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29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29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454회 작성일 22-08-20 02:18

본문

20220720161622_983a58ec3dea7c18b3965263a00ecb55_698n.jpg

제 2 편

 

9

《고난의 행군》속에서 1996년의 봄이 왔다.

트레트레 널린 시커먼 구름장을 뚫고 아침해살이 봄비에 질척해진 땅을 내리비치였다. 넓은 논벌사이로 아득히 뻗어간 도로로 야전차 한대가 달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 타신 승용차였다.

언제나 속도를 요구하시는 김정일동지께서 이날은 운전사에게 차를 천천히 몰라고 이르시였다.

전선서부 군부대들을 시찰하러 가시는 길에 인민들의 생활형편을 알아보기 위해 지방도시와 농촌마을들을 돌아보고계시였다.

길에는 가끔 배낭을 진 녀인들이 눈에 띄군 하였다. 농촌지구에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이였다.

미제의 경제봉쇄책동과 함께 몇해째 혹심한 자연피해가 들이닥쳐 나라의 식량사정이 어려워지고있었다.

민족의 대국상이 있은 1994년에는 함경북도와 강원도를 비롯한 7개 도에 왕가물이 들어 2만 5,000여헥타르의 곡식이 피해를 입었고 서해 곡창지대에 파멸적인 해일이 밀려와 논벌이 모두 엉망으로 되여버렸다.

이듬해 1995년에는 여러날동안의 무더기비로 큰물이 나고 이로 하여 1만 9,000여헥타르의 논밭이 물에 잠겨 수확을 바라볼수 없게 되였다.

20세기는 마지막종착점으로 치달으면서 마치 조선인민의 의지와 생명력을 시험대우에 올려놓고 가늠해보려는듯 했다. 그래서 자연마저 력사의 심술에 합세하여 이 나라에 엄청난 재난을 들씌우는것인지…

(저 녀인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있을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배낭을 진 한 녀인을 차창으로 내다보며 마음속으로 뇌이시였다.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는 저 녀인은 행복하고 유족했던 지난 년대들을 추억하고있는지 모른다.

1980년대만 하여도 이 지방에서는 별로 쌀걱정을 모르고 지냈다. 1960년대는 얼마나 유족했던가. 상점마다 과자, 사탕, 기름, 물엿이 가득했고 닭, 오리, 소, 돼지고기들이 고기매대에 줄줄이 걸려있었다. 농촌상점 뒤마당에 돌아가면 커다란 꿀독이 서너개씩 놓여있었다. 물고기상점에서는 명태가 너무 넘쳐 야단이였다. 인민반으로 집집에 공급되는 명태도 미처 처리하지 못하는터여서 상점의 많은 물고기들이 비료차에 실려 농촌으로 가기가 십상이였다.

생활에서 걱정될것은 하나도 없었다. 무료교육, 무상치료, 거의 무상에 가까운 식량공급에 서로 돕고 위해주는것이 온 사회의 기풍으로 되여 외국의 한 종교인이 북조선은 그리스도가 내려와서도 할일이 없는 나라라고 했었다.

우리 식 사회주의가 바로 지상천국임을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이 지금 한끼 식량을 걱정하며 구차스레 쌀을 구하러다니고있었다.

그러나 우리 제도의 고마움과 우월성을 생활로 체험한 사람들이기에 모든것을 다 리해하고있었고 이 땅, 이 나라, 이 제도를 사랑하고 자랑하였다.

산굽이를 돌아선 야전차는 큰 길을 버리고 탄전지구로 가는 좁은 골짝길로 접어들었다. 길세가 점점 사나와지면서 차가 몹시 들추어댔다.

령등탄광마을이 가까와오고있었다.

톱날같은 날카로운 릉선을 이룬 험한 석회암산인 령등산밑에 자리잡고있는 마을이였다. 우중충한 벼랑굽을 벗어나자 석탄먼지에 거매진 아빠트며 유치원놀이터의 찌그러진 미끄럼대, 검부레기들이 널려있는 공원이 어수선한 자태를 드러내고있었다.

령등탄광은 그이께서 1960년대에 수령님을 모시고 세번이나 와보신 곳이였다. 1980년대초에도 자주 지나다니시였다. 그때에는 아빠트벽체들이 깨끗했으며 공원은 록음이 우거져 푸르렀고 유치원미끄럼대는 반들반들 윤기가 돌았다.

그이께서는 탄광마을어귀 외딴쪽에 떨어져있는 기와집 한채를 띠여보고 차를 멈추시였다.

언제 회칠을 했는지 알수 없는 거뭇한 담벽의 단층기와집은 아빠트건물에 비하면 훨씬 나은편이였다. 강냉이터밭앞에서 흰 몸뚱아리가 새까맣게 덞어진 중개 한마리가 훌쭉한 배를 깔고앉아 어딘가를 멍하니 지켜보고있었다. 몹시 주린듯 싶은 그놈은 맥이 진해서인지 낯선 손님들이 마당으로 들어서는데도 꼼짝 않고 엎디여있었다. 부엌지게문이 열려져있었으나 사람이 없는듯 조용하였다.

