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주자들과 대비되는 유시민식 대권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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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주자들과 대비되는 유시민식 대권행보
(서프라이즈 / 재능세공사 / 2011-03-02)
본격적인 대권경쟁의 시작
예정된 정치일정 중 하이라이트가 될 2012년 총선과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내년은 오랜만에 정치열정을 불태울 호기인 셈이다. 대권경쟁의 본질상 이전 대선의 주인공이 결정된 직후부터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지만 본격적인 경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인 셈이다. 이 시점에서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이 내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피어올랐다. 진정한 대권행보란 무엇인가? 자천타천으로 유력주자로 불리는 대선후보급 정치인들이 대권경쟁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 어떤 행보가 필요한 것일까 라는 질문 말이다.
아마도 이미 정치역사에서 확인된 이전 대선주자들의 행보를 유추해 보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대권행보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선후보 입장에서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될만한 행위가 어떤 것인지 계산적인 관점에서가 아니라 국민들이 정치일정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실질적으로 확인하고 고려하는데 진짜 도움이 되는 대권행보가 무엇인지를 기준점으로 삼아 현재 거론되는 유력주자들의 지금까지의 대권행보를 비교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근혜를 필두로 유시민, 손학규를 중심축으로 하고 2그룹 정도로 분류할 수 있는 오세훈, 김문수 등의 예를 살짝 곁들이는 차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 보자.
관행적인 대권행보 vs 익숙하지 않은 대권행보
우선 본격적인 이야기를 펼치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관행적인 대권행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복기해 보도록 하자. 대선경쟁에 뛰어들기로 결정한 이상 후보자가 가장 염두에 두는 대권행보의 시작은 유권자가 아니라 현실적 정치세력을 대상으로 한 세 불리기와 영향력 과시다. 얼마나 많은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따르고 있는지 또 영향력이 높은 언론에서 자신에게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지 난다긴다하는 정치 스폰서들이 자신을 밀어줄 의사를 가지고 있는지 대내외적으로 아리는 행위야말로 가장 중요한 대권행보로 인식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른바 대세론을 이끌고 있던 대부분의 유력주자들은 이런 방식의 대권행보로 자신의 지지도를 유지하고 과시했던 게 사실이다. 구체적인 대권행보 역시도 이런 구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행동과 약속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정도는 선점을 하고 난 연후에야 지역별, 연령별, 이해관계층별 유권자 표 계산에 돌입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정치공학적 움직임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게 당연한 대권행보인 것처럼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참모라고 하는 이들이 주로 고민하고 조언하는 내용도 이런 틀을 벗어나지 않아 왔다.
이런 방식의 대권행보가 당연시되고 유지됐던 이유는 한국정치에서 대선후보를 조명하는 주요 방식이 대권주자로서의 자질, 자격, 비전 등이 아니라 ‘대선경쟁력’ 또는 ‘당선가능성’이라는 대단히 현실적이고 기득권 중심의 지표로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누가 대통령이 될 자격과 능력을 갖추었느냐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누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가에 온통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식이니 우리는 구조적으로 대통령을 뽑고 나서 배신감을 느끼거나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뒤늦게 본질적인 잣대로 대통령을 평가하려 들어봐야 버스 지나고 손 흔드는 셈이 될 뿐이다.
그렇다면 익숙한 방식은 아니지만 국민들이 기대하는 대권행보의 핵심적인 내용들은 어떤 것들일까? 첫 번째는 자신들이 후보로 고려하고 있는 대선주자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생각으로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인지 다양한 측면에서 확인해 보고 싶은 욕구다. 밀어 줄만 한지 뽑아주어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검증해 보고 싶다는 거다. 이런 검증이 가능하려면 대선주자들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에 대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제시하고 그의 정치철학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소통에 주력하는 대권행보를 보여주어야 한다.
