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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래일에 사는 사람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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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8,662회 작성일 22-05-13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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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제 2 편 청 년 조

9

김책공업종합대학 청사의 학위론문심의장에 임창만이 나섰다.

그가 론문을 발표하자 이어 5건의 평정서가 랑독되였으며 질문과 변론의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거의 지나갔다. 그 마감무렵에 한 질문자가 임창만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창만은 먼저 그 질문의 부당성부터 밝혀야겠으나 그에 대답할 궁리만 하면서 말을 더듬고있었다. 대답이 제대로 나올리가 없었다.

진수현은 참다 못해 자리에서 일어서며 항변하였다.

《이번 질문은 론문내용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지도교원은 앉으시오. 지금은 발언권이 없습니다.》

심사위원회 위원장이 지적하였다.

질문자의 요구는 집요하였다.

《나는 변론자가 마땅히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고 간주합니다.》

과연 지꿎은 《반대파》위원이였다.…

2시간만에 복도로 나온 임창만은 아직도 낯이 해쓱하게 질려서 턱을 가늘게 떨고있었다. 땀이 얼굴에 질펀하였다.

진수현은 그의 비뚤어진 푸른 넥타이를 바로 잡아주면서 조용한 옆방으로 데리고 갔다.

《이젠 기다리면 되오.》

임창만은 김 빠진 공처럼 의자에 주저앉았다. 뒤따라온 애인 김혜련이 손수건으로 창만의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

진수현은 다시 복도로 나가 방청인들이 웅기중기 모여서서 한담을 하는 사이로 오락가락하였다.

그는 지금 심의장에서 진행되는 비공개회의장면을 그려보았다.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이제 투표할 때 심의위원들가운데서 몇명만 반대표를 던져도 론문은 부결되는것이다.

드디여 비공개회의가 끝나고 굳게 닫겼던 문이 열리며 심의위원들이 복도로 나왔다. 처음 나온 심의위원회 위원장이 지도교원 진수현이쪽에 대고 고무하는듯 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좋은 징조였다. 그러나 진수현은 《반대파》위원들을 살펴보며 마음을 놓지 못하였다.

임창만은 여전히 애인과 더불어 옆방에서 숨을 돌리고있었다.

잠시후 변론장이 투표실로 꾸려지고 투표를 하게 되였다. 복도문가에서 투표실로 들어가는 위원들에게 엄한 기색으로 투표용지를 나누어주며 질서를 잡는 두명의 위원은 신통히도 변론때 까다롭게 질문을 던지던 사람들이였다.

투표를 하고 나오는 위원들마다 그 표정들은 하나같이 신중하고 근엄하기까지 하였다. 그 인상들을 보아서는 거의 모두가 반대표를 던진것 같아 진수현은 다시 불안해졌다. 심장이 잦은 가락으로 뛰였다.

투표가 끝났다.

서기가 복도에 대고 소리쳤다.

《모두들 들어와서 자리를 정돈해주십시오!》

(문법이 맞지 않는군. 엉터리라니까…)

별스레 신경이 예민해진 진수현이 프로그람의 오유를 찾아낼 때처럼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짐짓 태연한 표정을 꾸미며 임창만을 데리고 심의장으로 들어갔다. 임창만은 앞구석의 의자에 앉아있다가 심의위원회 위원장과 서기가 등장하자 진수현의 눈짓에 따라 벌떡 일어섰다.

그는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진수현이 그에게 고무하듯 미소를 보내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위원장이 일어서서 결정서를 읽었다.

《…론문공개심의회의는 론문 〈FMC자료전송체계에 대한 연구〉를 심의하고 찬성 12표, 반대 1표로 국가과학원 현대화연구소 연구사 임창만동무에게…》

됐구나!… 진수현은 그제야 숨이 나갔다.

《학위를 수여하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학위학직수여위원회에 제기하기로…》

장내에 박수소리가 울렸다.

심사위원회 위원장과 심사위원들, 방청인들이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치며 임창만을 축하하였다.

방청석에서 기쁨에 겨워 눈물을 훔치던 김혜련이 숫저웁게 뛰여나와 애인에게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박수소리가 더 요란히 울렸다.

임창만이 변론장밖으로 나온 후에도 각 대학과 연구소들에서 온 심의위원들이 임창만을 에워싸고 그의 앞길을 축복해주었으며 인상에 남을 좋은 말들을 해주고 조언도 주었다.

