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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긴 호흡과 거시의 시각으로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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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206회 작성일 11-02-0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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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모 카페에 올려진 나그네 님의 글)



프랑스라는 나라 ...

  최근 들어서는 다소간 퇴색한 감도 없지 않지만,

 프랑스의 이미지와 문화는 여전히 세련됨 혹은 엘레강스로  정의됩니다.

 

   그들이 매사에 얼마나 세련됨과 우아함 혹은 격조와 정서를 중요시하는지는 언어의 사용만 봐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지금의 테니스 경기의 원조는 "주 드 폼(1789년 대혁명도 바로 이 경기장에서 시작 되었답니다)"이라고 해서 프랑스가

맨 처음 시작한 경기라는데, 테니스 경기에서 0을 제로라고 하지 않고 러브라고 하는 걸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프랑스인들이 이 게임을 하면서 숫자 0을 세련되게 표현하기 위해서 0과 비슷한 모양의 달걀(뢰프)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되어 이 것이 오늘 날에도 러브(불어 l'oeuf의 영어식 변형이라고 봐야겠죠)라고 불리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이토록 세련됨을 추구하는 나라의 공식 국가가 '라 마르세이예즈'라는 군가이고 그 내용은 더더욱 살벌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나라 역시 참으로 묘한 이중성(불어론 드불:le double)을 가진게 아닌가 합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모든 공식석상에서 불려지는 이 국가는 원래 대혁명당시 음악에 재능이 있던 공병대위 루제 드 릴이

작곡한 군가가 연대가로 쓰이면서 세상에 알려집니다. 군가답게 매우 힘차고 씩씩한 행진곡이고 가사 내용은 실로 전투적이다

못해 무서울 정돕니다. 대부분의 국가가 세련되고 고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반해 '라 마르세이예즈'의 끝은 군가답게 이렇게 끝납니다.

"우리 소중한 국토의 밭고랑에 적들의 더러운 피가 넘쳐 흐를때까지....(그야말로 무자비하게 적들을 죽여주시겠다는 소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살벌한(?) 노래는 점차 프랑스 혁명의 대의에 공감하는 많은 프랑스 시민(불어론 시토와이엥)들과

앙시앵 레짐을 다시 강요하는 외세와 맞서 싸우던 프랑스군대의 병사들의 입과 입으로 전해져 어느덧 전체 프랑스 혁명군과

라 그랑드 레볼루시옹(대혁명)을 지지하는 모든 프랑스 시토와이엥들의 노래로 격상됩니다. 이후 프랑스군과 시민들의 입에서는

노래가 언제나 불렸고 심지어 이 노래 소리만을 듣고도 프랑스 군이 온 줄 알고 도망친 왕당파 지지군이 속출했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을 상징했던 이 노래가 정식으로 국가로 공인받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고 거기에는 많은 역사의 도전과

응전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몰락이후 프랑스는 다시 전제군주의 반동시대가 열렸고 당연히 이 불온한(?)

노래는 루이 18세 통치 내내 금지곡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과 민주주의를 체험했던 프랑스 시민들은

이후 줄기찬 저항을 통해 입헌군주제에서 점차로 민주공화정의 시대를 열어갑니다. 1830년의 혁명과 1848년의 혁명은

대혁명의 연장선상에 있었고 이 중요한 역사의 변곡점 마다 삼색기와 총칼을 높이 들고 압제와 독재에 저항하던 시토와이엥들의

입에서는 자랑스럽게 불렸던 혁명의 노래 '라 마르세이예즈가' 터져나왔습니다. "나가자! 조국의 아들딸들아! 영광의 날이 왔도다!

우리의 소중한 이들을 죽이러 오는 저들 흑암의 세력에 대해서 어찌 굽힐 수 있겠는가"로 시작되는 이 군가가 울려퍼지면

그들은 라 마르세이예즈의 가사대로 "대오를 짓고 앞으로 앞으로 진군!"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쟁취했던 것이지요.

 

  물론 프랑스 역시도 뿌리깊은 앙시앵 레짐이 존재해 여전히 20세기초까지도 악역향(대표적인 예가 드레퓌스 사건)을 주었고

그러한 역사의 반동시기마다 혁명가이자 군가 '라 마르세이예즈'는 금지곡이자 불온한 상징으로 낙인찍히는 고난을 함께 겪습니다.

하지만 누가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끝내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결국 프랑스는 이 살벌한 내용(?)의 군가가 자기들의 역사에서

어떠한 의미를 주었는지를 인정했고 무수히 반복된 금지곡 조처에도 불구하고 영광스러운 공식국가의 위치로 자리매김 합니다.