첫 번째 기준이 최소한의 필요조건이 될 자질과 철학의 문제라면 두 번째 기준은 조금 더 평가하기 어렵고 복잡한 대선주자의 능력에 대한 문제다. 국가의 운영을 맡길만한 지도자의 능력을 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통상적으로 지금까지 중시되었던 능력은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추진력, 숨어 있는 인재를 발굴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안목, 외교·안보 분야에서 장·단기적인 관점에서 국익을 위해 안정적이고 유연한 전략수립과 실행능력 등이 요구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추진력을 지나치게 중시하다 보니 대통령이 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성과를 올렸는지가 매우 중요한 능력에 대한 판단근거가 되어 왔고 그 과정에서 어떤 부작용과 편법이 사용되었는지를 검증하는 일에는 소홀히 해왔던 게 사실이다. 또한 학벌과 경력위주의 관행적인 인재상 때문에 인재풀과 행정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훌륭한 자질과 비전을 갖춘 신선한 정치인들이 봉사할 기회 자체를 갖지 못하는 불행이 반복되어 왔다. 외교·안보 분야 역시 친일, 친미 관점에 쏠린 대응이 당연한 것처럼 경도되어 제대로 된 능력 검증에 장애물이 되어 왔다.
여전히 위에서 언급한 지도자의 능력을 무시할 순 없지만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의 지도자에게는 더욱 중요한 능력이 요구된다. 모든 국민이 쉽게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는 공통의 가치와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으로 제안할 수 있는 능력, 국가운영에 대해서 국민의 공복과 국민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생산적인 토론을 전개할 수 있는 능력, 서로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이해관계자 집단을 조율할 수 있는 조정능력, 예기치 않은 국가적 사태에 대한 순발력 있는 대응능력, 마지막으로 국정운영의 체험을 통해서 더 나은 선택을 위해서 끊임없이 학습할 수 있는 능력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능력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대통령의 자질과 능력이 결코 분리되어 평가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개념이 아니라 완전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동시에 종합적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새롭게 요구되는 대권행보의 관점에서 내년 국민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유력주자들의 최근까지의 대권행보를 비교해서 조망해 보도록 하자.
대세론 유지를 위한 신비주의 대권행보의 표상 - 박근혜
박근혜는 관행적인 대권행보를 가장 답습하는 대선후보인 동시에 대선을 1년여 남겨둔 본격적인 경쟁구도에서도 여전히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하는 당최 속내를 알 수 없는 유력주자다. 지난 대선에서 MB에게 나름 억울(?)하게 패배한 이후 그가 보여준 행보를 세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철저한 내부단속’, ‘여권 후보 프리미엄 지키기’, ‘유권자들에게 절대 자기 생각 드러내지 않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압도적 지지율 유지하기’ 등이다. 박근혜는 지키기의 명수가 되기로 한 게 틀림없다. 먼저 주도적으로 이슈를 제기하거나 판을 주도하려는 생각이 아예 없다. 부자 몸조심하겠다는 거다.
이런 방식의 대권행보를 심각하게 뒤흔들뻔한 고비가 몇 차례 있었다. 박근혜 입장에서 도저히 기존 스탠스를 지키기 어려웠던 이슈로는 ‘세종시 백지화’ 문제와 ‘친이계 후보 띄우기’가 대표적이다. 그 외 MB의 수많은 실정으로 발화된 이슈들은 그에게 ‘남의 집 불구경’하는 심정으로 철저하게 침묵한 게 다다. 참을성 하나만큼은 대통령감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이 몇 가지 행보만으로도 그가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될 마음이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는 거다. 자신의 이익과 직접 연관된 일이 아니면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에게 국민을 위한 대통령이 될 거라는 기대 자체가 웃긴 일 아니겠는가.
