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15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15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405회 작성일 22-08-05 00:47

본문

20220720161622_983a58ec3dea7c18b3965263a00ecb55_698n.jpg

제 1 편

 

15

주혁민은 송수화기를 두손으로 받들어든채 오래도록 한자리에 서있었다. 무어라 말할수 없는 감격과 흥분, 자책과 반성으로 하여 송수화기를 놓을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까지 망막을 가리우고있던 어떤 짙은 암색꺼풀을 벗겨버린듯도 하고 앞을 막아서있던 산을 톺아올라 높은 절정에서 동서남북을 환히 내다보게 된듯도 싶었다.

그는 김정일동지께서 짧은 시간에 하신 그 평범하고도 통속적인 말씀에서 참으로 깊은것을 보고 깨닫게 되였다.

그는 이제 비로소 자기가 여태 사고를 거꾸로 해왔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사고를 거꾸로 하는것, 그것이야말로 엄중한 결과를 빚어내게 할수 있었던 무서운 일이였다.

일이 안되기때문에 완력으로 행정대행을 하게 된것 같다고 변명할 때 그 반대로 생각해보라고 하시던 그이의 그 음성, 그 웃음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였다.

(내가 이러고 서있기만 해서는 안된다, 지금 당장 지배인을 만나야 한다.)

주혁민이 송수화기를 놓고 사무실밖을 나섰을 때 건설장확성기에서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의 노래가 울리고있었다. 구내길을 밝히는 붉은 외등도 그에게 미소를 짓는듯 했다.

주혁민은 요즘 지배인이 밤낮없이 붙어사는 주물직장을 향해 총총히 걸어갔다.

주물직장에선 모든것이 부글부글 끓고있는듯 했다.

조형장에서 생산을 지휘하고있는 김동철지배인의 모습이 첫눈에 띄였다. 지배인의 회색작업복은 군데군데 불구멍이 나있고 웃옷자락 한쪽은 불에 타서 너덜거리였다. 그는 용선로와 조형장사이를 분주히 뛰여다니였다.

크고작은 여러 모양의 거푸집이 수십개나 렬을 지어 놓여있는 작업장은 쇠물의 폭포와 쇠물의 신비스러운 음향으로 하여 마치 동화에서 보는 요정의 세계를 방불케 하였다.

여러대의 실내기중기가 펄펖 끓는 쇠물바가지들을 공중으로 날라 거푸집에 쏟아부을 때마다 사방에서 눈부신 화염이 일고 뿌지직 탕탕 하고 쇠물 튀는 소리가 귀를 멍멍하게 하였다.

신호공들의 호각소리, 오라! 얏차! 하고 화답하는 주물공들의 고함소리, 거푸집안에서 굳어진 철제품들을 실어나르는 륜전기들의 굴음소리…

거푸집앞에서 모래안붙임을 하고있는 주물공들의 날랜 동작을 지켜보고있던 주혁민은 갑자기 울리는 새된 호각소리에 고개를 쳐들었다. 실내기중기가 펄펄 끓는 쇠물바가지들을 들고 천천히 거푸집곁으로 다가오고있었다.

《오라!》하고 주물공들이 소리치자 쇠물바가지가 공중에 멎어버렸다. 뒤이어 주물공들이 《얏차》하고 용을 쓰듯 허리를 버쩍 펴며 손을 쳐드는 순간 쇠물바가지가 고패질을 하면서 시뻘건 불을 거푸집에 쏟아부었다. 그와 함께 구름처럼 피여오르는 뽀얀 김발에 쇠물의 붉은 빛이 반사되여 사방에 노을이 피여나는듯 했다.

거푸집 가까운 쇠물증기에서는 프리즘을 비치는 해빛처럼 칠색《스펙트르선》이 띠를 두르고 그보다 조금 높이 떠오른 김발에서는 아름다운 황록색섬광이 번쩍이였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높이 피여오른 김발은 혹은 누른색으로 혹은 자주색과 우유같은 흰색으로 끊임없이 변하면서 눈부신 빛을 뿌리였다.

계획과제수행을 위한 기술자협의회가 있은 후 20일 가까이 지배인은 불의 란무와 쇠물 끓는 소리로 가득찬 이 주물작업장에서 날마다 밤을 패며 생산전투를 지휘했었다.

주혁민은 이번에 지배인의 비상한 생산지휘능력, 소재공정, 단조공정, 가공공정, 조립공정 등 모든 작업공정들에서 막힘이 없는 그의 높은 실력을 보고 크게 놀랐다.

전 당비서가 무엇때문에 이런 지배인과 호흡이 맞지 않아했는지 리해되지 않았다.

주혁민은 먼발치에 서서 지배인을 지켜보다가 그에게로 다가갔다.

