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지금 이 시대, 희망버스의 의미 / 이도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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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희망의 버스’ 릴레이 기고 ② 이도흠 한양대 교수 | |
1·2차에 이어서 곧 3차 희망의 버스가 떠날 예정이다. 우리들은 왜 다들 바쁜 일정을 제쳐두고 그리로 달려가서 때로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맞고, 때로 따가운 최루액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때로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폭양을 견뎌내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는가.
교수 3단체(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학술단체협의회·전국교수노조)는 희망버스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한진중공업 사태를 놓고 두 차례의 세미나를 열었다. 그 결과 이 회사에서 행한 정리해고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조선업은 지금 호황기이며, 이 회사는 2010년에만 201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누적된 영업이익률은 삼성중공업·대우조선·에스티엑스(STX) 등 동일업종 조선사의 두 배에 달한다. 2010년 12월에는 인력감축을 통보한 다음날 174억원의 주식 배당을 하였다. 회사 쪽은 영도조선소의 수주실적이 ‘0건’이라며 경영상의 이유를 내세우지만, 지난 6월27일 노조와 노사합의를 한 직후 컨테이너선 4척(2억5000만달러)과 군함 2척을 수주하였다. 그러니 ‘영도조선소의 수주 0건’도 정리해고를 하기 위한 졸렬한 꼼수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비열한 자본과 불의에 저항하고자 사람들이 제 돈을 내면서까지 저마다에게 귀한 주말을 반납한 채 부산에 모였다. 쌍용자동차와 재능교육의 해고 노동자, 반값 등록금 시위 현장에 있던 대학생들, 그리고 장애인과 동성애자들도 보였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가혹하게 수탈당하고 현 정권의 야만과 독단에 삶의 평화를 앗긴 이들이 함께한 것이다. 지금 90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같은 일을 하고도 정규직의 2분의 1의 임금을 받으며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삶을 연명하고 있다. 그러기에 한진중공업 사태는 영도조선소를 넘어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인권에 관한 문제이며, 희망버스는 신자유주의에 희생당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저항의 상징이다. 한진중공업과 유사한 노동탄압은 쌍용자동차, 콜트·콜텍, 기륭전자, 광주 캐리어, 발레오공조 코리아, 오티스, 유성기업에서 반복되었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졸지에 거리로 내몰리고 때로는 용역이나 경찰로부터 모진 폭력을 당하였다. 쌍용자동차에서만 무려 15명의 해고자가 죽음 이외의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못한 채 목숨을 끊었다. 결국 야만적인 자본과 맞서서 투쟁하는 주체는 노조이고 조력자는 시민의 연대다. 이 국면에서 한진중공업 노조마저 자본과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에 패배하고 만다면,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는 어둡다. 한진중공업 투쟁은 21세기 한국 노동운동에서 절망의 막장이거나 희망의 서막일 것이다. 85호 크레인에서 190일 넘게 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과 그를 따르는 노동자들은 거의 죽음에 이르기 직전의 상태에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84호 크레인을 수리하고 매트리스를 까는 등 회사 쪽은 강제진압 준비를 하고, 강제진압이 시작되면 김진숙씨는 바로 뛰어내릴 것이다. 이 상황에서 시민마저 침묵한다면 파국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기에 희망버스는 단순히 야비한 경영자 쪽에 압박을 가하고 벼랑 끝에서 목숨을 내걸고 투쟁하고 있는 ‘소금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행위만이 아니다. 이는 고통받는 이들과 공감의 연대를 형성하는 정의의 실천이자 우리 스스로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저항하는 주체로 거듭나는, 곧 나를 되찾는 행위이다. 희망버스는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이들의 정의의 연대다. 약한 자의 고통에 내 고통처럼 공감하고 연대를 형성하는 그 자리에 신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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