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이란 이름의 "5월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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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홀연히 떠나간지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세상을 떠나가면서 슬퍼하지 마라,미안해하지 마라,원망하지 마라 그리고 정치하지 마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그러나 미친 꿈을 간직한 채 황량한 벌판을 홀로 내달리다 쓸쓸하게 죽어간 어느 한 정치인의 짙은 그림자는 이 순간 세상의 품속에서 한없이 넓기만 하다.
생전의 그는 겁많은 사람이었다. 대통령이 되기전 가장 많이 사용했던 단어도 무서움과 외로움이란 단어였다. 그 무서움을 이기지 못해 끊임없이 정치를 그만두려 했다.
그렇기에 거침없이 몸을 던질수 있었다. 지역주의에 몸을 던지고 거물정치인에 몸을 던졌다. 모두가 몸을 사리던 언론과 사법권력에도 기꺼이 몸을 던졌다. 이후 그런 거침없는 모습이 국민에게 참신한 용기로 비춰졌고 그를 정치에서 멀어지지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족쇄가 노무현을 죽음의 길로 이끌었다. 자신은 몸을 던져 맞서지 못하면서 그렇게 하는 타인에게는 뒤켠에서 환호를 보내는 유약함. 정작 자신이 궁지에 내몬 사람이 피투성이가 될때 도와주려 들지 않는 비겁함. 그리고 그렇게 쉽게 떠나보낸 후엔 다시 새로운 제물을 찾으려 드는 어리석음.
한마리의 사자를 앞에 두고 혼비백산해 도망치는 누우떼같은 국민에게 부엉이바위 아래 솔숲으로 몸을 던지면서 과연 무슨 말을 남길수 있었겠는가. 애초 정작 가장 두려움 많은것은 자신이었는데 말이다.
과연 겁많은것은 국민뿐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정동영은 미국으로 도망쳤고 손학규는 춘천으로 도망쳤다 돌아왔다. 이해찬 문재인은 아예 정계에서 도망쳤고 한명숙은 등떠밀려 선거에 나갔다가 후회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식인들은 공포 정치 앞에서 오직 레임덕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지난 3년 반을 꿀먹은 벙어리로 지내왔다.
물가에 널부러져 있는 동료의 시체,고작 한마리사자가 늙어죽거나 떠나가주기만을 바라는 수만마리의 덩치큰 누우떼. 자신이 용기를 내 물가로 다가갈 용기가 없어 동료를 등떠미는 서글픈 광경. 그동료가 사자의 밥이 되었을때 배가 불러 한동안 자신을 건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차리며 느끼는 황홀한 안도감. 그한심한 안도감속에서 죽어가는 누우떼 뒤편의 힘없는 늙은 누우,임신한 누우,어린누우들.
그렇게 지내다 이제 사자의 힘이 약화될 기미를 보이자 서로의 뿔을 내보이며 물가를 먼저 차지하기 위한 추악한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자신이 떠밀어 죽인 죽은누우를 위선적으로 추모해가면서 말이다.
"가끔 황량한 벌판에 홀로 외롭게 버려져 있는 느낌이 들때가 있다. 내가 얼마나
무섭고 냉혹한 세계에 몸담고 있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그런 순간들"-하로동선中
갈 날이 다가오면 누구나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한 후회가 커진다. 노무현 역시도 후회를 많이 하는 인간군상의 한계를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복지비 그냥 올해까지 30%, 내년까지 40% 올려, 그냥 (색연필 들고) 쫙 그어버렸어여 하는데...그냥 앉아서 이거 몇프로 올랐어요? 했으니...무식하게 할 걸 바보같이 해서..."
그의 꿈은 복지와 분배였다. 다만 방법이 문제였다. 너무 가파르게 밀어붙이면 저항도 심할 뿐더러 쉽게 뒤집힐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획재정부를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로 분리하고,부동산세수를 지방재정의 중심재원으로 할당하는 소박하면서도 어려운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조차도 이명박정부 들어 강만수에 의해 모조리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노무현재임중 늘어난 서민복지예산 100조원을 부자감세 100조원으로 모조리 오바이트시켜버린것이다. 개에게 준 밥도 아까워 그렇게 하진 않는다. 그런데 이명박은 사람위에 들어간 밥을 고스란히 토해내도록 한것이다. 그것도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의 생명줄같은 밥을.
