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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방북기-3]비전향장기수 리재룡 선생과 가족들 특별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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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미청년
댓글 0건 조회 4,112회 작성일 11-03-1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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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장기수 이재룡 선생과 특별대담

집 방문해 딸 <축복>이,부인 함께대화



[평양=민족통신 유태영/노길남 공동취재단]6.15통일시대를 맞아 북으로 갔던 비전향장기수 63명 가운데
가장 젊은 나이였던 리재룡 선생(67)이 거주하고 있는 평양시 그의 자택을 방문해 이곳에 와서 결혼한 부인
김금순 여사와 딸 "축복"이를 함께 만났다. 우선 리재룡 선생을 비롯하여 다른 장기수 선생들의 안부를 물었다.
남녘에서 감옥살이 30~40년 하다가 생긴 후유증을 치료하다가 세상을 떠난 선생들, 지병으로 사망한 선생들
모두 합쳐 20명이 세상을 떠났고, 지금 43명이 생존하고 있다고 리재룡 선생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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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순 선생과 결혼해 딸 <축복>이를 낳아 매일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는 리재룡 선생

[방북기-3]



비전향장기수 이재룡 선생과 특별대담

집 방문해 딸 <축복>이,부인 함께대화




[평양=민족통신 유태영/노길남 공동취재단]6.15통일시대를 맞아 북으로 갔던 비전향장기수 63명 가운데 가장 젊은 나이였던 리재룡 선생(67)이 거주하고 있는 평양시 그의 자택을 방문해 이곳에 와서 결혼한 부인 김금순 여사와 딸 "축복"이를 함께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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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이 이름도 지어주고, <촉복>이 올린 편지에 답장 한 친필을 가보로 모시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는 리재룡 선생 가족은 희망에 찬 표정들을 짓고 있다.
우선 리재룡 선생을 비롯하여 다른 장기수 선생들의 안부를 물었다. 남녘에서 감옥살이 30~40년 하다가 생긴 후유증을 치료하다가 세상을 떠난 선생들, 지병으로 사망한 선생들 모두 합쳐 20명이 세상을 떠났고, 지금 43명이 생존하고 있다고 리재룡 선생은 말한다. 오는 8월이면 100살을 맞는 선생도 계시고 70대, 80대, 그리고 60대 선생 등 43명 선생들은 모두 잘 있다고 그는 근황을 설명해 준다.

민족통신 취재진은 그의 살림집 앞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5층에 위치한 리재룡 선생의 가정을 방문하는 순간 그의 가족들이 모두 나와 반갑게 맞이해 준다.

방 입구에 들어서서 먼저 거실로 가서 그 분위기를 보며 우선 행복한 삶을 지낸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 순간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벽에 부착하여 놓은 사진틀에 고히 간직한 김정일 위원장의 친필 두편이다. 왼편에 있는 사진틀 속에는 김정일 위원장께서 이 가정 자녀의 이름을 직접 지어 준 친필기록이다. 그 친필은 이렇게 씌어 있다. "온 나라 인민들의 축복속에 태어난 애기 이름을 '축복'이라고 지었습니다. 김정일 2002. 7.23", 그리고 그 사진틀 오른편에는 축복이가 6살되던 해 창광유치원 높은 반에 다닐 때 쓴 편지 <<보고 싶은 아버지 장군님께 편지를 씁니다>>를 보낸 것에 대하여 김정일 위원장께서 "김정일, 2008. 7.23"이라고 크게 써 주었다. 이재룡 선생 가족은 이 친필들을 영광스러운 가보로 모셔놓고 있다.

그리고 그는 남녁에서 0.75평 감옥에서 살던 이야기를 회상하는 한편 지금 살고 있는 이 아파트에 대해서 "장군님께서 마련해 주신 70평의 아파트 살림집이다"라고 소개한다. 그의 집은 침실 3개, 목욕실과 위생실(화장실) 2개, 냉장고와 개스 레인지가 설치된 부엌 등이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었고, 방바닥은 전기 장판 온돌로 되어 있어 발바닥이 따뜻하고, 방안 공기가 훈훈하다.

