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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짱 당신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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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조
댓글 0건 조회 1,707회 작성일 11-05-30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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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천심이라

세월은 항상 지우개를 가지고 다니며 사람의 삶과 가슴속에 있는 희노애락을 공평하게 지어준다. 5월  이맘때면 이 땅 곳곳에서 애통함을 담은 노란 종이비행기와 풍선이 세상을 노랗게 물들이며 노짱을 더욱 생각나게 한다. 행사장마다 노란색 비옷을 입고  노짱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거리는  붐비기 시작한다. 그들은 애석함과 비통함을 지워가며 노짱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다.

   

해 마다 5월의 끝자락에 서면 애통한 마음이 교차하며 노짱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왜 우리는 세월이 더 할수록 그분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지난 날 가장 서민적인 사람의 향기가 숨어있었기에 이 땅에 서민들은 그분을 어버이처럼 스승처럼 사랑하고 존경했다. 퇴임 후 봉화를 향해 달려오는 뭇 백성들의 마음은 이웃 집 아저씨를 만나러 가는 친근함으로 봉화를 찾아 갔다. 그들을 오라는 사람은 없었지만,  스스로 서민들은 연일연야 봉하로 모여들었다.  
   

그 당시 모여드는 민심을 보면서 망언을 퍼부었던 금배지들도 있었다. 그들은 책임 없는 말을 내뱉으며 ‘버스를 대절해서 사람을 모운다,  이러다가 나라가 반쪽 난다, 아방궁 안에서 정치를 한다.'는 등 두려움에 떨고 있는 딴 나라 사람들은 퇴임한 노대통령의 인기를 눈에 가시처럼 보았다.

흠집을 노린 끝에 딴 나라(한나라당)당 맹공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여론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2008년 봉하마을 사저에 ‘아방궁을 꾸미고’있다는 억측을 퍼트리는 맹공분자들이 있었다. 홍준표 맹공은 “혈세를 낭비해 봉하에 초 호화판 숲을 만든다.”라 했고, 이은재 맹공은 “웰빙 숲 앞에 골프연습장, 그리고 사저 지하에 아방궁을 만들어 놨다.”고 했다. 또한 조윤선 맹공은 “사저 주변은 한 마디로 노방궁”이라며 거짓 증언을 만발했다.

지금이라도 그들을 데려다가 봉하 사저를 탐방시켜 초호화판 숲과 골프연습장, 그리고 아방궁을 찾게 해야 한다. 만약에 어느 것 하나 찾지 못할 경우에는 그들의 사비로 반드시 짓게 해야 한다. 책임 없이 국민의 귀와 눈을 흐려놓았고 호언장담처럼 거짓을 했다. ‘아니면 말고’식의 책임 없는 입방아는 졸개집단들이 하는 병정놀이다. 어찌 한 나라의 지도자의 자리에서 국민의 세금인 혈세로 장난치고 사는 것인지, 이제는 정신 좀 차려야 할 것 같다. 탐욕자의 자리에 앉아서 거짓과 음모를 퍼트리는 맹공들은 지금이라도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드디어 딴 나라당(한나라당)대표로서 처음 봉하마을을 방문한 황우여 원내대표가 그들이 말하는 초호화판 봉화를 다녀왔다. 그가 사저를 돌아보고 “소박하고 조촐하다.”는 표현을 했다 한다. 아방궁이라고 거짓을 일삼았던 딴나라당 몇 몇 맹공들 입장과 다름을 보면서 그들이 속히 거짓의 옷을 벗고 사죄하기를 바란다.

민심은 정의를 향해 흐른다

최근에 여러 나라에서 흩어져서 살던 이민자들이 고국 방문길에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 마디씩 감탄사를 던졌다. “야, 지금 대한민국은 참으로 잘사는 나라다. 전국이 공원이요, 대형건물과 넓은 하이웨이 길들이 코리아의 위상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네요.”그들은 가는 곳 마다 놀라며 기뻐했다. 필자는 이들을 향해 반드시 꼭 한 마디 상기시켜주었다. “대한민국은 정치를 잘해서 국민이 잘사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깨어있고 국민이 부지런하고 정직해서 잘사는 나라다.”라고.

얼마 전, 인터넷에 재미있는 통계가 나왔기에 관심 있게 읽어보았다. 역대 전 현직 대통령 가운데 ‘다시 뽑고 싶은 대통령’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1위, 2위에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다시는 뽑고 싶지 않는 대통령......,”으로 라는 기사가 온라인에 떴다.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확인하고 싶어서 기사를 열었다. ‘더 좋은 민주주의연구소’(소장 백원우 의원)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지난 9~10일 무작위 자동응답방식(RDD)으로 99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과반수가 넘는 57.5%, 노무현 대통령은 47.4%로 2위, 김대중 전 대통령이 39.3%로 3위를 차지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가장 궁금한 것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지명도다. 예상대로‘다시 뽑지 않겠다.’는 의견이 72.2%를 기록해, 다시는 뽑고 싶지 않은 대통령으로 당첨 된 것이다. 여론과 통계는 가장 믿을 수 없는 통계라지만, 그 차이는 작은 격차를 보여주기에 이만한 격차는 흐르는 민심에 맡겨야 할 부분이다. 옛말에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설이 그냥 의미 없는 심(心)은 아니기에 말이다.