그러한 이명박뒤에는 역시나 집값의 탐욕에 찌든 국민이 있었다. 디어본 적이 없기에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나 일본의 스테그디플레이션 같은 경제위기의 역사적경험이 없기에 그저 집은 영원히 오른다는 미신에 빠져있는 미개한 국민말이다.
가격이 본질가치를 벗어나 급등을 시작하면 천천한하락은 절대 불가능하다. 오직 급락만이 가능하다. 그러한 급락이 싫다면 애시당초 급등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급등을 막는것도 싫다. 그래서 급등을 막기위해 종부세 시행한 노무현을 죽이는데 기꺼이 한힘 보탠것이다. 선진국의 1/3수준도 안되는 조세와 복지가 세금폭탄과 망국적복지로 매도되는데 기꺼이 한힘 보태면서 말이다.
아파트가 오르려면 부채가 늘고 물가가 상승해줘야 한다. 늘어난 부채는 우리 자식들을 노예와 창녀로 전락시키고 오른 물가는 독거노인의 겨울방안 온도를 낮추고 결식아동의 하루먹는 끼니 횟수를 줄인다.
그래도 찬성하는 이유는 나만은 실패하지 않을것이란 자신감이 있고 그런 나홀로 성공속에서의 타인의 고통은 더한 희열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시장자유주의가 상당히 타락해져 가고 있는 미국에서도 이러한 "불공정행위"의 사회적 해악은 아동성폭행의 죄질보다도 결코 낮지 않다라고 곧잘 설명된다. 그러나 한국에서 아파트가격 담합 사실을 버젖이 백주대낮에 엘리베이터에 붙이고 다니고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들이대기까지 하는 동네아줌마들에게 그러한 상식은 먼나라 이야기일뿐이다. 이런나라에서는 집을 사는것 자체부터가 죄악일수 있다.
재벌의 세습을 맹렬비판해온 노조는 일자리세습을 주장하고 있다. 비정규직이 파업하면 사다리를 걷어차고 한켠에서는 비정규직 죽어간다고 울부짖으며 파업하고있다. 그파업은 언제나 비정규직 처우향상이 아닌 그들의 희생을 수반으로 한 자신들의 이익증대로만 마무리되어 왔다. 그를 향한 혐오감의 분출대상은 생전 노무현이었다. 그리고 그가 죽고나자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이명박을 상대로 투쟁했다간 정말로 밥그릇에 금갈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죄악일수 있다.
저임금장시간근로의 방치뿐만 아니라 고임금장시간근로 역시 죄악일수 있다. 종합병원 외과의사들은 집에도 못간채 숙직실에서 쪽잠자며 수술하는것을 마치 큰공헌처럼 내세운다. 그러나 그것은 공헌이 아니라 사회를 욕보이는 행위에 불과하다.
퇴근을 미룬채 밤을 새가며 사건을 처리하는 평검사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면 이런 부분이 나온다. 마치 일에 빠져 집에 못들어간 것을 자랑인양 기술해놓은것이다. 미안하지만 그것은 자랑이 아니라 몰상식하고 부도덕한짓일뿐이다. 그러한 기형적노동구조하에서 하위노동자들이 힘없이 착취와 과로로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들의 불만 역시도 생전의 노무현에게로 향했었다. "의사와 검사가 얼마나 고생을 하는데 감히 지식인의 자존심을 짓뭉개다니" 교수와 작가등의 지식인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감히 우리와 소통안하고 국민과 다이렉트로 소통을 시도해 찬밥을 만들어?" 그러나 이러한 분노역시도 노무현이 죽고나자 분출할 대상을 잃은채 방황하고 있다.
그 방황속에서 국민의 입과 이명박의 귀사이의 거리는 끝없이 멀어지고 있으며 그것이 만들어내는 이명박의 허상속에서 서민의 절규는 죽음을 향해 치닫아가고 있는것이다.
노무현은 겁많은 사람이었다. 누구보다도 무서움과 외로움을 많이 느꼈던 사람이다. 완벽하지 않았으며 실수도 많이 했고 후회 또한 많았던 사람이다. 그에게는 사자의 심장같은 담대함도,독수리의 눈같은 예리함도 숙녀의 손같은 섬세함도 분명 부족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오늘날 우리사회속에서 가장 부족한 그 무엇인가가 분명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위선을 부끄러워할줄 아는 양심이었다.
