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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환 선생 최근에 우리민족 얼 담은 도서출판--사우스캐롤라이나 챨스톤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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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슴도치
댓글 0건 조회 1,591회 작성일 11-10-2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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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시간 2011.10.20 19:56:33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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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9]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송기환 선생, 최근 도서 출판발행



[사우스 캐롤라이나 찰스톤=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4년 전 뉴저지주에 35년 정도 살다가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에 소재한 해변도시 찰스톤으로 이사간 뒤 잠시동안 소식없이 조용히 지내던 송기환
선생(79)이 최근에 <<나의 삶, 나의 그림>>이란 제목의 286쪽 자전 수필집을 서울의 화남 출판사를 통해
펴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송기환 선생을 찿아가 대담을 가진 민족통신의 기획기사 9번째를 여기에
전재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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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환 선생과 그의 부친 전욱하 여사와 대담하는 모습


[기획-9]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송기환 선생, 최근 도서 출판발행




[사우스 캐롤라이나 찰스톤=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4년 전 뉴저지주에 35년 정도 살다가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에 소재한 해변도시 찰스톤으로 이사간 뒤 잠시동안 소식없이 조용히 지내던 송기환 선생(79)이 최근에 <<나의 삶, 나의 그림>>이란 제목의 286쪽 자전 수필집을 서울의 화남 출판사를 통해 펴내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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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송기환 선생이 지난 발자취를 설명한다
이 책은 저자가 한국생활 39년, 미국생활 39년의 발자취를 담아 1장에서는 박정희 철권통치시대의 시련의 세월, 2장에 이민생활을 하며 한국중앙정보원(KCIA)에 시달림을 받던 일들, 3장에 박정희 정권의 말기적 발악과 정보공작 및 광주항쟁과 수난의 세월 등, 4장에 21세기를 맞으며와 마지막 장에 "글을 마치며"로 엮어 놓은 한 통일운동원로인 재미동포의 삶과 초기 통일운동의 이모 저모를 포함한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다.

필자는 송기환 선생과 그의 부인 전욱하 여사(73)를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이들 부부가 살아온 인생역정을 통해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러한 대화 내용들을 기사화하고 싶고, 또 책도 소개하고 싶다고 제언하자 그는 "나는 언론에 부각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사양했다. 그래서 어렵사리 이해시키고 설득시켜 간신히 허락을 받았다. 정말로 소박하고 겸손한 성품을 지닌 인물이다. 남녘의 민족시인 문병란 시인(광주 조선대학교 전 교수)도 그의 저서 서문에서 송기환 선생의 철학과 역사관을 높이 평가하면서 "제국주의적 외세의 산물인 한반도 분할점령의 비극을 고수하기 보다 이를 뛰어 넘어 한얼족 민주평화통일의 기본원칙, 6.15남북공동선언을 다시 살리는 그 실천적 삶이 간절히 요구되고 있음을 이 책은 깨우쳐 주고 있다. 그러기에 이 책속에 담ㄱ린 제반 정보와 견해는 여러모로 보탬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 이들 부부는 과연 누구인가? 이들 부부는 1962년 12월15일 인연을 맺고 결혼하였으니 어언 반세기 세월을 맞는 셈이다. 이들 부부는 또 1972년 5월6일 미국에 이민을 왔으니 미국생활도 내년이 되면 벌써 40년을 맞는다. 이들의 삶의 발자취를 간단히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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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전욱하 여사
송기환 선생이 뉴욕과 뉴저지주에서 생활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은 것은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에 만나 함께 활동하던 (고)임창영 박사, 지창보 교수, (고)강광석 교수, (고)현봉학 교수, (고)고원 교수, (고)장성환 박사 등 주로 학자들과의 만남과 교류에 비롯되었다. 그는 한국을 향해 반독재민주화 운동을 하며, 그리고 '미주민련'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며 조국의 평화통일운동에 기여 하며 인생 후반을 뜻깊은 시간으로 채워 나갔다. 그는 또 이러한 운동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민족화가로서, 민중화가로서 활동했다. 미국주류사회 예술인들은 그를 가리켜 "인권화가"라고 불렀다. 그의 유화작품들은 미국주류사회에서도 높이 평가했다. 1994년 7월 뉴저지 "플레인필드 미술축제"에 출품한 그의 작품은 1등으로 입상했다. 그는 또한 이번 도서를 포함하여 1986년에 '한얼족 이민과 민주통일'을 출판했고, 2003년에 이북의 평양출판사에서 '새 세기의 평양'이라는 제목의 2백쪽 도서도 출판한바 있었다. 그는 또 그동안 1980년대 (고) 윤한봉 선생이 조직한 한겨레미주연합에서 활동도 한바 있다.