주인공인 임창만은 김혜련과 더불어 기쁨과 행복의 절정에 올라있었다.

진수현은 이제 그에게 할 말이 있었다.

속으로 별러오던 말이였다.

보름전에 앓는 소장을 대리하여 행정회의를 주관하던 리윤덕은 여러 실장들에게 지능공학실에 보낼 좋은 사람을 하나 내라고 호소하였었다. 지명을 당한 실장마다 이 구실, 저 구실 발뺌을 하였다. 어떤 실장들은 내놓고 늘어진 소리를 하였다.

《우리 연구소가 언제 지능공학실의 덕을 보겠습니까?》

《내 이미 말하지 않았소. 그 실의 형편이 딱하다구.》 리윤덕이 불평분자에게 눈을 부라렸다.

《실장은 예순이 넘은데다 줄창 병원신세를 지고있지, 머리수는 적지, 게다가 똑똑한 주인도 없단 말이요. 그래도 한개 실인데 초보적인 면모야 갖추게 해야 할게 아니요. …》

리윤덕이 거듭 설복하고 요구해도 자기네 사람을 내겠다는 실장은 없었다.

날이 갈수록 실장들이 점점 부소장의 말을 잘 듣지 않는것 같았다. 지어 실장들끼리 모여 그의 뒤소리까지 하는 판이였다. 걸핏하면 작업동원소리고 젊은 로력을 빼간다느니, 명색이 과학부소장인데 학적권위를 세우지 못한다거니… 그런 때면 진수현은 동창생에 대한 험담을 듣기가 괴로왔다. 저절로 낯이 달아올랐다. 실장들도 그가 윤덕부소장과 동창생임을 상기했는지 그앞에서는 될수록 불평을 삼가하는 눈치였다.

그렇다고 부소장에 대한 불만들이 영 없어지는건 아닐것이다.

그 불만들에 일정한 근거가 있는것도 사실이였다. 진수현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것이 더욱 괴로왔다.

수현은 윤덕이 부소장으로서 조종장치실을 중시하면서 여러 작업동원에서도 면제시키고 다른 실들보다 앞에 내세우려고 애쓰는줄을 잘 알고있었다. 그런 윤덕을 탓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남들앞에서 내놓고 그를 변호하기도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윤덕을 어떻게든 도와주고싶었다. 연구소적인 견지에서 보더라도 지능공학실의 위치는 결코 홀시할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진수현은 임창만이 적임자라고 생각하였다. 실력으로 보나 통솔력으로 보나 청소한 연구실에서 장차 기둥노릇을 할수 있었다.

지능공학의 장래는 또 얼마나 매혹적인가! 임창만은 그 분야에 가면 처음엔 좀 고생을 하겠지만 자기를 초월하여 더 비약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를 내놓기가 아쉬웠다. 그와 7~8년을 함께 지낸 정을 떼기도 어려웠다.

속으로 바재이던 진수현은 좋은 사람을 하나 내라고 매 실장에게 하나하나 따지고드는 리윤덕에게 임창만을 보내자고 제기하였다.

리윤덕은 채 듣지도 않았다. 중심실에서는 사람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것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실장들에게 자, 모두 보란 말이요, 수현실장을… 자진해서 제사람을 내겠다고 하잖소, 실장들이 모두 연구소적인 립장에서 사고하고 호응해준다면 얼마나 좋겠소, 이거 정말 부서본위주의때문에 일해먹기 힘들구만 하고 개탄을 했었다.

그 회의에서는 지능공학실에 인원을 보충하는 문제를 즉시 락착짓지 않고 뒤로 미루었다. 리윤덕은 다음회의에서도 잘 안되면 자기가 적임자를 지명하겠노라고 경고하였다.

진수현은 임창만을 보내기로 작정하였다.

그런데 정작 론문을 통과시킨 이 시각에도 창만에게 헤여지자는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실장선생님, 무슨 걱정거리가 있습니까?》

대학구내를 나오면서 임창만이 슬그머니 묻는 소리였다.

진수현은 마침내 말머리를 뗐다.

《전번에 행정회의를 했는데…》

《나두 회의소식을 들었습니다.》하고 임창만이 이미 오래 생각한듯 말했다.

