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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을 제대로 아는 것이 통일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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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주동포
댓글 0건 조회 5,210회 작성일 11-02-1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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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이북정부와 그 정체성을 알아본다⑥

1980년대는 북과 해외동포간 연대활동 활발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공동]남녘 동포들과 자본주의에 거주하는 해외동포들은 남녘 족벌언론들과
미국을 비롯한 일본 및 일부 서방언론들의 왜곡된 보도에 영향을 받아 심지어는 이북을 뿔달린 사람들이
사는 곳, 혹은 미개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원인은 첫째 남녘과
미국 당국의 보수세력들이 건네주는 허위정보들을 그 어떤 검증절차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사실을 굴절시키는 한편 이북의 형상을 깎아 내린 보도자료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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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열린 제2회 북과 해외동포기독자간 모임

[기획]이북정부와 그 정체성을 알아본다⑥

1980년대는 북과 해외동포간 연대활동 활발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공동]남녘 동포들과 자본주의에 거주하는 해외동포들은 남녘 족벌언론들과 미국을 비롯한 일본 및 일부 서방언론들의 왜곡된 보도에 영향을 받아 심지어는 이북을 뿔달린 사람들이 사는 곳, 혹은 미개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원인은 첫째 남녘과 미국 당국의 보수세력들이 건네주는 허위정보들을 그 어떤 검증절차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사실을 굴절시키는 한편 이북의 형상을 깎아 내린 보도자료들 때문이었다. 그래서 <민족통신>은 창간이후 지금까지 이북제대로 알리는 정보들을 수집하여 보도해 왔다. 이번에는 여섯번째 연재기획으로 북조선의 1980년대와 1990년대 통일정책과 그 당시의 해 내외 상황을 통하여 이북의 정체성을 밝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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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2월15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제5회 북과 해외동포대회> 기념촬영
1980년대에 들어서자 남녘 동포들과 해외동포들은 남한의 정치세력이 반민주, 반평화, 반통일 세력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확인하는 계기를 갖는다. 그 분기점이 바로 5.18광주민중항쟁이다. 이 때부터 우리 민족사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시대가 펼쳐진다. 5.18항쟁의 진짜 주범은 남한의 군사주권을 틀어쥐고 있는 미국의 지배세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청년학생들은 양민들을 학살한 전두환 군사정권과 함께 미국 제국주의세력을 향해 본격적으로 도전하기 시작한다. 광주문화원, 부산문화원 등이 학생들에 의해 불탔다. 청년학생들은 열띤 시위를 벌이면서 “양키 고홈”을 외쳤다. 그리고 1960년 4.19의거시에 나타났던 구호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라는 구호도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다. 1980년대 후반기에는 시민항쟁도 일어났고, 노동자가 역사의 주체라고 소리 높이는 노동운동도 일어났다. 1989년에는 문익환 목사, 임수경 학생, 문규현 신부 및 해외동포들이 집권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북을 향해 들어가 조국통일 문제를 토의하면서 “조국은 하나다”를 외쳤다. 그 결과 1990년 8.15해방 45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역사적인 제1차 범민족대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남북 해외동포들이 함께하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기틀이 마련된다. 이러한 통일물결도 역시 이북 동포들이 그 주동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러나 당시의 남한 당국도 지금의 이명박 정권처럼 이러한 통일열기를 가로 막으며 애국자들을 탄압했다.