그나마 트렌드는 눈치챘는지 구체성하고는 담쌓은 ‘복지’를 이야기하고 다니거나 ‘박근혜 씽크탱크 출범 - 본격적인 대권행보 시작’과 같은 기사가 쏟아지는 걸 보면 대선 막바지까지 그의 전략은 바뀌지 않을게 틀림없다. 다만, 다시한번 한나라당 공식 대선후보가 되는 과정은 어떨지 몰라도 야권 단일후보와 본선경쟁을 펼칠 때 그는 혹독한 검증의 칼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더이상 신비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기에는 국민의 인내력이 한계치에 이를 테니 말이다.
MB와 한나라당 지지세력에 눈도장 받기 대권행보 - 오세훈과 김문수
적어도 큰 틀에서는 오세훈과 김문수는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는 동시에 동상이몽을 꿈꾸는 있는 이들이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어 보이는 박근혜라는 철옹성을 무너뜨리고 만에 하나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될 수만 있다면 못할 짓이 없다는 점에서는 동병상련을, 그런 기적(?)을 가능케 하기 위한 방법과 누가 그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클까라는 점에서는 확실한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을 게다. 이 두 사람에게 지난 지방선거는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개인적인 꿈을 연장하는데 꼭 획득해야 할 티켓이자 수단에 불과했을 뿐이다.
모두가 인정하듯이 지방선거 결과 더 좋은 출발점에 선 것은 유력한 야권주자 유시민을 접전 끝에 물리치고 경기도지사 자리를 수성한 김문수다. 이 과정을 통해서 김문수는 대선후보급으로 격상되었고 박근혜 자리를 유일하게 위협할 인물로 꼽혔던 오세훈은 확실히 타격을 입었으니까 말이다. 이러한 정황이 상대적으로 얌전하고 은밀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김문수의 행보와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야권의회 엄처시하에서 고달픈 시장 노릇을 해야 하는 오세훈의 무모한 행보의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한마디로 오세훈이 김문수보다 조급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게다.
오세훈은 이미 서울시장 자리는 안중에 없는 게 틀림없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경기도지사 자리 역시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김문수처럼 느긋할 수 없는 상황인 거다. 장담하건대 오세훈이 아무리 뻘짓을 하고 몸부림쳐도 자력으로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자리를 꿰찰 수 없다. 왜냐구? 한나라당과 그 당을 지지하는 이들의 면면을 봐라. 야권주자 유시민보다 두 살이나 어린 오세훈을 그들의 간판이자 대빵으로 선택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극히 희박하지만 유일한 가능성이 있다면 박근혜가 빼도 박도 못하는 이유로 낙마하고 야권주자가 유시민으로 확정되는 상황뿐이다.
김문수 역시 오세훈과는 또 다른 이유에서 역시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보면 김문수는 태생이 근본적으로 다른 굴러온 돌이기 때문이다. 왜 이재오가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MB 친위대장인지 역시 같은 이유로 설명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김문수의 자기부정과 기회주의적 처신의 수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거다. 이유가 무엇인지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MB와 한나라당 지지세력의 낙점 외에는 두 사람이 대권후보 자리에 설 방법은 없다. 그래서 김문수와 오세훈은 호소한다. 퇴임 후 MB를 살려 주겠노라고 그리고 자신도 누구보다 한나라당 지지세력을 위한 정치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이 두 사람이 만약 위에서 언급한 진정한 대권행보에 걸맞은 움직임을 두 번의 수도권 지자체장 시절 초기부터 줄기차게 해왔다면 지금과 같은 박근혜의 독주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MB나 박근혜만이 쓸 수 있는 관행적 대권행보를 통해 용꿈을 꾸었다는 것 자체가 두 사람의 패착인 동시에 어쩔 수 없는 한계다. 그런 구도하에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봐야 이미 굳어진 대권판도에 그 어떤 균열도 낼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한마디로 꿈 깨고 지금 자리에나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살 길이다.
