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정조와 화성을 생각하며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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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 화제가 되었던 미니시리즈 "성균관 스캔들"에 뒤늦게 푹빠져 1월 한달을 보냈습니다.
딸내미 학교의 학부형인 중국계 아줌마 셀마(한국드라마와 배우에 대해서 너무 너무 잘 아시는 한류의 왕팬, 대장금을
원어로 보시겠다고 한국어 강좌에 등록하고 올 여름에 한국으로 여행 갈 계획을 세우고 계실 정도니...)의 강추로
보게 된 이 드라마, 뭐 보면 볼수록 므훗해지는 이 드라마를 즐기다가 또 정조의 치세와 연대가 우리 드라마에 등장하는 걸
보면서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들더군요. 왜 요즘 들어 우리는 정조의 치세 연간을 자꾸 되돌아보게 되는 걸까?
참여정부의 마지막 해에 정조를 다룬 드라마 이산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고 수많은 책들이 나온지 몇년 되지도 않았으며,
각종 케이블 티비와 미니시리즈로도 계속 만들어져 왔건만 또 정조연간의 치세를 배경으로 드라마를 만든다?
지겹지도 않은지?
뭐 그만큼 정조의 시대가 역동적이었다는 말도 되고 또 할 얘기거리도 많다는 반증이겠습니다만,
왜 그것이 요즘 들어 이토록 드라마와 책으로 자주 등장하게 되는지는 다시 한번 곱씹어 볼 필요는 없는 걸까요?
사실 정조는 조선의 27명의 군주 가운데서 세손가락안에 꼽히는 유능한 인물이고 많은 업적과 화제를 낳았습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과 이로 인해 매우 힘든 세손시절을 거쳐 왕위에 올랐고 조선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신권우위의 시대와 당쟁속에서도 왕권을 강화하고 규장각을 세워 학문을 증진하고 신해통공으로 상업을 융성시키고
화성을 쌓고 서얼들을 중용하면서 새로운 조선의 기반을 세우려 했던, 그래서 사실상 조선의 마지막 황금기를 일궜습니다.
조선의 임금가운데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명군은 단연코 세종이라지만, 최근 들어서는 정조가 더 대단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에는 세종의 치세는 아버지 태종의 비정할만큼의 철저한 왕권 강화라는 사전 정지작업에
힘입었지만, 사실상 정조는 왕위에 오르던 그 순간에도 할아버지 영조가 거의 악을 쓰다시피 주요 권신들을 협박해서
간신히 왕위에 올랐고 세손 시절은 물론 재위기간 내내 노론이라는 거대 정치세력의 집요하고 철저한 견제와
심지어는 시해시도는 물론 오늘날에도 독살설이 나올정도로 그의 치세는 늘 힘들고 어려웠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과 24년의 치세에 이토록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세종보다 한수 위라는 평가가 일견 타당할 정돕니다.
그리고 그가 꿈꿨던 새로운 조선은 안타깝게도 미완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가 48세라는 젊은 나이로 급서한 이후,
조선은 우스울 정도로 쇠망의 길을 걸었고 정확히 110년후 조선은 식민지배라는 치욕스러운 멸망으로 끝을 맺습니다.
여기서 눈여겨 봐둬야 할 것은 그가 죽던 1800년, 세상은 온통 변화의 물결이 휘몰아치던 시점이었습니다.
서세동점이 그야말로 절정에 달하던 19세기 초 변화하는 새로운 조선을 꿈꾸던 영명한 군주와 그 추종세력들이
결국 더 이상의 동력을 상실하고 추락했던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봅니다.
