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옥 한식당? "차라리 불우이웃 돕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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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미국시각) 뉴욕 맨해튼 32번가 코리아타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과 가까운 이 거리에는 금강산, 감미옥, 강서회관, 한강, 뉴욕곰탕 등 20여개의 한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살을 에는 듯 한 추운 날씨 탓인지, 털모자를 깊이 눌러쓴 백인 여성과 귀마개와 목도리까지 걸친 흑인 여성이 한 식당 앞에 서서 메뉴판을 유심히 살핀다. 잠시 머뭇거리던 두 사람이 들어선 식당 안에는 10여명의 손님들이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관광객은 물론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뉴요커들이 갈비(바비큐), 비빔밥,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 곰탕 같은 한식을 즐기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든다.
이런 한식당이 뉴욕에만 400여개가 넘는다. 32번가와는 떨어져 있지만, 10년 전부터 고급화 전략을 편 우래옥이나 절 음식 등 퓨전 채식으로 승부를 건 한가위는 여배우 귀네스 팰트로 등 연예계 인사들의 단골집이다. 한때 일식인 스시가 그랬듯, 이젠 한식을 모르면 잘나가는 뉴요커가 아니라는 말도 있다.
"'김윤옥 한식당'에서 파는 게 진짜 한식? 그럼 우리는?"
"거기서 파는 음식은 진짜 한식이고, 우리가 파는 음식은 가짜 한식이랍니까?"
지난 8일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이른바 '김윤옥 뉴욕 고급 한식당' 설립 예산 50억 원에 대한 의견을 묻자, 32번가에 위치한 한 식당의 지배인은 대뜸 짜증부터 냈다. 그는 익명을 요구했지만 "영부인 아니라 영부인 할아버지가 와도 할 말은 해야겠다"며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는 "한식을 세계화 한다는데, 도대체 뭘 가지고 세계화를 할 것이냐"고 반문한 뒤, "진짜로 한식을 세계화하고 싶다면 식당 짓는데 돈을 투자할 것이 아니라 한국문화원 같은 곳에서 (현지 식당 직원에 대한) 철저한 트레이닝을 해주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정부가 나서서 고급 한식당을 만들 경우 상대적으로 기존 영세 업소가 받게 될 타격에 대한 우려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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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돈 투자해서 예쁘게 식당 차려놓고 '이런 게 한국식당이다', 오케이! 그렇게 차려놓으면 여기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어려운 것 생각 안 하나?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어본 미국인들이 '거긴 그런데, 여긴 왜 이래?', 이렇게 되면 여기 영세 업소는 망하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괜히 그런 얘기를 들으면 열부터 받는다."
정부가 나서서 뉴욕 한복판에 짓게 될 '플래그십' 한식당이 미국판 '통큰 치킨' 사건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단 정부가 적지 않은 국가 예산을 들여 추진하는 사업이라는 점만으로도 뉴욕 고급 한식당은 '대박'을 칠 가능성이 높다. 뉴욕의 외교관과 공무원, 국내기업체 주재원들이 대부분 이 식당으로 몰려들 게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그들로부터 접대를 받는 뉴욕 지도층이나 연예인들 사이에서 빠르게 소문이 확산될 것이다.
곽자분(56) 강서회관 사장은 한창 밀려들기 시작하는 손님을 접대하면서도 "정부가 많은 돈을 투자해서 (한식당을 설립)하면 모든 면에서 영세 업소와는 확연히 다를 것 아니냐"며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는 "게다가 정부 차원에서 한국을 대표해 뉴욕에 (식당을) 차리면 음식도 업그레이드된 것을 제공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삼성 등 대기업 주재원들이 바이어를 대접할 때 아무래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가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한국 내에서 치킨이나 피자를 앞세운 대기업의 횡포에 소매업자들이 애를 먹었다면, 뉴욕에 있는 많은 한식당들은 본의 아니게 '한국 정부'와 경쟁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농림수산식품부는 최근 뉴욕 고급 한식당 관련 예산 통과에 대한 비판 여론에 대해 "한식이미지를 고급화하려면 고품격 한식 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고급 한식당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농식품부는 외국에서 한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뉴욕을 비롯한 세계 주요 거점도시에 플래그십 한식당을 열기로 하고 사업을 추진해왔다. 뉴욕 맨해튼에 들어설 한식당은 면적 330㎡(100평)에 좌석 100~150개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씨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한식세계화추진단과 '광우병 파동'으로 물러났던 정운천 전 농식품부 장관이 이사장으로 있는 한식재단이 이 사업의 실무를 맡고 있다. 정운천 이사장은 지난달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뉴욕 플래그십 한식당이 성공하면 세계의 대도시로 확산시킬 계획"이라고 밝혀, 앞으로 더 많은 국가 예산이 해외 고급 한식당 설립 사업에 투자될 것임을 시사했다. 뉴욕 고급 한식당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 타이 국영식당 만든다면?"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한 새해 예산에 이른바 '김윤옥 고급 한식당' 설립을 위한 50억 원은 있지만,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비 지원 예산은 단 한 푼도 없다. 영유아 필수예방접종 예산, 보육시설 미이용 아동 양육수당 예산 등도 모두 삭감됐다. 반면 내년 한식 세계화 예산으로는 총 310억 원을 배정했다.
방학 때 밥을 굶어야 하는 100만 명의 가난한 아이들을 앞에 두고, 한식 세계화라는 '영부인'의 관심사를 충족시키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였을까? 정부가 나서서 뉴욕 한복판에 설립한 한식당의 '대박'이 곧 한식 세계화의 성공이라고 규정 할 수 있는 것인가?
