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이 정치가들을 쩔쩔매게 하는 나라의 총선결과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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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연방답게 의원내각제이다 보니, 하원(하우스 오브 커먼)에서 총리와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이 통과되면
총리는 부여된 자신의 권한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다시 총선을 치러 의회 다수당의 당수가 새내각을 구성합니다.
하지만 지난 23년간 그 어떤 정당도 원내 과반수의 안정 의석을 획득하지 못했고 그때문에 특히나
21세기 들어서 10년동안 다섯번의 총선, 그것도 최근 7년간 4번이나 총선을 치른 이나라의 정치는
의원내각제의 단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최근에는 정치 시스템 자체의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는 의문까지
제기된 실정입니다. 총선을 치를때마다 그 비용이 국가의 세금인데 특별히 달라지는 것도 없이 선거만 치렀으니
말입니다. 가뜩이나 전세계적으로도 경제도 어려운데 정치권은 맨날 정쟁하다 총선만 치르게 한다는 세간의
따가운 여론이 반영된 시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6년부터 집권해온 스티븐 하퍼 보수당 정권은 원내 1당이기는 하지만 과반수가 아니기에 늘상
야당 특히나 지난 20세기 내내 캐나다 정치를 주도해온 자유당의 눈치를 보고 심한 견제를 받아왔었습니다.
집권이후 벌써 3번째 총선이고 불과 2년 남짓 일하다가 하퍼 정권은 늘상 성과가 지지부진하고 뭘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야당과 여론의 비판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하퍼 보수당 정권은 감세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말해왔지만 정작 보수당 정권이 강력하게 추진해온 F-35전투기 도입 계획은 미국의
개발이 지연되면서 비용이 거의 2배가까이 상승했는데도 이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할뿐, 뚜렷한
예산 확보책이 없는 게 현실이고 이미 야당들은 복지와 교육과 의료보험의 예산을 국방비로 돌리겠다는 수작이라며 비난의
수위를 높혀 왔었습니다. 특히나 약체 하퍼보수당 내각을 조금만 더 흔들면 자신들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해온 마이클 이그나티에프 당수의 자유당은 최근 5년간 하퍼를 꺼꾸러트리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왔습니다.
그 결과가 세번째 불신임안의 통과였고 지난 5월 2일의 총선거였지요.
그러나, 개표 결과는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미 선거 며칠전부터 자유당의 몰락이 예고되기는 했었지만,
23년만에 하퍼 보수당은 167석의 원내 과반수를 획득하며 그 어느때보다 안정적인 4년 임기를 보장받았습니다.
퀘벡지역을 제외하면 고른 지지를 받았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는 야당의 잦은 흔들기로 인해 충분히 일을 할 시간을
부여받지 못한 하퍼 정권에게 기회를 한번 주겠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23년만의 원내과반수 안정의석보다 더 캐나다 정치판을 놀라게 한 것은 150여년의 캐나다 역사에서
여러가지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이슈를 선점하고 실행하면서 캐나다를 오늘날 선진국으로 만들었고 그때문에 20세기
대부분의 기간을 집권당으로 보냈던 원내 제1야당이었던 자유당이 31석의 원내 3당으로 몰락해버린 겁니다.
심지어 자유당당수이자 유력한 총리후보였던 마이클 이그나티에프마저 자신의 지역구에서 낙선했으니 말 다한거죠.
그러나 정작 가장 놀라운 이번 총선의 이변은 보수당의 과반수획득도 자유당의 몰락도 아니었습니다.
50년대 말 창당되었으나 그간 쭈욱 원내 4당 혹은 5당을 전전하던 군소정당인 잭 레이턴 당수의
신민주당(NDP)이 무려 102석의 의석을 확보하면서 이번 총선 최대의 화제와 파란을 일으킨 것이지요.
언론들도 하퍼의 과반수 획득보다 신민주당의 대약진, 대도시지역과 서부연안에서의 선전, 그리고 퀘벡주에서의
싹쓸이에 가까운 압도적인 승리에 대해 연일 보도의 촛점을 집중했을 정돕니다.
