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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경호팀장' 의 안타까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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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978회 작성일 11-03-1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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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경호팀장’의 안타까운 죽음

(양정철닷컴 / 2011-03-11)


당신, 하늘나라에서는 부디 노 대통령님과 함께 편히 쉬세요
                                             (사진:뉴시스)


8일, 부고 하나를 받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 시절, 경호팀장을 맡았던 한명선 전 청와대 비상계획관. 그가 불치의 병과 1년 넘게 싸우다 끝내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으로 강직하고 의리 있는 사람이었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자신이 지키던 노무현 대통령을 따라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습니다. 

제가 그를 처음 만난 건 2002년 대선 때입니다. 풍채도 좋고 얼굴도 잘 생긴 분이 노무현 후보 경호팀장으로 왔습니다. 그는 20년 넘게 한 항공사에서 보안업무를 맡았던 무골이었습니다. 자당의 후보를 자당 의원들이 흔들며 당의 꼴은 말이 아니었고,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바닥을 헤매던 시절이었는데, 그가 무슨 생각으로 '별 희망이 없는' 노 후보를 모시겠다고 결심을 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성실히 일했습니다. 그 긴 대선 장정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 후보 곁을 지키며 후보의 안전을 지켰습니다.

일이 아주 힘들었을텐데도 그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하지만 경호를 할 때는 흐트러짐이라곤 없었습니다. 그의 강직함과 노 후보에 대한 확신을 상징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대선 때 매일 새벽, 그는 노 후보의 명륜동 자택 앞에서 후보를 기다리며 고된 경호업무를 시작했습니다. 마음 따뜻한 노 후보가 그의 고생이 안쓰러워서 하루는 집을 나서며 격려의 말을 건넸습니다. 

"되죠?"(경상도 사투리로 '되다'는, 힘들다는 뜻입니다)
"네, 됩니다!"

"아, 그게 아이고, 되죠?"
"네 후보님. 반드시 되실 겁니다! 힘 내십시오"

후보가 쓰는 경상도 사투리를 몰라 생긴 동문서답의 코믹 해프닝이지만, 노무현 후보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그만큼 투철했습니다. 그리고 매사에 강직했습니다. 훗날 노 대통령도 그 때의 동문서답 얘기가 나오면 껄껄 웃곤 했습니다.

대선에서 승리가 확정되고, 대통령 경호실이 직접 당선자 경호를 맡게 되면서 그는 졸지에 일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과거 정부의 경우, 당선 전에 경호를 맡았던 사람이 청와대로 들어가 계속 경호를 맡는 게 관례였습니다. 하지만 원칙을 중시하는 노 대통령은 경호실 기준과 체계를 존중해 그를 경호실에 특별채용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평 한 마디 없었습니다.

참여정부 출범 후 한참 뒤에야 대통령비서실 비상계획관으로 들어왔지만, 그는 부서가 어디든, 직급이 뭐든, 노 대통령을 다시 모실 수 있게 된 것을 자랑스러워 했고 보람있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참여정부 청와대 생활의 끝까지 음지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특히, 원래 경찰특공대였던 그의 딸이 경호실에 파견돼 대통령 가족 경호를 맡게 된 것을 대단히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참 묘한 인연입니다.
      

그의 죽음이 안타까운 건 그의 외로운 말년 때문입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참여정부 인사들에게 혹독한 시련의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필설로 다 못할 치졸한 정치보복을 당하게 됐습니다. 참여정부 주요 인사들 본인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다 뒤져 망신꺼리를 찾을 때였습니다.

그는 청와대에서 모시던 모 인사가 정치보복의 희생양이 되자 기꺼이 손발이 되어 1년 넘는 기간 동안 갖은 수발을 다 들었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지만 그는 의리 하나로 헌신했습니다. 결국 무죄를 선고받은 인사와 법정에서 둘이 껴안고 펑펑 울던 그의 순수함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노 대통령이 서거하자 그는 꺼이꺼이 울면서도 봉하에 살다시피 하면서 온갖 궃은 일을 맡아 장례를 함께 치렀습니다. 그리고 그 직후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가벼운 감기 정도로 알고 갔던 병원에서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술 담배도 안 하던 사람이.

투병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강원도로 들어가 자연식과 운동으로 암을 치유해 보려고 애를 쓰기도 했고, 실제로 많이 좋아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암을 이겨내진 못했습니다. 며칠 전부터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더니 끝내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영안실에 모인 참여정부 사람들은 혹여라도 그가 청와대를 나온 직후 고생 때문에 병을 얻은 건 아닌지, 그 때문에 결국은 세상을 뜨게 된 것은 아닌지 자책하며 통한의 슬픔을 나눴습니다. 10일 발인과 함께 그는, 자신이 지키고 사랑했던 노무현 대통령 곁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선 부디 평안한 안식을 누리길 바랍니다. 그 분의 명복을 빕니다.

고되지만 행복했던 그와의 청와대 시절, 그와 그의 가족의 재미 있는 사연을 제가 <청와대브리핑> '청와대 사람들' 코너에 소개했던 글이 있습니다. 자신과 가족들의 건강을 말하면서도, 자랑 같았던지 수줍게 겸연쩍어하던 그의 해맑은 미소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습니다.       


[청와대 사람들 : 한명선 비상계획관. 무술합계 최소 51단의 소림사 가족]

한명선 대통령비서실 비상계획관은 노 대통령 후보 시절 경호팀장을 맡았던 분입니다. 그는 캠프에 오기 전 모 항공사 탑승보안관으로 출발해 객실서비스 수석사무장, 무도사범까지 지낸 20년 항공보안맨입니다. 저는 그 분이 대통령 후보 경호팀장으로 처음 왔을 때 영화배우 출신인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무술의 고수더군요.

합기도 9단, 태권도 7단, 유술 6단, 검술 4단…. 항공사 재직 중엔 항공기 납치범 진압을 위한 항공무술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기타 1, 2단짜리 자잘한 무술세계는 저에게 밝히길 꺼려합니다.

그런데 한 계획관 가족들도 장난이 아닙니다. 첫째 딸, 태권도 4단에 합기도 3단에 유도가 2단, 합이 9단입니다. 용인대 경호학과를 나와서 여경 대테러특공대로 경찰에 입문했습니다. 권총 부문 마스터자격증을 보유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스나이퍼입니다. 명사수죠. 한 때 경호실에 파견 나와서 영부인 경호를 맡기도 했었죠. 지금은 서울경찰청 경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얼마 전에 결혼을 했는데요, 대통령 경호실 경호관과 짝을 맺었습니다. 그 역시 태권도 3단의 근육질남입니다.

한 계획관의 둘째 딸, 그녀 역시 경찰특공대에 선발돼 현재도 특공대원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언니의 뒤를 이은 셈인데요, 태권도 4단, 합기도 3단, 유도 2단, 합이 9단의 단련된 몸입니다. 그녀는 오는 10월 결혼할 예정인데, 신랑 될 사람 역시 경호실 파견근무 중인 경찰특공대 소속의 경찰입니다. 둘째 사위 될 사람도 태권도 4단이랍니다.

온 식구가 무공을 쌓아 나라에 몸 던진 가족입니다. 이 집안 분들 무술 합계를 내 봤습니다. 한 계획관 최소 26단, 두 딸 18단, 두 사위 7단, 합이 최소 51단입니다. 이 정도면 소림사 차려도 될 수준입니다. 이 집안 식구들 다 모였을 때 강도가 든다면 뼈도 못 추리겠습니다.


양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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