《지배인동무, 수고합니다. 오늘은 보기에도 주물직장이 능률을 올리는것 같습니다.》

《여느날보다는 좀 난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큰 전환이 없습니다. 이 모양대로 나가면 년간계획을 해낼것 같지 못합니다.》

지배인은 땀에 젖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닦으며 우울하게 중얼거리였다.

《지배인동무, 저리 좀 가기요.》

주혁민은 그를 데리고 작업장뒤에 있는 직장장실로 들어갔다. 밤작업을 하는 때여서 방에는 누구도 없었다.

《여보 지배인동무,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오?》

주혁민이 느닷없이 이렇게 묻자 지배인은 눈을 치뜨고 한발 다가서며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되물었다.

주혁민은 김정일동지의 전화를 받은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나는 이제야 생산에서 앙양이 일어나지 못하고있는 근본원인이 이 책임비서에게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소. 잘못은 자기한테 있으면서 아래사람들이 일을 잘못한다고 욕설을 했소. 관료주의는 희극적속성을 가지고있다고 하더니 내가 정말 희극적인 존재였소.》

《왜 책임비서에게만 잘못이 있었겠소. 지배인인 내가 일을 쓰게 못해서 책임비서까지 말밥에 오르고있소.》

김동철은 심한 자책감으로 이마에 주름을 모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아닙니다. 책임비서가 주선을 놓쳤던거요. 나는 수령님의 현지교시를 놓고 실효투쟁 한번 알심있게 조직하지 않았소. 그래 나는 여기로 오면서도 많은걸 생각했습니다. 11월 9일 종업원궐기모임을 하자고 하오.》

주혁민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11월 9일은 닷새밖에 남지 않았다.

김동철은 그날이 어떤 날인지 알고있었다. 5월10일공장의 18명 사람들이 동시에 화선입당을 한 날, 김정일동지께서 윤현덕의 입당을 보증해주신 날이였다.

김동철은 그 경사스러운 날에 주혁민이 어떤 형식의 궐기모임을 하려고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날에 궐기모임을 하자고 하는데 래일 집행위원회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토론합시다.》

주혁민은 이어 심부탐사용고강도암석절삭공구와 관련된 그이의 전화내용을 전하고 실눈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된겁니까? 윤현덕실장이 암석절삭공구를 개발해보려고 했는데 지배인이 못하게 막았다면서요?》

《내가 막았다구요?》

김동철은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어리둥절해하였다.

《그렇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그렇게 보고된것 같소.》

《내가 하지 못하게 막았단 말이지요?》

김동철은 괴롭게 낯을 찌프리였다.

《나는 원래 그 일을 적극 밀어주자고 필요한 자재명세까지 적어서 총국에 올려보냈댔습니다. B광물심부탐사는 수령님께서 제일 관심하신것이여서 공장일에 좀 지장을 받더라도 밀어주자고 했지요. 그런데 장유선부총국장이 계획에 물리지 않은 자재를 어디서 구해오겠는가고, 제발 복잡하게 굴지 말고 제할일이나 하라고 야단했습니다. 그래 할수없이 내가 직접 B광물총국에 제기해보았는데 거기서도 별로 시답잖게 여기며 자재를 보장해줄수 없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심부탐사용암석절삭공구가 크게 긴장되여있지 않은데다 우리 기술을 믿지 않았기때문에 그랬던것 같소. 그래 나도 화가 나서 주인들이 꿈만해하는데 무엇때문에 우리 일에 지장을 받으면서 연구하겠는가 싹 걷어치우자고 했소. 그러니 내가 막았다고도 할수 있지요.》

《그게 어떻게 지배인이 막은것으로 되오.》

의분을 느낀 주혁민은 급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 문젠 내가 후에 정확히 보고드리겠습니다. 윤현덕실장의 연구정도는 어느 정도입니까? 자재만 보장되면 시험생산을 할수 있습니까?》

주혁민이 타는듯 한 눈으로 김동철을 바라보았다.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심부탐사용대형설비 한대에 그런 공구가 규격별로 약 80여개 있어야 합니다. 그걸 만들어낸다는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린 현재 공장계획을 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곤난한 처지에 있지 않소.》

김동철은 안타까운듯 불구멍이 숭숭한 작업복자락을 말아쥐였다.

《지배인동무, 생산계획도 하고 그것도 하고 다 합시다. 로력은 B광물총국에서 대줄것입니다.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걱정하시는 문제를 우리가 풉시다. 정치사업은 내가 하겠소.》

주혁민은 김동철에게 다가가 작업복자락을 말아쥔 그의 바른손을 꽉 움켜쥐였다. 김동철은 천천히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책임비서동무, 서정후부부장이 〈HM기〉와 대상설비생산문제로 라남에 오겠다고 했습니다.》

《마침 잘됐습니다. 될수록이면 간부동지들이 11월 9일전으로 와서 우리 궐기모임에 같이 참가하면 좋겠는데…》

김동철은 바람과 해볕에 청동빛으로 그슬린 주혁민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지켜보았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