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 직격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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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부는 사이비 보수, 민주·민생·남북관계 등 퇴보”
[한국일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직격인터뷰’
직격인터뷰의 첫 손님으로 문재인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초대한 것은 그의 얼굴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 했을 정도로 두 사람의 인연은 각별했다. 그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뒤 많은 사람들이 남은 문재인에게서 노무현을 떠올렸다.
더욱이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 의연하고 절제된 모습을 보여줬다. 분노와 증오, 갈등과 대립이 범람하는 우리 정치판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고 많은 사람들이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런 문재인이기에 4·27재보선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을의 후보로 나서달라는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직격인터뷰에서 분명하게 거절했다. 그러면서도 야권이 경쟁과 협조를 통해 좋은 후보를 낸다면 한나라당 후보와 해볼 만하다고 했다.
인터뷰는 그가 대표변호사로 있는 부산 연제구 거제동 법무법인 부산의 사무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현 정부를 비판할 때는 거침없고 당당하던 그도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가 떨렸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 한나라당이 8, 9일 개헌의총을 했다. 2007년 1월 당시 노 대통령이 4년 중임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하자 그것을 정략적 발상이라며 거부하던 한나라당이 개헌을 하겠다는 것인데.
“노 전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은 대통령 4년 중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시기의 일치에 국한하자는 것으로 차기 정부에 유리한 것이었다. 반면 최근 한나라당의 개헌 논의에서는 내용이 제대로 제시되지 않은 채 권력구조 전반을 바꾸겠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런 발상은 현행 권력구조가 여권에 불리하다고 보기 때문에 나오는 것으로 정략적이다.”
- 노 전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할 때 정치판을 흔들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 아닌가.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 내용을 명시했는데 어떻게 판을 흔드나. 그즈음 보수언론과 한나라당도 개헌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그러다가 막상 개헌을 내놓자 한나라당이 정략이라고 몰고 갔다. 한나라당이 탄핵국면 등에서 넘어진 적이 있어 지레 겁을 먹고 거부한 것이다.”
▲ 2005년 7월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권력 이양을 통한 대연정 문제를 놓고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
- 1월 1일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면서 “우리 사회가 고인이 꿈꾸는 나라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했는데 무엇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인가.
“민주주의, 민생, 복지, 남북관계 모든 면에서 퇴보했다. 조금 퇴보한 것이 아니라 심각한 퇴보가 있었다. 정치와 민주주의는 6월 항쟁 이전으로 돌아갔다. 절차적 민주주의, 인권 등이 전반적으로 후퇴했다. 이명박 정부가 진정한 보수주의라면 시장의 자유와 자율을 중시할 텐데 금융권 인사나 물가관리에도 개입해 관치로 돌렸다. 이명박 정부는 사이비 보수다.”
- 남북관계도 그런가.
“노태우 정부 이래 역대 정부가 남북관계를 꾸준히 발전시켜 평화통일에 대한 희망을 갖도록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었다. 그러나 이 정부 들어 한국전쟁 이후 최악이 돼버렸다. 눈물이 날 정도다. 우리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못할 줄 몰랐다.”
- 하지만 보수 세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북지원이 결과적으로 북핵 개발을 도왔다고 주장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남북이 평화통일에 가까워졌다. 국가연합 혹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정도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통일은커녕 전쟁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참여정부 때는 북한과 단 한 차례도 충돌하지 않았고 북한 도발에 의해 단 한 명도 희생되지 않았다. 참여정부 때 6자회담을 통해 북핵 폐기에 합의했고 그 약속에 따라 북한이 원자로 냉각탑을 파괴했다. 6자회담은 만들어놓은 핵무기뿐 아니라 핵무기를 만드는 프로그램도 다 폐기하는 것이었다. 그런 핵 폐기를 없던 일로 되돌린 게 이 정부다. 북한이 상식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고 언제 도발할지 모른다고 하지만 그건 늘 그랬다. 역대 정부는 그런 점을 상수로 두고 노심초사하며 평화를 관리했다. 평화관리는 접시 같은 것이어서 탁 놓으면 깨지는데 이명박 정부가 그것을 깼다.”
-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면서 “피와 땀으로 키운 민주주의가 권력의 오만과 독선으로 가고 있다”고도 했다. 권력기관의 문제를 지적한 것인가.