이북의 지도자들과 당국은 언제나 조국통일 정책에 대해서 일관성을 보였다. 즉 민족의 자주 입장을 비롯하여 평화통일의 입장, 민족대단결의 입장을 철투철미하게 견지하여 온 것이 이북정부의 통일정책 기조였다. 이러한 이북 정부의 통일정책은 8.15해방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빗나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 동안 남녘의 민주화운동과 조국통일 운동을 해 오던 해외동포들은 본격적으로 북녘에 관심을 갖고 이북동포들과 교류를 본격화했다. 이북 당국은 이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이북 정부 통일정책과 해외동포간의 교류강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이남 정부 당국이 조국통일에 대한 관심이 없을 뿐만아니라 남녘 통일운동 세력을 탄압하자 남녘과의 교류 및 통일관계 사업을 진전할 수 없었던 조건에서 이북 정부 당국은 해외동포 기독자들과 학자 및 통일운동 세력과 적극적인 교류 및 연대활동을 활성화 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대해 미국, 유럽, 카나다 동포 기독자들과 학자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교류사업에 응했다. 그 결과 1980년대 10년 동안 해외와 평양에서 공식적인 북과 해외동포간의 통일대회가 평균 1년에 한번 정도 오스트리아, 중국, 핀란드, 독일, 그리고 평양 등지에서 개최되었다. 주요 행사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 결과 제1회 “제1회 북과 해외동포기독자간 모임”이 1981년 11월3일부터 6일까지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 하델스톨프 쉬바이쳐 하우스에서 개최되었다. ▲북측에서는 허정숙, 려연구, 전금철, 김경화, 안병수, 렴국열, 김득룡, 고기준, 김옥선(인민배우) 등 무려 30여명이 참가했고, ▲미주측에서는 선우학원을 비롯하여 강위조, 김운하, 김충자, 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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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에서 북과 해외동포 대회를 갖는 모습
주, 전순태, 전충림, 최덕신, 최도식, 최정열, 최홍희, 강원진, 폴장, 그리고 ▲유럽측에서 이화선, 이영빈, 김순환, 임민식 등 수명이 참가했다. 이 행사에서 당시 서독에서 참가한 이영빈 목사는 “조국통일을 위한 기독자의 과제”에 대해, 그리고 북측에서 참가한 전금철 박사는 “고려연방제에 대하여”라는 주제를 각각 발표했다.(미주의 신한민보와 카나다의 뉴코리아타임스가 보도: “미주동포 민족운동100년사”-선우학원, 노길남, 윤길상 공저-134쪽~156쪽, 2009년 12월15일 일월서각 출판, “미주동포들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차종환, 이봉수, 박상원 공저 111쪽~122쪽 나산출판사 2004년 5월1일 출판)

제2회 북과 해외동포기독자간 모임은 1982년 12월3일~5일 필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개최되었다. ▲북측에서는 조선기독교연맹 부위원장 김득룡을 위시하여 고기준, 리성봉, 림현달, 김운봉, 김성문 통일신보사 부주필 등 기독자들과 허정숙, 양형섭, 김경화, 려연구, 전금철, 안병수, 한종순 등 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사회과학원 원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등 33명, ▲미주측에서는 김성락, 차상달, 선우학원, 노의선, 홍동근, 강위조, 송석중, 최익환, 강광석, 양은식, 최정렬, 김동수, 김운하, 노성걸, 국영길, 예정웅, 최진환, 이세방, 노영희, 폴장, 오봉도, 허응명, 김충자, ▲유럽측에서 이영빈, 김순환, 최기환, 임민식, 강무의, 김영희, 박경희, 김광호, 유은진, 박성옥, 김복순, 이승자, 선경석, 임원섭, 조명훈, 이요한, 오석근, 안상훈, 그리고 ▲카나다 측에서 최홍희, 전충림, 김순영, 김현두, 정해수, 한삼수, 김태정, 신오식, 박정태 및 최홍희, 최덕신, 류미영 등 남북 해외동포 총 1백여명이 참석했다. 이 행사기간 최익환 박사는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김대중 선생의 석방”에 대한 강연이 있었고, 홍동근 목사가 평양에 교회건립을 제언하기도 했다. 그 결과 1988년 평양에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이 이북정부 수립기념절인 9.9절에 건립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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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7월 평양에서 제3회 북과 해외동포학자간 모임에 참석한 대표들 일부가 기념촬영
그 다음 해인 1983년 7월5일부터 15일까지 방북기간중 12일과 13일 양일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제3회 모임이 열렸는데 이 모임 명칭은 “북과 해외동포 학자간 모임”으로 진행되었다. ▲해외측 학자들은 김동수, 김기항, 선우학원, 송석중, 양은식, 최익환, 그리고 카나다에서 전충림, 김순영 등이 ▲북측에서는 전금철, 전영률, 진영걸, 손종철, 김성원, 차인동 등이 각각 참석했다. 이 행사기간 김동수 박사가 <평화와 통일>, 양은식 박사가 “미, 일, 한 3각군사동맹”, 송석중 박사가 “통일과 지성인의 과제”, 김성원 교수가 “통일의 장애물”, 전금철 박사가 “조국통일의 기본방도”, 진영걸 교수가 “주체사상과 민족문제”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이 대회가 끝나고 해외동포 학자들은 참석자들이 쓴 수필들을 모아 방북기를 출판하기로 합의하고 “분단을 뛰어넘어”를 1984년 4월19일자로 고려연구소에서 출판했다.

