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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삼 의원의 '화려한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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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2건 조회 2,827회 작성일 11-02-09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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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침투 33명 사살” 이진삼 의원의 ‘화려한 과거’
(양정철닷컴 / 양정철 / 2011-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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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전명 발키리’의 한 장면. 세상엔 두 가지 작전이 있습니다. 멋있는 작전과 추잡한 작전.

나름 투철한 국가관과 안보관으로 온몸 던져 충성했는데 알아주지 않아 서운하셨나 봅니다. 평생 안고 가야 할 기밀을 이제 와 느닷없이 국회에서 스스로 밝히셨습니다. 국회 국방위 간담회 문답 과정에서입니다.

▶ 자유선진당 이진삼 의원 = “내가 이북에 세 번 들어가서 보복 작전한 걸 알고 있나.”
▶ 김관진 국방장관 = “알고 있다.”
▶ 자유선진당 이진삼 의원 = “몸으로 때려 부순 거다. 33명이 사망했다.”

성공입니다. 세상이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언론들은 “1960년대 후반 우리 군도 북한과 마찬가지로 북파 공작 활동으로 수십 명의 북한군을 사살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1960년대 말 국군이 북파 작전을 벌여 북한군 수십 명을 사살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진삼 의원이 ‘북한군 33명 사살’과 관련된 내용을 공개한 이유는 군 기밀을 가감 없이 공개하는 군 기강 해이를 질타하기 위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엉뚱한 평가도 이어졌습니다.

별도 인터뷰에서 그분은 “북한이 함부로 대들지 못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고 싶다. 군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선배들의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고 기강을 바로 세우면 좋겠다.”고 한 수 가르치셨습니다.

이 정도로 되겠습니까. 스스로 밝히셨으니, 알려지지 않은 그분의 다른 작전들도 국민이 알아야지요.

(옛날 동아일보 보도를 인용합니다.) 1965년 9월7일 밤 11시45분경. 서울 동대문구 보문동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 대리였던 변모씨 집 대문에 폭발물이 터져 집이 크게 파괴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변씨 집 폭파사건이 발생한 지 약 1시간 뒤인 8일 새벽 0시40분경 서울 성동구 성수동 동아방송 제작과장 조모씨 집에 지프를 탄 괴한 3명이 들이닥쳐 “시경에서 왔는데 잠깐 같이 가자”며 조씨를 차에 태워 성북구 장위동까지 끌고 가 노상에서 조씨를 집단 구타했습니다.

괴한들은 조씨에게 “왜 협조하지 않느냐”며 몰매를 가한 뒤 “떠들면 영장을 가지고 와 정식 구속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8일 오후에는 당시 동아방송 본부국장 최모씨 집에 “가족들을 죽여 버리겠다.”는 내용의 협박전화가 걸려왔고, 동아일보 이모 기자 집엔 북한에서 보낸 것처럼 된 때아닌 불온문서 1장이 투입돼 용공조작 기도의 일환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었습니다.

경찰은 수사 초기부터 △피해자가 모두 동아일보사 간부이며 △변씨와 조씨의 집이 차로 10분 거리이고 △두 사건 현장에 군용으로 보이는 검은색 지프가 등장한 점으로 미루어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했습니다.

또 경찰은 △사건이 추석을 앞두고 경찰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진 상황 하에서 발생했고 △통행금지시간 전후임에도 불구, 범인들이 탄 지프가 검문에 걸린 적이 없으며 △변씨 집 대문 폭파에 사용된 폭발물이 감식결과 군용 TNT였다는 점을 들어 범인들이 군인이라는 심증을 굳혔었습니다.

경찰은 사건발생 10여 일 만에 육군 모 방첩부대 소속 군인들의 사건 관련 수상한 동향을 알아냈고 군 수사 당국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더 이상의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군 수사 당국의 태도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박정희 대통령은 특별지시를 내려 군·검·경 합동수사반을 편성토록 했습니다.

합동수사반은 10일간의 수사 끝에 서울시내 주둔 특수부대인 ‘6·25 용사회’ 소속 부대장 이진삼 대위와 부하 두 사람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습니다. 하지만 소환조사가 어렵다며 수사반을 해체했습니다. 수사반 해체에 비판적인 여론이 일자 당국은 2차 합동수사반을 구성했지만 역시 용두사미였습니다. 이후 1975, 1980년에도 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여론이 일었으나 재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결국 이 사건은 현재까지 미궁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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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이진삼 전 사령관 (사진 : 머니투데이)

이진삼 의원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사건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활약’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일약 이름을 알린 건 1986년입니다.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 부총재 양순직 국회의원이 폭행테러를 당했습니다. 정치권이 발칵 뒤집히고 정국이 떠들썩했습니다. 하지만 5공 말기의 엄혹했던 상황이니 진상이 제대로 드러날 리가 없었습니다.

한참 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뒤 문제의 테러사건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도 피해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폭행테러를 가했던 주범은 다름 아닌 육군정보사(현재 국군정보사). 사령관으로서 이런 테러를 진두지휘한 인물이 이진삼 의원이었습니다.

