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만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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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때문이다> / 송기역 지음 / 오마이북스 / 376쪽 / 1만 5,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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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만은 1964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전주 해성고에 입학한 해에 5·18 광주 민중 항쟁을 겪으며 사회에 눈을 떴다. 고교 시절 정부와 권력자를 비판하는 문정현 신부를 만난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조성만은 이때부터 신부를 꿈꿨다.
1984년 서울대 자연대 화학과에 입학하여 지하 모임과 명동성당 가톨릭민속연구회에서 활동했다. 1987년 6월 항쟁 시기에 서울의 거리와 명동성당에서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고, 그해 12월 대선에서 부정선거를 목격하고 투표함을 지키기 위해 구로구청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했다.
조성만은 왜곡된 역사, 인간을 돈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사회구조에 참담함을 느꼈다. 인간의 자유와 해방이 과연 무엇이고 어떤 모습인가를 본질적으로 질문하며 치열하게 고민하던 그가 끝내 내린 결론은 "결국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사랑 때문이다'"였다.
"사랑 때문이다. 내가 현재 존재하는 가장 큰 밑받침은 인간을 사랑하려는 못난 인간의 한 가닥 희망 때문이다. 이 땅의 민중이 해방되고 이 땅의 허리가 이어지고 이 땅이 사람 사는 세상이 되게 하기 위한 알량한 희망, 사랑 때문이다. 나는 우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고, 우리는 우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1988년 3월 18일, 조성만의 일기 중)."
조성만의 죽음을 전후로 대중적인 통일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1989년 임수경 씨와 문규현 신부의 방북에도 영향을 끼쳤다. 문정현 신부는 "임수경과 문규현은 '통일의 꽃'이 아니라 '조성만의 꽃'이다. 성만이가 그렇게 꿈꾸던 일이 두 사람을 통해 피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규현 신부가 방북하게 된 것은 조성만의 영향 때문이다"고 했다.
저자 송기역은 이 책을 88만 원 세대이자 촛불 세대인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23년 전 80년대 세대의 청춘 보고서라고 정의했다. 그는 "우리 역사상 최초로 혁명의 길을 모색한 80년대 세대를 조명함으로써, (체제 내적 삶에 포박된 1990년대, 2000년대 세대를 극복하려는) 촛불 세대들이 찾으려는 길과 희망에 단서를 제시하고 싶었다"고 했다.
매년 5월 15일, 명동성당 가톨릭민속연구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한 조성만 추모 모임 '성만사랑'이 추도식을 한다. 조성만을 기억하는 천주교 단체들은 그날의 고통과 의미를 간직하기 위해 조성만이 투신한 자리에 표지석을 세우려 하고 있다. 또한 조성만의 죽음을 '정치적 순교'로 규정하고, 순교자로 공식 지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명동성당과 주교단의 거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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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와이리좋노님의 댓글
와이리좋노 작성일좋은 내용 소개 감사합니다.
불꿈리님의 댓글
불꿈리 작성일
조성만 열사가 할복 투신하신 명동 그 위치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저는 가투중이었습니다. 그의 죽음과 그가 남긴 저 글은 저의 세계관 형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죠.
다시 조성만 열사를 생각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