“참여정부는 권위주의 아래 왜곡됐던 민주주의를 바로잡으려 했다. 그래서 노 대통령 스스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위주의를 없앴고, 정권이 사병처럼 부리던 검찰, 국세청, 경찰, 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국민을 위한 봉사기관이 되도록 했다.”
- 하지만 권력기관을 한꺼번에 풀어줌으로써 그들 기관이 역으로 통치 세력에 도전하고 그래서 국정이 불안해졌다고 보지는 않는가.
“새 제도를 만드는 것이라면 이번에는 검찰, 다음에는 국세청 하는 식으로 순차적으로 일을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기관을 풀어주고 그것을 통해 왜곡된 기능을 정상화하는 것은 동시에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흐르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문화로, 전통으로 굳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그런 것이 과거로 돌아갔다.”
- 노 전 대통령이 검찰의 제도 개혁을 하려다가 못한 결과적 측면도 있는 것 아닌가.
“검사의 공명심, 조직이기주의 때문에 검찰권이 남용될 수는 있다.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라 정치성 때문에 검찰이 중립적이지 못하고 권한을 남용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많은 정치적 사건에서 무죄 선고가 나온 것이 공소권 남용의 증거 아니겠는가. 조현오 경찰청장이 증거도 없이 노 대통령의 차명계좌 발언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밝혀달라고 검찰에 요청했지만 손을 놓고 있는데 그것이 정치적 이유 때문 아니겠는가. 고소고발사건은 3개월 안에 처리해야 하는데 지난해 8월 우리가 조 청장을 고소한 뒤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명백한 직무유기다.”
- 그렇게 비난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게 최대의 참패를 당했다.
“국민이 진보적 정부가 10년을 했기 때문에 다음에는 보수 세력에 정권을 맡기자고 했던 것 같은데 속은 것이다. 물론 우리가 뼈아프게 반성할 것이 많다. 민주주의 등에서 큰 발전을 이뤘지만 그 추진 과정에서 민심을 얻지 못했다. 언론환경이 워낙 나빴고 국민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부족했으며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도 기대만큼 해결하지 못했다.”
- 보수층은 참여정부가 성장동력을 상실했다며 경제 문제를 추궁했다
“국민이 이명박 후보를 뽑을 때는, 도덕성에 문제가 있더라도 경제는 잘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성장률, 고용, 국가채무 규모 등 어느 하나 참여정부보다 나은 게 없다.”
- 참여정부가 대북송금, 이라크 파병, 대연정 등으로 지지 세력을 분열시킨 측면도 있지 않았나.
“대북송금 특검 문제부터 말하자. 대북송금은 기본적으로 법 위반이었다. 현대 관계자의 입에서 송금 이야기가 공개돼 이미 문제가 돼 있었다. 참여정부는 대북송금을 통치행위로 보고 수사를 못하게 할 수는 있었다. 그렇게 하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위해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거나 사후 보고라도 받았다고 했어야 하는데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통치행위 이론을 적용할 수 없었다. 결국 검찰이냐, 특검이냐가 고민이었다. 검찰이 수사하면 현대 그룹의 회계문제, 정치인의 정치자금문제로 번질 수 있었다. 반면 특검은 대북송금문제만 다룰 것이기 때문에 더 안전하다고 보았다. 김 전 대통령도 서운해하다가 나중에는 납득했다.”
- 이라크 파병은.
“당시 청와대에서는 찬반 논란이 치열했다. 국방부, 외교부 등은 독립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1만 명 이상의 전투병을 보내자고 했다. 노 전 대통령 개인은 이라크 전쟁이 비도덕적이기 때문에 반대 입장이었다. 그러나 북핵 위기 국면에서 미국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이 대북 제한폭격을 거론했다. 그것을 막으려면 미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비전투병 3,000명이라는 최소 규모로 안전한 지역에 보내 재건 업무를 맡도록 한 것이다.”
- 우리가 파병을 할 테니 강경책을 쓰지 말라고 미국과 딜(deal)을 한 것인가.
"그런 것은 없었다."
- 한미 FTA에 대해서는.
“참여정부가 출범했을 때 우리와 일본 가운데 누가 먼저 미국과 FTA를 하느냐를 놓고 경쟁하는 상황이었다. 다만 조건이 문제였는데, 노 전 대통령은 국익을 철저히 따져 이익이 없으면 하지 말라고 지침을 내렸다. 그래서 협상과정에서 많은 것을 따냈다. 이 정부 들어 재협상을 통해 많은 것을 내주었다.”