그이께서는 부엌으로 들어가 산뜩산뜩한 솥뚜껑을 여시였다. 늄가마밑창에 강냉이밥 한그릇이 댕그랗게 놓여있었다.

불이 꺼진 아궁, 싸늘한 부뚜막, 녹쓴 수도꼭지…

그이께서는 침통한 표정을 지으신채 부뚜막에 놓여있는 어린애숟가락을 집어드시였다. 강낭밥알이 달라붙어있는 숟가락이였다.

가슴 찌르는듯 한 아픔에 한동안 묵묵히 계시다가 종이와 천쪼박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방안을 들여다보시였다.

마음이 무거우시였다.

왜 이렇게까지?… 며칠전에 만나보신 철령의 병사며 그곳 군부대초소들이 대조적으로 떠오르시였다. 철령은 오르면서 40리, 내리면서 40리의 험한 령으로서 예로부터 만명의 군사로도 깨뜨릴수 없는 난공불락의 천연요새로 이름이 높았다.

령의 중마루에는 옛날에 세웠던 봉화대자리가 있는데 김정일동지께서는 바로 그 근방에서 조선인민군병사를 만나 나란히 함께 서서 기념촬영을 하시였다.

키는 작으나 오달지게 생긴 어린 병사였다. 단정한 군복차림에 두눈은 생기있게 반짝였다. 길손도 없는 산령의 초소이건만 주변을 어찌나 알뜰하게 거두었는지 티검불 하나 없었다.

기쁨에 넘쳐 어쩔바를 몰라하는 철령의 어린 병사가 하늘의 선남처럼 돋보이는가 하면 철령의 옛전설 그대로 장검을 비껴찬 《일부당관》(한명의 군사로써도 능히 대군을 막을수 있다는 뜻)의 장수처럼 느껴지시였다.

그 령을 오르고 내리면서 만나보신 모든 병사들이 하나와 같이 단정하고 생기에 넘쳐있고 돌아보신 모든 병실들이 알뜰하고 깨끗하게 정돈되여있었다.

허나 그들의 밥곽을 열어보니 흰쌀 한알 없는 통강냉이밥이였다. 인민들과 똑같이 먹으면서도 그들은 일당백용사의 기상으로 조국의 안녕을 지키고있다.

《장군님, 그만 돌아가십시다.》

그이를 따라 들어선 박웅민대장이 안절부절하다가 민망스럽게 말씀드리였다.

그이께서는 강낭밥알이 말라붙어있는 숟가락을 들어보이시였다.

《이 숟가락은 이곳 생활의 두 측면을 보여주고있습니다. 하나는 식량이 긴장하다는것을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생활을 되는대로 하고있다는것을 말해주고있습니다. 탄광일군들이 일을 잘하는것 같지 않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마당으로 나와 탄가루에 덞어 거매진 아빠트벽체들을 다시 바라보시였다.

《자강도와 함경북도는 여기보다 식량사정이 더 곤난하지요?》

그이께서는 누구에게라 없이 물으시였다. 그러자 며칠전 희천과 라남을 돌아보고온 리명국이 입을 열었다.

《네, 하지만 제가 만난 그곳 동무들은 신심과 활력에 넘쳐있습니다. 희천의 로동계급들은 배를 곯으면서도 쌀이 아니라 일감을 달라고 합니다.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1995년 11월부터 5월 10일종합공장이 련합기업소로 되였다.)에서는 전기가 모자라고 식량이 부족한 조건에서도 기계를 멈추거나 계획을 미달한 일이 한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 어려운 때에 수령님의 유훈대로 작업장을 두개나 건설해서 <HM기>설비와 부속품들을 생산하고있습니다.

아직 <HM기>시험에선 성공하지 못했지만…》

리명국이 라남에 가서 《HM기》시험이 33번째나 실패한것을 보고왔다고 말씀드리자 김정일동지께서 머리를 저으시였다.

《이제 꼭 성공할게요. 그 동무들이 결심하고 못해본 일은 한번도 없었소.》

김정일동지께서 다시금 마을을 둘러보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중요한것은 정신상태입니다. 어지러운 이 탄광마을이 이곳 일군들의 정신상태를 반영하고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시간이 바빠도 탄광책임일군들을 만나봐야 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 부관에게 탄광지배인과 당비서를 데려오라고 이르시였다.

서둘러 차에 오른 부관은 얼마후 풍만한 몸집에 얼굴이 부얼부얼한 장년의 사나이를 데리고왔다. 김정일동지께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리며 령등탄광 당비서 아무개라고 자기를 소개한 그는 지배인은 출장중이라고 말씀드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를 잠시 지켜보고 물으시였다.

