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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그렇다면 꿇든가 아니면 잘리시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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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요지경
댓글 2건 조회 1,871회 작성일 11-07-15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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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변태들] 시세이도 노조 김미영 위원장의 '감정노동' 이야기
00249588.jpg김지현 (diediedi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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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동물들은 주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신체를 변형시키는 '변태'를 하곤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사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변태'를 하는 이웃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들의 이야기를 조명해 우리 사회의 '사회적 변태'는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좇아 보고자 합니다. - 기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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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에 들어서면 보이는 화장품 매장. 화장품 판매 노동자들은 개점과 동시에 사회적 변태를 해야만 한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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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객님. 어떤 제품을 찾으시나요?"

백화점이건 대형마트건 간에 우리는 물건을 파는 곳이면 으레 웃음 한가득 담긴 얼굴들을 만나게 된다. 고객이 왕을 넘어 신보다 위대한 존재로 '모셔지는' 사회. 판매 영업에서 '고객 감동은 곧 감동 소비'와 같은 말이 돼버렸음은 이미 자명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때문에 '모셔지는' 기분에 따라 소비의 정도가 달라지는 것은 이미 인지상정이다.

이런 인지상정 속에 당신을 모시는 사람들이 있다. 항상 웃는 얼굴로 고객을 맞아야 하는 그들은 서비스업 종사 노동자다. 백화점·대형마트·콜센터 등 다양한 분야에 퍼져 있는 그들은 출근과 동시에 자신의 모습을 탈바꿈해야 하는 사회적 변태들이다. 이런 '감정 노동'을 숙명으로 안고 살아가는 서비스업 종사 노동자들 중에서 매일 아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변태해야만 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백화점 화장품 판매 노동자들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살게 했을까. 평소 이런 궁금증을 가졌던 기자, 다소 무례하게 수화기를 들어 다짜고짜 인터뷰를 청했다. 다행히도 흔쾌히 인터뷰를 응해준 그녀. 그녀는 지난 2009년부터 그 '아름다운 노동자'들을 모아 활동하고 있는 시세이도 노조 김미영 위원장이다.

자신 감정을 자본 요구에 맞추는 것이 감정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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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실드(1979)의 감정노동의 4가지 차원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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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요?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웃으며 서 있어야 하잖아요. 보통 아침에 기분이 상당히 안 좋은 사람들이 많죠. 기분을 인위적으로 친절하게 바꿔야 하는데, 아침엔 잘 안 돼요. 그러다 점심이 지나면 조금씩 나아지기도 해요."

감정노동. 사실 감정노동은 최근에 떡하니 튀어나온 개념이 아니다. 1970년대 말부터 사회학계에서 이미 거론된 용어. 대개 서비스업 노동자들의 노동형태를 설명하는 말로 쓰여 왔다. 화장품 판매 노동자가 정의한 감정노동이란 무엇일까.

"감정노동이요? 어려운 말 빼고 쉽게 말하면, 감정노동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백화점이나 회사가 원하는 '친절모드'로 자신을 탈바꿈시키는 노동이죠. 사람이 살다 보면 욱할 때가 있잖아요. 그래도 자신의 감정을 통제해 가면서 무조건 웃어야 하는 노동이죠. 서비스업에서는 소비자는 어마어마한 존재니까요."

하지만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업종이건 간에 욱할 때는 늘 있지 않나? 기자는 김 위원장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감정노동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들어봤는데, 대개 '어쩔 수 없는 거야.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만 그러는 게 아니라고…'라는 식의 반응을 주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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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이도 노조 김미영 위원장
ⓒ 서비스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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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사람들이 감정 조절을 하면서 살아가죠. 하지만 서비스업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깊고, 감정 통제가 장기간에 걸쳐 일어납니다. 게다가 백화점 같이 밥줄을 쥐고 있는 쪽의 압박, 그리고 소비자들의 하대의식까지 겹쳐지면 그 노동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하게 돼요."

