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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음악 연재-37]<나의 어머니>,김정일위원장의 소년시절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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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뉴욕동포
댓글 0건 조회 5,196회 작성일 11-05-0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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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37]가요 <나의 어머니>,김정일위원장의 소년시절작품



리준무 지휘자(우륵교향악단 단장)는 "북부조국의 음악예술을 통해 북을 알아본다"는 37번째 민족통신에
특별기고한 연재글은 김정일 위원장이 소년시절에 작사작곡한 《나의 어머니》이다. 필자는 "불후의 고전적명작
가요 《나의 어머니》는 김정일위원장이 1960년 7월 15일 고급중학교를 졸업하던 뜻 깊은 축하모임에서 친히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하면서 "김 위원장은 고급중학교시절에 그리운 어머님에 대한 노래를 하나 지으려는
생각을 하고 하루 수업이 끝난 교실의 조용한 창가에서, 학교 강당의 피아노 앞에서, 때로는 정원에서 한자 한자
글귀를 찾고 다듬었으며 한음 한음 선율을 익혀나갔다"고 해설한다. 그의 37번째글을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연재-37]가요

<나의 어머니>는 김정일 위원장의 소년시절 작품



*글:리준무(우륵교향악단 지휘자겸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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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리준무 지휘자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또 오월은 푸르고 희망에 차있는 달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이렇게 희망에 넘치고 생동하는 계절에 생전에는 다시 볼 수 없는 어머니를 애타게 불러보는 어린이들도 있다.

미국에서는 5월의 두 번째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정해놓고 어머니들을 위한 여러 가지 행사를 한다. 자식들을 위해 헌신적인 노고를 다 하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기억하고 축하하자는 취지로 제정 되었다고 한다.

이날은 감사의 표시로 어머니의 가슴에 붉은색 카네이션 꽃을 달아 드리고 만일 어머니가 없는 사람은 사랑하는 어머니의 무덤에 흰색 카네이션 꽃을 드린다.

누구나 이것을 아름다운 소행으로 알고 있다.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있다.

그러나 어머니가 없는 사람도 있다.

일찍, 너무도 일찍, 누구도 원치 않은 그 길을 어머니는 떠났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없는 사람의 슬픔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슬픔이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하게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유년기에 어머니를 잃은 소년의 슬픔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당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나와 함께 엄마사진을 보자


불후의 고전적명작《나의 어머니》가 애창곡으로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김정일위원장의 천품은 효성과 의리로 점철되어있었다.

이렇게 애틋하게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잘 해드리고 싶어했던 이야기는 김정일위원장의 유년시절에 아버지에게 하였던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엿볼 수 있었다.

유작촌은 《전통과 계승》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소개 하였다.

….어머니가 떠나버린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여동생은 울먹이며 엄마를 찾으며 아빠한테 다가가려고 하였다. 바쁘신 아버지의 집무에 방해되지 않게 하려고 오빠는 동생의 손을 이끌어 옆방으로 가더니 울먹이는 동생을 타일렀다.

“이젠 엄마를 찾으면 안돼. 네가 엄마를 찾으면 아버지께서는 일도 못하시고 속상해 하신다. 이제부터 엄마가 보고 싶으면 아버지한테 가서 울지 말고 나한테 와야 해. 그래서 함께 엄마사진을 보자”. 울먹이는 소리로 조용히 이른 말 이었지만 그것은 아버지에게도 그리고 측근들에게도 똑똑히 들렸다.

그 순간 김일성 주석은 아들의 음성이 새어나온 곁방에 한동안 눈길을 주었으며 측근들과 친척들은 돌아 앉아서 눈시울을 닦았다고 한다.

아들은 어머니가 얼마나 아버지를 사랑 하였는가를, 그리고 헌신적으로 보필 하였는가를 일상으로 보아와 잘 알고 있었다. 아들은 자기가 늘 보아왔던,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하시느라

늘 어머니께서 하시던 일을 이제 자기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절실히 느끼고 또 간직하였다.

