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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재일총련 허종만 책임부의장과 특별대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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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일청년
댓글 1건 조회 1,963회 작성일 11-04-27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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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허종만 총련책임부의장과 특별대담(2)

그토록 탄압받으면서 세계 제1의 단결조직 견지



[도꾜=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민족통신 특파원은 일본을 방문중 재일조선인총연합회(재일총련)
허종만 책임부의장과 25일 오후 총련본부에서 특별대담을 갖고 "총련 구성원들의 99.3%가 남녘 출신이라고
소개하며 1955년 5월31일 재일총련이 결성되던 첫 시기부터 일본 당국의 탄압과 함께 남측 당국의 탄압이
시작되었다고 돌이키면서 총련조직 56돌을 맞이 하는 이 순간까지도 일본 당국의 반인륜적 탄압행위는
끝나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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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만 책임부의장과 총련본부 지도부 성원들은 민족통신과 대담을 끝내고 정원에서 기념촬영



민족통신,허종만 총련책임부의장과 특별대담(2)

그토록 탄압받으면서 세계 제1의 단결조직 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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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총련 허종만 책임부의장과 특별대담하는 민족통신 대표
[도꾜=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민족통신 특파원은 일본을 방문중 재일조선인총연합회(재일총련) 허종만 책임부의장과 25일 오후 총련본부에서 특별대담을 갖고 일본지진사태와 해일(쓰나미)사태로 피해를 입은 재일동포들에게 (1)북부조국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위문금을 보내준것과 관련하여 피해자들에게 전달한 상황, (2)피해지역 현지사정, 그리고 (3)재일총련이 일본당국에 탄압 받고 있는 상황 등에 대해 질문하고 이에 대한 그의 설명을 청취했다. 이 자리에는 재일총련 지도부의 남승우 부의장, 고덕우 부의장, 그리고 서충언 국제통일국장이 함께 배석했다. 이번에는 재일총련이 일본 당국에 탄압받아 온 최근의 소식을 알아 본다.

허종만 재일총련 책임부의장은 총련 구성원들의 99.3%가 남녘 출신이라고 소개하며 1955년 5월31일 재일총련이 결성되던 첫 시기부터 일본 당국의 탄압과 함께 남측 당국의 탄압이 시작되었다고 돌이키면서 총련조직 56돌을 맞이 하는 이 순간까지도 일본 당국의 반인륜적 탄압행위는 끝나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와 했다.

