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는 전혀 빨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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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지향은 민주적 시장경제
내가 DJ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약 45여년 전 중학교 3학년 때부터이니 꽤나 어릴 적부터이다.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어렵게 학교를 다니던 터라 그의 연설 내용 중 경제에 대한 것이 유달리 가슴에 와 닿았다. 빈부격차 문제를 직시하고 가난한 서민을 걱정하는 그의 라디오연설을 들으면서 우리 사회에 대한 그의 예리한 정치적 소견을 발견하고 존경하게 된 것이다. 나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빈부격차와 그 원인, 그리고 해결책에 대해 나름 고민해 왔다. 그래서 과연 그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어떤 구체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겠지만 아직 학창시절인 어린 나이에 이런 생각을 혼자서 구체적으로 지속하기란 무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성장해 가면서 계속 그를 주의깊게 관찰해 왔고 일부 국민, 역대 정권 및 언론의 그에 대한 양극화된 평가도 귀가 따갑게 듣고 보아왔다. DJ에 대한 역대 군사정권의 야만적일 정도의 정치적 폭압은 그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지게 만들었다. 아마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창생활을 경험한 젊은이라면 대부분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에 대해서 막연하나마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서 지척에 있는 북한 공산주의 사회상에 대한 궁금증도 더해졌다. 조국 한반도의 반을 차지하고 우리의 핏줄 북한동포들이 살고 있기에 그랬다. 역대 군사정권, 극우보수적 정파 및 언론들은 DJ의 민주적 경제정치사상을 빌미로 그를 친공산주의자 내지 사회주의자로 내몰아 소위 빨갱이라는 덧칠을 하곤 했었다. 우리의 생각이 그만큼 짧았고 정치적 파당성에 함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학교교육을 통해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라는 것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맹점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양 체제의 처절한 경쟁에서 두 체제 모두 인간의 삶의 본질과 그 보편적 가치를 외면하는 것이라 결론지었다. 때문에 나는 그의 경제통치철학이 더욱 궁금해졌다. 대학시절부터 경제체제에 대한 나의 관심과 고민은 보다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내가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부터는 미국의 자본주의사회가 우리와 얼마만큼 다르고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관찰해 보고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우리의 체제가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고 미국을 답습하고 있어서 두 나라의 사회를 비교해 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단적으로 말하건대 미국의 경제체제는 그들의 주장만큼 민주적이지 못하고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에나 걸맞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한국의 자본주의체제는 그 여건 면에서 미국보다 훨씬 열악하고 내용 면에서도 미국의 것보다 더욱 퇴보적이고 비민주적으로 보인다.
내가 DJ에 대해 이 글을 쓰게 된 욕구가 생긴 것은 과연 그는 자본주의를 멀리하는 친공산주의자 내지 사회주의자였느냐 이다. 과연 그는 빨갛게 덧칠되어야 할 정치지도자인가이다. 어린 나이였을 때의 나는 차라리 그가 그러한 사상과 철학을 가진 이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되기를 기대했다. 그래야 나처럼 고통 받는 학생들이 구제받을 수 있다는 철없는 일말의 희망에서이다. 그러한 기대에서 나의 관심은 지속되었고 보수정권, 보수언론 및 보수정당들의 그에 대한 비판은 차라리 나에겐 희망이었다. 나는 그가 속히 대통령이 되어 이 나라를 확실하게 좌향으로 통치하기를 기대했다.
나 또한 호남출신이지만 나의 그에 대한 관심과 지지는 전혀 지역감정하고는 무관하다. 그의 경제적 통치철학만이 나의 관심사였고 그의 거시적 심오한 사고력과 통찰력 또한 그에 대한 존경에 일조하였지만 그의 경제철학이 나의 핵심적 관심사항이었다. 그의 대통령당선과 더불어 정말로 이 나라가 공산주의는 아니라도 적어도 사회주의국가로 가는 출발점이 되어 주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적어도 부모가 가난해서 학교를 못 다니고 납부금을 못내 교무실에 불려가고 벌을 서는 수모는 겪지 않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바랬다.
