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의 진보통합 연석회의에 대한 결과에 대해
73차 최고위원회 이정희 대표 모두발언
일시 : 2011년 5월 30일 8시
장소 : 중앙당사 대회의실 ○ 5차 진보대통합 대표자 연석회의 결과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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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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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 새벽 3시 40분,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 5차 회의가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끝났습니다. 5차 연석회의는 종료되었지만 협상을 위해 노력하기로 한 시간이 남아있기에, 회의 내용에 대해 길게 언급하는 것을 삼가왔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 위해 다른 회의 참석자 없이 대표자들만 논의하면서 동시에 회의 내용에 대해 사실과 다른 보도도 많고 여러 추측도 있어, 간략하게라도 말씀드리려 합니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안의 첫번째 차이는,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선거연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습니다. 진보신당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책, 곧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도입, 부자증세 등 신자유주의 극복과 관련된 정책에 대한 “가치연대가 전제되지 않으면 선거연대를 추진하지 않는다”고 쓰자고 계속 주장했습니다. 저는 “가치연대에 근거하여야 한다”고 쓰자고 말했습니다. 독자완주를 원칙으로 한 마당에 무슨 차이인가 싶기도 하실 테지만, 실제 야권연대를 추진하다보면 엄청난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열거한 정책 모두 다 필요한 일들이지만, 지금의 민주당 상황에서 받아들이지 못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진보정당이 힘을 키워 본선에 나가 완주하는 것이 저희가 추구하는 바이지만, 안타깝게도 행여 그렇지 못하게 될 때를 배제할 수도 없습니다. 선거연대 논의의 길 자체가 막히다시피 너무 좁아져서는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전제’라는 단어를 그대로 수용하기 어려웠습니다.
두번째 차이는, ‘패권주의’라는 단어 문제였습니다. 진보신당은 이 용어를 꼭 써야한다고 했습니다. 패권주의라는 말을 쓰려면 분파주의도 써야한다는 의견도 참석자 가운데 있으셨습니다. 저는 둘 다 쓰지 말고 미래의 민주적인 운영의 방법을 쓰자고 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 누구에게도 어떤 경우에도 분파주의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을 수 있고 소수로 외면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제 통합정당을 만들자는 판에, 서로 믿고 함께 일해야 할 사람들에 대해, “당신은 무슨 무슨 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에게든. 이것은 제가 함께 일하겠다고 뜻을 모은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당 운영방안은 더 구체로 논의할 것들이 있지만, 일단 그 날의 합의문구에서는 서로간에 어떤 차이도 남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과거로 지금과 미래의 당신을 재단하지 않겠다는 생각만 있다면, 서로 상처를 뛰어넘으면서 그것으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대에게 믿음이 생기면, “그래, 그 때 내가 생각이 짧았어”하고 막걸리 한 잔 힘을 빌어서라도 이야기할 수 있게 됩니다. 누구 잘못이라 딱히 말하기 어려운 것도, 미안하다고 먼저 말할 수 있게 됩니다.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 넓게 열릴수록, 스스로 돌아보고 서로를 치유할 수 있는 여유가 더 많아지지요. 그 길을 빨리 열고 싶었습니다.
세번째 차이는, 북한에 대한 서술이었습니다. 진보신당은 “3대 세습을 비판한다”는 내용이 꼭 들어가기를 주장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남과 북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해 남북의 상호교류와 협력을 증진시킨다”는 안을 냈습니다. 구체적이지 않다고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셔서, 저는 “북의 권력승계문제는 남한 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로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6.15 공동선언에 따라 북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말도 더 넣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합의되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이 관심있으니 정당의 입장을 가져야하고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 진보신당 주장의 이유입니다. 저라고, 국민정당이라는 이유를 들어 눈 한 번 감으면 편하겠다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저도 국민들 눈높이에서 일하는 사람인걸요. 보수언론과, 심지어는 진보언론으로서 진보검증을 자처한 언론으로부터 시달리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고 지켜온 이유가 있습니다.