《요즘 석탄생산이 잘됩니까?》

《저, 전기가 모자라서 생산을 제대로 못합니다.》

《전기가 모자라서 석탄을 생산하지 못한다? 화력발전소에 가서 물어보면 석탄이 없어 발전소를 돌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닭알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김정일동지께서 크게 소리내여 웃으시고 탄부들의 생활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닙니까?》

《위대한 장군님의 배려로 탄부들에게 식량이 우선적으로 공급되고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영양상태가 좋은 당비서의 허여멀쑥한 얼굴을 바라보며 며칠전에 길가에서 만나보신 한 녀인을 생각하시였다. 식량을 구하러다니는 그 녀인은 바로 령등탄광 2호갱에서 일하는 탄부의 안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당비서를 데리고 부엌으로 들어가 녹쓴 수도꼭지를 가리키시였다.

《수도물이 안나온지 오래 된것 같습니다. 이 집 주인도 탄광사람이겠는데 무슨 일을 합니까?》

몸이 굳어진 당비서는 우물우물하며 대답을 못올리였다. 집주인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것 같았다.

《당비서동무, 내가 보기에는 당비서동문 배불리 먹는지 모르겠지만 탄부들은 배를 곯고있는것 같습니다. 탄부들에게만이라도 식량을 공급하라고 하였는데 왜 집행하지 못합니까. 당비서동문 탄부들의 집을 돌아보군 합니까? 돌아보는것 같지 않습니다. 그러니 동문 이 집 주인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있습니다.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 책임비서는 수천명이나 되는 종업원들의 이름을 거의다 알고있을뿐아니라 그 집들에 숟가락이 몇개 있는것까지 다 꿰들고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마당으로 나와 탄광마을을 가리키며 마을이 왜 저렇게 어지러운가고 하시였다.

당비서는 머리를 숙인채 대답을 못하였다.

《당비서동무의 생각엔 우리 인민들이 지금 왜 고생을 하는것같소?》

《그것은 적들의 악랄한 고립압살책동과 혹심한 자연재해때문입니다.》

당비서는 이미 준비하고있은듯이 거침없이 대답을 올리였다.

《우리 일군들이 말끝마다 미제의 고립압살책동과 자연재해로 하여 <고난의 행군>을 하고있다고 하는데 동무 역시 그 말이 입에 올랐구만, 허허허. 언제까지 그런 말을 하겠소?》

당비서는 그이의 말씀의 뜻을 리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해하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지구온난화로 하여 이상기후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수 있고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미제의 고립압살책동은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그치지 않습니다. 동무처럼 생각한다면 우리 인민의 고생은 제국주의가 존재할 때까지 영원히 그치지 않고 <고난의 행군>도 영원하다는 말이 아니겠소. 문제가 그렇게 섭니다.》

당비서는 점점 더 미궁에 빠진듯 당황해하였다.

《동무도 주체철학을 공부했겠지? 결정적인것은 외적요인이 아니라 내적요인이요. 우리는 일심단결된 우리의 힘으로 적들의 경제봉쇄책동도 자연재해도 짓부시고 <고난의 행군>을 <락원의 행군>으로 전변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동무네와 같은 정신상태로써야 어떻게 그런 전변을 가져오겠소. 동무가 당사업을 하고있는 저 마을을 좀 보시오.》

김정일동지께서 손을 들어 마을을 가리키며 몇발자국 앞으로 걸어나오시였다.

《아무리 경제사정이 어려워도 유치원애들의 미끄럼대 하나 수리해주지 못하겠습니까. 저기서 일군들의 정신상태를 볼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자고 하는것은 동면하는식으로 참자는것이 아닙니다. 주동적으로 난관을 타개해나가야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박웅민대장을 돌아보며 이 탄광에 군대들을 보내자고 이르시고 당비서에게 말씀하시였다.

《군인들을 보내는것은 석탄생산을 추켜올리자는데만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당의 지시를 결사집행할뿐아니라 문화적으로 생활하는 군인정신, 군대지휘관들의 모범을 본받게 하자는것입니다.》

《장군님, 군인동무들을 보내주시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군인정신을 배우겠습니다.》

《배우시오. 시간이 없어 오래 이야기하지 못하겠는데 오늘부터 하루에 몇집씩이라도 탄부들의 집을 방문하고 생활문제를 토론하시오. 생활이 어려울수록 마을을 깨끗이 꾸리고 살아야 합니다. 서너달후에 다시 와보겠습니다. 제기할것이 있으면 말하시오.》

《없습니다. 위대한 장군님! 정말 죄송합니다.》

눈물이 글썽해진 당비서의 목소리는 흐느낌처럼 떨리였다.

《힘을 내여 일하시오. 군대지휘관들처럼 앞채를 메고 군중을 이끄시오.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는가 이겨내지 못하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일군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잘 있소.》

김정일동지께서는 당비서의 손을 잡아주고 야전차에 오르시였다.

당비서는 허둥거리며 그이를 따라갔다.

승용차는 포장을 하지 않은 좁고 울퉁불퉁한 탄광마을 외통길로 빠르게 달리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