그의 반대편에 있는 보수정당을 욕하고 보수정권의 수장인 대통령들을 비판하고 부자, 재벌을 거느리는 총수들을 혐오하고 불로소득으로 호의호식하는 그의 자식들을 질시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불공평한 사회가 하루 속히 바뀌기를 고대하면서 살았다. 나의 어려운 경제생활은 계속되었고 그러한 와중에서 나도 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사회진출을 하게 되었지만 도무지 대학을 졸업한 것 같지 않은 기분은 그만큼 대학을 알차게 못 다녔고 하고 싶은 공부를 제대로 못한 한이 작용했을 것이다. 사회인이 되면서 나의 문제의식은 이제 내 개인의 차원을 떠나 우리 국민과 인류라는 거시적 차원으로 확대되어 세계적 현상을 관찰하고 특정 국가, 특정 종교가 추구하는 사회구조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그 대안사회를 꿈꾸게 하였다.
그를 비토하고 빨갱이로 몰아가는 사람들의 말대로 과연 그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일까를 구체적으로 자문해보기는 내가 사회인이 되고 나서 나도 제법 경제철학 내지 체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많이 다듬어 가면서부터이다. 과연 그가 집권하면 그의 비판자들이 헐뜯듯 그는 우리 사회를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로 변질시켜 갈 것인가? 과연 그는 북한과 내통하고 우리 사회는 북한같이 될 것인가 등 그를 향한 의아심을 순진하리만큼 자문하곤 했다. 나의 역사관 및 시대관의 성숙과 더불어 그에 대한 철없던 어린 시절의 기대감도 변화했다. 이제 북한 공산주의와 내통할 것이라는 그의 비판자들이 덧칠해 놓은 좌빨이라는 평판에서 벗어나길 바랬다. 적어도 온건한 사회주의자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의 정치적 비판자들로부터 그를 보호하고 싶었다. 어떤 이유로든 그가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서는 절대로 안되고 그의 경제통치철학이 이 사회에 접목되기를 간절히 소망해서이다.
정말 그의 비판자들의 우려대로 그런 사회가 올 것인가를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그러한 걱정은 기우였다. 그가 집권하여 통치를 하는 동안 나는 이미 조국을 떠나 미국에 거주하고 있을 때이다. 그래서 그의 통치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에 구체적 언급은 자제하고 싶다 해도 그의 통치결과에 따른 거시적 통계자료와 사회상을 두고 할 말이 많다. 그의 통치기간 동안 전혀 사회주의다운 근본적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한 제도변화가 없어서 유감이다. 그토록 반대파들에 의해 집요하게 빨간 덧칠을 당했던 그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오히려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경악케 한다. 이런 DJ가 과연 빨간 지도자인가, 이런 정치인이 과연 좌파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의 통치기간 그의 경제개혁정책이 IMF사태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하려 한다. 그렇다. 이해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를 빨갛게 볼 만한 제도적 변화의 시도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그는 정말로 건실한 시장주의자가 아닐까? 민주적 자본주의자이다.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지 않는 자본주의신봉자가 아니고는 그러한 통치결과가 나올 수 없다. 나는 경제학자도 아니요 경제전문가도 아니다. 때문에 어떤 통계나 구체적 경제용어를 동원해 가면서 이 글을 쓰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제체제 내지 제도 상의 흐름 및 경제사회분위기를 관찰하고 이를 비판할 수는 있다. 오랫동안 그러한 흐름, 거시적 분위기를 고찰하는 데 관심을 가져 왔기 때문이다.
그를 빨갛게 덧칠하려는 한국의 수구보수세력의 주장은 이제 새빨간 거짓으로 판명 났다. 장기적으로 볼 때 그는 우리 역사의 보기 드문 민주주의 지도자로 우뚝 설 것이다. 특히 최초의 경제적 민주주의 통치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비록 보다 미래지향적인 과감한 경제개혁조치를 하지는 못했다 해도 그 효시를 이뤘다는 점에서 그 어떤 통치자보다 존경 받아야 한다. 군사독재를 벗어난 정도의 정치혁명은 '87년 6월 혁명으로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해도 민주경제혁명은 아직 요원하다. 우리는 그의 경제철학을 받들어 경제민주화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 경제혁명을 이루는 것이다. 경제혁명 다음은 문화혁명이다. 경제민주화 없이는 우리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진정한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 특히 자본주의사회에서의 경제력은 중대한 권력이다. 고로 경제민주화는 우리 사회에서 모든 민주화의 근간이다.