“네 입장은 뭐야? 왜 비판한다고 한 마디 못해? 말 못 하는 것 보니 북을 찬양하는구만!” 이것이 북과 관련된 문제에 관련해 진보진영에 가하는 보수진영의 공격방법입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공격받을 것 같으니 미리 자진해서 말해버리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쉬운 대처법입니다. 그 말 한 마디면 분단의 이분법이 만든 방어막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저는 쉬운 길을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쉬운 길을 택하다보면, 이분법의 폭력 아래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라도, 이분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왜 이 짐을, 국가보안법 사건 피고인도 아닌, 대중정치인인 네가 지려고 하느냐는 말씀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러나 같이 짐을 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도, 분단의 고통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반도에서. 진보운동을 해온 사람 치고, 누구든 이분법의 굴레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도 후보 시절, 장인이 좌익이었다는 공격에 시달렸지요. 하지만 노 대통령은 “나는 좌익이 아닙니다.”라고 피해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이분법에 맞선 그 기개가, 저는 부러웠습니다. 변호사로서도 국가보안법과 맞서온 제가, 진보정치인으로서 일하면서 노 대통령만큼도 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단의 이분법은 보수언론을 통해 국민들의 생각 깊은 곳에 잠재의식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분법 굴레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시도 자체가 불온으로 낙인찍힙니다. 맞서고 희생당하면서라도 이겨나가야 합니다. 세상에 그냥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뿌리 깊은 분단의식을 극복하는 것은 진보정당이 커나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제가 당대표라는 무거운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도, 변호사로서 일하면서 어떤 이념 문제에서 공격도 받은 일이 없이 편안한 생활을 해왔으면서도, 지금 이분법에 굳이 맞서서 공격받는 것을 감수한 이유입니다.
진보정당을 함께 하는 사람이라면, 동료가 가지는 이 책임감에 대해 최소한의 공감은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진보신당에 제안드린 내용은, 그 공감을 이루자는 것일 뿐, 더도 덜도 아닙니다. 진보정당 새롭게 만들어놓고, 분당 전의 민주노동당보다 몇 배 많은 분들을 모셔놓고, 또다시 말 안 하면 종북세력이라면서 동료에게 상처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과거에 당신들이 그랬던 것 잘못이다, 반성하라, 이렇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는 공감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그 공감을 위해, 우리 모두가 합의하는 6.15 공동선언을 기준으로 삼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한 걸음 나아가는 통합진보정당을 만들고 싶습니다. 또 다시 시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갈라서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만들어갈 진보정당은, 통합과 공감의 힘으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이 통합진보정당이 한국 정치에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고 공고히 하며 그 이후로도 면면히 이어져나가려면, 우리에게 있는 유일한 힘, 가장 강한 힘, 통합과 공감의 힘 말고는 의지할 것이 없습니다.
대표자들이 이미 그 이전에 약속한 대로, 제가 회의의 시작과 중간마다 확인해드린 대로, 5월 26일을 마지막으로 대표자 회의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3차 합의문에 쓴, 5월 말까지 합의한다는 시한까지는 며칠이 남았습니다. 마라톤 회의를 거치면서 서로의 생각을 최대한 확인했고 생각해볼 수 있는 조정안도 다 나왔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결심입니다. 남은 시간은 딱 하루뿐입니다. 통합과 공감의 기운이 넘치는 통합진보정당을 만들어, 우리를 기대의 눈으로 바라보는 분들께 보답하고 싶습니다.
대표자회의를 마치면서, 결렬을 선언하지는 말자, 미합의상태이지만 더 이상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회의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5월 31일까지 합의를 위해 노력하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이와 다른 취지의 언론보도는 제 발언의 뜻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왜곡시킨 것으로, 매우 유감입니다.
한 단계를 같이 올라서기를, 지금까지 긴 시간 연석회의를 함께 해오신 분들께, 특히 정당들에,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함께 갑시다. 다시는 헤어지지 맙시다. 서로 믿읍시다. 시대는 진보의 방향으로 흐릅니다. 미래는 우리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