대개 화장품 판매 노동자의 경우, 화장품 회사에 직접 고용된 후 전국 각지의 백화점에 파견 나가 소비자들을 대하며 일하게 된다고 한다. 즉, 기업과 백화점, 그리고 소비자들의 사이에 껴서 업무를 수행하는 셈. 때문에 우리는 백화점에서 산 물건에 대해 하자가 발생해 항의를 하러 갈 경우 소비자가 우선적으로 매장 직원(판매 노동자)들부터 소위 '조지러' 가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거의 모든 백화점에는 '고객AS센터' 같은 상담창구가 존재하지만, 대개 백화점 측은 '이미지 실추'를 우려해 현장 판매 노동자들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짓기를 강하게 권장한다고 한다.

화가 나도 고객이 우선? 덕분에 무릎 꿇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백화점은 그렇다 쳐도, 소비자의 하대의식이라니. 아무리 한국이 천민자본주의국가라곤 하나 소비자의 의식은 나름대로 성장하지 않았던가.

"소비자 주권이 강해진 것은 좋은 일이죠. 근데 문제는 소비자가 주권을 행사해야 할 곳에서 이를 제대로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엄한 곳에서 (전부는 아니지만) '몰상식하게' 행사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화장품 판매뿐만 아니라 백화점 판매 노동자들 자체를 아랫사람 보듯 한다는 거죠. 백화점들이 고객들을 왕으로 만든 부작용인 것이죠."

이어 김 위원장은 실로 충격적인 사례를 털어놨다. 이는 지난해, 부산 L백화점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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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산 L백화점에서 일어난 사건. 사과를 요구한 고객은 판매 노동자를 무릎꿇게 했다. 백화점과 고객 사이에 끼인 판매 노동자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치인다. 그것도 웃으면서 치여야 한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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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L백화점에 평소에 '진상'을 부리는 고객이 있었어요. 근데 하루는 그 고객이 시세이도 매장에 와서 난리를 쳤다는 겁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매니저는 정상적인 상담 절차에 따라 백화점 측을 연결해 줬는데, 백화점 측에서는 현장에서 적당히 사과하고 정리하라는 거예요. 그 고객은 '사과를 할 거면 말만 하지 말고 눈에 보이게 하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현장 매니저가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그 고객 앞에서 무릎을 꿇었어요. 그러더니 그 고객은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했고, 그 매니저는 자기 지갑에서 현금 얼마를 줄 수밖에 없었답니다. 상황이 이 정도인데 백화점 측은 소문이 퍼질까 봐 쉬쉬했고, 결국 그 부담은 현장 판매 노동자가 고스란히 받게 된 것이죠. 이게 소비자 주권의 현 주소에요."

이렇게 번지수가 틀린 소비자 의식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화가 나도 고객이 우선? 그것이 절대 고객으로 하여금 감동을 불러일으키진 않는다.

산재도 인정받기 힘든 하지정맥류... 더군다나 제대로 쉴 공간도 없다

고객의 고함에 무조건 웃어야만 하는 그들. 괜히 인상을 썼다간 "이게 버릇없게 뭐하는 짓이야! 책임자 불러와!"라는 대꾸를 당하기 일쑤다. 이런 감정노동을 장기간 지속했을 때 생기는 부작용도 당연히 있겠다. 통제하던 감정을 한순간에 폭발시키는 때도 있을 성 싶다.

"물론 매장을 찾은 고객들한테는 감정을 분출하지 않아요. 그럼 큰일 나죠. 대개 가족이나 애인, 식구들에게 감정을 터트려요. 덕분에 화장품 판매 노동자들 사이에선 '이 일하는 사람은 혼자 살아야 한다'는 말도 나오는 걸요.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부모님이 자식 걱정돼 이것저것 묻잖아요. 근데 그 묻는 것 자체가 짜증 나는 거예요.