이제 우리는 그 같은 양심적 민주 지도자들을 빨갛게 덧칠하는 우를 더 이상 저지르지 말자. 자본주의가 아니면 공산주의라는 무식함을 되풀이 하지 말자. 적어도 사회주의에 대한 고정관념은 어느 정도 궤도 수정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잘못된 시각을 통해 보아야 할 진실을 놓치는, 훌륭한 지도자들이 버림받는 실수를 다시는 하지 말자. 그러나 지금도 우리는 그런 우매한 실수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여러 가지 복지정책을 놓고 사회주의정책 운운한다니 한심하지 않은가? 그것이 보다 민주적이라면, 우리의 자본주의의 맹점을 시정하는 것이라면 설사 사회주의적 요소가 다소 가미된들 어떤가? 못사는 내 이웃 내 형제, 못살지도 모른 장래의 나를, 후손을 위한 정책이요 제도의 변화가 아닌가. 더불어 잘 살아보자는 주장을 좌파라 적대시하는 우를 언제까지 되풀이 할 것인가? 미국의 전신이요 미국인의 뿌리인 유럽, 특히 북유럽을 향해 그들의 체제에 사회주의적 요소가 많다고 해서 그들을 빨갱이국가라 할 것인가? 아니다, 진실을 진실로 추구할 수 있을 때 우리에게 진실은 바로 보일 것이다. 우리 인간이 서로를 진실로 사랑하려 할 때 진정한 민주주의 정신 또한 발현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했다 하여 그를 친북공산주의자라 할 것인가? 6.15남북정상회담은 사상이나 체제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남북평화공존 및 평화통일을 위한 원초적 기반을 다지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남북간 첫 정상회담을 하고 있을 때 과연 어떤 회담결과가 나올지 조마조마했다. 그가 김정일 위원장과 단 둘이 승용차를 타고 평양시내로 가고 있다는 중계방송을 들으면서도 걱정했다. 그가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힐 만한 내용이 나올까 봐 노심초사했다. 그를 정말로 빨간 정치인, 대통령으로 덧칠한 그의 비토세력에게 정당성을 부여할 빌미를 제공할까 두려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세계의 역사적 보편적 가치기준에 의한 노벨 평화상을 받을 정도의 대업을 우리 민족을 위해서 해냈다. 그의 정상회담을 두고도 그를 빨갛다고 비판하는 세력들이 있지만 공동선언 어느 조항에서도 그를 빨갛게 볼 만한 내용은 없어 보인다.
경제철학 및 제도적 경제정책을 통해 볼 때 그의 통치는 나의 기대에 못 미쳤다. 그는 자본주의를 민주적으로 개선해 보려는 건실한 자본주의신봉자임에 틀림없다. 전혀 빨간 기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우리는 그가 재임 중 다하지 못한 유업을 발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그의 통치철학을 더욱 깊이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미국식 자본주의 맹점을 인식하고 그간 군사정권과 보수정권들이 무분별하게 만들어 놓은 경제제도를 보완하고 그러한 정책과 제도의 음지에서 신음해온 어려운 서민들을 위한 정책개발에 정성을 쏟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치적 거인이었지만 정말로 착한 한 마리 양이었다. 나는 그러한 모습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그의 슬픔에서 발견했다. 노무현의 국장에서 권양숙 여사의 손을 붙들고 통곡하는 모습에서 발견했다. 어떻게 저토록 연로한 대정치인이 저렇게 서럽게 통곡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부모형제도 아닌 정치적 후배인 노무현의 죽음 앞에서 90 가까운 노구의 눈에서 그토록 서러운 눈물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을까? 그의 양심적 천성만이 이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그의 진솔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진솔함과 양심이 뒷받침되지 않고 그런 진솔한 통곡은 불가능하다. 왜 이를 강조하느냐 하면 그의 통치철학에도 빨갛지 않은 민주적 경제철학이 진솔하게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의 평소 주장이, 그의 애국심이, 그의 애민 애족심이, 그의 통일철학이, 그의 경제철학이 절대 허구가 아니라 진솔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한 가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 이는 DJ에게만의 서운함은 아니고 북의 김정일 위원장에게도 같은 책임이 있지만 - 정상회담 이전에 돈이 오가지 않고 회담 후에 오갔더라면 하는 바램이다. 먼 훗날 특히 통일이 이뤄지는 경우는 역사가들도 더욱 긍정적 평가를 하리라 확신하지만 후자였더라면 더욱 떳떳하고 좋았을 거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금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합리적 명분을 위해 남북간에 오갔다는 사실자체는 전혀 문제시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시점이 아쉽다는 것이다.