《내가 지능공학실에 가면 실장선생님이 외롭지 않을가요?》

《난 일없소. 이젠 낯들을 익히지 않았소. 지능공학실에 가면 임동무가 힘들거요. 거기 있던 연구사들보다 노력을 배가해야 하니까. 실의 전망은 좋다고 생각되지만…》

《너무 념려마십시오. 한데 청년조는…》

《최일동무한테 다시 맡기겠소.》

《그래요?! 그러면 나도 기쁘겠습니다.》

《임동무도 그렇게 생각하오?》

《하하, 그렇지 않구요!》

《…》

저 임창만은 얼마나 좋은 청년인가!

진수현은 그와 헤여지기가 정녕 아쉬웠다.

《자, 그럼 차타구 먼저들 떠나라구. 경치좋은데 들려서 기념사진도 찍구…》

《실장선생님이랑 같이 찍읍시다!》

《난 좀 들릴데가 있소.》

그는 행복한 애인들을 연구소승용차에 태워 먼저 보냈다.

왔던김에 김책공업종합대학연구소의 류영도박사를 만나 수자조종장치와 관련된 몇가지 학술문제를 토의하였다.

그리고 중학시절의 스승을 잠간 만나보려고 지금은 동평양제1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최신복선생을 전화로 찾아보았다. 그런데 옛 담임선생은 학생들을 데리고 송도원에 여름철야영을 떠났다는것이였다.

발길을 돌리는수밖에 없었다.

…그때 최신복선생은 총각이였다.

중학교 1학년때 진수현은 경기장에서 축구경기를 구경했는데 우리 나라 팀이 패하는것을 보고 밤에 잠을 못이루다가 이튿날 학교 축구소조에 들어갔다. 그때문에 물리선생과 체육선생이 다투기 시작하였고 담임인 최신복선생이 겨우 중재를 해서 수현은 도로 물리소조에로 돌아오게 되였다.

《수현이, 세상에 안경낀 축구선수 봤어?》 빙그레 웃는 최선생앞에서 볼이 부었던 수현이였다.

그후 어린 수현에게 장차 과학자로 조국의 명예를 떨칠 꿈을 안겨준것은 최선생이였다.

수현이네 집이 모란봉구역으로 이사를 갔을 때에도 그는 담임선생과 동무들곁을 떠나기가 싫어서 여전히 동대원구역의 삼마중학교로 등교하였다. 무궤도전차를 갈아타면서 먼거리를 통학하는것을 보다 못해 어머니가 학교로 달려가 전학증명서를 떼올 때까지 수현은 1년가까이 삼마중학교로 다녔다.

세월이 퍼그나 흘러 시내에 제1중학교들이 생기면서 최신복선생은 그리로 옮겨갔다.

최선생이 맡은 학급의 기숙사생들은 의례히 담임의 집에서 생일을 쇠였고 통학거리가 먼 학생들은 그 집에서 자면서 시험공부를 하였다. 겨울철이면 기숙사식탁에는 최선생네 집에서 담근 김치들이 오르군 하였다.

최선생은 예나 지금이나 생활비를 받으면 맡은 학생들 생각부터 하였다. 그래 집에 붙어나는것이 없었다. 오죽했으면 인정많은 어머니가 지청구까지 했으랴.

진수현이 지난해에 최선생의 집에 들려보니 30여년전의 낡은 가구들뿐이였다.

진수현은 옛스승네 집에 새 가구 한조를 마련해드려야겠다고 오늘 다시한번 결심을 굳히였다.

아래사람들을 키워봐야 자기를 키운 스승들의 생각을 더 하게 되는 모양이다.

최선생은 어느 교육일군열성자회의 연단에서 학생들에게 자기를 바쳐야 한다고 토론하였다고 한다. 체험을 거친 이야기라고 할수 있었다.

대학시절의 스승 지형원교수도 청춘기에 학생들을 위하여 자기 발전의 기회까지 사양하였다.

그것이 바로 애국심일것이다.

참으로 진수현에게는 훌륭한 스승들이 있었다.

그 스승들을 생각하는것만으로도 이 저녁은 삶이 아름답고 즐거워보였다.

그는 평양역-련못동무궤도전차에 올랐다가 모란봉극장앞에서 내렸다.

국립교향악단의 악사인 최일의 아버지를 만나보려는것이였다.

그곳에서는 집체련습이 한창이였다.

진수현은 극장의 한구석 객석에 앉아 관현악곡 《문경고개》를 감상할수 있었다.