이 가정에 설치한 문들은 모두 17개가 될 정도로 좋은 주택에서 산다는 느낌을 준다. 피아노를 비롯하여 테레비죤, 냉장고 등 웬만한 시설들을 모두 갖추고 있는 이 가정 방들은 모두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다. 부부침대, 딸 공부방, 손님 침실방, 그리고 가족들이 함께 지내는 거실이자 이재룡 선생이 집무실로 쓰고 있는 방 뒷쪽에는 한 벽을 가득채운 책장들 속에 각종 도서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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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시간을 끝내고 <축복>이 피아노 솜씨를 감상
부인이 차와 사과, 배 등을 깎아 접시에 내오고 예쁜 컵에 차를 대접하며 서로 인사와 함께 대화를 나눴다. 리재룡 선생은 조용한 자세인 반면 부인은 활발한 자세였다. 9살 된 딸 '축북이'는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수줍은 자세로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57년세월의 남녘 생활 중 28년 7개월 기간 감옥에서 고생한 리재룡 선생은 2000년 9월 이곳 평양에 온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는 이북 생활에 대한 소감을 묻자, 한마디로 "아직도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여 주신 김정일 장군님께 무한히 감사드린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처음 판문점을 건너 오는 순간도 이게 정말인가 하며 초조한 마음이었다고 고백하다가 실제로 판문점을 넘어 북녘 땅에 들어 오는 순간 한없는 눈물을 흘리며 "장군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치고 또 외쳤다며 10년 전 그날을 돌이킨다.

북녘 땅에 와서 정착하면서 그는 57세에 결혼도 했고, 2002년 6월 12일 평양산원에서 부인이 예쁜 딸을 낳아 행복했고, 더군다나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그 딸의 이름을 '축복'이라고 지워주셨다고 말하면서 눈시울을 적시며 그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는 특히 남녘에서 1944년 가을 강원도 양양에서 천민 중 천민으로 태어나 고아로 자라나면서 고향인 양양에서 속초 주문진을 전전하다가 북으로 갔다. 그러나 다시 남녘으로 내려와 체포되어 장기수로 옥살이를 하고 출소하여 잠시 살다가 남북정상회담의 혜택으로 다른 62명과 함께 북으로 오게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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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이 노래솜씨를 듣는 기회도 가졌다.
민족통신 취재진은 궁금했다. "어떻게 연약해 보이는 이재룡 선생이 무려 30년 가까이 옥살이를 하며 지조를 버리지 않고 신념을 지킬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에 대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굳는 신뢰와 믿음 때문이었다고 서슴없이 대답한다. 그 동안 이곳 비전향 장기수들 여러분과 대담하며 이 질문을 하여 왔지만 그들의 강철같은 신념은 모두가 북녘의 최고 지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믿음, 그리고 동지적 의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하게 된다. 더군다나 리재룡 선생은 물론 그의 부인, 딸 모두가 "장군님께서 우리 가정을 세심하게 보살펴 주시고 내세워주신다."면서 최고 지도자에 대한 고마움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느낀다고 순간 순간 되풀이해서 간증해 준다.

리재룡 선생은 또 이곳 평양에 와서 환갑이 가까운 나이에 부인 김금순 여사를 만나 그것도 뒤늦게 예쁜 딸을 얻게 된 것에 대하여 무척 행복해 하고 있다. 취재진은 이렇게 질문해 보았다. "부인을 만나서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느냐?"고 묻자 그는 처녀처럼 수줍은 미소를 띄고 약간 얼굴이 불그레해 진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제가 키도 작고 몸이 왜소하잖아요. 그래서 그를 보는 첫 순간 키도 크고 몸도 건강하게 보여 그게 마음에 들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또다시 수줍은 표정을 짓는다. 짓궂은 질문도 던져 보았다. 언제 사랑을 하여 '축복이'를 가질수 있었느냐고 묻자 이들 부부는 잠시 당황하다가 2001년 백두산에 갔을 때 사랑하여 아이를 낳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부인에게도 물어 보았다. "리재룡 선생을 보는 순간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으로 느꼈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테레비죤을 보면서 선생님들이 소개될 때 연령이 제일 어려서인지 맨 마지막으로 비쳐진 그의 모습을 보며 어지고, 곱살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회고하며 "30년 40년 옥살이로 고생하면서도 수령님과 장군님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지조를 지켜 오신 선생님들 모두가 정말로 하나같이 존경스러웠다."고 말한다. 부인은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철도국 승무원, 사무원 등의 분야에서 일해 온 지방출신의 여성으로 그의 어머니는 지금 해주에 살고 있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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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김금순 선생은 과일을 대접하며 대담에 참가했다
리재룡 선생의 복장에는 두개의 메달이 보인다. 그는 이에 대해 "하나는 '조국통일상', 그리고 또 하나는 '공화국로력영웅상'"이라고 설명하며 "도저히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이런 영예의 메달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이 한일도 별로 없는데 이렇게 공화국(북한을 의미) 인민들은 저희들이 이 땅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분에 넘치도록 뜨겁게 환영하여 주고 받들어 주었습니다. 특히 장군님께서는 저희들을 세심하게 보살펴 주시면서 내세워 주시고 '축복'이의 내복까지 선물로 보내주시며 돌보아 주셨습니다."라고 설명하면서 북녘의 최고지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의 마음을 표시하곤 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의 공통적인 마음일 뿐만 아니라 취재진이 만나는 이북 동포들의 한결같은 마음들이라는 사실을 관찰하게 된다.