백의종군에서 야권 맏형 대표까지는 오케이, 다음 행보는? - 손학규
손학규는 대권주자로서는 치명타가 될 만한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나름 정치 생명력을 유지하고 키우고 있는 인물이다. 오로지 야권 대선후보가 되어 한판 승부를 벌여보겠다는 열망 하나로 한나라당 대선경쟁 과정에서 탈당하고 반대진영에 합류하여 양 진영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것도 모자라 결국 정동영에게 패배한 일까지 웬만한 정치인이라면 벌써 정치생명이 끝나고 남을만한 이력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는 아직까지 건재하며 야권 대선후보는 물론 국민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을 여전히 남겨두고 있는 것일까.
엄밀한 의미에서 그는 경선불복자가 아니다. 한나라당 대선경선에서 완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정치상황을 감안할 때 탈당과 야권 대선경쟁의 합류라는 선택이 그의 입장에서 무조건 유리하거나 녹록한 선택은 아니었다는 점도 최소한의 이해를 구할 만했고 이미 경선패배와 그를 영원히 따라다닐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로 자신의 선택에 따른 정치적 댓가를 충분히 치렀기 때문이다. 경선패배 후 지금까지 손학규의 행보는 확실한 점수를 딸 정도는 아닐지라도 그동안 의심받고 비판받았던 최소한의 진정성과 일관성이라는 측면에서 야권 지지자들의 용서를 받고 새로운 기회를 얻을 만큼의 결실은 거두었다고 평가해 주고 싶다.
그는 경선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정동영을 위해 선거운동에 최선을 다했고 한나라당에 정권을 빼앗긴 후에는 민주당적을 유지한 채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자숙과 성찰을 위해 칩거를 선택했다. 선택받지 못한 대선주자가 상식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반성의 시간을 받아들인 셈이다. 만약 대선이 끝난 후에도 막바로 민주당권을 장악하거나 다시 달콤한 한나라당의 품 안으로 날아드는 행보를 보였다면 손학규의 정치생명은 거기서 소멸되었을 것이다. 그는 패배의 교훈을 분명하게 받아들여 자신의 남은 정치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결심을 이때부터 굳혔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그는 정치의 중앙무대에서 잊혀진 채 오랜 시간의 칩거생활에 돌입한다. 한때 유력 정치인으로 많은 기대를 받았던 그의 입장에서 그 시간들은 제 삼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었을 게다. 말 그대로 자발적인 귀양을 선택했지만 수많은 번민과 고뇌의 날들로 점철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한 은둔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는 겸손한 자세를 유지한 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때마다 칩거생활에서 한시적으로 벗어나 백의종군의 자세로 최선을 다했고 야권 지지자들과 국민들로부터 차곡차곡 소박한 점수를 쌓아나갔다. 결정적인 것은 좋은 성과를 거두었을 때도 겸양하며 다시 자신의 제자리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는 점이다.
총선과 지방선거 그리고 재보궐선거까지 손학규는 모범적인 행보를 보여준다. 특히나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단일화 국면이 고비를 맞았을 때 그가 보여준 타이밍 포착 능력과 중재능력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야권연대 중요성을 감안할 때 의미심장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결국 MB와 한나라당의 무도한 폭정은 그의 본격적인 정계복귀 시기를 앞당겼고 야권 대권후보로서의 첫 번째 경쟁에서 정동영과 정세균을 꺾고 야권 맏형 민주당 대표로 선출되기에 이른다. 그가 민주당 안에서만큼은 철옹성과 같았던 정동영을 꺾을 수 있었던 것은 대선패배 이후에 두 사람이 보여준 명확히 대비되는 정치적 행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그는 야권의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부터의 행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그가 위에서 언급한 관행적인 대권행보에 머물고 힘의 논리로 여타 야권주자들을 누르려 한다면 그는 또 한 번 실패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한계를 인정하고 기득권을 내려놓고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야권연대를 주도적으로 성사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는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특히나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의 야권 승리를 위해 재보궐 선거국면에서의 승리와 굳건한 야권연대 협상테이블 구축 등은 그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내가 평가하는 손학규는 제대로 된 보수와 진보정당 간의 집권경쟁이 가능한 정치환경에서라면 보수세력의 후보로서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엄혹한 정치환경에서 진보개혁세력의 대표주자로 나서기에는 분명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 역시 시대를 잘못 만난 정치인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에게 요구하고 호소한다. 그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이를 돕는 또 한 번의 조연으로 만족해야 할지 모르는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만이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아니라 나에게 국민이 부여하는 역할이 무엇이든지 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임해달라고 말이다. 그런 마음을 가질 때만이 그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치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소통의 정치를 기반으로 한 유시민식 대권행보