재일총련 한덕수 초대의장도 일본당국 탄압에 대해 고뇌 밝혀


그는 대담 도중 재일총련 조직의 초대 지도자인 한덕수 선생의 이름을 떠 올리면서 “10년 전 서거하셨지만 생전에 한덕수 의장께서는 일본 당국의 탄압 때문에 어느 하루라도 마음 편히 지낼 여유가 없다고 하신 말씀을 뻐저리게 느끼게 되었다”고 상기시켜주면서 최근의 일본 당국 탄압정형을 개괄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총련 성원들의 일본 출입국을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차별적으로 제한하고 있고, 출입국시 그리고 송금시 북에 있는 있는 혈육들에게 돈을 보내는 문제도 제한하고 있고, 물건도 제한하고 있는데 심지어는 쓰던 중고품을 보내는 것까지 제한하고 있는 야만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일본 당국의 현주소로 밝혀지고 있다. 송금 제한은 자민당 시대에 30만엔 이상인 경우에만 신고하도록 규정으로 명문화하였지만 요즘 민주당시대에 들어와서는 10만엔 이상부터 신고하도록 총련에게는 별도 규정을 만들어 차별적 탄압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1965년 이른바 한일조약이후 총련차별 더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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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만 책임부의장(두번째)과 남승우부의장, 고덕우 부의장, 서충언 국제통일국장이 함께 배석한 자리에서 민족통신과 특별대담 진행
일본 당국의 총련탄압은 1965년 이른바 ‘한일조약’이후 한층 더 차별적으로 가해져 왔다. 여기에 남조선(한)이 합세하고, 민단이 합세하여 일본 내 총련 조직을 탄압하고 차별화하는데 함께 하여 왔다는 것은 만인이 주지해 온 사실이다. 일본 당국은 특히 2006년 10월 북조선의 핵시험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의 제재조치에 편승하여 북측에 대북적대적 정책을 펼치는 동시에 유엔제재와는 별도로 독자적 제재정책을 추가하여 북측을 압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재일총련 조직을 잔인하게 탄압해 왔던 것이다. 일본의 민주당 정권은 또 지난 해 이른바 ‘연평도 사건’이 남한 측의 의도적인 도발로 발생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구실로 이명박 정권과 야합하여 함께 대북적대시 정책을 펼치는 동시에 재일총련 성원들에게 탄압을 가하는 구실로 악용하여 왔다는 것도 해 내외 동포들이 주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당국의 재일총련에 대한 잔인성은 총련의 조선학교에도 가해져 왔다. 일본내 모든 고급(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학비를 받지 않고 정부에서 보조비를 주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을 유독 재일총련 학교에만 예외로 적용하여 차별화하려는 것은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법을 스스로 지키지 않는 자세이며 동시에 재일총련 동포들을 차별적으로 탄압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폭로하는 행위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학교 무상화교육 혜택도 제외 움직임


이 고교 무상화안은 일본 민주당 마니페스토의 핵심 사안으로 공립고등학교 학생에게 수업료를 받지 않고, 사립고교 학생에 대해서는 연 12만엔에 달하는 공립고교 수업료와 같은 액수(저소득세대에는 증액)를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일본 내 외국인 학교에 대해서도 ‘일본 사회 전체의 교육을 넓게 지원하다’는 원칙하에서 일반 사립고와 같은 액수를 지급하기로 하고 이미 예산까지 편성한 상태로 금년 4월부터 실시하기로 한 정부 방침인데 이것을 총련 조선학교에만 유독 제외하다고 하여 일본 내 여론에서도 차별적 적용에 반대하는 의견들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아사히 신문을 비롯한 일본 내 언론들도 노골적으로 조선학교의 고등학생들 무상화 혜택에 대해 반대하지 못하면서 찬반의견이 엇갈리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사히 신문 3월12일자는 찬반이 엇갈린 내용을 보도하면서 일본과 북조선과의 정치적 문제로 차별화하는 문제도 언급했다. 일본언론은 “조선학교는 유치원부터 고교 과정까지 일본 전국에 73개교가 존재한다. 재학생은 8300여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11개 고교(휴교 1개교)에 1900여명이 재학중이다. 조선학교는 일본 학교교육법상 일반 초중고교가 아닌 ‘각종학교’로 분류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일본 정부는 한국학교, 중화학교, 국제학교 등 다른 국가의 외국인 학교는 ‘각종학교’이지만 고교 학비 무상화 대상에 포함시켰다고 전해 왔다.

허종만 책임부의장은 “우리 총련 구성원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세금을 다 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땅히 받을 권리도 있다”고 지적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지방자치제 정부에서 오랜 동안 지불해 오던 교육보조비도 최근에 와서 끊어 버렸다”고 분노를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차별적 환경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일총련은 민족교육을 생명처럼 여기며 우리 민족성과 얼을 지켜 나가기 위해 그 어떤 탄압과 차별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지켜 나갈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재일총련 본부건물 소유권 문제 놓고도 왈가왈부


허종만 책임부의장은 재일총련 본부건물의 재판과 관련하여 이 문제는 단순한 사법상의 문제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문제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조일관계 문제와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대해서도 내외 여론과 함께 정당한 과정과 수순을 밟아 당당하게 처리해 나 갈것이라고 다짐했다.