그를 재발견하고 그를 진실로 우리의 존경 받는 정치인 내지 최고통치자로 우리 역사에 기록하는 일은 우리의 책무이다. 이제 그에 대한 빨간 낙인을 철저히 거두어 버려야 할 때이다. 밖에서 존경 받는 우리의 지도자가 정작 그 국민으로부터는 홀대를 받는 그런 웃지 못할 광경을 역사에 기록하지 말자. 이제 그는 절대로 사상적으로 빨갛지 않은 우리의 대통령이었지 않은가? 그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에게 빨간 덧칠을 한 그의 반대파들은 자성해야 한다. 경제적 민주주의, 보편적 복지를 부르짖는 사람을 가리켜 빨갛다고 비아냥거리면 차라리 자신은 좌빨이라 불려도 좋다는 어느 중소기업인의 말을 새겨 들어야 한다. 시장주의에 근간을 둔 경제적 민주주의를 가리켜 사회주의니 공산주의라 혼돈하는 시대착오적 무식을 노정하지 말자. 그를 진정한 우리 민족의 지도자로 재발견하고 그의 통치철학을 바로 평가할 수 있을 때 우리가 저지른 사상의 혼돈은 극복될 것이고 진정한 민주주의는 우리의 눈앞에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 필자 Jung Kwang C.는 소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외국어대)을 수료하고 민간기업에서 일하다가 1992년 도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흥사단 및 6.15남북공동선언실천위원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미래지향적이며 민주적인 경제체제에 대해 오랜 기간 고민하고 사유해왔다. 조국의 진정한 경제민주주의 및 민주평화통일에 기여하는 것이 꿈이다.
2011-04-08 오전 7:56:05 Jung Kwang C. 재미동포 프레시안
내가 DJ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약 45여년 전 중학교 3학년 때부터이니 꽤나 어릴 적부터이다. 가뜩이나 경제적으로 어렵게 학교를 다니던 터라 그의 연설 내용 중 경제에 대한 것이 유달리 가슴에 와 닿았다. 빈부격차 문제를 직시하고 가난한 서민을 걱정하는 그의 라디오연설을 들으면서 우리 사회에 대한 그의 예리한 정치적 소견을 발견하고 존경하게 된 것이다. 나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빈부격차와 그 원인, 그리고 해결책에 대해 나름 고민해 왔다. 그래서 과연 그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어떤 구체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겠지만 아직 학창시절인 어린 나이에 이런 생각을 혼자서 구체적으로 지속하기란 무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성장해 가면서 계속 그를 주의깊게 관찰해 왔고 일부 국민, 역대 정권 및 언론의 그에 대한 양극화된 평가도 귀가 따갑게 듣고 보아왔다. DJ에 대한 역대 군사정권의 야만적일 정도의 정치적 폭압은 그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지게 만들었다. 아마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창생활을 경험한 젊은이라면 대부분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에 대해서 막연하나마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나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서 지척에 있는 북한 공산주의 사회상에 대한 궁금증도 더해졌다. 조국 한반도의 반을 차지하고 우리의 핏줄 북한동포들이 살고 있기에 그랬다. 역대 군사정권, 극우보수적 정파 및 언론들은 DJ의 민주적 경제정치사상을 빌미로 그를 친공산주의자 내지 사회주의자로 내몰아 소위 빨갱이라는 덧칠을 하곤 했었다. 우리의 생각이 그만큼 짧았고 정치적 파당성에 함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학교교육을 통해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라는 것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맹점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양 체제의 처절한 경쟁에서 두 체제 모두 인간의 삶의 본질과 그 보편적 가치를 외면하는 것이라 결론지었다. 때문에 나는 그의 경제통치철학이 더욱 궁금해졌다. 대학시절부터 경제체제에 대한 나의 관심과 고민은 보다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내가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부터는 미국의 자본주의사회가 우리와 얼마만큼 다르고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관찰해 보고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우리의 체제가 미국에 뿌리를 두고 있고 미국을 답습하고 있어서 두 나라의 사회를 비교해 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단적으로 말하건대 미국의 경제체제는 그들의 주장만큼 민주적이지 못하고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에나 걸맞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한국의 자본주의체제는 그 여건 면에서 미국보다 훨씬 열악하고 내용 면에서도 미국의 것보다 더욱 퇴보적이고 비민주적으로 보인다.
