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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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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055회 작성일 22-08-15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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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

 

4

주혁민은 당위원회 아침모임을 끝내고나서 몇개 생산직장들을 돌아보고 유압배관작업장으로 갔다.

유압배관은 《HM기》의 설비들중에서 가장 만들기 어려운 중요설비들중의 하나여서 주혁민이 늘 관심을 돌려왔었다.

유압배관작업장은 공업시험소 아래층에 있었다.

사면벽에 여러개의 공기창을 만들어놓은 장방형의 작업장은 목구멍과 코안을 알싸하게 하는 자극적인 가스냄새로 가득차있었다. 그것은 작업장 한가운데에 커다란 원통난로모양으로 세워놓은 작업로의 배기통에서 뿜어나오는 가스냄새였다.

시험로 웃부분에 코끼리코처럼 길다랗게 련결된 배기관구멍에서 연기같은 재빛가스가 뿜어나올 때마다 퍼런 불꽃이 튕기며 펑펑 고무풍선이 터지는듯 한 소리가 났다. 배기가스와 산소가 접촉하면서 일어나는 불꽃튀는 소리였다.

안경을 낀 두 사나이가 작업로옆에 서있었다. 박준과 그의 아들 박순진이였다.

박준은 《HM기》제작단에 배속된 방조성원으로서 지난 3년동안 유압배관작업에 동원되였었다.

그의 아들 박순진은 단조직장에서 가열로를 보다가 1991년 1월부터 3톤공기함마를 다루는 단조공이 되였는데 교대작업을 끝내면 쉬지 않고 유압배관을 제작하는 아버지의 일손을 도와주군 하는것이다. 그것도 유전인지 순진은 이태전부터 아버지와 거의 도수가 같은 근시용안경을 끼고 다니였다.

한때는 아버지의 속을 태우던 불량청년이 이제는 효성이 갸륵한 젊은이로 되였다.

《수고들 합니다.》

주혁민이 작업장으로 들어서며 우선우선하게 말을 건네였다.

《어서 오십시오. 책임비서동지.》

로안을 들여다보던 박준이 반색을 지으며 주혁민에게 고개인사를 하였다. 아버지곁에 서있던 순진은 허리를 숙여 깍듯이 절을 하였다.

《유압배관들을 수봉에 다 실어보냈다지요!》

《예, 오늘 첫 새벽에 다 실어보냈습니다. 우리 〈HM기〉시험하는걸 보려 중앙에서 간부어른들이 많이 내려온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입니까?》

박준이 코허리에 걸린 안경을 추슬러올리며 물었다.

《예, 장군님께서 간부동지들에게 자신을 대신해서 라남에 가보라고 지시하셨다고 하오.》

주혁민은 불현듯 목이 메여올라 뒤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눈을 슴벅이며 작업로의 화구를 열고 들여다보았다. 시뻘건 불길이 뱀의 혀바닥처럼 날름거리며 타오르고있었다. 이윽고 그는 화구를 닫아버리고 로허리에 달려있는 수도꼭지모양으로 된 개페기를 돌리였다. 그러자 윙- 소리를 내며 가열로의 중간문이 열리였다. 한증칸처럼 화끈 달아있는 통안에 각종 규격의 관들이 거미줄모양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그것이 유압배관 구부림작업을 하는 칸이였다. 주강직장에서 관을 뽑아오면 그것을 로 중간칸에 넣어 구부림작업을 하는데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모든 관들의 두께와 곡면도에서 0.001미리메터의 정밀도를 보장하여야 하기때문에 이 작업을 대단히 힘든 정밀기술작업이라고 하는것이다.

《그래 어떻소? 유압배관이 제대로 만들어진것 같소? 지배인이 유압배관때문에 늘 근심했는데.》

주혁민은 개페기를 다시 돌려 배관구부림칸문을 닫아버리고 박준에게 물었다.

《설계대로 하느라고 하고 검정실도장을 받긴 했지만 어디 알겠습니까.》

박준은 조금 이죽거리는 말투로 중얼거리더니 바른쪽 귀에 걸린 안경테를 손으로 쥐고 《설태섭인 늘 제가 한 설계는 문제가 없다면서 설비를 가공하는 기능공들의 수준이 낮다고 타발합니다. 꼭뒤에 피도 마르지 않은 젊은 아이가 아주 건방져요. 그전에 서정후부부장동진 5월10일종합공장의 기능공수준은 대단히 높은데 기사, 설계원들의 수준이 낮다고 걱정했습니다. 어쨌든 설태섭이 틀려먹었습니다. 그가 너무 건방지게 대가연하기때문에 기술협의회 때마다 고정순이가 쏴주군 합니다. 설태섭이와 고정순이 자주 싸움을 합니다. 책임비서동지, 그걸 알고계십니까?》

주혁민은 물론 알고있었다. 그는 설태섭이가 젊은 사람으로서 뛰여나게 실력이 높고 머리가 총명할뿐아니라 적극성, 진취성이 있기때문에 무척 아끼고 사랑하였다. 그에게 우월감이 지나치다는것도 인정하고있었다.