이 문제에 대해 민족통신은 자료를 찾아본 결과 2007년 7월 남측 민주노동당 주체로 열린 한 토론회에 참석하여 발표한 김창선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부회장의 논문 가운데 ‘총련중앙회관 토지.건물문제’의 본질에 대한 부분을 참조로 여기에 소개한다. 그는 총련본부 건물 문제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바 있다.

오늘 일본 아베정권에 의한 정치적폭거는 ‘채권회수와 관련된 법적문제’라는 간판아래 총련중앙회관의 토지와 건물을 강탈하려는데서 상징적으로 나타나고있습니다.

총련중앙회관의 강탈문제의 본질은 한마디로 일본의 거품시대에 생긴 불량채권의 처리라는 ‘경제문제’를 아베정권이 총련과 재일동포들을 탄압하는데 정치적으로 악용한데 있습니다.

일본의 거품경제의 파탄은 토지, 주식값만 하여도 1400조엔에 이루는 경제적손실과 막대한 금액의 불량채권을 발생시켰습니다.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 총련산하에 속하고있었던 조선신용조합에는 일본의 다른 은행과는 달리 불량채권의 포기가 인정 안되였으며 결과 파탄에 몰려 총련중앙도 RCC(정리회수기구)에 대한 채무를 짓게 되었습니다.

총련중앙은 2003년 2월에 변제의무를 지녀야 할 채무를 627억엔으로 확인하고 RCC와 4년에 걸쳐 화해교섭을 진행해왔습니다.

우리의 화해안은 매해 5억엔씩을 8년간 지불하고 그와는 별도로 4년사이에 30억엔, 합계 70억엔을 지불하여 남은 채무액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협의한다는 내용이였습니다.

이 70억이라는 금액은 RCC가 당시의 불량채권처리의 추세로 보아 총련의 채무를 5%로 사들였다고 추측할때 그 2배를 넘는 11%가 되는것으로서 이제까지의 불량채권처리의 전례와 RCC의 리익을 고려하여도 충분한 반제내용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RCC측은 아베정권 등장이후 태도를 바꾸어 총련의 화해안에 일체 귀를 기울리지 않고 2년간에 해마다 5억엔씩 반제하고 4년째는 남은 채무액에 년 5%의 리자까지 포함하여 일괄지불하라는 도저히 지불도 못하며 사리에도 맞지않는 강압적인 요구를 내걸었으며 마침내 화해교섭을 일방적으로 파탄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올해 6월18일 도꾜지방재판소는 RCC의 요구를 인정하고 차압을 위한 가집행처분까지 허가하는 지극히 부당한 판결을 내렸으며 이어 RCC는 총련중앙본부의 토지와 건물에 대한 강제경매집행을 위한 소송에 들어갔습니다.

이를 전후하여 일본수상 아베는 “총련은 랍치를 비롯한 범죄에 관여한 단체”, “파괴활동방지법의 조사대상”이라고 망언을 퍼뜨리며 저들의 속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사실들은 금번 문제가 RCC가 채권회수라는 원래의 사명을 리탈하고 총련이 제기한 성의있는 노력과 제안을 한사코 무시하여 ‘채권회수와 관련된 법적문제’라는 간판아래 누가 보더라도 불공정한 요구를 내걸어 의도적으로 교섭을 파탄시켰다는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그 속심은 아베정권의 사촉아래 총련중앙회관 자체를 없애치우려는데 있는것입니다.

1955년 5월 25일에 결성된 총련은 일제식민지통치로 말미암마 일본에서 살게된 재일동포들의 민족적존엄과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조직된 애족애국의 합법적인 해외교포조직이며 총련중앙회관은 재일동포들의 민족대단결의 상징이며 활동거점입니다.

또한 총련은 조일간의 국교가 정상화되지않고 있는 조건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표부로서의 역할을 놀아 왔습니다.