언론이 사실을 말하지 않아도 따져 물을수는 없다. 언제 끌려갈지도 모를 검찰과 진실로 대립할수는 없다. 유권자의 절반이 주택보유자인 상황에서 집값이 너무 버블이라고 지적할수는 없다. 불필요한 토목공사라는것을 알지만 유치하지 않을수 없다. 부채와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하다는것을 알지만 예산을 더 따오지 않을수 없다.
공천이 걸렸는데 줄서지 않을수 없다. 동료의 잘못을 지적할수 없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가치 철학 노선을 바꾸지 않을수 없다. 옳더라도 내가 살려면 잘못으로 몰아갈수밖에 없다. 얻는것이 없는 쪽,지는 쪽으로 줄을 설수는 없다. 정의가 승리하는것이 아니라 승리한것이 곧 정의다.
이렇듯 깨기 힘들고 바꿔내기 어렵지만 반드시 도전 해야만 하는 허상을 향해 노무현은 두렵지만 나아갈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허상의 그림자를 놔두고서는 결코 사람사는세상을 이룰수 없을거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무현은 두렵지만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팔을 길게 내밀고 팔꿈치를 가지런히 펴서 손을잡고 말이다. 그는 힘들때마다 그손을 놓지 않으려 들었다. 힘들수록 더 꽉 잡으려 들었다. 그러나 어떤 손은 끝까지 함께 했지만 어떤 손은 냉랭하게 뿌리쳐 졌다. 뿌리쳐 지는 숫자가 어느 선을 넘어간 순간 그의 꿈과 희망은 기로에 놓이게 되었고 그는 삶의 끈을 놓아버릴수 밖에는 없었던것이다.
그가 죽고 모든 것은 사라졌을까. 그가 있던 자리는 좁아졌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비록 죽었지만 그가 남기고 간 유산의 크기는 높고 넓다고 생각한다. 노무현이란 빛이 없었다면 한국은 아직도 짙은 어둠속에 드리워져 있을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것은 국민이다. 국민이 무서움과 외로움을 이겨낸채 당당히 앞으로 나설수 있을때 세상을 밝게 변모시켜낼수 있을것이다. 국민이 정치를 멀리하고 이기는쪽으로 승부를 걸려는 속성을 보이는것은 결국 탄압과 착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공포와 스트레스를 이겨내려는 생존본능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역사는 그러한 생존본능을 거스른 소수에게만 참다운 세상을 선사해왔다.
생존본능에 비웃음을 보내고,탐욕과 이기심을 향해 비아냥거릴수록 국민은 정치와 더욱 멀어지게 되어있다.그리고 노무현 김대중과 같은 올곧은 정치인은 국민과 고립되어 죽어갈수밖에 없다. 그것을 이겨내는 길은 결국 국민이 손잡고 하나될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내고,그 문 화속에서 언로를 만들어가고 역사를 탐구하며 스스로 깨어나가는 순환의 길을 완성해내는것밖에는 없다.
그것이 바로 노무현의 유지인것이다. 정치하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든다라는 말의 참 의미는 바로 그것인것이다. 정의로운 사람을 외롭게 만들지 말고,성실하게 살아온 착한사람을 슬프게 만들지 않을수 있는 믿음의 반석위에 대한민국이 올려질수있을때 사람들이 진정한 마음으로 세상을 느끼며 행복할수 있는 꿈이 이루어질수 있다는것이다.
4월의 마지막 날 많은 비가 내렸다. 그리고 화창한 5월의 첫날이 열렸다. 광주정신과 노무현정신 그리고 김대중정신을 다시금 경건한 마음으로 되돌아 보아야할 달이 돌아왔다. 그속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복지국가를 향한 열망 그리고 사람사는세상을 향한 꿈과 희망이 눈부신 사랑으로 확인되어 아름답게 빛나게 되길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무현의 빛은 그 하늘속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고 있을것이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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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카게산다님의 댓글
차카게산다 작성일
유시민도 노무현의 가시밭길을 같이 가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김해에서만 유독 패한 것인가?
정의님의 댓글
정의 작성일
정의로운 사람을 외롭게 만들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건 우리 모두들의 몫으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