   

오늘도 추모 행렬이 계속되는 가운데 노 짱을 그리는 민심들이 이곳저곳에서 모여들었다. 그들 대부분은 어떠한 당리당략적인 조직을 위한 모임이 아닌, 오직 가신님에 대한 그리움을 나누려고 모여든 인파다. 그곳에 가면 노 짱에 대한 실오라기만 한 흔적이 남아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서다.

2년 전, 필자 또한 한 마음으로 봉하를 향했다. 직접 가서 보야 할 것과, 느껴야 할 것들을 찾아 부엉이바위로 갔다. 잔인한 5월은 찬란한 봄과 함께 온 산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것은 민초들이 애통해하며 날리고 있는 노란 종이비행기와 노란색 리본이다. 노란색 리본에는 비통함과 애석함이 담긴 고백들이 온 산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노짱의 비보를 듣는 날 아침, 허탈감에 빠진 민초들은 모든 삶을 뒤로 한 채 봉하로 모여들었다. 각 도시마다 작은 군 소도시마다 땅을 치며 통곡했던 날이다. 제아무리 폭풍과 비바람이 미친 듯이 기승을 부려도 언젠가는 멈출 것인데, 노짱은 홀연히 삶의 끈을 놓아버렸다. 그는 저 죽음의 강을 건너 5월의 영령들 곁으로 떠나 버렸다. 세상은 다시 어둠 속에서 눈먼 자들의 도시가 되어 울부짖었다. 누가 어미가 되어주고 누가 스승이 되어주겠는가.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남겨준 그 말은 바로 ‘원수도 사랑하라’는 진리로 남았지만, 그저 애통한 마음은 하늘에 이르고 있다. 해가 갈수록 영원히 민초들의 가슴속에서 살아있는 지도자로 살아있지만, 그래도 그립기는 세월이 갈수록 더해만 간다.
   


단 한번만이라도 언론과 방송이 노짱의 애통함과 참담함의 목소리를 대변해 주는 자 없었기에 인고의 아픔을 홀로 감수해야 했다. 언론은 정의와 약자를 위한 그 많은 희생을 허공에 날려 재가 되게 했다. 또한 방송은 도덕성에 떡 매를 치고, 여론몰이 물고문으로 그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렸다. 끝내 정권의 야비함은 민초들의 어버이를 잃게 했다. 이제 누구와 함께 아파해야 하고, 누가 민초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겠는가. 수 백, 수 천 을 죽인 자는 여전히 경호를 받으며 굿굿하게 살아있다. 그리고 만수를 누리면서 민초의 피로 배를 채우고 있지 않은가. 이들은 양심에 화인을 맞았기에 기생충처럼 백성의 피를 빨고 산다. 자자손손 아벨의 억울한 피로 탐욕을 채우며 살고 있다.  

   

그러나 노짱은 세상이 감당치 못했던 큰 별로 약한 자들과 함께 좁은 길 가셨기에 세상은 깊은 잠을 깨고 일어나 큰 별이 떨어짐에 더욱 아쉬워하고 있다. 모든 언론과 방송, 그리고 큰 자들은 당략을 모아 노짱을 벼랑 끝으로 밀어 버렸지만, 그는 죽어도 영원히 죽지 않은 자로 남았다.

다시 자연의 한 조각으로 돌아가 흙이 되어 침묵으로 반기는 노짱의 자취를 그리워하며 민초들은 모여든다. 한 줌의 흙이 되어 삶과 죽음을 자연의 한 조각으로, 삶과 죽음을 분리가 아닌 하나로 보여주었다. 좌와 우가, 진보와 보수가 서로 다름을 수용 할 줄 아는 상생'의 날개를 펴야 한다는 진리를 남겨 주었다. 상생의 날개는 카메라 후레쉬 앞에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살신성인 정신이다. 복지와 민주주의, 공정사회를 외치면서 부자 감세, 대기업의 횡포, 업적주의에 사로잡힌 4대강개발 사업은 공허한 말장난일 뿐이다.

진정한 동역 자와 동반자는 낮은 곳에서 피땀 흘리며 사는 민초들이다. 진정 이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이 '상생'이다. 동업자만 살아남는 사회는 불공정한 사회이며, 진정성이 사라진 정책이다. 역사에 남기 위한 업적과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성 과시주의를 멈추어야 한다. 한 사람의 처절한 죽음 안에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희생이 숨어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억울한 희생을 당리당략이나 조직의 힘으로 이용하는 것은 가신 분의대한 배신이다. 잊어야 할 50년과 잃어버린 10년이 함께 쌓아올린 양 날개로 상생하며 날아야 한다. 이제 그만 ‘잃어버린 10년’타령은 멈추고,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할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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