제4회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간 대화모임은 1984년 6월15일~18일 중국 베이징 국제구락부에서 열렸다. ▲북측에서는 전금철, 최장룡, 우달호, 리수근, 한인호, 전영률, 김광식, 손종철, 김성률, 차인덕, 안병수 등 15명, ▲해외측에서는 선우학원, 양은식, 김동수, 송석중, 백숙자, 최익환, 노성걸, 장정문, 2세운동가 등 17명이 각각 참석했다. 이 행사기간중 전금철의 “ 3자회담에 대하여”, 선우학원의 “조국의 통일과 평화를 위하여”, 김광식의 “미국의 핵전쟁 정책의 정치적 목적에 대한 분석”, 노성걸의 “평화와 평화적 통일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여건”, 우달호의 “대화와 협상의 필요성”, 리수근의 “자주성과 전쟁과의 관계”에 대해 각각 발제하고 토론했다.

제5회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간 대화모임은 1984년 12월13일~16일 오스트리아 비엔나 엘도라도 호텔에서 열렸다. ▲북측에서는 려연구, 전금철, 안병수, 김룡중, 고기준, 김운봉 등 35명, ▲해외측에서는 선우학원, 양은식, 홍동근, 강광석, 김동수, 김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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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열린 북과 해외동포간의 대화 모임
노의선, 송석중, 백숙자, 최익환, 노성걸, 신성려, 박기식, 최덕신, 최진환, 최장길, (유럽)에서 공광덕, 강문의, 김순환, 선경석, 윤무근, 오대석, 오석근, 이영빈, 조병옥, 최기환, (카나다)에서 김태정, 박정태, 임훈재, 전충림, 최홍희 등이 각각 참석했다. 이 행사에는 려연구가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역량 연합에 대하여”, 강광석의 “핵전쟁의 위험을 막기 위하여”, 전금철의 “3자회담 실현으로 자주적 평화통일 촉진에 대하여”, 선우학원의 한,미,일 3각동맹 저지를 위하여” 등을 각각 발표하고 토론했다.

제6회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간 대화모임은 1985년 12월14일~16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렸다. ▲ 북측에서는 려연구, 전금철, 안병수 등 5인, ▲해외측에서는 미주에서 강위조, 노성걸, 선우학원, 양은식, 차상달, 유럽에서 강문의, 공광덕, 박성옥, 오대석, 이영빈 등이 각각 참석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동포사이의 광범한 연대의식 강화”, “자주적 평화통일 촉진”에 대한 문제를 토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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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일본 도꾜서 열린 제2회 민족통일 심포지움
제7회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간 대화모임은 1986년 10월18~19일 양일 동안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렸다. ▲북측에서는 려연구, 전금철, 안병수, 류호준 외 8명, ▲해외측에서는 미주와 카나다에서 강광석, 김광훈, 전순태, 김동수, 김수영, 정귀근, 노성걸, 선우학원, 송석중, 양은식, 전충림, 차상달, 최익환, 최장길, 홍동근, (유럽측)에서 강문희, 김순환, 이영빈, 오대석 외 4명이 각각 참석했다. 이 행사는 류호준의 “조선반도를 비핵지대,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내외 동포들의 과업에 대하여”, 선우학원의 “남한에서의 반미 자주화, 반파쇼 민주화 투쟁과 우리의 과제”에 발표하고 토론했다.

제8회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간 대화모임은 한해 건너 뛴 다음 해인 1988년 7월15~17일 핀란드 수고 헬싱키에서 열렸는데 주제는 “주체사상과 조국통일에 대하여”로 진행되었다. ▲북측에서는 려연구, 전금철, 안병수, 박승덕, 고기준 외 10명, ▲해외측에서는 미주에서 김동수, 강위조, 강은홍, 김광훈, 김정식, 김태종, 김현환, 김영숙, 김수영, 고정옥, 선우학원, 서정자, 신성려, 양은식, 전충림, 전순태, 조덕천, 차상달, 최익환, 최정열, 최장길, 홍동근, 유럽에서 이영빈, 김순환 외 수명이 각각 참석했다. 행사내용은 전금철의 “주체사상과 민족통일”, 선우학원의 “주체사상과 민족문제”, 박승덕의 “주체사상의 원리”, 양은식의 “주체사상과 의식화 문제”, 김동수의 “주체사상에 대한 이해”에 대해 각각 발제하고 토론했다.

