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청년 백청강의 위대한 도전을 ‘앙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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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가 김경호의 노래 ‘사랑 그 시린 아픔으로’를 부르기 시작하자 모든 게 달라졌다.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던 가수 이은미는 살짝 입을 벌렸다. 눈은 커졌다. 조용해진 객석은 특유의 콧소리 들어간 백청강의 노랫소리로 뒤덮였다. 이은미는 “드디어 노래를 쉽게 부르는 한 사람을 찾았다”고 말했다. 옆에 앉아 있던 가수 김태원과 이정현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MBC <위대한 탄생>에 출연중인 백청강(22·중국 길림성 연변)씨가 연일 화제다. 애절하면서도 청량한 목소리로 중국 오디션 첫 등장 때부터 대중의 눈을 사로잡았던 백청강은 지난 1일부터 <위대한 탄생>이 생방송 체제로 들어가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난 22일 기준으로 백청강은 ‘위대한 탄생 베스트 6’에 무난히 안착했고, 우승할 확률이 가장 높은 도전자로 점쳐지고 있다. 포탈사이트 <다음>이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누리꾼 5624명을 상대로 우승자 예상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백청강은 37.0%(2081명)의 표를 얻어 단연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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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청강의 선전에 조선족 사회는 축제 분위기다. 국내 거주 중국동포들의 대표 신문인 <동북아신문>과 <중국동포타운신문>은 각각 백청강의 활약상을 대서특필했다. 또 <위대한 탄생>을 방영하는 금요일 저녁이 되면 티브이 앞에 모여앉아 백청강을 응원한다. 마치 우리가 월드컵 대표팀의 승전보를 고대하며 단체응원전을 펴는 것과 비슷하다.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회사를 다니는 유화(35·조선족)씨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주말이 되면 티브이 앞에 앉아 친구들과 함께 백청강을 응원하고 있어요. 같은 연변 출신이니까 잘 됐으면 좋겠어요.” 유씨는 2004년 연변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조선족이다. 중국 칭다오시에서 2주 전 한국으로 건너온 신평(30·조선족)씨는 중국에 사는 조선족의 분위기를 “난리가 났다”는 표현으로 전했다. 신씨는 “중국에서도 난리가 났다. 칭다오시 조선족들은 백청강에게 문자 투표를 못하니까 한국 친구들에게 투표를 독려한다”고 말했다.
백청강에 대한 관심이 단순한 동정심?
사실 백청강은 여러모로 불안한 도전자였다. 기본적으로 “(노래 실력과 연관된) 악기가 좋다”는 평을 받았지만 가수 김경호를 닮은 콧소리가 노래에 묻어나는 것은 치명적인 단점으로 지적됐다. ‘위대한 탄생’은 모창대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태원은 “세상에 김경호는 한 명이면 족하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는 지금까지 이 지적을 비교적 잘 극복해내고 있지만 여전히 ‘백청강식 목소리’를 찾아내야 한다는 ‘미션’은 큰 과제로 남아 있다.
그가 연변 출신이라는 것도 그의 성공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다. 저개발 국가 출신 동포에게 서슴없이 편견을 드러내는 이중적인 나라가 한국이다. 실제로 백청강 관련 기사에는 ‘조선족’ 운운하는 악성 댓글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백청강은 시작부터 결정적인 단점을 안고 ‘오디션의 장벽’에 오른 셈이다.
그래서 백청강의 아버지 백명덕(53·중국동포 2세)씨는 “(청강이가) 조선족이라 결과가 좋지 않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청강이가 처음에 오디션 보러간다고 말할 때 ‘괜히 차비 없애지 말라’고 했어요. 아무리 노래를 잘 해도 차별받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조선족 백청강의 ‘미친 존재감’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가 재중동포라는 사실이 오히려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제2의 허각’과 같은 휴먼드라마가 필요한 <위대한 탄생>에서 ‘조선족 백청강’은 되레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하재근씨는 “백청강이 차별받는 조선족 출신이라는 것은 평범한 사람의 성공스토리를 원하는 대중들에게 오히려 매력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분석은 <다음>이 실시한 우승 예상조사에서 재미동포 데이비드 오의 우승을 점치는 누리꾼이 251명(4.5%)에 그쳤다는 결과를 보면 설득력을 얻는다. 음악성 면에서 백청강과 큰 차이가 없고 같은 재외 동포이지만, 데이비드 오는 ‘엄친아’이미지가 강하다. 데이비드 오의 어머니가 유명 가수 고은희씨로 알려지면서 이런 이미지는 더 굳어졌다. 거칠게 말하면, ‘고생하며 자랐을 것 같은 백청강, 특별한 어려움없이 자랐을 것 같은 데이비드 오’ 로 대비되면서 백청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더 커졌다.
