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제자리찾는 역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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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출근은 정말 힘들고 짜증나기까지 합니다. 제가 사는 곳은 '그레이터 시애틀' 이라고 불리우는 지역에 포함되어 있는 페더럴웨이라는 베드타운입니다. 이른바 '커뮤팅 타운'이라고도 불리우는 이런 소도시는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분당이나 일산 쯤의 개념이라고 할까요? 직장이 있는 시애틀 다운타운까지는 25마일(40km) 정도. 토요일 같은 때 차가 별로 없을 때엔 30분이면 출근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오늘처럼 비 오는 날엔 한 시간 걸리는 건 유도 아니죠.
출근보다 더 힘든 건 퇴근입니다.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집에 가려는 차들이 몰리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보통은 헬스클럽에 들러 운동을 하거나 혹은 인터넷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시간을 죽이거나 해서 러시아워를 피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일주일에 두 번은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이런 것도 힘든 일이 됐죠. 예전엔 바로 이런 점 때문에도 브로드웨이로 억지 발령난 것을 싫어했지만, 요즘은 그래도 그 출퇴근 시간이 조금 피곤하긴 해도 차 안에서 음악을 듣는다던지, 생각을 정리한다던지 하며 보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물론 요즘처럼 휘발유값이 거의 갤런당 3달러 50센트에 가까울 정도로 치솟을 때는 그 커뮤팅 코스트(출퇴근비용) 역시 장난 아니라 부담이 되긴 합니다만.
그런데 오늘 아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허겁지겁 집을 나섰습니다. 비올 때의 통근 상황이 어떤지를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죠. 평소보다 조금 집을 일찍 나섰는데도 불구하고 프리웨이는 거의 '개판'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신기한 건, 고속도로의 가장 맨 왼쪽을 '카풀 레인'이라 하여 꼭 두 사람 이상 탄 차만 갈 수 있게 해 놓았는데, 여기를 타려는 얌체들을 별로 못 봤다는 것입니다. 아주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 사람 이상이 탄 차만 탈 수 있게 해 놓은 차선에 쏙 끼어들어 달리는 사람. 이런 사람을 신고하라는 푯말이 붙어 있긴 합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참을성 있게 자기가 있어야 할 차선에서 그 꾸물거림을 참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긴 줄 서는 곳 어디에 가서나, 미국인들은 대략 줄을 잘 서는 편입니다. 그것은 미국인들의 어떤 여유로움 탓이기도 할 것이고, 줄 서는 경험을 통해 제대로 줄을 서지 않을 경우 겪게 되는 혼잡은 더욱 불필요한 시간의 낭비와 감정의 낭비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줄을 서는 것은 '상식'이라는 것이죠. 자기가 이용하지 못하는 차선을 이용하지 않는 것도 상식이구요. 잠시 우리나라 같았으면 어떨까를 생각해봅니다. 그런 차선이 있을 때, 별 제재 조치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말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얌체처럼 그 차선을 이용한다고 해서 나도 따라하겠다고 한다면, 아마 개나 소나 다 그 차선을 이용하려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그 차선은 유명무실하게 되겠죠. 이른바 HOV레인이라고 부르는 이 차선은 원래 이름이 '하이 오큐펀시 비히클 레인' 입니다. 사람이 많이 탄 차를 위해 만들었다는 것이죠. 즉 여러사람이 함께 탄 차량은 그만큼 에너지도 절약하고 공간도 절약하게 되니, 거기에 대한 보상을 준다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우리나라에서라면, 이런 게 통용될지 궁금합니다.