주혁민은 새삼스레 작업장을 둘러보았다. 여기에 있는 모든것, 작업로도 유압배관도 다 설태섭이 설계한것이였다. 확실히 그 젊은이에게는 놀라운 재능이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설계한것들이 모두 만점짜리로 된것은 아니였다. 주혁민의 눈으로 보아 우선 배관작업로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작업로 배기관구멍에서 펑끗펑끗 불꽃을 일으키고있는데 이것은 매우 안전하지 못하였다.

최악의 경우 폭발할 위험성도 있었다. 그래서 주혁민이 안전대책을 취하여야 되겠다고 몇번 권고하였지만 설태섭은 배기관에서 나오는 가스성분, 가스배출량, 산소와의 접촉면적을 수학적으로 세밀히 계산하였기때문에 절대로 폭발하지 않는다고 장담하였다. 실지 2년동안 유압배관작업로에서는 아무런 사고도 고장도 없었다. 하지만 지난날 폭발사고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있는 주혁민은 작업로의 안전계수를 최고로 높여야 한다고 권고하고 그자신이 몇가지 대책안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설태섭은 저를 믿으시오, 과학을 믿으시오 하는 태도로 나오면서 귀담아듣지 않았다.

《설태섭이가 고집이 세고 지내 자기를 과신하는 결함도 있지만 난 오히려 그것을 좋게 생각하오. 젊은 사람이라 가끔 분별없이 행동할수도 있으니 너무 고깝게 생각지 마오.》

주혁민은 사실 과학문제를 놓고는 직위여하를 가리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설태섭의 과학에 대한 신념과 결패가 마음에 들었다.

《HM기》를 우리 식으로 개조할데 대하여 제일 적극적으로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나섰던 기술자도 설태섭이였다.

《책임비서동진 다 좋게 생각하면서 곱다곱다 하구 칭찬만 해주다간 사람 못쓰게 만듭니다. 어른이건 아이들이건 잘 다루어야지 큰 경을 칠수 있습니다. 그 소리 들었습니까? 오성오지배인이 전극생산기지를 없애버리겠다고 선포한걸 말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주혁민은 박준의 느닷없는 말에 몹시 놀랐다.

《그거 보십시오. 깜짝깜짝 사람을 놀래우는 일이 생기지 않습니까.》

《오성오지배인이 그랬단 말이요?》

주혁민은 믿어지지 않았다. 원래 오성오는 전 지배인이 살아있을 때 전극생산기지에 대하여 사이비자력갱생이요 뭐요 하며 삐뚠 소리를 하던 사람이였다. 그러나 주혁민이 되게 비판을 해준 다음부터 지금까지 3년동안 그의 입에서 더는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았었다. 그러던 오성오가 아무리 지배인이라도 당위원회와 토론도 없이 별안간 전극생산기지를 없애겠다고 선포했다니 선뜻 믿기가 어려웠다.

혹시 그 《광증》이 3년만에 다시 재발하는것이 아닌가?

《그런 소린 어디서 들었소? 지배인이 당위원회와 토론도 없이 함부로 그런 말을 하겠는가.》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원래 그 사람에게 독선적인데가 있었습니다. 아주 옳지 못합니다. 지배인 3년을 하더니 그 사람의 머리에 뿔이 돋아나기 시작하는것 같습니다. 전 원래 오성오와 10년째 말을 안하고 지내는 사람이지만 그 소릴 들으니 더 미워집니다. 김동철지배인이 오성오를 얼마나 사랑해주었는가요. 그런데 오성오가 김동철의 피땀이 어린 〈유산〉을 짓뭉개 없애버리겠다니 그게 인간입니까? 어떻게 그럴수 있습니까?》

박준은 작업복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여 입에 물었다. 라이타를 켜는 그의 손이 떨리였다.

주혁민은 오성오의 처신이 리해되지 않았다. 전극생산기지를 없애버리면 앞으로 전극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것인가?

주혁민은 오성오의 인간성을 말하기전에 우선 그것을 리해할수 없었다.

