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역사적 기억 /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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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특설대의 만행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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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은 간도특설대의 대원으로 활약을 했다. ‘간도특설대’란 만주 지역의 독립군을 토벌하던 일제의 특수부대로, 일제의 괴뢰정권 만주국의 참의원을 지낸 친일파 이범익이 ‘조선인은 조선인이 토벌해야 한다’는 심오한 철학(?) 아래 설립한 부대라고 한다. 연변 작가 류연산이 쓴 <일송정에는 선구자가 없다>라는 책에는 당시에 이 인간백정들이 동포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나물을 뜯는 이들을 잡아다 불태워 죽이고, 전사한 항일부대원의 내장을 꺼내 자기들 충혼비에 제사를 지내고, 포로로 잡힌 항일부대원을 일본도로 참수하여 잘린 머리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항일부대원을 숨겨준 마을 원로를 살해해 그의 머리를 삶은 후 두개골을 장식품으로 만드는 등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만행을 저지른 게 그들이었다.
굳이 친일이냐 반일이냐를 따지기 전에, 이 인간 말종들은 그들이 저지른 만행의 질적 수준만으로도 나치처럼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인류의 심판을 받았어야 한다. 문제는 백선엽이 자신들이 저지른 이 만행에 대해 그 알량한 반성이나 사과조차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의 자서전에는 이 부분이 아주 자랑스레 묘사되어 있다.
“이와 같이 소규모이면서도 군기가 잡혀 있는 부대였기에 게릴라를 상대로 커다란 전과를 올렸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들이 군기 잡힌 소수정예였다는 자랑이다.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주장이 다르다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친일과 항일은 한갓 정치적 견해 차이로, 즉 주의주장의 차이로 상대화된다.
그는 이어서 “이이제이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고 말하며, 그것을 이렇게 변명한다. “그러나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군기 잡힌 소수정예 부대로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고 자랑하던 목소리가 이 대목에서는 갑자기 겸손해진다.
황당한 것은 그다음이다. “주의주장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민중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평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칼을 쥐고 있는 자(=군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반민족적 친일행위와 반인륜적 만행은 민생의 안정을 도모하는 평화주의적 임무가 된다. 간도특설대가 졸지에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둔갑한 셈이다. 이쯤 되면 지금 한국방송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한국방송의 이런 친일행각은 물론 김인규 사장과 관련이 있을 게다. 실은 그의 인생철학 자체가 대한민국이 계승한다는 이념, 즉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의 배신으로 보인다. 그분은 언론계에서 5공화국과 전두환을 찬양하는 리포트로 명성이 자자하시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은 빈말이라도 반성과 사과를 했지만, 이분이 사과나 반성을 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제 공영방송을 통해 자행되는 기억의 수정이 어느 뿌리에서 나왔는지 분명해졌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극우파의 역사수정주의 망동에 맞서 헌법의 기억을 지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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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허허허님의 댓글
허허허 작성일
진중권의 매력은 자주 이처럼 때에 맞게 강력한 통찰을 과감히 내보인다는 점이다.
이로인해 중간의 부족함이나 실수들은 상당부분 눈감아지고 양해가 되어버린다.
그가 때때로 마음에 들지않아 욕하다가도 다시금 좋아지곤 한다. 허허허
그러게요님의 댓글
그러게요 작성일
가끔 허튼소리를 해서 기분 잡치게도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옳은 소리를 하는 것으로
본전치기는 한다고 봅니다. ㅎㅎㅎ
강추님의 댓글
강추 작성일진중권씨 통쾌한 비판 여러곳에서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