사실 총련은 려권, 사증의 발급업무를 하는 유일한 창구이며 재일동포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민족교육을 실시하며 광범한 동포들과 일본사람들속에 우리의 민족문화를 알리면서 각계각층 일본단체들과의 친선교류를 깊여 조일화해를 도모하는 등의 령사관적역할을 놀아 왔습니다.

일본당국은 력사적으로 보나, 오늘의 현실로 보나, 총련조직을 보호하고 그 활동을 적극 보장해야할 력사적, 도의적, 법적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정권은 출범이래 반조선, 반총련소동을 계단식으로 고조시키면서 오늘은 총련의 건물까지 강탈하려 하고 있으니 이는 바로 대조선금수제재에 못지 않는 민족의 자주권에 대한 란폭한 침해행위이며 우리 민족의 존엄에 대한 심대한 유린행위입니다.


”일본 당국의 탄압도 분노하지만 남측 당국과 민단의 방해가 더 가슴아파…”


허종만 책임부의장은 이번 지진사태에 대한 지원사업을 비롯하여 피해지역 현지들을 돌아보면서 그리고 일본당국의 탄압상활을 돌이켜 보는 지난 시기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서도 일본 당국의 탄압은 맞받아 치고 나가는데 그렇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지만 같은 동족인 남측 당국과 이에 편승한 민단측 간부들의 방해책동에는 그 어떤 분노 보다는 가슴이 아팠다고 그 고뇌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고뇌는 민족분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기자는 허종만 책임부의장을 비롯하여 재일총련 지도부 성원들을 만나보고서도 역시 "재일총련은 세계에서 가장 단결이 잘 된 해외조직"으로 일심단결의 해외조직체로서 그 어느 나라 해외조직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공고한 조직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재일총련은 또 해외동포 조직들 중에 거주국 당국으로부터 가장 탄압을 많이 받아 온 조직이다. 일본당국이 총련에 자행한 탄압은 세계 역사상에 그 유례가 없을 것이다. 그 탄압은 총련이 결성된 1955년 5월31일부터 지금 이순간까지도 지난 56년 동안 쉬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조국의 분단 때문에 이남 정부당국으로부터 받아 온 탄압도 말할 수 없다. 6.15시대에 들어와서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시대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대에 들어와 다소 그 탄압의 정도가 약화되었을 뿐 미국과 일본에 편승하여 민족분열주의를 부추겨 온 친미친일 사대매국세력의 민족분열주의적 행위들은 끝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재일총련 조직과 그 성원들은 오로지 민족교육을 통해 그리고 민족얼을 간직하고 어제도 오늘도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백절불불의 투쟁을 전개해 왔다. 세계 역사상 재일총련처럼 끈질기게 투쟁해 온 조직도 없다. 조일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닥쳐오는 탄압을 투쟁으로 맞서 왔다. 남북관계가 대결구도로 전환될 때마다 직면하는 음모와 방해책동에도 투쟁으로 맞서왔다. 조미관계가 악화될 때도 같은 상황에 직면하여 투쟁의 길에 나서 왔다.

재일총련 성원들은 그렇게 민족차별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걸어왔다. 이들은 조선국적 포기를 강요당해 왔고, 조선학교 탄압에 대처해 왔고, 민족기업 유지를 위해 투쟁해 왔고, 조국방문을 가로막는 내외 세력들과 투쟁으로 맞서왔다. 재일총련은 강철같은 조직이다.