왜 없애버리려고 하는가? 전 지배인의 영상을 지워버리고 자기의 모습을 돋구기 위해서인가. 세상에 그런 사람도 없지 않다. 하지만 오성오지배인은 절대로 그런 사람은 아니였다. 혹시 어디서 와전된 말을 듣고 박준이 가뜩이나 미워하던 오성오를 타매하게 된것이 아닐가 싶었다.

박준이 스스로 말한것처럼 그는 실지 10년전부터 오성오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한 장기적인 《랭전》은 5월10일종합공장 로동계급이 제2차 특수정밀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을 전국에 호소한 이후 즉 1985년 가을부터 생긴것이였다.

그 시기 박준은 여러가지 효률높은 공작기계공구들을 창안하여 《로동자발명가》로 이름을 날리게 되였는데 특히 최신 특수정밀기계로 이르던 110미리메터보링반 주축함을 개조하는데서 특출한 공적을 세웠다.

그러나 그후 공동로동을 하는 기계조립단계에서는 박준이 일본에 있을 때 생긴 위궤양이 도지여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때 기술부기사장으로서 110미리메터보링반제작을 총책임지고있던 오성오는 그를 집단적인 공동로동에서는 몸을 사리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어느날 작업총화때 명예가 차례지는 일에서는 죽을지 살지 모르고 일하다가 공동로동에 들어가서는 배가 아프오 머리가 아프오 하면서 몸을 아끼는 개인리기주의, 공명주의자들이 있다고 박준의 이름을 실례로 들어 맵짜게 비판하였다.

오성오는 박준을 비판하였을뿐아니라 그따위 공명주의자들은 정치적, 물질적평가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그해 년말총화때 박준은 아무런 평가도 받지 못하였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박준은 오성오와 인간적으로 결별하고 말을 하지 않았다.

박준이 지배인은 무척 싫어하지만 책임비서에 대한 감정은 매우 좋았다.

주혁민은 박준의 작업복 웃주머니에 꽂혀있는 풀색 참대빗을 새삼스레 여겨보았다. 그가 호신부처럼 늘 몸에 지참하고 다니는 그 푸른 대빗은 1992년 주혁민이 함경북도 당일군대표로 중국국경절기념행사에 참가하고 돌아왔을 때 외국려행기념품으로 준것이였다.

《내가 외국려행을 하는 동안 동문 새로운 절삭공구를 창안했다더구만. 그런데 난 빈손으로 왔소. 이번에 산 물건이라군 이것밖에 없소.》하고 주머니에서 빗을 꺼내주엇다.

번대머리인 박준에겐 빗이 전혀 필요없는 물건이였다. 그런데도 그는 여태 몇년이 지나도록 그것을 언제나 몸에 간수하고 다니였다.

주혁민은 생각에 잠긴채 천천히 창문가로 걸어갔다. 거기서 반로천작업장인 전극작업장이 곧추 내다보이였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전극작업장에서 분주히 돌아치고있었다. 한쪽에선 김이 피여오르는 가열판에다 흑연과 피치, 골재따위의 전극소재들을 말리우고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혼합기에 넣어 반죽한 전극소재들을 다짐기로 두드려 다지고있었다.

뜨거운 피치연기가 뿜어나오는 혼합기에서 되게 반죽된 혼합물을 삽으로 퍼서 형틀에 넣고 그것을 다짐판으로 골고루 다져 전극을 찍어내는 그 작업은 심한 고열과 독한 가스를 피할길 없는 유해로동이였다.

(전극작업장 설비들을 갱신해서 유해로동을 없애야 한다. 그러나 전극작업장을 절대로 없애서는 안된다.)

주혁민의 결심은 확고하였다.

그는 기사장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지난 기간 기사장도 전극작업장의 설비가 현대화의 견지에서 볼 때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말을 하던 사람이지만 그것을 없애버리는데 대해서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것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너무도 명백한 일이였다.

얼마후 주혁민은 오성오를 만나려 지배인실을 찾아갔으나 문이 걸려있었다. 그 아래층에 있는 기사장방도 비여있었다. 11월 9일 《HM기》시험가동을 위한 준비로 두사람이 다 바삐 돌아가는 모양이였다.

주혁민은 할수없이 전극작업장으로 향하였다.

그는 오전 한겻을 전극작업장에서 로동자들과 같이 일하면서 군중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박준의 말은 죄다 사실이였다. 오성오는 분명 전극작업장을 없애버릴 결심을 한것 같았다.

(오성오지배인에게 나쁜 버릇이 생기는것 같군!)

주혁민의 머리에서 이날 처음으로 그런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도 래일은 《HM기》제작단 성원들과 함께 수봉작업장으로 가볼 생각이였다.

그때 오성오에게 단단히 추궁할 작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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