이런 작은 일들을 수시로 느끼고 경험하면서, 역시 상식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야 하는 원칙이 되는 것임을 몸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위법을 하면 그만한 댓가를 받는 것도 상식이고, 애초에 그런 위법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체화된 상식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문제는, 그런 상식의 기반이 무너져 있다는 것 아닐까요? 사회 전체가 여유가 없고 뭔가에 쫒기는 것 같은 상황에서, 상식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집니다. 오히려 상식적인 것을 지키는 이가 '바보'가 되어 버리는 상황에서는 '상식' 자체가 왜곡됩니다. 잘못된 삶의 경험들이 체화되면서 진정한 상식은 이 바뀌어 버린 상식과 자리를 뒤바꿈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현대사가 불행한 것은 그것이 당연한 상식적인 것들에 기반을 두지 않고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일제 시대에 부역한 사람들이 그대로 관리로 앉아 있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새 나라가 출발할 때는, 그 술을 새 부대에 담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리과정이 상식적으로 되지 않은 것은 우리의 현대사가 보여주는 모든 비극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역사에서 우리가 그 비상식적인 것들을 바로잡을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4.19 가 그랬고, 6월 항쟁이 그랬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인해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라는 것의 체화를 통해 과거의 비상식적인 것들을 조금씩 뛰어넘을 기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건국 이후부터 우리의 삶을 지배해 온 몰상식은 상식의 제자리잡기를 끊임없이 집요하게방해해 왔고, 그 결과 우리는 지금 '전과 14범'이 대통령이 된 비상식적인 사회에서 열거하기조차 버거운 몰상식의 잔치들을 매일같이 접해야 합니다.
총선과 대선이 다가옵니다. 모든 사회를 흐려놓는 그 흙탕물의 근원은 체화된 몰상식들입니다. 하루아침에 그런 것들을 바로잡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급진적으로 바로잡으려다가 역풍을 맞은 일들도 봤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것은 역사의 이름으로, 상식의 이름으로 바로잡아야 될 것들입니다. 비록 몸은 여기 있어서 한국 사회를 가까이에서 나무 하나하나는 못 들여다보지만, 멀리서 불구경하듯 바라봐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 숲의 모양은 보입니다. 그 온갖 탁류들과 몰상식의 흐름을 바로잡는 작업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해 내야 하는 것도 역시 우리의 몫인 듯 합니다. 세계가 중동에서부터 시작된 민주화의 열기로 들끓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삶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격류의 흐름은 지금까지 자기들이 살아왔던 몰상식적인 삶을 정말 사람이니까 사람답게 살겠다는, 상식적인 틀로 자기들의 세상을 바꾸겠다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과연 우리의 삶은 상식적입니까? 그리고 그런 자각 속에서, 우리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그나마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선택의 권리들을,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행사해야 될 것인가는 보다 뚜렷한 그림으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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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제이엘님의 댓글
제이엘 작성일좀 안된얘기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이번 기회에 유권자들이 좀더 최악을 경험했으면 합니다. 몰상식과 비상식이 판을 치는 사회에서 잘못된 선택이 가져올수있는 현상들을 자각하고 반면교사로 삼아 다음의 총선과 대선에선 또다시 같은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폰툰님의 댓글
폰툰 작성일
상식이 상식으로 굳어지기 위해서는 공정하다고 인정되는 강제적 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상식이란 어찌보면 모듬사회가 오랜기간 만들어낸 일종의 강제적 규율의 일종일 것입니다.
미국사람들도 상황이 여의치않으면 새치기/끼여들기 등 위반을 많이 합니다.
중국/한국인들과 별다를 바가 없다는 뜻입니다.
다만 그러한 비상식적 행위에 대하여 법율에 정한 바대로 그 댓가가 누가봐도 공정히 지불되게
조치된다는 점에서 한국 등과 많이 다르다 하겠습니다.
한국도 위법사항에 대하여 법이 공정한 잣대를 누구에게나 오랜기간 온전히 들이댄다면
제대로 된 사회적 상식이 바르게 자리잡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의 현대사가 그렇지 못해왔기 때문에 지금도 말이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 봅니다.
결국 이런 상식이 제대로 자리잡게 하기위해서도...제대로된 정권을 올바르게 선택해야
한다는 님의 말씀이 100프로 온당한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