발단은 양심선언. 정보사 출신으로 당시 정치공작에 가담했던 김모씨가 기자회견을 갖고 “정보사 영관급 현역장교가 정보부대를 제대한 뒤 절도와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부랑자들을 모아 85년 초부터 용돈 등 생활비를 대주면서 정치공작을 지시했다.”고 폭로한 것입니다. 이들을 시켜 양순직 신민당 부총재를 테러하고, 심지어는 당시 민추협 공동의장이던 김영삼 대통령 집에 침투해 서류를 훔쳐오게 하는 등 정치공작을 벌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사건이 주목을 받자 이진삼 의원은 처음에 “모르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엔 “당시 정보사 3처장으로부터 양 부총재 테러 사실에 대한 보고는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테러범행에 대해 사후 보고만 받아, 알고는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93년 국방부 검찰부는 85년의 김영삼 당시 민추협 공동의장 상도동 자택침입·서류절취사건과 86년 양순직 부총재 폭행사건에 당시 정보사령관이었던 이진삼(육사 15기) 씨와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이던 박동준 준장이 개입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발표했습니다.

즉 이진삼 사령관은 바로 아래 부하인 정보사 3처장 한진구(육사 18기) 씨에게 지시해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 박동준 준장을 만나볼 것을 명령했습니다. 3처장은 이진삼 사령관 명령에 따라 박 준장을 만났고, 박 준장으로부터 “김영삼 당시 민추협 공동의장 집에서 정보가치가 있는 문건을 절취해 오라”는 임무를 지시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86년 4월 초께 다시 박 준장을 만나 당시 신민당 부총재였던 양 의원을 죽지 않을 만큼만 폭행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으며, 이를 각각 이진삼 사령관에게 보고한 뒤 이 사령관 지시에 의해 범행이 이뤄졌다고 진술했습니다. 정보사와 보안사가 합동으로 정치사찰과 정치테러를 자행했으며 그 정점에 이진삼 의원이 있었던 셈입니다.

국방부 검찰부는 이진삼 전 사령관 등 3명의 혐의사실을 서울지검에 통보해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이후 서울지검 공안1부는 93년 8월 이진삼 전 정보사령관을 폭력혐의로 구속기소했습니다. 그리고 서울형사지법은 정보사 민간인 테러사건과 관련, 구속 기소돼 징역 2년이 구형된 당시 이진삼 전 정보사령관에게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죄’를 적용,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이진삼 의원에겐 동생이 있습니다. 동생 역시 정보사령관을 역임했습니다. 그런데 동생 역시 정보사령관 재임 시절 언론인(중앙일보 계열 중앙경제 오홍근 사회부장) 폭행테러사건에 연루돼 전역 조치됐습니다. 형과 동생이 정보사령관을 나란히 역임하고 기묘하게도 테러사건에 똑같이 연루된 것입니다.

당시 이진삼 의원의 구속은 의미가 컸습니다. 군사독재정권이 군부대 중에서도 특수부대를 동원해, 군사정권의 눈 밖에 난 정치인 법관 언론인을 폭행, 공포 속에 빠뜨리는 짓을 서슴지 않았던 것은 도덕적 타락의 극치였고, 이를 단죄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독재정권의 범죄적 통치수법, 더럽고 욕된 통치수법의 일부를 밝혀내 처벌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출소 후, 그는 화려하게 재기했습니다. 한나라당 전신인 민자당이 95년 이진삼 씨를 지역구 위원장으로 발탁한 것입니다. 당시 민자당 대변인이던 손학규(현재 민주당 대표) 씨는 인선배경을, 지역 지지기반 및 지명도, 참신성, 국가 지역사회 기여도, 각계각층의 전문성 및 능력 등으로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진삼 씨 발탁의 본질은 충청권 맹주를 자처하며 민자당을 위협하는 김종필 씨를 잡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민련의 심장부이자 김종필 총재 지역구인 부여에, 그것도 김 총재의 육사후배(김종필 8기, 이진삼 15기)를 ‘저격수’로 내려 보낸 것입니다. 세월은 돌고 돌아 이진삼 의원은 자신의 정적이었던 자민련의 후신 자유선진당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세월은 돌고 돌아 이진삼 의원은 우리 국민에게 가한 테러는 쏙 빼고 북한 군인들을 사살한 영웅담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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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에서 ‘많은 공’을 세울 때의 이진삼 군인

이제 제가 그분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 양정철 = 당신이 이남에서 수차례 민간인을 상대로 보복 작전한 걸 알고 있나”
▶ 이진삼 의원 = “알고 있다.”
▶ 양정철 = “몸으로 때려 부순 거다. 민간인 수십 명을….”

 

양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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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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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것이 죄다님의 댓글

태어난 것이 죄다 작성일

저넘의 대갈박엔 뭐가 들었나
미군이 창궐한 남한에서 같은 동족인 북한군인을 죽이고 온것이 자랑이여?
적당히해라 이말이여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할 지경이면 적당히 하지만 민족을 생각하고..
항상 민족을 가슴에 품어라 이말이여
어찌 형제를 나란히 저따위로 키웠노..너거 엄마 낮짝이 궁금타..에구...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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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님의 댓글

죄인 작성일

우리가 만일 죄인이라면
이진삼이 같은 자를 아직도 목숨이 붙어있을뿐 아니라
저렇게 국회의원을 하면서 헛소리를 지껄이도록
그대로 둔 것이 죄인이다
우리 모두는
민족 앞에 씻지 못할 큰 죄를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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