32번가에서만 20년 동안 한식당을 운영해온 미국 시민권자인 김재용(47. 한식당 '한강' 부사장)씨는 "투표권이 없는 내 의견은 훈수밖에 안될 것"이라고 전제한 뒤, "과거 80년대에 비해 차츰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 권력에 대한 견제가 부족한 것 같다"며 "법을 국회의원들이 만들기 때문에 국민들이 표로 평가하고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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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김재용씨는 정부가 국가 예산을 들여 외국에 '북한 옥류관'과 같은 '국영 식당'을 설립하겠다는 발상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즉흥적이고 선심적인, 누구 하나가 관심 있다고 해서 5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무턱대고 쏟아 붓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오히려 더 한식 세계화를 후퇴 시킬 수 있다. 만약 정부에서 설립한 한식당이 망하기라도 하면, 정말 정부의 지원이 필요할 때, 가능하겠나? 가시적인 것만 보지 말고 오랜 기간을 거쳐 계획을 세워야 한다. 역대 관 주도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 이번에 (예산안 날치기) 봐라. 그래서 정부가 주도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논리는 안 된다."
그는 "솔직히 서울 한복판에 타이 정부에서 식당을 만든다고 그게 타이 음식의 붐을 일으키겠느냐"며 "관에서 주도하지 말고, 한국에 있는 식품 기업들이 외국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조를 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32번가 요식번영회 회장인 김유봉(64. 뉴욕곰탕 사장)씨는 한인 가운데 이 거리에서 가장 오랫동안 영업을 해온 터줏대감이다. 그는 "정부가 뉴욕에 한식당을 세우는 건 옳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만일 정권이 바뀌어서 새로운 영부인이 한식 세계화에 관심이 없으면 (한식 세계화 사업이) 시들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 역시 정부가 세운 한식당이 실패할 경우, 기존 한식당에 밀어닥칠 후폭풍을 우려했다.
"예산이 책정됐다고 해서 꼭 쓰라는 법은 없지 않나? 예산이 통과 됐다고 해도 원치 않으면 안 쓰면 되는 것이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아니라면 집행하지 말든지, 아니면 불우이웃을 도와주든지, 바르게 써야 한다. 너 먹고 나 먹고, 서로 나눠먹지 말고."
"'김윤옥 예산'? 뉴욕 한식당 만들면 영부인 것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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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봉씨는 올해 1월 설립된 '미 동부 한식세계화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원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추진위원회는 국내 범정부 차원의 한식세계화추진단과는 별도의 민간 조직으로 400여 뉴욕 한식당 가운데 60여개 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올해 2월에는 농식품부, 농수산물유통공사와 협약도 맺었다.
정부 주도의 '뉴욕 고급 한식당'을 모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주로 추진위원회가 주축이 돼, 뉴욕 고급 한식당 설립에 찬성하고 있다. 김유봉씨는 예외인 셈이다.
93년에 이민을 와 요식업계에 종사해온 이한민(39. 북창동순두부 부장)씨는 추진위원회 총무다. 그는 "한식이 많이 알려졌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며 "맨해튼에 최고급 식당이 생겨서 여기 입김 있는 정치인이나 사회지도층, 영화배우 등이 와서 즐기고, 그렇게 한식을 널리 알린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든 아래에서 위로 흐르든, 뭔가 변화가 일어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이번 예산안을 비판하는 야당 정치인들을 향해 "머리로만 따져보지 말고, 한번이라도 여기 와서 실사를 해봤느냐"며 "일본이나 타이, 베트남 정부에서 (자국 음식을 알리기 위한) 플래그십 식당을 지원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그렇게 예산을 따낸 것 자체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김윤옥 여사 것이기 때문에 어떻다'고 하는데, 그게 김윤옥 여사 것은 아니지 않나. 모두 세금으로 하는 것이지. 그것을 자기가 다 먹을 수도 없는 것이고, 자기가 부동산 개념으로 사가지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 거기에 이유를 달고 딴지를 걸기 시작하면 수천가지도 더 나온다."
추진위원회 홍보이사를 맡고 있는 김태환(40. 컨설팅회사 운영)씨도 "'노숙자나 복지 문제도 해결 못하면서 무슨 한식 세계화냐'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 일본이나 타이에 비하면 한식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너무 늦었고, 예산의 규모도 일본 등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정부에서 끊임없이 지원해서 200~300불 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고급화 됐다. 예전에 스시 먹으면 날것 먹는다고 야만인으로 비하했지만, 지금 영화배우나 고위급 인사들은 스시를 먹어야 그 멤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 만큼 홍보가 된 것이다. 우리도 롤 모델이 필요하다. 정부에서 플래그십 식당을 운영하면서 잘 지원해준다면 건강식인 우리 한식도 해외에서 대세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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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홍보이사는 정부에서 설립하려는 '뉴욕 고급 한식당'이 주변 영세 한식당에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로 상생 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존 한식당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경쟁업체가 생긴다는 잘못된 인식을 하는 것 같다. 외국 사람들이 한식당에 오면 응급실에 온 것 같다고 한다. 조명이 밝고, 시끄럽고, 고기 자른다고 가위들고 돌아다니고. 고급 일본식당은 1인당 식사비가 400불 이상 간다. 그러나 뉴요커들은 괜히 비싼 음식 먹었다고 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우리에겐 그런 식당이 없다.
경기가 안 좋다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반찬을 줄여 재료비를 세이브해서 음식의 질을 고급화 시켜야 하는데, 늘 우물 안에서만 보는 것 같다. 조금만 인내하시고 (정부의) 플래그십 식당을 따라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는 이어 "요식업이 부가가치 있는 사업인데, 예산통과 절차 등 너무 단면적인 것만 보는 것 같다"며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써야 할 돈을 '뉴욕 고급 한식당' 예산 때문에 못 쓰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10.12.20 15:26 오마이 뉴스 최경준 (235ju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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