돌이켜 보면 재일총련의 행보는 연속적인 고난의 행군이었다. 총련회원들은 그 숱한 고난의 가시밭길을 신심과 승리의 낙관으로 극복해 오고 있다. 그래서 총련 간부들은 "김일성 주석님과 김정일 장군님의 지도와 사랑을 떠나서는 총련의 역사도 말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난관이 조성될 때마다 실천으로 극복해 냈다. 1968년 프에블로 사건이 터지자 총련에도 탄압의 공세가 휘몰아 쳤다. 이때 100일간 혁신운동, 120일간 혁신운동(70년 7.1~10월 말)이 전개되었다. '항일빨찌산 참가자들의 회상기'를 100번 읽으면서 어려움을 극복했던 총련회원들은 '김일성 저작선집'도 학습하면서 학습을 생활화하는 운동을 벌였다. 70년대 초에는 150일간 혁신운동(71년 11.1~72년 4.15)을 펼치면서 새로운 발전을 위한 투쟁에 집중했다. 1975년 7월과 8월에는 핵전쟁 반대운동, 주한미군철수투쟁, 통일촉진 대행진을 전개하면서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5백만 서명운동을 벌인 결과 515만 명의 서명을 받는 성과를 기록하기도 했다. 총련은 이어 75년 11월18일 유엔 제30차 총회를 통해 자주적 평화통일을 촉진하기 위해 각종 투쟁을 벌인 결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키자는 43개국의 공동결의안을 제출시키는 투쟁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80년대 들어서는 300일간 애국혁신운동(1981년 6.15~1982년 4.15)을 통해 2만1천5백명 회원증가 사업에 성공했고 100일간 집중행동 기간을 이용하여 6만9,364 가정을 방문하는 한편 6,038명과 담화를 통해 의식화 활동을 전개했다. 요즘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도 그 투쟁의 고삐를 멈추지 않고 불철주야 강행군에 나서고 있다.

기자는 총련 지도부 성원들이 그 바쁜 와중에도 따뜻하게 맞이하여 주면서 한시간 이상 대담시간을 할애하여 주었고, 입구정원에서 기념촬영도 하면서 허종만 책임부의장을 위시하여 배석하였던 모든 간부들이 총련건물 입구까지 내려와 오랜 동안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을 보며 느낀것이 많았다. 그리고 총련본부에서 마련해 준 승용차로 체류하는 호텔까지 오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다. "혹독한 민족차별 속에서 이뤄 놓은 재일총련의 단결과 단합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리고 “혹독한 탄압과 차별속에서도 여유와 우슴을 잃지 않고 신심을 갖고 그리고 겸손하게 활동하는 재일총련 지도부 성원들의 활발한 모습을 보며 이러한 자세는 또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를 반복하여 생각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를 가질수 있었다.(끝)



일본사회의 우리동포 차별에 대한 동영상






*일본 극우세력 불량배들이 조선학교에 와서 행패부리는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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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자료들은 한국 정부가 자칭 <자유민주주의>라고 선전하면서도 알권리를 차단하고 있어 열람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독자들이 아래 자료들을 보려면 twitter 와 facebook을 통하여 열람할 수 있습니다. 그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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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www.twitter.com/#!/minjoktongshin







*관련보도 자료들 보기-아래를 짤각해 열람하세요!


민족통신,허종만 총련책임부의장과 특별대담(1)
김정일 위원장 위문금에 동포들 뜨거운 눈물


*에다가와 조선학교 새교사건축 준공식 감개무량
민족교육 지키기 위해 투쟁으로 점철된 승리역사


*통일평론 창간50주년 기념행사 관련보도--여기를 짤각하세요!

*재일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창간60돌에 감탄---여기를 짤각해 열람하세요!


[출처 : 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201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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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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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님의 댓글

허허허 작성일

강도가 침입하여 부모가 죽고 동생은 맞아 병신되고 딸은 강간 당하고..집안이 풍파가 났는데
무슨 이유인지 강도를 좋아하게 된 딸이 강도 편에 붙어 살아남은 다른 형제들 마저 찾아
병신 만들어 내쫒아 집 모두를 강도에게 넘겨준 상태에서 운좋게 살아남은 장남이 남은 형제들의 힘을 합하여
어쨋건 집 재산을 도로 찾고 여동생도 되찾아와서 돌아가신 부모님 영전에 올리려 노력하는 그런 정황이라...

누군가 소설을 쓴다면 제법 사실에 가까운 논픽션이 될 수 있을지...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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