다. 모두가 함께 맛있는 빵을 먹는 것은 참으로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매일 배가 고파지는 오후 시간이 되면 아이들의 시선은 운동장으로 향했고 빵을 실은 삼륜차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45년이 지난 요즘 한국에서 무상급식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기에 옛날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온 나라가 가난하던 시절에도 무상으로 온 학급의 아이들이 고소한 빵을 먹을 수 있었는데 지금처럼 잘 살게 된 조국이 경제적으로 하위 몇 퍼센트 가정의 아이들을 골라내어 그 아이들에게만 무상급식을 한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일부만 무상으로 급식한다는 것은 요즘처럼 자존심이 강한 아이들이 수용하는 것도 힘든 일이며, 또한 그것을 선생님이 각 가정의 수입과 지출을 정확하게 알아내어 공정하게 선정하는 일 또한 예나 지금이나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밥 먹을 자유를 주는 것은 정치인들의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그렇게나 가난했던 수십 년 전에도 했던 일을 지금의 대한민국이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뭔가 잘못된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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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마하님의 댓글
마하 작성일
옥수수죽과 옥수수빵
이거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니 먹어본 사람들
특히 옥수수죽 을 학교에서 급식으로 먹었던분들 .....
그때는그게 허기진 배를 달래주는 급식중에 급식이였지요
그리고 몇년후 옥수수 빵으로 교체되서 나왔지만
그때 그 죽은 정말 고소하고 달착지근하고 참으로 맛이 있었습니다
무상 급식을 골라서 한다는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할려면 미국처럼 하는것이 훨 낮지 않을까 생각됩니다만.....
kuru님의 댓글
kuru 작성일
지금 무상급식 반대론자들이 내세우는 주장이 바로 전세계에서 스웨덴 핀란드등 몇개국만이 무상급식한다
미국같은나라도 선별급식하는데 우리가 무상급식한다는게 말이 안된다라는겁니다
미국의 급식제도에 대해 아시는게 있으면 알려주시지요
제가 아는바로는 못내도 별상관없고 그것때문에 왕따 당한다든지 학교나 담임 급우들에게 눈치받을일이 전혀 없다고 들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