꽤 오래전에 유시민의 정치적 각성과 진화를 다룬 ‘정치인 유시민의 진화와 희망’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돌이켜 보건대 이 포스팅 이후에 지켜본 유시민의 행보는 그 당시 필자가 유추하고 기대했던 것 이상의 점수를 부여할 만하다. 그는 결국 완벽한 야권연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성공적인 지방선거 결과를 이끌어 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냈으며 경기도지사 선거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를 위협할 수 있는 가장 잠재력이 큰 야권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국민참여당 입당 이후 유시민의 행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각종 선거국면에서 야권연대의 필요성과 위력을 확인시키고 한나라당에 더이상 나라를 맡길 수 없는 당위성을 야권 정치세력과 국민들에게 절실히 호소하는데 전력을 기울인다. 둘째, 언론이나 정치인들을 상대하기보다는 강연, SNS, 책을 통해 국민과 직접 소통에 나서고 있다. 셋째, 국민참여당 정책연구원장을 맡아 국민들에게 제시할 비전과 정책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유시민이 참여정부의 실책으로 자주 거론하는 것 중의 하나가 ‘국민과의 소통 실패’다. 그는 이러한 자기반성과 성찰하에 ‘소통’을 최우선가치로 삼기로 작정한 듯 보인다. 아무리 옳은 가치와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를 국민들에게 동료 정치인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의견을 구하고 반영하는 데 실패한다면 어떤 정부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를 현실적 이상주의자라고 평가한다. 스스로 고백했듯이 자유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였던 그가 현실정치의 현장에 몸담으며 직접 체험하면서 체득한 진화의 결과물로서 말이다.
유시민 최고의 강점이기도 한 ‘소통능력’과도 궁합이 맞는 선택인 셈인데, 소통의 대상과 채널부터 여타 정치인과 다르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유효한 대권행보는 다양한 국민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고 소통의 방식 역시 강연, 저서, SNS 그리고 정책제안까지 입체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럼 그가 국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주로 소통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어떤 내용일까? 우선 가장 정적이지만 지속적이고 깊이 있는 소통을 가능케 하는 책을 통한 유시민식 소통을 이야기해 보자.
지식소매상 유시민의 책을 통한 정치
지금의 유시민을 있게 한 가장 큰 무기는 가슴과 머리가 조화를 이룬 글쓰기 능력이다. 멀게는 ‘항소이유서’, ‘거꾸로 본 세계사’에서부터 가깝게는 ‘대한민국 개조론’, ‘후불제 민주주의’, ‘청춘의독서’에 이르기까지 지식소매상이자 정치인 유시민의 인기를 견인하는데 그의 저서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유시민에게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그의 저서가 미치는 영향력은 놀라울 정도로 미비한 것 또한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폭넓은 대중들을 위해 쓴 몇 권의 책을 제외하고 정치인 유시민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대한민국 개조론’과 ‘후불제 민주주의’를 찬찬히 일독할 것을 권유한다. 객관성을 가장한 주관적인 인상평, 천형처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몇 마디 발언, 악의적인 감정으로 유포시킨 인신공격성 표현을 근거로 유시민 안티를 자처하는 이들이 주위에 있다면 일단 평가를 유보하고 차분하게 그의 생각이 충분할 만큼 담긴 책들을 읽어보라고 권고하길 바란다. 장담컨대 읽기 이전과는 사뭇 다른 평가를 내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는 꾸준히 자신의 생각을 책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독자가 선택하지 않는 책은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그의 책이 잘 팔린다는 것은 독자와 흥미를 가지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소박한 증거다. 책을 통해서 그는 정말 다양한 독자들로부터 자신의 생각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며 동시에 자신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책은 한시적인 소통이 아니라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를 넘어 지속적이고 깊이 있는 소통을 가능케 한다. 그것이 지식소매상 유시민이 책을 통한 정치를 즐기는 이유는 아닐까.