밤새 국사를 준비하시느라 잠 못 이루시는 아버지를 출근하기 전에 잠깐이라도 쉬시라고 새벽마다 시끄럽게 우짖는 참새떼를 쫓아내려고 항상 어머니가 쓰시던 장대를 들고 창 밑을 거닐며 새들을 날려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새소리로 새벽잠을 설치곤 하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깨끗이 없어진 것이다. 그 일이 너무도 이상하여 밖으로 나오다가 그만 문가에 멈춰서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 굳어진 채 말없이 한참 동안이나 이 광경을 지켜 보다가 아들을 가까이 불렀다.

아들의 옷자락은 새벽이슬에 축축이 젖어 있었다. 그 젖은 옷을 만져보며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아들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다 자랐구나”

일찍 어머니를 잃은 소년 김정일은 이젠 더 이상 유년이 아니었다.


고급중학교 졸업축하모임에서 불렀던 노래


“불후의 고전적명작 가요 《나의 어머니》는 김정일위원장이 주체49(1960)년 7월 15일 고급중학교를 졸업하던 뜻 깊은 축하모임에서 친히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다.

김위원장은 고급중학교시절에 그리운 어머님에 대한 노래를 하나 지으려는 생각을 하고 하루 수업이 끝난 교실의 조용한 창가에서, 학교 강당의 피아노 앞에서, 때로는 정원에서 한자 한자 글귀를 찾고 다듬었으며 한음 한음 선율을 익혀나갔다.

그러던 주체48(1959)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장군님은 음악실에서 피아노를 치며 어머님에 대한 노래를 거의 완성을 하고 있었는데 학생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이날에야 비로소 노래의 완결된 가사를 새겨듣게 되었는데 몹시 흥분하였다. 지금까지 깊은 명상속에 피아노로 선율을 고르던 노래가 바로 어머님에 대한 노래였음을 알게 되였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애타게 그려보며

1982년 12월 17일 김정일위원장은 한 예술단의 창작가들에게 어머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였다.

“가요 《나의 어머니》는 내가 해돋이를 보면서 가사를 쓰고 곡을 붙여 부르던 노래 입니다. 나는 어려서 어머님의 사랑에 대하여 잘 몰랐지만 차차 나이 들면서 어머님의 사랑이 얼마나 그립고 귀중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정일위원장은 어머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그려보고 있는 듯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가요《나의 어머니》를 창작하던 때를 회상하고 있었다.

김정일위원장이 직접 지은 것으로 알려진 《나의 어머니》는 불후의 고전적 명작가요로 그분의 창작곡 《조국의 품》, 《축복의 노래》, 《대동강의 해맞이》, 《조선아 너를 빛내리》, 《충성의 노래》 등 여러 창작곡이 있으나 그 중에서도 가요《나의 어머니》는 특별히 인상이 깊은 노래로 알려져 있다.

다음은 ‘김정일 작품선’(作品選)에 기록되어 있는 김정일위원장의 시《나의 어머니》의 가사이다.


나의 어머니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시며

나를 품어 키우신 나의 어머니

만가지 소원을 헤아려보시며

조선의 고운 꽃 꽃피워주셨네



비와도 눈와도 먼길 떠나도

손잡아 이끄신 나의 어머니

순간을 살아도 빛나게 살라고

길러준 그 품을 내 어이 잊으랴



기쁘나 힘드나 부르고싶은

정답고 미더운 나의 어머니

그 은혜 못잊어 세월의 끝까지

수령님 받들어 한길을 가리라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뜨거운 그 사랑 내 크게 알았네



