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로스쿨의 '원 샷'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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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로스쿨의 ‘원 샷’ 시스템
12월은 로스쿨 초년생들에겐 가장 바쁘고 힘겨운 달이다. 바로 두려움의 대상인 학기말 시험이 치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미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교육과정을 마친 아이들이 점수가 매겨지는 것에 익숙하다지만, 로스쿨 학기말 시험이 특히나 악명이 높은 까닭은 단 한번의 시험이 모든 것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Legal Writing을 제외한 로스쿨의 모든 수업들에는 끊임없는 리딩과 수업시간에서의 고통스러운 심문만(?)이 있을 뿐, 별도로 제출해야 하는 페이퍼나 퀴즈, 중간고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보통 과목당 세시간에 걸쳐 치루어지는 학기말 고사가 학점을 결정짓는 “원 샷” 시스템이 존재하는 셈이다. 보통 2년차에서 로펌 인터뷰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1학년때 받았던 학점이 취업 여부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있다.
하버드라는 이름이 먹먹하게만 다가오는 것도 바로 학기말 기간이다. 이전까지의 교육과정에서 늘상 상위권을 차지하고 우수하다는 인정을 받던 아이들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충격을 받는 것이 바로 이 때라고 한다. 모두가 하나같이 똑똑하고, 모두가 하나같이 치열하게 공부하는 집단에서 잠시라도 게으름을 피우면 뒤쳐지고 만다는 정신적인 압박이 존재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에 던져진 듯한 첫 학기의 생경함, 나날이 쏟아지는 과제를 해치우는 것도 버겁건만, 잇달아 이어지는 단 한번의 학기말 고사는 그렇게 로스쿨 캠퍼스를 팽팽한 긴장감으로 얼려버린다.
악명이 높은 만큼이나 구술로 전해지는 일화들도 많다. 화장실에 가는 시간을 통제하기 위해 섭취하는 음료의 양을 정교하게 조절했다거나, 노트를 출력해 방의 벽면과 천장을 전부 그것으로 도배해버렸다는 이야기. 혹은 시험 도중 갑자기 히스테리컬하게 울음을 터뜨리며 뛰쳐나간 어떤 여학생 등 이 때 캠퍼스를 맴도는 다소 믿기지 않는 일화들은 “설마..”하는 마음 속에도 두려움을 살살 부채질 해 놓는다. 학생들이 겪는 이러한 과정을 이미 잘 알고 있는 학교 쪽에서는 나름의 서비스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몸이 아프거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제대로 시험을 치르기 힘든 학생들은 잠시 시험을 미루거나, 별도의 시험을 치를 수 있다. 또 학기말 기간 중에는 스트레스 해소 마사지를 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학교가 제공해주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긴장과 두려움의 근원을 없애는 것, 즉 한 방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시스템을 개량하는 것이다. 왜 절대다수의 로스쿨이 이런 방식으로 학점을 결정하는 지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역사적으로 늘상 그래왔으며 교수와 학교쪽 입장에서 행정적으로 가장 관리하기 편리하기에 시스템이 그대로 고착화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원 샷 시스템을 정당한 것으로 변론하는 입장에서는, 법정에 서서 의뢰인을 대변해야 하는 미래의 법조인들이 어느정도의 긴장과 스트레스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에게 이러한 로스쿨의 원 샷 시스템은 미국의 민사소송 과정 자체와 비슷하게 다가왔다. 1학년생들의 “필수과목” 중 하나인 민사소송 수업에서 우리는 미국과 독일의 시스템을 비교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미국의 시스템은 이른바 “시퀀스”라는 단어로 묘사될 수 있다. 소송이 시작되고, 양쪽이 관련된 자료와 정보를 교환하고 (discovery), 재판이 시작되면 원고가 먼저 자신의 케이스를 법정 앞에 펼쳐 보이고, 그 다음은 피고의 변론이 이어지며, 양쪽의 최후 변론, 그리고 배심원단이 결정을 내리기 까지 모든 것이 출발점에서 도착점을 향해 일방향으로 달려가듯이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연극이 막과 막을 거치며 결말을 향해 전개 되듯이, 시퀀스 별로 정해진 이야기가 있고 그렇게 하나의 지점을 지나면 뒤돌아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성격이다.