어느덧 음악이 주는 감흥에 빠져들어간 그는 흐르는 선률에 가사를 붙여 입속으로 따라불렀다.


저녁부터 오르던 가벼운 안개도

힘겨워선가 무거워선가

높은 령 중턱에서…


《힘겨워선가 무거워선가, 높은 령 중턱에서》라는 대목이 자꾸 되풀이되자 진수현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지으며 저 악사들은 얼마나 고달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지휘자는 진수현이 듣기에는 그럴듯하게 넘어가는 그 부분의 결함을 엄하게 지적하면서 거듭 반복연주하게 하는것이였다.

역시 예술창조란 어차피 진통을 거쳐야 하는가싶었다.

지휘자는 다시금 지휘봉으로 보면대를 두드리며 연주를 중단시켰다.

과학의 세계도 비슷하지 않을가.

최일이네도 지금 자기들을 향상시키며 새것을 만들어내려고 그렇듯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한걸음 또 한걸음 힘겹게 전진하고있는것이다.

마침내 련습이 끝났다. 오늘은 공연이 없는 날인것 같았다.

진수현은 최일의 아버지와 만나 통성을 하였다.

무뚝뚝해보이는 아버지는 아들이 요즘 몹시 바쁘게 지낸다는 소리를 듣자 저으기 마음을 놓는 기색이였다.

진수현은 아들에게 보낼것이 있으면 제가 가지고 가겠노라고 하였다. 함께 북새거리에 있는 집으로 가면서 아버지는 최일이 자라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과학을 하겠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그만 분통이 터져서 그 애의 종아리를 치던 일도…

《네가 또 련습하기 싫었구나. 내가 하다 못한걸 너한테서 바랬는데 뭐가 어쩌구 어째? 종아릴 썩 걷어올리지 못할가!》

회초리찜질을 당하면서도 아들은 항변하였다.

《과학을 하는게 잘못이나요?》

《음악은 예지나 철학보다도 더 높은 계시라고 했어.》

《아버지, 과학을 발전시키지 않는 나라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식민지로 된대요!》

《네까짓 녀석이 뭘 안다구 나라걱정이냐?…》

그러나 회초리를 후리던 아버지의 팔은 맥없이 허공에 멈추어졌다가 이어 떨어지고말았다.…

그때 일을 돌이켜보던 아버지의 음성은 어쩐지 갈린것 같았다.

《허허… 종시 내가 지고말았지요. 녀석의 고집을 어디 꺾을수가 있더라구요. 담임선생도 자꾸 그 애 편역을 들더군요.…》

《예.…》

진수현은 조숙하고 어벌이 크고 당돌한 어릴적의 최일이를 눈앞에 보는것 같았다.

얼마나 티없이 참신하고 높은 세계인가. 애국은 어른들만이 하는것은 아닐것이다.

어린 소년의 남다른 세계를 높이 사준 그의 담임선생이나 아버지는 또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인가.

그들앞에 머리를 숙이게 되는 진수현이였다.…

퇴근시간이 지나 연구소에 도착하니 실험실에 최일이가 남아있었다.

《임동무를 만났댔습니다.》 최일이 정색해서 그에게 말했다. 《실장선생, 임동무를 보내면 안됩니다. 그럼 청년조는…》

《최동무가 청년조를 다시 맡아야겠소.》

《나요? 난… 그만 못합니다.…》

《…》

진수현은 다시 그를 쳐다보았다. 자부심에 넘쳤던 이전의 최일이 아니라 더 미더워보이는 최일이가 앞에 있었다.


《전자우편- 〈우리들의 세계를 견학합시다.〉


최일동지앞


그간 안녕하세요?

어제 현대화연구소 진수현실장선생님이 우리 공장 설계연구소에 찾아오셨댔어요. 현장에서 수자조종장치와 관련한 문제들을 토의하셨답니다. 무척 진중하면서도 친절한분이더군요.

저는 최일동지가 기판제작을 책임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라지는 않았어요. 그 재능이 빛을 볼 날이 꼭 오리라고 생각했던거예요.

그곳에서 개발한 세계최첨단급 수자조종장치가 우리 공장에, 제가 설계하는 기계부분에도 도입될 그날을 저는 마음속으로 그려보고있답니다.

이 우편으로 바이올린협주곡 〈용광로가 보이는 바다가에서〉를 보내드립니다. 이전처럼 함께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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