(사견이지만, 저 살벌한 내용의 가사를 조그맣고 귀여운 아이들이 부르는 모습을 볼때마다 전 솔직히 부자연스러움을 느낄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저 노래의 의미에 대해서 한번쯤은 생각해보고 자신들의 역사를 되돌이킨다면 프랑스가 쇠망하는 일은 없겠다

싶기도 하네요)

 

  하나의 노래가 정식 국가로 인정받기까지 거의 100여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걸렸고 그 이후에도 프랑스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위해서 또 보다 더 나은 사회로 전진하기 위해서 진통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라 마르세이예즈가 국가로 인정되기까지

프랑스 시토와이엥들이 흘린 피와 노고과 고난과 희생을 생각한다면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 돌이킬 수 없는 변곡점을 형성하고

자주 반동들의 역행과 역사의 후퇴를 경험하기는 했으나, 일정한 흐름과 방향으로 꾸준하게 끝 없이 전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라 마르세이예즈는 국가로 격상되지 않았을 것이니까요.

 

 

   감동스럽고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 정도면...^.^;

 그리고 왜 저 엘레강스 빼면 시체인 나라가 이토록 살벌하고 잔인한 군대의 노래를

공식국가로 채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지 않으시는지요?

 

 

 

 자, 이 쯤에서 우리의 현실로 다시 돌아가 보죠.

  사실 요즘 많이 우울하고 어둡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국권을 상실했던 100년전의 그 때,

 동족간의 피흘리는 전쟁을 하던 반세기전,

그리고 극악한 독재와 압제에 시달리던 이승만과 유신독재 박정희,

 군부파쇼 전두환의 시기보다 더 어둡고 힘들고 고통스럽습니까?

 

 

  지금 우리의 현실보다 더 힘들고 희망이 없던 최악의 밑바닥 시절, 시인 육사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가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역사는 그래서 넓고 깊게 그리고 거시의 흐름과 시각으로 먼저 봐야 할 이유가 너무도 분명합니다.

 

 

 

 

*추신:이 글을 며칠째 저와 불유쾌하셨을 토론을 하셨던 사필귀정 히스필로님에게 바칩니다.

        제 글의 독설스러움에 상하신 기분일랑 모두 잊고 함께 손잡고 박터지게 때로는 싸울지라도,

        긴 역사의 흐름을 믿고 계속 저희들과 함께 해주실 걸 믿습니다. 늘 건필하십시요.

       조만간 저도 좋은 글로 사필귀정님의 역사카페를 방문할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추신:졸업반 마지막 회화수업에서 저의 은사이셨던 장-마르끄 랭덱스 선생님과 수업을 떠나서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당시 수업에 참여했던 학생들 상당수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발언이 주를 이뤘더랬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랭덱스 선생님은 수업끝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내 나라 프랑스가 200년에 걸쳐서 획득한 민주화와 경제 번영을 너희들의 나라는 불과 50년만에

        압축해서 이뤄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감을 가져달라. 내가 87년 처음 한국에 와서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한 6월 혁명(레볼루시옹이라고 표현 하셨었습니다)으로 나는 80년 5월 내가 대학 학부

       시절 티비로 보았던 광주의 일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재확인했다. 라 꼬레(La Coree)는 그만큼의 역동성과

       가능성을 지닌 나라고 너희들은 그러한 나라의 시민임을 잊지 말아달라. 여러분 모두의 행운을 빈다" 

       물론 졸업생들에게 용기를 복돋아 주기 위해서 하신 말씀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2년의 기한으로 한국에 와

       석사 이상의 학위자에게 부여된 병역대체기한만 채우면 돌아가곤 하셨던 대부분의 프랑스 남자 선생님들과는

       달리 그분은 여전히 우리 땅에 머무시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고 이 땅에서 우리들조차 잘 눈여겨 보지 않던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과 문화 유적들을 정성스러운 솜씨로 사진을 찍어 이런 저런 책들과 잡지에 소개하고 계신 걸

       보면 분명 그분의 그 말씀은 진정성이 충만했음을 새삼 그분의 행동으로 재확인하곤 합니다.

        그러한 가르침 덕분에 오늘 또 제가 이런 글을 쓰는데에도 많은 자양분이 되었음을 감히 고백합니다.

      

       Monsieur Landex, Merci mille fois! Je vous souhaite de bonne sante toujour!

 

*** 추신: "나침반의 바늘이 끊임 없이 흔들리는 한 배가 방향을 잃고 헤매는 일은 없다."

                                                               - 미니시리즈 '성균관 스캔들'에서 정조가 유생 이선준에게 나침반을 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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