4월 출간 예정인 유시민 신간의 제목은 가칭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고 한다. 이전의 그 어떤 책보다 대권주자로서의 직접적인 고민과 비전이 담긴 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기있는 정치인 유시민이 실질적인 의미에서 다른 대권주자들과 어떻게 다른 국정철학을 가졌는지 그 철학을 어떤 구체적인 정책과 방식으로 펼치게 될지 미리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국내에서 인문서로서는 보기 드문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영감을 받은 부분도 있을 것이고 정의로운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유시민의 사유결과를 한번 확인해 보도록 하자.
찾아가는 서비스 & 직접 소통의 위력 - 유시민의 강연정치
물리적인 시간 면에서 저작과 더불어 유시민이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 강연이다. 시민광장을 통해 동영상이나 강연전문을 통해 여러 번 맛본 그의 강연은 책과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 유머 있고 사람냄새 나는 유시민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참여정책연구원장을 맡기 전까지 유시민이 가장 주력한 정치 행보이며 신 야권지지층을 만들어낸 원동력이기도 하다. 진보정치의 미래, 유시민이 꿈꾸는 진보정치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가 넘어서야 할 것들, 진보정치세력이 집권에 성공할 경우 국가의 역할 등을 주요 주제로 삼아왔고 강연 후 질의응답을 통해 현안이슈에 대한 그의 생각도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강연은 대부분 청중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 분위기가 강연자 유시민의 에너지로 이어졌다. 대학교 강연도 볼만했지만 지자체 등에서의 강연은 또 다른 열기가 있다.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유시민의 인기에 강연 역시 크게 공헌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오랫동안의 사유가 차곡차곡 쌓여 저작의 힘이 사람들을 합리적이고 잔잔하게 동화시킨다면 강연은 정치에 소외되어 있고 무관심했던 이들까지도 긍정적으로 선동하고 새로운 정치적 열망을 이끌어 내는 힘이 있다. 유시민은 반복적으로 호소한다. 정치를 외면하지 말고 여러분의 정치적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그걸 현실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정당을 찾아 참여하고 지지해 달라고 말이다.
광장에서 국민의 소리를 듣다 - 유시민의 트위터 정치
한때 정치인 파워트위터 일인자의 자리는 노회찬과 심상정의 몫이었다. 유시민은 상대적으로 뒤늦게 트위터를 시작했지만 가장 많은 팔로워를 가진 정치인이 되었다. 여전히 트윗빈도에서는 앞서의 두 사람을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지만 점점 트위터를 통해 국민들의 의견을 구하는 유시민의 구애는 많아지고 있다. 특정이슈에 대한 그의 생각이나 개인적 일상을 묻는 질문에 간헐적으로 답변해 주는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가 고민하고 있는 주제나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트위터의 특성을 간파하고 있는 듯하다. 트위터의 쓰임새는 개인의 취향이나 목적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기본적인 특성 중의 하나가 모두가 광장에 모여 왁자지껄한 소통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특히나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다른 이의 생각에 귀를 기울여주어야 하는 트위터의 특성은 음미할 만하다. 정치인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이들이다. 특히나 다른 채널로는 소통의 기회가 적은 이들에게는 발신채널로서의 유혹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짜 소통의 정치를 꿈꾸는 이라면 우선 더 많이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시간을 두고 충분히 들어준 정치인 트위터들은 아주 필요한 순간에 그들의 이야기를 유권자에게 들려줄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무조건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견 중에 꼭 반영할 필요가 있는 내용들은 자신의 정치행보와 정책에 반영하고 피드백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선순환이 확인되지 않으면 대답없는 메아리 같은 정치인 트위터에 더이상 자신의 아까운 에너지를 투자할 사람은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유시민이 트위터를 통해 수렴한 의견을 생산적으로 피드백 하는 빈도가 많아지길 기대한다.