그와는 사뭇 대조적으로 독일 시스템은 “에피소드”식이다. 한번의 재판이 이루어지는 대신, 판사의 지휘 하에 여러 차례의 청문회(hearing) 열린다. 사건을 검토하는 것도 원고가 먼저 할 이야기를 하고 피고가 바통을 이어받는 순차식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판사가 소송을 매듭짓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지점부터 먼저 검토하며, 과정이 전개되는 방향에 맞춰 다시 떠오르는 증거나 자료를 그 때 그 때 유연하게 검토하는 식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미국 법정 드라마에서 흔히 보듯이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거나 예상치 못했던 증인이 등장할 경우 상대편이 법정에서 불심의 공격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새로운 청문회가 잡히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시스템의 근본적인 차이 때문에, 독일의 민사 소송과정은 일종의 비지니스 미팅 같은 성격을 갖는다.
반면 미국의 민사소송은 원고와 피고가 한정된 무대위에서 펼치는 대결의 드라마다. 흔히 미국 법정을 무대로한 드라마나 영화는 극적인 재미를 위해 과장된 점이 상당히 많지만, 근본적으로 적대적인 (adversarial) 미국 소송 시스템의 성격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증인과 증거를 하나의 무대 위에 동원하고 효율적으로 배치해 가장 설득력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고자하는 과정, 상대방 증인의 헛점을 포착해 반대 진영의 케이스를 공격하고자하는 반대 심문, 매끄러운 화술과 매너로 배심원단의 마음을 휘어잡고자하는 구술 변론까지, 과연 이러한 시스템이 얼마나 효율적이며 합리적인가에 대한 의문과는 별도로, 미국의 소송 시스템은 매혹적인 장치들로 가득하다. 법정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지침없이 영화와 드라마 소재가 되고, 그때마다 물리지 않고 관객이 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까닭도 바로 이와 같은 성격에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로스쿨의 이러한 원 샷 시스템 또한 흥미진진한 드라마임에는 틀림없다. 하나의 시험으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 시스템이 과연 합리적인가를 놓고 나는 친구들과 함께 종종 불평을 터뜨렸지만, 그 긴박함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스릴, 바짝 조여진 긴장감 속에서 놀랍도록 벼려지는 집중력, 그리고 불면의 피로와 공존하는 혼곤한 성취감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는 점도 부정하지는 않겠다.
학기의 가장 마지막 시험이 치루어지는 날, 우리는 케이스북과 노트북 옆에 샴페인과 위스키, 맥주를 함께 챙겨왔다. 그리고 감독관이 시험 종료를 위치는 순간 우리는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샴페인을 터뜨리고 술잔을 부딪혔다. 치열했던 과정 만큼이나 달콤한 결말. 그렇게 믿겨지지 않을 고난으로 가득했던 첫학기는 잊혀지지 않을 해방의 짜릿함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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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언론 플레이님의 댓글
언론 플레이 작성일
모든 법대는 원샷아닌가요?
학년에 한번의 시험으로 결정이 되는데요..
하버드가 공부만 한다고 가나요? 물질도 따라야하고 거기에 부모의 배경이 입학의 결정에
역할도 하지요.
사실 법대학원에 입학하고도 가정형편상 중간에 휴학하는 경우가 꽤 된답니다
졸업하고 많은 빚을 생각하면 그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도중에 휴학하면서 돈을 벌어 학부 4년동안의 대학 론을 일부 갚고
다시 로스쿨에 들어가는 서민가정의 아이들이 꽤 있습니다
그정도의 학비야 부모가 부담해 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능력이 안되는 저같은 부모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하버드하면 미국의 극보수성향의 학교로 한계가 있지요
이번에 정의란이란 책의 저자만 보더라도 하버드 교수로 수준이 딱할 정도니까요
오히려 학계에선 유명주립대의 교수진이 더 우수한 것도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