ⓒ연합 |
나 또한 호남출신이지만 나의 그에 대한 관심과 지지는 전혀 지역감정하고는 무관하다. 그의 경제적 통치철학만이 나의 관심사였고 그의 거시적 심오한 사고력과 통찰력 또한 그에 대한 존경에 일조하였지만 그의 경제철학이 나의 핵심적 관심사항이었다. 그의 대통령당선과 더불어 정말로 이 나라가 공산주의는 아니라도 적어도 사회주의국가로 가는 출발점이 되어 주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적어도 부모가 가난해서 학교를 못 다니고 납부금을 못내 교무실에 불려가고 벌을 서는 수모는 겪지 않으면서 공부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바랬다.
그의 반대편에 있는 보수정당을 욕하고 보수정권의 수장인 대통령들을 비판하고 부자, 재벌을 거느리는 총수들을 혐오하고 불로소득으로 호의호식하는 그의 자식들을 질시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불공평한 사회가 하루 속히 바뀌기를 고대하면서 살았다. 나의 어려운 경제생활은 계속되었고 그러한 와중에서 나도 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사회진출을 하게 되었지만 도무지 대학을 졸업한 것 같지 않은 기분은 그만큼 대학을 알차게 못 다녔고 하고 싶은 공부를 제대로 못한 한이 작용했을 것이다. 사회인이 되면서 나의 문제의식은 이제 내 개인의 차원을 떠나 우리 국민과 인류라는 거시적 차원으로 확대되어 세계적 현상을 관찰하고 특정 국가, 특정 종교가 추구하는 사회구조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그 대안사회를 꿈꾸게 하였다.
그를 비토하고 빨갱이로 몰아가는 사람들의 말대로 과연 그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일까를 구체적으로 자문해보기는 내가 사회인이 되고 나서 나도 제법 경제철학 내지 체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많이 다듬어 가면서부터이다. 과연 그가 집권하면 그의 비판자들이 헐뜯듯 그는 우리 사회를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로 변질시켜 갈 것인가? 과연 그는 북한과 내통하고 우리 사회는 북한같이 될 것인가 등 그를 향한 의아심을 순진하리만큼 자문하곤 했다. 나의 역사관 및 시대관의 성숙과 더불어 그에 대한 철없던 어린 시절의 기대감도 변화했다. 이제 북한 공산주의와 내통할 것이라는 그의 비판자들이 덧칠해 놓은 좌빨이라는 평판에서 벗어나길 바랬다. 적어도 온건한 사회주의자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의 정치적 비판자들로부터 그를 보호하고 싶었다. 어떤 이유로든 그가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서는 절대로 안되고 그의 경제통치철학이 이 사회에 접목되기를 간절히 소망해서이다.
정말 그의 비판자들의 우려대로 그런 사회가 올 것인가를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그러한 걱정은 기우였다. 그가 집권하여 통치를 하는 동안 나는 이미 조국을 떠나 미국에 거주하고 있을 때이다. 그래서 그의 통치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에 구체적 언급은 자제하고 싶다 해도 그의 통치결과에 따른 거시적 통계자료와 사회상을 두고 할 말이 많다. 그의 통치기간 동안 전혀 사회주의다운 근본적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한 제도변화가 없어서 유감이다. 그토록 반대파들에 의해 집요하게 빨간 덧칠을 당했던 그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오히려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경악케 한다. 이런 DJ가 과연 빨간 지도자인가, 이런 정치인이 과연 좌파인가.