더구나 이들 신민주당은 캐나다의 정당 가운데 유럽식 사민주의를 신봉하는 가장 좌파적이고 진보적이며 혁신적인
정치를 부르짓는 정당이었다는 점에서 신민주당의 급부상은 캐나다의 정치지형과 판도을 일시에 바꿔놓았습니다.
자유당도 자유당이지만, 그간 퀘벡주를 근간으로 분리주의를 표방해온 블록퀘벡쿠아는 고작 원내 5석으로 완전히
몰락했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의 최대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서부 비씨주에서는 원내 7선의 보수당
베테랑을 꺾고 처음으로 녹색당 여성의원이 당선되어 신민주당의 약진 못지 않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지역주의가 먹히지 않게 되었고 환경에 대한 높은 관심이 녹색당을 눈여겨 보게 되었다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당초 도저히 게임이 안될거라도 했는데도 이 여성후보는 연일 토론회에서 치열한 논전을 벌이며 비씨주 총선의 최대 화제가
되더니 결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보수당 정치거물을 꺼꾸러트리면서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다시 입증했습니다.
지금 녹색당은 우리에게 기회를 좀 더 준다면 캐나다 전체를 바꾸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번 캐나다 총선의 결과로 드러난 민심은 대략 이렇다고들 합니다.
먼저 잦은 정쟁으로 집권할 생각에만 몰두했던 자유당에겐 경고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전체 지지율은 19%라는 점에서
자유당은 향후 노력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재기의 기회를 준 셈입니다. 당수에서 물러난 이그나티에프 역시도 이점을
강조하면서 당원들과 당선자들에게 더욱 분투를 주문했던 것도 이때문이겠지요.
그리고 하퍼 보수당에게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줄테니 이번엔 제대로 해보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보수당 스스로도 이미 토로했듯이 지금 의회의 과반수라고는 하나 소선거구제의 이점을 본 부분을
생각하고 전체 득표율 39%를 생각하면 경제부분에서의 회생과 안전관리를 빼고는 다른 사회분야에
대해선 손도 대지 말라는 경고로 봐야 합니다. 가장 극명한 근거는 바로 이제 제1야당이 중도 우파수준
의 자유당이 아니라 중도좌파에서 급진 좌파의 중간쯤에 있는 사민주의 신민주당이라는 사실입니다.
하퍼 보수당 내각은 그 어느때보다 깐깐하고 전투성향이 강한 신민당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지난 자유당과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던 시절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게 생겼으니까요.
이미 잭 레이턴의 신민당은 하퍼의 신자유주의 성향의 정책과 사회정의에 어긋나는 보수적 정책과 행태에
대해 철저하게 메스를 대고 캐나다 시민들의 기본적인 복지와 생활수준 향상 특히 약자에 대한 보호
그리고 보편적인 의료서비스와 교육의 질을 높히는데 더욱 매진하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으니, 드디어 과반수를
얻은 하퍼지만, 더 만만치 않은 잔소리꾼 시어머니를 옆에 두고 일을 해야 할 앞으로의 4년... 더구나 이렇게
밀어줬는데도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면, 그 것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묻게될 다음 총선까지 맘을 놓을수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더구나 31석으로 몰락한 자유당도 야성을 회복해 더욱 공격적으로 의회에서 보수당을 공격
할게 뻔한 상황에서 하퍼는 지난 몇년처럼 야당의 흔들기 핑계를 더이상 대지 못하게 된 상태에서 실력을
발휘해햐 하니, 결코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보수당의 비전이라는 게 워낙 뻔했던 것이 사실이라.
31%의 전국득표율을 얻으면서 집권당으로의 직전단계에 이른 신민주당 역시 어깨가 무겁긴 마찬가지입니다.
뜨듯미지근한 자유당과 뭔가 다른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도 있지만 이제 원내 제1야당이 된 상황에서 과거
군소정당 시절처럼 너무 급진적이거나 전투적인 모습만으로는 언제 다시 노회한 자유당과 보수당의 틈새에서 몰락할
지 알 수 없고 향후 집권을 위해서는 신민당의 경험부족과 국정수행능력에 대해서 좀 더 보편적인 유권자들의 지지세를
확보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특히 퀘벡에서의 압도적 지지가 주는 여러가지 함의도 생각 많이 해야할 대목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의 가장 위대한 승리자는 바로 캐나다 시민들이 아닌가 합니다.