분단된지 66년으로 접어든다. 리재룡 선생의 조국통일 전망에 대해 물었다. 그는 남녘의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화해협력 정책을 이야기 하면서 지금의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해 가슴아파한다고 전제하고, "참으로 통일의 길은 간고합니다. 미군이 나가지 않으면 누가 들어서도 어려울겁니다. 통일을 앞당기는 길은 무엇보다 미군문제를 해결해야 됩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남녘 동포들이 탄압을 받고 있습니까. 통일운동하는 사람들이 너무 고생합니다. 이런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미군을 내 보내야 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조국분단의 본질을 미군(외세를 의미)이라고 지적하며 거듭하여 "미제를 몰아내야 모든 문제가 풀립니다."라고 반복하여 강조하기도 한다.

그는 남녘 동포들을 바라보며 여러분들을 생각한다고 말한다. 보고싶은 사람들 몇사람을 꼽아달라고 주문했다. 그러자 그는 신영복, 김일순, 권호헌, 강신석 목사, 리철 목사, 장두석, 문병란, 성미란, 박용길(문익환 목사 부인), 류춘도(84.수양어머니), 한상렬 목사 등의 이름들을 부르며 무척 보고싶다고 말하면서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그들을 만나 보고 싶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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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재룡선생은 노력영웅대회 기념 촬영한 사진도 소중한 가보로 보관했다
민족통신 취재진은 마지막으로 해외동포에 대한 소감과 바라는 점에 관해 질문했다. 그는 해외동포들 가운데 통일운동에 참여해 온 여러분들의 희생과 헌신적인 노력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아 왔다고 말하고, 특히 재일동포들에 대한 사정과 그들의 활동모습들을 상기시키면서 아직까지 일본 당국에 의해 탄압받아 온 재일총련과 애국동포들의 처지를 되새기면서 그는 또 다시 눈시울을 적시는 모습을 보인다. "재일총련 동포들과 민족을 사랑한는 일본의 동포들은 그 같은 난관과 어려움에 직면해서도 조금도 굽히지 않고 우리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투쟁하여 온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랑스럽게 느낀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는 해외동포사회를 향해 "지금까지 해외동포 여러분이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하여 온데 대하여 가슴뜨겁게 느낌니다. 앞으로는 북남 해외동포들이 더욱 더 일심단결하여 7천만 겨레의 소원이자 염원인 조국의 평화통일을 하루 속히 이룰 수 있도록 다함께 힘을 합치면 좋겠습니다. 특히 해외동포들이나 남녘 동포들이 우리 공화국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해 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리키는 말)의 은덕정치를 피부로 느낍니다. 그래서 북을 바로 알리는 일에 많은 힘을 기울여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호소어린 목소리로 당부하기도 한다.

취재진은 그의 가정에서 특별대담을 마치고, 지난 2월16일에 인민학교 3학년이 되어 소년단에 입단하여 붉은 넥타이를 맨 축복이의 노래솜씨, 피아노 솜씨도 감상했고, 민족통신 취재진의 요구로 이북어린이들의 세배하는 모습도 주문해 그의 인사법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치마저고리를 입으면 엎드려 절을 하는데 소년단 정복을 입으면 선채로 허리를 구부려 세배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민족통신 취재진은 이들 가족을 고려호텔 1층 식당에 초청하여 점심을 대접했다. 그 때 축복이 아버지는 김정일 위원장께서 선물로 주신 약술 두병을 갖고 나와 점심시간에 함께 나누며 한시간 반가량 이러저러한 환담을 나누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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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유태영/노길남 특파원들은 대담을 마치고, 리재룡 선생가족들과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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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이가 대담시간이 끝나고 민족통신 특파원들에게 세배하는 모습. 소년단 정복을 입고서는 이렇게 세배인사를 하고, 치마저고리를 입은 경우에는 엎드려 절을 한다고 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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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족통신 공동취재단 201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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