맑고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목소리




문헌에는 김정일위원장이 주체49(1960)년 7월 평양남산고급중학교 졸업생축하모임에 몸소 참석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날 학생들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서 동무들의 어머니들이 모두 학교에 찾아왔다. 학생 김정일위원장은 학생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행복해 하는 동무들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이러한 정겨운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학생 김정일위원장은 조용히 창가에 다가가서 멀리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금새 달려 나와서 그 어느 어머니보다도 더 뜨겁게 축하해주시며 따뜻하게 끌어 안아주시었을 어머니의 모습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이윽고 학생들의 부모님들은 다 돌아가고 드디어 학생들의 졸업 경축모임이 시작되었다. 이 모임에서는 졸업생들의 한결 같은 희망에 의하여 김위원장이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뜻 깊은 졸업식 친선모임에서 과연 어떤 노래를 부르겠는가 하고 학생들은 잔뜩 호기심에 찬 눈으로 학생 김정일위원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에 학생 김정일위원장의 맑고 부드러운 노래가 울려 나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처음 듣는 노래이지만 가슴에 느껴오는 감동이 너무 커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은은하고 부드러운 이 노래의 선율은 김정일위원장이 한해 전부터 부르던 노래, 바로
《나의 어머니》이었다.


《나의 어머니》는 학생 김정일의 사모곡 이었다.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잃은 어린 시절에 자신께서는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시며 자신을 품에 안아 키우신 어머님의 그 사랑이 무엇인가를 미처 알지 못하였지만 성장하면서 그것을 알게 되였다고 어머님의 사랑에 대하여 절절하게 추억하였다고 한다.

그분의 사모곡이《나의 어머니》이다.
《조선문학사 12》에는, 《나의 어머니》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높은 사상성과 고상한 예술성이 결합된 혁명시가문학의 가장 빛나는 본보기이고 숭고한 시 정신이 집대성 되여 활짝 피여 난 <현대시가문학의 정수>” 라고 하였다.

1959년 12월 말 어느 깊은 밤에도 피아노를 치며 이 노래를 불렀다.

한 학생이 호기심에서 김정일위원장에게 그 노래를 가르쳐 줄 수 없겠는가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 학생에게 노래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며 눈이 내리는 문 밖으로 나왔다.


펑펑 쏟아지는 눈송이를 손에 받으며 지난날을 뜨겁게 회고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우리 어머님께서는 백두산에서 이 눈을 맞으시며 나를 안아 키우시느라고 무척 고생을 하셨습니다. 광복 후 눈 내리는 어느 겨울 밤에는 나에게 꿰진 바지를 곱게 기워 입혀주시면서 이제 대학에 갈 때가 되면 좋은 바지를 해 주시겠다고 하시었습니다.”

어서 빨리 커서 유치원을 마치고 인민학교, 중학교를 거쳐 대학생이 되여 마음껏 배워 아버지장군님을 받들어가야 한다고 하시던 어머니….

“어린 시절에 나는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시며 나를 품에 안아 키워주시던 어머님의 그 사랑이 무엇이었는가를 미쳐 다 몰랐었지만 크면서야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하루 수업이 끝난 교실의 창문가에 홀로 서서 저녁노을이 비낀 먼 하늘가를 바라보기도 하고 어느 때는 낙옆이 떨어지는 학교정원을 거닐면서 조용히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사무치게 그려보는 바로 그 노래는 《나의 어머니》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이란 무엇이었는가


김정일위원장은 어린 시절에는 어머님의 사랑이 무엇이었는가를 미처 몰랐지만 크면서 그것을 알게 되었다고, 여느 때도 그러하지만 오늘처럼 눈비 내리는 밤이면 어머님생각이 더 간절해진다고, 방금 이런 생각을 하면서 피아노를 쳐 본거라고 하였다.

이처럼 한음한음에 깊은 사색과 탐구를 담아 노래 《나의 어머니》를 완성하였으며 마침내 교직원, 학생들 앞에 내놓았던 것이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가요 《나의 어머니》는 참다운 충신, 효자의 신념과 의지를 키워준 품, 빛나는 삶의 길로 손잡아 이끌어준 은혜로운 사랑에 대한 다함 없는 송가이다.


3절의 가사이다.




기쁘나 힘드나 부르고싶은

정답고 미더운 나의 어머니

그 은혜 못잊어 세월의 끝까지

수령님 받들어 한길을 가리라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뜨거운 그 사랑 내 크게 알았네




이날부터 불후의 고전적명작《나의 어머니》는 교원, 학생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애창곡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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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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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리준무 지휘자 2011-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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