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이것이 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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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최근 국가보안법 위반 혐으로 형이 확정된 남한 사노련의 일원이었던 한 활동가의 글입니다. 제가 알기론 이 동지는 사노련 내에서 강령에대한 이견--역시 "좌파는 논쟁으로 볼 일을 다 본다"는 비아냥이 벌써 들려오는군요--으로 그 조직에서 탈퇴한 소위 사노련내에서도 원칙주의 그룹에 있던 사람입니다. 물론 사노련도 해당 동지들의 형이 확정된후 '발전적 해체'를 선언한 상태입니다. 그는 현재 아랍권의 혁명열정이 과도체제의 안착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계속혁명'을 이루어야 하고 그를 위해 노동자계급 중심의 혁명정당 건설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역시도 이런 주장을 참 오랫만에 '정치 현실적'으로 접하게 됩니다. 그만큼 지난 20여년은 전세계 노동자, 피착취계급에게는 일방적 후퇴의 시기였을 것이고 당대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브르조아계급의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전 세계화'가 그 파산의 국면 또는 균열이 본격화 되었다는 의미이겠지요. 사실 중동의 상황을 바라보면서 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반혁명화 공작과 이에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각 국의 지배계급의 반혁명 내지는 유화책동은 벌써부터 그 마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랍의 혁명대중은 적어도 제 관점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행동은 혁명적이되 그 내용은 우려스러운'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리비아의 상황에서 지금의 준 내전상황이 단지 각 부족의 새로운 백가쟁명의 시대와 이에 현혹되는 민중의 휩쓸림으로 옮겨갈 가능성--서방에 리비아를 비행금지구역으로 선포할 것, 군사원조를 고민하는 모습--이 충분히 존재합니다. 그렇게 되면 석유의 주인은 옛날 주인에서 가다피만 뺀 즉, 민중의 통제권이 무시되는 상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혁명의 10일은 일상의 100년보다 큰 민중의 각성과 각종 자발적 자치주의의 본성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도 우리는 목격하지만 상황을 단지 그 '열정'의 가능성에만 맡겨두기에는 우려스러운 점이 너무 많습니다. 점차 전열을 정비해가는 제국주의와 지배계급들, 그러나 아직도 깃발이 부재한 다수의 무장한 민중들의 대치상태라고 현 상황을 본다면요. 이 글에서 이 동지는 그 대답을 혁명정당의,건설로부터 시작하자고 말합니다. 혁명은 진행되고 있는데 혁명정당을 건설하자는 의미, 즉 이 싸움의 장기성을 염두에두고 있다고 읽히기도 합니다. 회원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나눌수 있었으면 합니다. 도발적이고 극좌적일 수 있는 글을 굳이 옮긴 이유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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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폰툰님의 댓글
폰툰 작성일
지소되어야 할 혁명이 항상 중간에 차단을 당하게 되는데...
그 문제가 무엇일까요?
노동자당을 건설하고자 하지만 결국 대개는 중간에 그 노력이
와해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난 시행착오들을 근거해 볼 때 어떤 대체 방안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c급좌파님의 댓글
c급좌파 작성일
푼툰님의 글을 접하고 너무 반가웠습니다. 멋진 답변, 속이 후련한 답변 드리고 싶었지만 제게도 답이 없음을 안타갑게 생각합니다. 1917년의 혁명의 성공이후 결국 우리는 1990년대 뼈아픈 패배이후 아직도 그 패배의 기억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 사회주의'로부터 '인간적 회의주의'로 돌아섰고 또 그동안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의 깃발아래 전 세계를 호령했습니다. 회의주의 말고 이후의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어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지식인'계급이 아무리 회의로 가득찬 또는 변절의 세월을 거쳐왔더래도 '혁명'은 아니 최소한 그 기운은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지식인의 관념적 급진성 또는 역사에 대한 회의주의와는 상관없이 말이죠.
여기로부터 그야말로 사심없이, 편견없이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것의 가능성은 투쟁의 현장에서 노동자 피억압게급이 이미 열어 놓았단느것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것' 이것이 오늘 제가 드릴 수 있는 소회이군요.
폰툰님의 댓글
폰툰 작성일
회신고맙습니다. 혁명이 성공의 가도로 진입하는 순간 그 내부로부터 기득세력이 새로이
자생하게 되고 이것이 또한 부르조아 집단으로 변모/발전해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혁명은 그 작업이 계속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은 아닐까요?
c급좌파님의 댓글
c급좌파 작성일
제가 더 고맙습니다. 저의 원래 고민은 '혁명 이후'보다는 '혁명의 과정'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물론 이 둘은 동전의 양면처럼 통일되어 잇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적으로도 일련의 선상에 배치되는 문제들이니가요. 님의 말슴처럼 레닌이 러시아 혁명당시 "모든 투쟁은 국가권력의 문제이다"라고 말 하고 2월 혁명이후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훨신 이전에는 "노동운동과 과학적 사회주의의 결합"을 의식적으로 이글 전위정당(혁명정당)을 건설할 것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실지로 소련에서의 혁명직후는 내전과 전시공산주의라는 지난한 과정, 그리고 레닌의 사후 '소비에트'대신 '소련 공산당'으로 모든 권력이 집중됩니다. 그리고 그 후 60여년은 일직이 우리가 목도한 바 그대로입니다. 님의 말슴처럼 공산당의 권력과 그 기반은 소수의 엘리트들에게 독점되었고 그들은 이후 러시아화로의 반혁명 기간동안 훌륭하게 스스로를 러시아의 지배계급으로 위치지웁니다. 푸틴도 전직이 KGB 출신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비슷한 사례는 세계혁명사 곳곳에서 불행하게도 확인할 수 있지요.
문제는 '대안은 다시 사회주의다'라고 한다면--이것이 동의되지 않는다면 이 논의는 무의미할 것입니다. 물론 무슨 사회주의냐라고 한다면 그것은 약간은 다른 접근 방식으로 연구되고 답변되어야 할 것입니다--실질적으로 '인민자치'와 그것의 전국화 세계화 과정에서 '권력의 소멸'이라는 가능성을 현실화 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그것의 강령화가 고민되어야 할 겁니다. 다소 뜬금없이 얘기한다면 '결국은 권력의 문제이며 그 권력이라는 힘의 작동기제가 현실속에서는 그 존재가 필연적이라면 그것을 전체화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물론 서툴지만 아직도 저는 고민중입니다. 현실에서 매일매일 일상을 고단하게 살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