많은 사람들이 그의 통치기간 그의 경제개혁정책이 IMF사태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하려 한다. 그렇다. 이해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를 빨갛게 볼 만한 제도적 변화의 시도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그는 정말로 건실한 시장주의자가 아닐까? 민주적 자본주의자이다.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지 않는 자본주의신봉자가 아니고는 그러한 통치결과가 나올 수 없다. 나는 경제학자도 아니요 경제전문가도 아니다. 때문에 어떤 통계나 구체적 경제용어를 동원해 가면서 이 글을 쓰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제체제 내지 제도 상의 흐름 및 경제사회분위기를 관찰하고 이를 비판할 수는 있다. 오랫동안 그러한 흐름, 거시적 분위기를 고찰하는 데 관심을 가져 왔기 때문이다.
그를 빨갛게 덧칠하려는 한국의 수구보수세력의 주장은 이제 새빨간 거짓으로 판명 났다. 장기적으로 볼 때 그는 우리 역사의 보기 드문 민주주의 지도자로 우뚝 설 것이다. 특히 최초의 경제적 민주주의 통치자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비록 보다 미래지향적인 과감한 경제개혁조치를 하지는 못했다 해도 그 효시를 이뤘다는 점에서 그 어떤 통치자보다 존경 받아야 한다. 군사독재를 벗어난 정도의 정치혁명은 '87년 6월 혁명으로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해도 민주경제혁명은 아직 요원하다. 우리는 그의 경제철학을 받들어 경제민주화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 경제혁명을 이루는 것이다. 경제혁명 다음은 문화혁명이다. 경제민주화 없이는 우리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진정한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 특히 자본주의사회에서의 경제력은 중대한 권력이다. 고로 경제민주화는 우리 사회에서 모든 민주화의 근간이다.
이제 우리는 그 같은 양심적 민주 지도자들을 빨갛게 덧칠하는 우를 더 이상 저지르지 말자. 자본주의가 아니면 공산주의라는 무식함을 되풀이 하지 말자. 적어도 사회주의에 대한 고정관념은 어느 정도 궤도 수정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잘못된 시각을 통해 보아야 할 진실을 놓치는, 훌륭한 지도자들이 버림받는 실수를 다시는 하지 말자. 그러나 지금도 우리는 그런 우매한 실수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여러 가지 복지정책을 놓고 사회주의정책 운운한다니 한심하지 않은가? 그것이 보다 민주적이라면, 우리의 자본주의의 맹점을 시정하는 것이라면 설사 사회주의적 요소가 다소 가미된들 어떤가? 못사는 내 이웃 내 형제, 못살지도 모른 장래의 나를, 후손을 위한 정책이요 제도의 변화가 아닌가. 더불어 잘 살아보자는 주장을 좌파라 적대시하는 우를 언제까지 되풀이 할 것인가? 미국의 전신이요 미국인의 뿌리인 유럽, 특히 북유럽을 향해 그들의 체제에 사회주의적 요소가 많다고 해서 그들을 빨갱이국가라 할 것인가? 아니다, 진실을 진실로 추구할 수 있을 때 우리에게 진실은 바로 보일 것이다. 우리 인간이 서로를 진실로 사랑하려 할 때 진정한 민주주의 정신 또한 발현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했다 하여 그를 친북공산주의자라 할 것인가? 6.15남북정상회담은 사상이나 체제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다. 남북평화공존 및 평화통일을 위한 원초적 기반을 다지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남북간 첫 정상회담을 하고 있을 때 과연 어떤 회담결과가 나올지 조마조마했다. 그가 김정일 위원장과 단 둘이 승용차를 타고 평양시내로 가고 있다는 중계방송을 들으면서도 걱정했다. 그가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힐 만한 내용이 나올까 봐 노심초사했다. 그를 정말로 빨간 정치인, 대통령으로 덧칠한 그의 비토세력에게 정당성을 부여할 빌미를 제공할까 두려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세계의 역사적 보편적 가치기준에 의한 노벨 평화상을 받을 정도의 대업을 우리 민족을 위해서 해냈다. 그의 정상회담을 두고도 그를 빨갛다고 비판하는 세력들이 있지만 공동선언 어느 조항에서도 그를 빨갛게 볼 만한 내용은 없어 보인다.