제9회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간 대화모임은 1989년 7월9일 “조국통일 촉진대회” 형식으로 남과 북, 해외동포들이 대거 참석하여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는 특히 제13차 세계청년축전에 참가한 해외동포와 평양시민들 1만여명, 그 중에 일본, 미국, 유럽,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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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6월27일 로스엔젤레스서 열린 제9회 민족통일 심포지움
국, 소련, 카나다, 오스트랄리아 등에서 참가한 해외동포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일종의 통일부흥회를 방불케 했다. ▲북측에서는 리종옥 부주석, 허담 위원장, 리계백 사회민주당 중앙위원장, 최덕신 천도교 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윤기복 위원장, 등 고위급 간부들이 대거 참석했고, ▲해외측에서는 일본 총련의 한덕수 의장을 포함하여 서만술 부의장, 카나다의 최홍희 총재, 미국의 조국통일북미주협회(통협)에서 차상달, 선우학원, 홍동근, 양은식, 독일 ‘기통’ 조직에서 이영빈, 중국에서 백성현, 황영두, 오상현, 최영희, 그리고 소련에서 채종만, 양영자, 최덕진, 김성 등이 참석하여 주석단에 자리를 함께 했다. 이 대회는 허담의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내외 동포들의 과업”, 선우학원의 “조국통일을 위한 평화통일을 촉진하자”, 서만술의 “조국통일 3대원칙에 기초하여 연방제로 통일하자”, 리문준의 “두개 조선책동을 규탄하자”, 이영빈의 “민족대단결로 조국통일 이룩하자”, 채종만의 “사상과 이념을 초월하여 단결하자” 등이 발표되었다.

제10회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간 대화모임은 1991년 1월31일 독일 후랑크후르트 아놀즈하인 크리스찬아카데미에서 열렸다. ▲북측에서는 전금철, 리성봉, 김운봉, 조길남, 정영춘 외 수명, ▲해외측에서는 미주에서 강위조, 고마태오(종옥), 나진복, 선우 학원, 안중식, 조덕천, 홍동근, 유럽측에서 김순환, 이영빈, 권오성 외 수명이 각각 참석했다. 이 행사에서는 선우학원의 “국제정세 변혁에 있어 조국통일과 4대강국”, 전금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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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2월15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북과 해외동포들 행사이후 기념촬영
“조국통일을 위한 북의 정책과 실천”, 악셀 노악의 “독일 통일에 있어 전후 과정”, 권오상의 “이남 민중의 통일투쟁과 기독자들의 책임”, 조덕천의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한 민족교회 신학정립”, 리성봉의 “조국통일을 위한 기독자들의 책임과 과제” 등을 각각 발표하고 토론했다.

한편 해외동포사회에는 이와 같은 북과 해외동포사회 교류가 빈번하자 해외동포사회 자체에서 진행되는 <민족통일 심포지움>이 연례적으로 개최되어 통일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1979년과 1980년에 도꾜에서 개최되던 이 심포지움은 1981년 3월14~15일 최초로 워싱턴 디씨에서 제3회 민족통일 심포지움이 열렸고, 제5회 민족통일 심포지움이 스위스 제네바, 1986년 6월27~29일에 로스엔젤레스에서, 1989년 6월22~24일에 로스엔젤레스에서 제11회 행사, 1992년 6월26~28에 제13회 행사를 로스엔젤레스, 93년 9월10~12일 제14회 행사를 로스엔젤레스, 그리고 1994년 9월1일~3일 제15회 행사를 미국 수도 워싱턴 디씨에서 개최되었다. 이 행사들은 처음에는 일본의 최경태의 발기로 시작되었고, 그 후에 미국에서는 주로 선우학원, 양은식, 김현환 등이 참여하여 주동역할을 해 왔었다.

1990년대에 접어 들면서 이북 당국의 통일정책은 1980년대와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남북 당국자간의 관계가 90년대 초반에 잠시 화해와 협력 분위기가 있었을 뿐 당국자간의 관계 개선이 여의치 못해 북과 해외동포들 사이에 교류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괄목할 것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 결성되면서 민간단체의 3자연대운동이 개막의 기치를 올렸다는 것은 우리 조국통일운동사에 또 하나의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다음에 계속…)

[동영상]

*문익환 목사가 외친 그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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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족통신 편집위원 공동 201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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