실로 절묘한 선택을 통해서 정치가들에게 여러가지 다양한 의미와 경고를 부여했으니까요.
만약 지금의 경고와 의미를 정치가들이 또 망각한다면 그들은 언제든지 이번처럼 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하려 들것입니다.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한마디로 이 나라의 시민들은 정치가들과 정당을 쩔쩔매게 했습니다.
세계경제가 어렵다고 합니다. 옆나라 미국은 아직도 헉헉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특별할 게 없는 나라의 경제는 불황이기는 해도 서서히 부동산의 가격은 서브프라임 사태
이전을 회복해가고 있고 새로 짓는 건물들도 조금씩 늘어가고 있습니다. 광범위한 사회보장시스템으로
실직을 해도 우리네 사회처럼 이걸로 가장이 자살하거나 일가가 동반자살을 꾀하는 일들은 벌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들어서는 정규직이 조금씩 다시 불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하니 더더욱이나 하퍼정권에게
기회를 다시 준 것도 이유가 없진 않다 싶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감시자가 신민주당이니 더 경이롭고요.
9.11로 수백명의 자국 시민들이 목숨을 잃는 바람에 울며 겨자먹기로 아프간에 파병을 한 입장이지만
이나라의 급진 좌파정당 신민주당은 이 일을 추진했던 당시 집권당이자 이제 원내 3당이 된 자유당에
대해서 '너희들은 이래서 진보가 아니야'라는 식의 교조적인 담론으로 정쟁이나 말싸움을 유발하진 않습니다.
그들은 진보의 가치를 이야기하긴 해도 우린 아프간 파병에 반대하니깐 진보다라는 식의 어설픈 한국식
윤똑똑이 논리를 떠들만큼 멍청하거나 현실감각이 떨어지진 않는듯 합니다.
미국에 지정학적으로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나라가 미국이 지금 저렇게 몰락해가고 있는데도
그럭저럭 버티면서 자기 실속을 차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원동력은 민의가 정확하게 대변되는
정치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또 이를 강제하는 시민들의 힘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공휴일이 아닌 평일에
총선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65%라는 선진국치고는 높은 투표율로 정치에 자신들의 생각와 의사를 반영하는
캐나다 시민들의 지혜와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요? 더구나 여당에겐 일할 기회를 주면서도
이를 감시할 제1야당은 가장 급진적인 좌파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캐나다 시민들의 정치적 노림수는
정치인들 자체보다 더 노회하고 야무졌다는 점에서 미소를 짓게 합니다.
새롭게 개원할 캐나다의 새 의회는 무척 재밌는 승부가 될 거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 새의원들 모두 유권자들의 따가운 눈초리와 감시를 받고 있습니다.
아마 까다로운 자신들의 고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들은 사력을 다해야 할 겁니다.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해야만 기회가 온다는 걸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민심이 정치에 그대로 반영되는 시스템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케 해준 총선이었습니다.
우리사회는 왜 이렇게 안되냐고 푸념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이런 시스템과 시민수준을
획득하기까지 어떤 노력과 과정을 겪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우리도 할수 있습니다!
민의가 정치를 결정하고 민심을 진정 두렵게 여기는 정치인들만이 정치하는 세상 만들어봅시다.
후광과 노무현 두분은 누구보다 그런 쪽에 가까운 정치인들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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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민중님의 댓글
민중 작성일
캐나다 시민들의 높은 정치의식과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이 정치의 판도를 바꿨군요.
우리나라도 한때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았던 나라이기에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할 능력이 있는 나라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정신을 차려서 사람사는 세상을 이뤄야 할 것입니다.
폰툰님의 댓글
폰툰 작성일
캐나다는 여러면에서 정말 본받을만한 점이 많은 부러운 나라이군요.
우리도 언젠가는 이와 유사한 수준으로 발전해야 할텐데...아직도
더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겠지요.
민중님의 말씀대로 모두들 각성해서 보다 상식적인 나라가 되도록
지속 힘써야 하겠습니다.
캐나다 정세관련 좋은 내용 올려주신 나그네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