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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잘못을 어린 학생들에게 모두 뒤집어씌우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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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1건 조회 2,337회 작성일 11-02-11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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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62회죠. 저와 동기들 중엔 삼성의 이재용(3학년때는 같은 반이기도 했습니다), 트위터를 뜨겁게 달궜던 신세계의 정용진(이 친구는 독어반이라 별로 마주칠 일은 없었습니다만, 가끔씩 같이 치기어린 짓들을 하곤 했었습니다)등이 있습니다. 솔직히 고등학교 때의 추억은 입시의 중압감이나, 거기에 따른 일탈 같은 것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남들은 꿈이 많고 뭔가 미래에 대한 기대가 가득하다는 그 좋은 시절을, 저는 정말 중압감에 차서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고등학교는 제겐 참 힘들었습니다.

그 중압감 속에서도 제가 학교에서 나름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던 곳이 서클룸이었습니다. 저는 도서반 동아리에서 그 시절의 절반을 보낸 듯 합니다. 친구들과 농구도 하고, 또 이책 저책을 다 뒤져 보기도 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하게 뒤집어질 금서(?)들도 꽤 봤고,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간 후에 우리를 찾아온 선배들에게 때때로 술도 얻어마시고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들도 그 나이엔 치기어리고 어렸겠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하늘같은 선배들이었고,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사회를 바꾸겠노라고 하며 우리에게 운동가도 가르쳐주고 맑스나 모택동, 헤겔 등에 대해 말해주던 선배들을 보면서 저도 나름 사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만일 제가 지금 글을 조금 쓴다고 한다면, 그 기초는 그때 도서반 서클에서 잡힌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글어리'라는 서클 문집을 발행했고, 저는 거기에 글을 써서 내곤 했습니다. 수필, 단편소설, 시... 참 다양한 장르들의 글을 그때 써 봤습니다. 학교 백일장에서 상도 몇번 탔을 정도였는데, 그 기초는 바로 그때 다져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기자가 된다면, 이 세상을 내가 바꾸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야 그 꿈을 이뤘고, 나중엔 Voice of America 라는, 미국 공보부(지금은 국무부 산하) 소속의 방송에서 일하기도 했었습니다.

 

아무튼, 학교를 졸업한 것이 87년 2월이니, 벌써 그 교정을 떠난 것이 24년이 된 셈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학교 자체보다는 제가 '도서반원'이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더 깊이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학창생활 그 자체보다 서클 생활이 더 제 인격이나 지금의 저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더 끼쳤을지도 모릅니다.

 

모교에 얼마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교내의 서클 하나인 역도반원들이 학내 폭력과 관계되어 활동 중단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원들이 계속해 비밀리에 활동을 하면서 후배들을 구타하고 학대해서 이것이 큰 사고로 비화됐고, 여기서 학교측이 내 놓은 해법이라는 것이 모든 서클의 활동을 중단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뉴스가 한겨레 뉴스에 사진과 함께 실리자 학교측은 이 기사가 악의에 찬, 왜곡된 기사라며 해명을 했지만 이미 사진엔 "모든 서클활동을 중단시키겠다"는 학교측의 학생들에 대한 '명령'이 그대로 실려 있었습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학생들은 피해자들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폭력에 노출되고 폭력으로 자기들의 불만을 해소하려 드는 것은 그 깊은 기저에 보면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막연한 '입시'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그 '입시'를 실패한다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어 버릴 것이라는, 늘 반복되는 협박(?)과, 이로 인해 자라나는 불안감 같은 것이, 이들에게 여기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풀 무엇인가를 찾게 만들고, 그것은 결국 폭력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죠. 문제는 이것이 아무리 민주화가 됐더래도 '선후배의 위계질서가 분명한', 그리고 적어도 '나이'나 '기수'라는 것이 위로부터의 폭력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수직적인 사회에서는 그 방향이 밑으로 향할 수 밖에 없고, 선배들의 폭력은 보복 심리와 함께 그것을 애꿎은 후배들에게 풀어내어 버리는 것이죠. 그리고 그 원인 제공은 분명히 이 사회가 한 것입니다. 이미 국민개병제 하의 군대라는 집단적 시스템을 통해 상명하복의 문화가 뿌리내리고, 그것이 입시라는 전근대적인 대학입학 제도를 통해 생긴 스트레스와 맞물린 결과라고나 할까요. 문제는 이 입시라는 것이 정말 사회에 나가 사는 데 도움이 되느냐는 겁니다. 어쨌든 대학에 가야 하고, 실력으로 남을 '눌러야' 한다는 문화는 똑똑한 개인들을 양산해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배우는 것은 사회를 위해 뭔가를 공헌하는 데 대해 똑똑한 것 보다는 개인의 영달에만 치중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사회 구조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서 이기심이 팽배하고, 여기서 밀려날 수 밖에 없는 다수의 학생들은 이 나이에 생기는 호르몬 분비와 신체변화에 따른 육체적 스트레스와 입시가 주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치여 있다가 자기들만의 출구를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청소년들의 일탈 행위로 나타나고, 집단 안에선 폭력으로 나타나고, 개인적인 매몰로 이끄는 게임 중독으로 나타납니다.

 

사실 이번 우리 모교의 사건은 '입시'라는 제도 하에 놓여있는 학교 전반의 문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고칠 방법은 사실 근본적인 교육제도의 개혁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문제들을 학생들이 그나마 건전하게 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 자체를 막아 버리는 학교측의 어이없는 처사도 그렇지만, 이 사회 자체가 '돈이 없으면 공부라도 잘 해(서 남을 누르고 너 혼자 서)라'는 말이 매우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라면, 정말 '보편적 인간'이 설 자리는 더욱 없어집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전인교육'이란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정말 '전인교육'을 받아 본 기억은 없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입시를 위한 '찍기 기계'가 되기 위한 공부였을 뿐입니다. 전인교육이란 것이 '전두환에게 순종하는 인간'을 뜻했던 것은 아닌지 궁금했던 그때의 아팠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게 만드는 지금 이 사건은, 우리가 왜 이 사회를 보다 '인간다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애틀에서...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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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님의 댓글

마하 작성일

사회부조리를
개혁하는것은 하루아침에 되는것이아니라는것을
누구나 다 아는사실입니다

허나 굽은것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개혁이 됬는지도 느끼지 못하는싯점이
바로 개혁이 이루어진거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자아의 정체성을살려 나로부터
개혁이 필요하고 가까운

나의 가정부터
서서히 실천하는 개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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