송기환 선생은 1933년 1월9일 서울 태생이다. 덕수초등학교, 동성중고등학교, 성균관 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학하고 육군간부후보생 114기를 나와 육군장교로 근무하다 제대하여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한국사회 부조리 등에 혐오감을 느끼던 중 가족이민 초청으로 70년대 초반에 미국으로 와서 재미동포가 되었다. 부인 전욱하 여사의 인연은 성균관 대학교 재학시절 인연이 되어 결혼하여 2남2녀을 두고 있다.

"뉴저지주 지역에 사시다가 어떻게 사우스 캐로라이나주로 이사가게 되었느냐?"고 묻자 그는 막내 아들이 사는 동네이고, 그리고 해변도시이기에 당분간 책도 발행하고 그림그리는 작업도 할 겸하여 이사를 오게 되었다고 답변한다. 이 도시에는 우리 동포들이 거의 없는 지역이다. 주 전체 인구 4백62만5천여명 가운데 찰스톤 인구는 66만5천여명이고, 이중 백인은 65%, 흑인 31%, 남미계 2.4%, 아시아계 1.3%인데 이중 우리 동포들은 약 3백세대 가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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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환 선생 최근 출판저서
송기환 선생은 그동안 부인과 함께 기독교 교회생활도 열심이었다. 관계하는 교회들마다 여러가지 문제점들도 있었지만 이러한 교회들을 개척하고 부흥시키는데 중심적 역할을 해왔다. 식사를 할때마다, 그리고 감사할 때마다 언제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들의 신앙생활이 독실하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송 선생의 부모님들은 모두 기독교 학교를 나왔지만 독실한 신자들은 아니라고 그는 솔직하게 설명한다. 아버지는 기독교학교인 경신고등학교, 어머니도 역시 기독교 학교인 정신여고를 졸업하였지만 기독교인들은 아니라고 하며 자신이 부모님들에 의하여 기독교인이 된 것은 아니라고 답변한다.

그는 또 자신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군대생활을 하면서 군목설교를 들었는데 군종장교가 특별히 볼일이 있을 때에는 자신에게 설교를 부탁하여 군소위 생활을 하면서 설교도 몇차례하는 바람에 군목이 자신에게 한국신학교에 등록하여 군목이 되라고 권유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잠시 목회자의 길을 걸을 생각도 하였지만 곰곰하게 생각한 끝에 그 길을 가지 않았다고 돌이켜 본다.

이제 내후년이면 80 고개에 접어드는데 그 동안 후회하는 점은 없느냐고 묻자 그는 자식들을 미국에 데려와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며 민족얼을 심어주지 못한 것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답변하면서 "애들을 유태인 동네 학교를 보내 애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우리 문화 영향보다는 유대인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 같아 마음이 안스럽다"고 말한다. 큰아들, 작은 아들 모두 의사이고, 큰딸 작은딸 모두 좋은 직장가지고 잘 살기는 하지만 우리 민족 얼을 심어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거듭 후회하고 있는 표정을 짓는다.

남은 생애를 어떻게 구상하느냐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남북의 통일은 동북아의 평화이며 동시에 세계의 평화이기 때문에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생애를 그 꿈을 실현하는데 바치고 싶다"고 대답한다. 의미깊은 반응때문에 필자의 마음도 찡하게 느껴졌다.

송기환 선생은 인생을 총화하면서 한가지 확신은 "사필귀정, 즉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조국반도 문제, 남북문제 등에 얽힌 이러저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언젠가 반드시 진실이 규명된다고 말하면서 조, 중, 동을 비롯한 남녘 언론들이 너무나 사실을 왜곡해 왔다고 지적하며 분노하는 음성으로 규탄하기도 한다.

*책 주문 및 송기환 선생의 전화연락처는 843-270-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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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환 선생 작품: 광주대학살(Kwang Ju Massacre):108'X60'Pan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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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자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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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2011-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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