- 대연정에 실망한 지지자가 많았다.
“죄송하게 생각한다. 다만 대연정이 선거구 제도의 개편을 조건으로 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권력을 내주면서까지 선거구제를 바꿔 특정 지역에서 특정 세력이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하려 했다. 어쨌든 대연정은 잘못된 것이었다.”
- 민주당이 무상복지 정책들을 내놓았다.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복지 확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복지 확대를 옛날에는 빨갱이라고 하다가 지금은 포퓰리즘이라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민주당이 총선, 대선 등에서 공약으로 내놓으려면 재원대책을 다듬어야 한다. 참여정부가 ‘2030년에 선진국 수준의 복지에 도달해 삶의 질을 세계 10위권으로 올리겠다’는 ‘비전 2030’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 대책을 준비하면서 보니까 증세가 없더라도 조세감면 축소, 세원 발굴로 복지재원을 상당기간 충당할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 이후 추가적인 복지를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면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 노무현 시대의 가치를 압축해서 말한다면.
“그는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많이 가진 사람, 많이 배운 사람뿐 아니라 못 가진 사람, 못 배운 사람도 함께 누리고 함께 행복한 사회를 뜻한다. 그런 세상으로 가고자 한 것이 그의 정신과 가치다.”
- 사람들은 문 이사장을 노무현 가치의 계승자로 여긴다. 문 이사장이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노 대통령의 정신과 가치는 조문 인파와 추모 열기, 지방선거에서 이광재, 안희정, 송영길, 김두관 후보가 당선된 것 등을 통해 되살아났다. 그를 따르는 세력이 모두 정치권에 진출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토양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 4월 재보선 때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에서 출마하라는 권유가 많다.
“노무현 정부 때 농업특보를 맡았던 이봉수 씨가 국민참여당 후보가 됐고, 민주당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비서관인 김경수 씨가 거론되는데 두 사람이 경쟁하다. 단일화를 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본다.”
- 대권주자들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압도적으로 앞서 있는데.
“노무현 후보가 출마할 당시에도 이회창 대세론이 강고했다. 그러나 국민경선이라는 역동적 과정을 통해 대세론을 뛰어넘었다. 우리 쪽에도 인재가 많다. 야권 단일화가 어렵기는 하다. 하지만 단일화만 이뤄지면 국민이 희망을 가질 것이다.”
- 노 전 대통령 수사 문제를 비켜갈 수 없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노 전 대통령에게 어떤 존재였나.
“박연차 회장은 노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 형 노건평 씨와 가까웠다. 그런 인연으로 대통령 선거 때 후원을 했다. 그런 정도일 뿐, 뜻이 맞는 관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를 구상하면서 농촌공동체를 되살리려면 도시의 은퇴자나 성공한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박 회장이 김해 출신이기 때문에 그의 투자를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접촉도 별로 없었다.”
- 그가 원망스럽지 않나.
“노 전 대통령이 유서에서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고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박 회장은 오랫동안 수사를 받았다. 자녀까지 조사 대상이 됐으니 가족과 기업을 지키기 위해 검찰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국세청이 박 회장 회사를 조사한 시기, 방법, 기간, 조사 주체 등을 보면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 하지만 박연차 회장의 돈이 흘러들어 간 것은 맞지 않나.
“노 전 대통령은 전혀 받지 않았다. 검찰이 그를 소환조사하고도 3주 이상 사법처리를 못했으니 그의 무죄가 수사 과정에서 증명됐다고 본다. 가족이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도 면목이 없다. 노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는 물론 나에게도 면목 없어 했다. 그런 것에 각별히 조심했는데 퇴임 이후를 논의하면서 긴장이 조금 떨어진 것 같다. 참으로 송구스럽다.”
- 이광재 전 지사의 박연차 회장 자금수수도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됐다.
“그의 결백을 믿는다. 박 회장의 진술 가운데 사실 아닌 것이 많았다. 이 지사가 1, 2심에서 일부 유죄가 나온 상태에서 출마해 당선된 것은, 강원도민들 역시 그의 무죄를 믿었기 때문 아니겠는가. 아직도 검찰의 장악하에 있는 박연차 회장이 언젠가 자유로워지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2011년 02월 14일
노무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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