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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1' 대 '264' : 수감번호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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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돼지
댓글 0건 조회 6,271회 작성일 11-03-28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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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나면서부터 여러 종류의 번호를 갖고 살아간다. 예를 들어 주민등록번호가 그렇다. 컴퓨터가 배번한 이 번호는 평생을 주인과 함께 하다, 주인의 임종을 지키고 함께 사라진다. 그 외에 은행통장번호도 있다. 통장번호는 경제생활의 실로 필수 불가결한 기초다. 아마 신분증보다 더 중요하리라 싶다. 그리고 또 수많은 비밀번호도 있다. 이제는 도무지 외울수 조차 없이 많아져 버린 온갖 종류 비밀번호 때문에 겪는 고초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보통사람들이 평생 참 갖기 어려운 번호도 있다. 바로 수인번호다. 과거 80년대처럼 집단구속사태가 빈번하던 시절에야, 주변에 드물지 않았던 게 수인번호였다. 민주화운동이 만들어 낸 현상이었다. 하지만 민주화이후 우리 사회에 지금도 정치적 사건으로 구속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어디 80년대와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신정아가 <4001>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자신의 수인번호을 따서 제목이 <4001>이 되었다고 한다. 출판 기자회견을 하는 날, 이 나라의 모든 언론이 신정아의 말과 책 내용을 받아 적기 하는 걸 보니, 과연 신정아 쓰나미 아닌 가 싶기도 했다. 안 읽어 봐서 모르겠지만 단편적으로 보도된 것만을 보니, 책의 주제는 단 한마디 ‘불륜’ 이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미 전 정부시절 정책실장과의 잘 알려진 ‘러브 스토리’를 넘어, 이 번 정부의 직전 총리를 지낸 분과의 여러 신변잡기는 우리 정치판에도 충격을 미치고 있다. 이 분을 영입해 4.27 보선을 치루고자 했던 여당의 계획에 결정적 차질이 초래된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국회에 들어가 있는 C신문사의 모 기자와의 스토리 역시 그 날 이후 지금까지 우리 식탁에 빠지지 않는 반찬이 되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모든 것에 불쾌감을 표시한다. 하지만 통계를 내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아마 그 보다 더 많은 수는 집단관음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우리네 ‘바람난 공화국’은 도무지 바람 잘 날이 없다.

하지만 바로 같은 날, <자본주의 연구회>라는 청년학생들 연구모임을 이끄는 세 사람이 무슨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고, 항의 방문갔었던 학생들 51명 모두가 연행되었다. 다행히 그 중 두 사람은 다음 날 석방되었고, 연행되었던 학생들도 1명을 제외하곤 석방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두고 봐야 겠지만, 이 사건으로 새로운 수인번호가 만들어 질 것임이 자명하다.

하지만 내가 신정아의 수인번호 ‘4001’을 보고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착잡해 지는 것은 다른 우연 때문이다. 바로 시인이자 혁명가인 이육사선생 때문이다. 선생의 필명 이육사는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의열단 단원이었던 선생이 실형을 살 때 수인번호 ‘264’에서 따 온 것이다. 선생의 경우, 자신의 수인번호를 필명으로 삼았다는 것은 옥중 경험을 독립운동의 투쟁에너지로 승화시키겠다는 바로 그 단단한 결기를 나타낸다고 보면 되겠다.

신정아의 수인번호 ‘4001’이 노이즈마케팅과 상업주의의 결산이라면, 이육사의 수인번호 ‘264’는 독립을 향한 고난의 행군을 웅변한다. 그렇게 ‘4001’이 바람난 공화국의 비밀번호라면, ‘264’는 민족해방운동의 자랑스러운 코드명이다.


2011/03/25                    이혜영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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