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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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을 열며] 정의란 사랑·자비요, 상생입니다
(‘공동선’ / 김형태 / 2011-01-29)
‘정의’를 팔아 밥을 먹고 산 지 수십 년이지만 갈수록 정의가 무엇인지 어려워집니다. 오래전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는 법언을 들으면 가슴이 뛰었습니다. 하지만 요즈음 드는 생각은 현실에서는 백 사람에게 백 개의 정의가 있지 싶습니다.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대기업과 영세 상인들의 상생법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 동네도 대기업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이 들어오면서 골목에 있던 구멍가게들이 문을 닫거나 겨우 적자나 면하면서 그저 문만 열어놓고 있는 형편입니다.
무엇이 정의일까요. 대기업 측에서는 자본주의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영업의 자유를 들어 이를 규제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강변합니다. 반면에 영세 상인들은 대기업이 힘을 이용해 동네 골목 코 묻은 돈까지 다 쓸어가는 건 부당하다고 하소연합니다. 양쪽 모두 헌법을 들어 자신들이 옳다고 합니다.
헌법 제119조는 이렇습니다. 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대기업들은 “그것 봐라, 대한민국은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나라”라며 자신들이 옳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헌법상 ‘균형 있는 국민경제’나 ‘적정한 소득분배’란 말은 빈부의 격차를 줄이라는 뜻이고 돈 많은 대기업의 일방적 ‘시장지배와 경제적 남용을 방지’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구멍가게 주인들은 이 내용을 근거로 대기업의 슈퍼사업 진출을 규제하는 법을 만들어 달라고 정부와 국회에 요구하고 있으나 아직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2005년에는 200여 개이던 기업형 슈퍼가 최근 들어 800여 개로 늘었습니다. 어느 쪽이 정의입니까. 아마도 각자가 자신들이 처한 위치에 따라 다른 답을 할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는 말에 가슴 뛴 건 철모르는 풋내기의 감상이었지 싶습니다. 물론 정의란 말 자체가 좋은 것이니 좋은 것을 위해 몸바치리라는 열정을 가벼이 볼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막상 하늘이 무너져도 세워야 할 만큼 중요한 정의란 게 도대체 무어냐는 핵심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이 무슨 코미디 같은 이야기입니까.
사정이 이리된 데는 저 옛날 그리스의 플라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는 “이 세상, 눈앞에 펼쳐진 모든 사물과 현상들은 그저 그림자요, 불완전한 것들이며 이를 넘어선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 합니다. 눈앞에 미인들은 다 어딘가 흠이 있으나 이데아의 세계에는 완전한 미인이 있다는 식입니다.
정의 역시 구체적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으며 이데아의 세계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현실은 불완전하게 존재하고 완전한 존재는 이데아의 세계, 쉽게 말해서 관념세계에 있을 뿐이라는 주장은 중세를 거쳐 지금까지 맥맥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불완전하고 엉망으로 보이는 이 현실 말고 이를 초월한 세계에 완전한 정의며 진리며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그리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구체적 현실, 바로 ‘지금 여기’를 떠나서 완전하게 존재하는 진, 선, 미란 없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지금 여기, 우리 동네 골목에서 대기업 슈퍼가 경제활동의 자유를 외치며 구멍가게를 문 닫게 하는 게 정의인가 아닌가. 대기업이나 영세상인의 입장을 떠나서 어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정의란 없다는 생각입니다.
저마다의 입장에 따라 정의의 내용이 달라지는 현실 속에서 도대체 정의란 무엇일까. 가장 쉽게 나오는 대답은 ‘각 사람이 자기 몫을 제대로 받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이 설명 역시 그렇다면 제대로 받아야 하는 자기 몫이 도대체 무어냐는 물음이 이어지니 새로운 내용이 없는 동어반복에 불과합니다.
제 입장에 따라 정의의 내용이 달라지면 정의는 싸움의 구실이나 명분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수십 년, 정의를 팔아 밥 먹고 살면서 결국에는 정의란 이타적으로 말하면 사랑·자비요, 자리리타(自利利他)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수준으로 이야기하면 상생이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정의는 어디 멀리 뚝 떨어져서 고고하게 존재하는 이데아가 아니요, 저마다의 처지에 따라 달라지는 이해관계의 포장도 아니요, 사랑·자비요, 상생입니다.
그러기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도 정의에 관해 이리 이야기했지 싶습니다. “여러분이 정의와 일치하고 정의로 변모되고자 한다면 행하되 아무것도 구하지 말고 시간 속에서든 영혼 속에서든 어떠한 이유도 달지 마십시오. 상이나 복을 바라지도 말고, 이것도 저것도 바라지 마십시오.”
김형태 / 변호사
※ 위 글은 격월로 발행한 ‘공동선’ 발행인 김형태 변호사께서 2010,11-12월호 권두언으로 게재한 글을 펌하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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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정의님의 댓글
정의 작성일
세상에
정의 . 진리 .진실. 전심. 전력 있을까요
자기 . 주먹 .전쟁 .전설. 만이있겠지요
결국에는다 죽음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