경제철학 및 제도적 경제정책을 통해 볼 때 그의 통치는 나의 기대에 못 미쳤다. 그는 자본주의를 민주적으로 개선해 보려는 건실한 자본주의신봉자임에 틀림없다. 전혀 빨간 기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우리는 그가 재임 중 다하지 못한 유업을 발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그의 통치철학을 더욱 깊이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미국식 자본주의 맹점을 인식하고 그간 군사정권과 보수정권들이 무분별하게 만들어 놓은 경제제도를 보완하고 그러한 정책과 제도의 음지에서 신음해온 어려운 서민들을 위한 정책개발에 정성을 쏟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치적 거인이었지만 정말로 착한 한 마리 양이었다. 나는 그러한 모습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그의 슬픔에서 발견했다. 노무현의 국장에서 권양숙 여사의 손을 붙들고 통곡하는 모습에서 발견했다. 어떻게 저토록 연로한 대정치인이 저렇게 서럽게 통곡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부모형제도 아닌 정치적 후배인 노무현의 죽음 앞에서 90 가까운 노구의 눈에서 그토록 서러운 눈물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을까? 그의 양심적 천성만이 이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그의 진솔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진솔함과 양심이 뒷받침되지 않고 그런 진솔한 통곡은 불가능하다. 왜 이를 강조하느냐 하면 그의 통치철학에도 빨갛지 않은 민주적 경제철학이 진솔하게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의 평소 주장이, 그의 애국심이, 그의 애민 애족심이, 그의 통일철학이, 그의 경제철학이 절대 허구가 아니라 진솔 그 자체였다는 것이다.
한 가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 이는 DJ에게만의 서운함은 아니고 북의 김정일 위원장에게도 같은 책임이 있지만 - 정상회담 이전에 돈이 오가지 않고 회담 후에 오갔더라면 하는 바램이다. 먼 훗날 특히 통일이 이뤄지는 경우는 역사가들도 더욱 긍정적 평가를 하리라 확신하지만 후자였더라면 더욱 떳떳하고 좋았을 거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금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합리적 명분을 위해 남북간에 오갔다는 사실자체는 전혀 문제시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시점이 아쉽다는 것이다.
그를 재발견하고 그를 진실로 우리의 존경 받는 정치인 내지 최고통치자로 우리 역사에 기록하는 일은 우리의 책무이다. 이제 그에 대한 빨간 낙인을 철저히 거두어 버려야 할 때이다. 밖에서 존경 받는 우리의 지도자가 정작 그 국민으로부터는 홀대를 받는 그런 웃지 못할 광경을 역사에 기록하지 말자. 이제 그는 절대로 사상적으로 빨갛지 않은 우리의 대통령이었지 않은가? 그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에게 빨간 덧칠을 한 그의 반대파들은 자성해야 한다. 경제적 민주주의, 보편적 복지를 부르짖는 사람을 가리켜 빨갛다고 비아냥거리면 차라리 자신은 좌빨이라 불려도 좋다는 어느 중소기업인의 말을 새겨 들어야 한다. 시장주의에 근간을 둔 경제적 민주주의를 가리켜 사회주의니 공산주의라 혼돈하는 시대착오적 무식을 노정하지 말자. 그를 진정한 우리 민족의 지도자로 재발견하고 그의 통치철학을 바로 평가할 수 있을 때 우리가 저지른 사상의 혼돈은 극복될 것이고 진정한 민주주의는 우리의 눈앞에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 필자 Jung Kwang C.는 소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외국어대)을 수료하고 민간기업에서 일하다가 1992년 도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흥사단 및 6.15남북공동선언실천위원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미래지향적이며 민주적인 경제체제에 대해 오랜 기간 고민하고 사유해왔다. 조국의 진정한 경제민주주의 및 민주평화통일에 기여하는 것이 꿈이다.
2011-04-08 오전 7:56:05 Jung Kwang C. 재미동포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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