결국 대권주자는 정책으로 말해야 한다
본격적인 대선레이스가 시작되면 자질 검증과 더불어 왜 당신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이 주목받게 된다. 지금까지의 대선레이스를 살펴보면 오랫동안 야인으로 있었고 가장 많은 고민을 했으며 준비된 대통령으로 인정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급조된 대선공약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운 대선후보가 거의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삼김 이후 불어닥친 한국정치의 역동성 때문에 잘 준비된 대선공약과 정책을 확보할 시간이 부족해진 것은 틀림없지만 이것은 물리적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내실있는 준비자세와 치열한 고민의지가 없이는 안 되는 일이다.
박근혜를 필두로 한 유력주자들이 정치적 발언과 행사참석에 전념하고 있는 동안 유시민은 대선주자로서 국민들에게 선보이고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정책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수순상으로 그가 진보정치의 미래를 고민하고 국가의 역할을 정립한 것이 국정철학의 기초를 쌓는 행위였다면 참여정책연구원장으로서 자신이 꿈꾸는 국정철학을 구현할 구체적인 비전과 정책대안을 개발하는 행위로 이어진 것은 자연스럽고 중요한 일이다. 그동안 3차에 걸친 정책토론회가 있었고 주제의 흐름을 보면 유시민식 정책구상의 스탠스를 확인할 수 있다.
1차 토론주제 : 육아수당 도입과 보육서비스 혁신
2차 토론주제 : 이용자 중심 주택정책과 주거복지 개선
3차 토론주제 : 비정규직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서민들의 입장에서 가장 시급하고 피부에 와 닿는 주제들이 다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직까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주제에 대한 참여정책연구원의 초기대안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보완이 이루어진다면 총선과 대선에서 핵심적인 공약으로 국민에게 제시되고 평가를 받게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총선 이전까지 같은 관점에서 산재해 있는 수많은 서민 이슈들을 충분히 연구하고 결과물을 생산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 노력만이 한나라당에게 더이상 정권을 넘겨주면 안 된다는 감성적 호소에 그치지 않고 합리적 대안세력으로 국민에게 당당하게 어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유시민에게 남겨진 숙제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객관적인 품평과 상관없이 유시민은 진정으로 필요한 대권행보를 차근차근 진행시켜 왔다고 나는 믿는다. 이제 그는 국민참여당의 공식적인 대표로서 또 다른 의미의 대권행보를 시작하게 된다. 나는 그가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자기만의 소통의 정치 기조를 유지하길 바라는 동시에 새로운 도전에 나서주길 바란다. 앞으로 예정되어 있는 주요 정치일정 속에서 야권의 단일대오를 강건히 할 수 있도록 나머지 야당, 시민단체, 국민들 사이에서 지혜로운 정치력을 발휘해 달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가 국민과의 소통에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수많은 이해관계와 감정적인 대립으로 얽혀 있는 야권세력들과 먼저 소통하는 지혜가 우선일지도 모른다. 조급하지 않되 상대적으로 차이가 덜한 이들부터 차근차근 힘을 합칠 수 있도록 소통능력을 발휘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 단계씩 마음을 열고 소통해 나가다 보면 그 자체가 국민들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니 말이다. 나는 이미 그가 마음자세와 의지만큼은 확고하게 갖추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남은 것은 얼마나 슬기롭고 유연하게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정치상황에 대처해 나갈 것인지 뿐이다. 오늘의 이 고민이 우리 모두의 승리를 기념하는 추억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재능세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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