밖에서 온갖 말들을 들어왔으니까요. 아이가 있는 경우에는 아이한테 푸는 경우도 생겨요. 저는 한때 아이한테 소리 지르다가 목이 쉰 경우도 있어요. 돌아서면 미안한 거죠. 그뿐 아니에요. 감정노동에 의한 감정통제를 장기간하면 정신질환이 오기도 합니다. 공황장애나 우울증, 대인기피증 같은 것들이 생기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업계에서도 감정노동을 노동의 한 부분으로 인식해 '감정수당비'를 지급한다는 사실. 시세이도는 한 달에 감정수당비로 3만 원이 지급된다고 한다(업체마다 다르다). 하지만 매일 아침마다 변태해 하루 종일 웃고 있는 데에 대한 수당은 일 년에 36만 원밖에 안 된다. 이젠 그 수당의 영역을 확실하게 노동으로 공감시켜 수당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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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케어 판매직은 상담을 위해 잠시 앉을 수 있지만, 메이크업 위주의 브랜드에 속한 노동자들은 절대 앉을 수 없다.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순간에도 서 있어야만 한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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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하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쪽 일을 계속하다 보면 육체적으로 부작용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정맥류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저도 그 병 때문에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감수하면서 일하고 있고요. 화장품 판매 업계에서 하지정맥류가 산업재해로 인정된 사례는 단 한 건이었어요. 그나마 최근에는 회사에서 보험처리를 해주긴 하지만 재해로는 인정이 안 되는 거죠. 근데 그것도 회사마다 달라요."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서서 일하는 것은 으레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한 시간 이상 서 있으면 다리와 허리에 통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자로서는 온종일 서 있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 그렇다면 그들이 쉬는 휴식 여건은 어떨까.

"대개 백화점 판매 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곳은 한 군데 정도밖에 안 돼요. 쉬러 간다고 해도 다리를 펴고 쉴 수는 없는 겁니다. 점심식사도 교대로 하게 되는데, 직장인들의 경우에는 점심시간을 쪼개서 쇼핑을 하잖아요. 그럴 때는 되레 '내가 금쪽같은 점심시간을 쪼개서 물건 사러 왔는데, 어떻게 너희가 식사한답시고 날 기다리게 하느냐'는 식으로 나오는 고객도 있어요. 결국 밥도 쫓겨 가며 먹어야 하는 거죠."

가족에게 욕설 퍼붓고 손찌검 할 수 있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기자의 머릿속에서 부딪히는 두 가지 가치는 결국 '기업의 이윤창출'과 '노동자의 노동권 실현'이었다. 과연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창출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노동권이 먼저 보장이 돼야 기업이 지속가능한 이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노동자도 그 일을 기뻐하면서 해야 정말 '내 일' 같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면 이윤은 그때뿐인 것 같습니다. 물론 노동자들의 의식 수준 역시 높여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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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이도 노조 조합원들의 모습
ⓒ 서비스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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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김미영 위원장은 노조 내부에 교육 사업 진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감정노동에서 오는 심리적 문제에 대한 심리 치료뿐만 아니라 화장품 관련 강좌도 열고 싶다고 한다. 이런 교육이 있어야 회사에도 도움이 되고, 노동자들 역시 전문성을 높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회사, 백화점, 노동자들 역시 각자의 영역에서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또 하나 바뀌어야 할 것이 있다면 크게 '감정노동자'로 부를 수 있는 이들에 대한 소비자들의 '하대의식'이다.

"저희 끼리 있을 때 이런 말을 많이 해요. '저 사람들이 자기 식구 중 하나가 우리처럼 일한다면 욕설을 퍼붓거나 때릴 수 있을까'라고요.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스스로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됐다. 항상 웃는 판매 노동자들의 얼굴에 침을 뱉은 적은 없는지 말이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매일 아침마다 감정노동에 지친 얼굴을 '친절하고 화사하게' 바꿔야만 하는 그들. 그들이 자신들의 얼굴을 회사와 백화점의 요구 때문에 바꿔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의지로 웃게 만다는 것은 무엇일까. 답은 멀리 있지 않다. 감정노동의 사회적 인정, 그리고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이 아닐까.

백화점을 찾는 그대여. 웃어야만 하는 그들에게 그대가 먼저 웃어보는 것은 어떨는지?


OhmyNews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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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조절자님의 댓글

감정조절자 작성일

아주 좋은 기사 올려주셨네요.
제대로된 신문이라면 이런 기사를 자주 뽑아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사를 이렇게 발굴하여 올려주시는 요지경님.
세상은 이런 삼박자가 맞아갈 때 보다 행복해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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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님의 댓글

변화 작성일

자기 직장에 맞춰서 사람이 변화하고 적응해야만 버틸 수 있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직장인 또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는 회사 방침.......이거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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