"만력 15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를 썼던 레이 황의 수사법을 빌면 정조가 죽던 그해 그간 눌려 있던 노론 강경파들은
눈엣 가시 같던 남인과 소론들을 싹쓸어버리고 다시 주자학 정통의 사대부의 나라 조선으로 돌아가 모든게 평안해지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정조가 죽던 1800년 바로 그시점부터 400여년의 사직을 이어간 조선이라는
나라는 돌이킬수 없는 전환점을 돌았던 셈이지요. 정조가 죽던 그해 태국 샴왕조의 몽쿠트 5세(바로 왕과 나의 주인공이기도 한)
는 자식들을 영국으로 유학보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자식들에게 타이릅니다."사실 서양으로 너희들을 보내는 것은
참으로 내키지는 않는 일이지만, 지금의 세상은 서세가 동양을 집어삼키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너희는 이점을 명심해
그들을 배우라" 이후 역사에서 태국이 일본과 더불어 유일하게 서양의 식민지배를 받지 않게 된 이유의 단초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조선이라는, 그때까지 꽤 괜찮았던, 근대화의 기반을 닦고 있었던 나라는 이가환과 정약용형제같은 인재들을 서학쟁이라고
몰아 죽이고 귀양보내버리면서 끝장의 길을 택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지요. 정조가 죽은지 불과 11년만에 서북지방에서 조선조 최대의
반란이라는 홍경래의 봉기가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정조 사후 조선의 정치와 권력이 얼마나 찌질해져버렸는지를
그대로 보여준 셈이었지요. 이미 백성의 의식은 정조의 치세로 하루가 다르게 커버렸는데, 다시 그 통치가 옛날로 후진을 하니,
반발이 없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정조의 화성천도는 여전히 우리에게 미완의 꿈이자 희망으로 되살아나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수구세력들이나 자칭보수들의 입장이나 주장에 따르면 정조도 어쩔수 없는 유교적 군주일수도 있겠지만,
(최근 정조가 인기를 끌자, 재빨리 이런식으로 초를 치는데 앞장선게 조선일보였다는 걸 상기해보십시요)
화성으로 천도를 계획했던 정조는 분명 노론의 150년 통치로 쩌들었던 지금의 서울, 당시의 조선의 수도
한양으로는 새로운 조선을 감당 할수 없다고 봤고, 새로운 국가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서는 수도 이전이
최선이라는 판단도 매우 정확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화성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그 치밀함과 합리성과 과학적인
측면을 돌이켜 보면 과연 조선은 사색당쟁으로 망한게 아니라 바로 그 당쟁의 균형이 노론의 독점으로 끝나면서
쇠망했다는 해석이 더 정확하다고 봅니다. 역사는 가정이 아니라지만, 정조가 화성으로 천도했다면 아마도
노론 세력은 피의 대숙청은 당하지 않았을지라도 사도세자를 죽인 패륜 세력으로 서서히 소멸되었거나 기득권을
내놔야 했을 것이고 그들이 굳건히 지키려 했었던 주자학과 반상의 신분질서 역시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겁니다.
그랬다면 화성은 반상의 차별이 없는 새로운 대동세상으로 치닫았을 것이고 조선의 지식인들은 좀 더
주체적으로 서양의 문물과 학문을 수용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 이후 역사는 지금과는 사뭇 달라졌겠죠.
아마 정조가 그렇게 1800년에 죽지 않고 화성천도에 성공했더라면 국권상실과 식민지배 그리고 분단과 한국전쟁
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하던 해, 노론들에겐 아무일도 없었는지 모르겠으나,
역사의 시계추는 그렇게 냉정하게 돌아서버렸던 셈이지요.
정조는 수도를 천도하고 세자에게 왕위를 넘겨준 후 상왕으로 새로운 수도에서 새로운 꿈을 꾸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조선에서는 '성균관 스캔들'에서처럼 사농공상의 구분도 적서의 차별도 없는 좀 더 살만한 대동세상을
내걸고 민심의 기반하에 새로운 정치, 새로운 조선을 시작하고자 했겠지요. 그래서 그는 규장각으로 그 지적기반을
삼고(규장각은 세종시기 꽃피웠던 집현전이래 조선왕조가 만들어낸 유이한 브레인연구소입니다) 장용영을 힘의 근간으로
삼았던 것이겠지요. 신해통공과 격쟁과 상언으로 민중의 마음을 잃고 그들의 지지를 얻어가면서 말이지요.
그랬으니, 정조의 사후, 규장각과 장용영이 사라졌던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화성이 내버려진 것도 그때문일거구요.
노론에게 화성 천도란 기득권의 상실에 다름 아니었을테니까요.
자 이시점에서 노무현 참여정부의 행정수도 이전이 좌절된 상황을 떠올려볼까요?
뭐가 느껴지십니까? 군주국가인 조선도 나라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 수도를 옮기려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노무현 참여정부가 행정수도를 옮기려 했는지 그리고 그 기반하에서 어떤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꾸려 했는지는 더 명확하리라 봅니다.
네, 지금 참여정부의 마지막 해에 조선의 마지막 개혁군주 정조가 화제가 된 이유가 다른데 있었을까요?
이제부터는 객관적인 진술이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인 제 주장과 생각을 한마디만 하고 끝내겠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 시대에 정조가 자꾸 화제가 되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화성천도의 좌절과
미완으로 끝난 정조의 개혁 그리고 그의 썩 나쁘지 않았던 치세에서 우리가 뭘 반면교사하고 앞으로 뭘
더 해야 할지에 대해서 우리가 정확하게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수 없는 무의식들과 정서들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뭔가를 암시하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총선과 대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정조의 사후 도탄에 빠져 헤매는 시절과 그닥 다르지 않습니다.
미완으로 끝난 화성천도의 꿈을 다시 꾸는 일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정조와 화성을 다시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분명 그 역사의 행간에서 뭔가를 새롭게 배울수 있을 겁니다.
여담으로 성균관 스캔들에서 묘사된 새로운 조선의 꿈은 사실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상상하는 486,386세대들의
열망이라고 감히 우기고 싶습니다. 꼭 한번씩들 보십시요. 이렇게 대본이 철저하게 잘 짜여진 드라마도 드물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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