백청강 팬클럽 조수영(‘남자로서 영 주장있는 백청강’(남영청) 모임 카페지기)씨는 “백청강이 미국과 같은 곳에서 온 동포가 아니라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야 하는 조선족이라는 점에서 인간적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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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청강에 대한 관심이 단순한 동점심?
그렇다면 백청강에 대한 관심은 일시적인 동정심에서 나온 것일 뿐일까. 그렇게만 보기에는 흥미로운 사회현상이 있다.
먼저, 누리꾼이 백청강이 구사하는 조선족 사투리에 열광하고 있다는 점이다.
3월 초 <위대한 탄생>은 백청강이 그의 아버지와 한국에서 저녁을 먹는 장면을 내보냈다. 이날 백청강이 아버지에게 ‘박칼린을 앙까’(앙까는 ‘아십니까’의 연변 사투리)라고 물었다. 많은 시청자들이 ‘앙까’라는 낯선 단어에 어리둥절해 했지만 누리꾼들은 오히려 이 연변 사투리를 친근한 유행어로 만들어버렸다. 조선족 사투리를 이렇게 긍정적으로 소비한 일은 이전에 없던 일이다. 백청강에 대한 관심은 동정심을 넘어 일종의 ‘팬덤현상’으로 진화하는 양상이다.
그 뿐 아니다. 백청강 팬클럽은 조선족 사회와 한국 사회의 이질감을 극복하기 위한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백청강이 조선족과 한국 사회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일종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남영청’ 카페지기 조씨는 “조선족이 한민족이라는 것을 알리는 캠페인 등을 구상하고있다”고 말했다. 단순한 ‘팬심’이 아니다.
이 때문에 조선족 사회에도 백청강의 인기를 두고 단순한 ‘티브이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흐름이 읽힌다. 드디어 조선족 앞에 세워져 있던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허물어질 수 있겠다는 희망이다. <중국동포타운신문>을 발간하는 김정룡 소장은 “백청강이 조선족이라 손해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사랑을 받는 것에 놀랐다”며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에 벽이 허물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김순애(50·조선족)씨는 “백청강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따뜻한 모습을 보면 내가 위로받는 느낌”이라고 했다.
물론, 이런 현상에 너무 과도한 해석을 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하재근씨는 “아직 조선족에 대한 배타적 정서가 완화됐다고 보긴 어렵다”면서 “다만 백청강을 계기로 조선족에 대해 우리 사회가 좀 더 열린 마음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백청강은 어디까지 성공할까
뭐니뭐니 해도 백청강의 존재감은 그의 노래 실력에서 기인한다. 백청강의 별명 ‘연변의 원석’에 이의를 다는 이는 없다. 대중음악평론가 성시권씨는 백청강에 대해 “발라드를 소화하는 감성과 록커로서의 매력을 겸비했다”며 “목소리를 들어보면 많은 시간 연습한 게 보인다”고 평가했다.
백청강은 지난 22일 밤 <위대한 탄생> 네번째 생방송에서 한번 더 멋진 공연을 해냈다. 그동안 다소 정적인 분위기의 공연을 해왔던 백청강은 이날 지드래곤의 ‘하트 브레이커’를 율동을 곁들여 열창했다. 시청자들도 비교적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누리꾼은 이날 문자투표 1위를 백청강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그의 멘토 김태원은 “기계음 없이 생목소리로 해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백청강이 한국 가요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조선족 1호 가수’가 될 수 있을까. 그의 도전이 어디까지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조선족 사회와 한국 사회가 함께 주목하고 있다. 허재현 기자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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