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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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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007회 작성일 22-08-10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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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편

 

20

1990년대의 첫해가 저물어가고있었다.

소담하고 정결한 함박눈이 소리없이 내리는 이 밤 김정일동지께서는 새해의 축전과 축하편지들을 읽고계시였다. 12월하순부터 국내외에서 보내오는 축전과 축하편지들은 벌써 수천통이나 되여 매일 한시간씩 밤마다 짬을 내여 읽으시였다. 보좌일군들은 그이의 바쁜 시간을 걱정하여 몇통 선별하여 읽으시도록 권하였으나 인민들의 정성을 생각하여 한장도 빠짐없이 다 읽으실 작정이였다.

축전, 축하편지들은 그이의 뇌리에 새겨져있던 기쁘고 슬픈 여러가지 추억들을 되살리게 하였다.

돌이켜보시니 이해 우리 인민들은 참으로 많은 일을 해놓았다.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이 다 무너져버리고 적들의 《팀스피리트90》합동군사연습이 집요하게 감행되고있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공화국의 거의 모든 공장, 기업소들이 생산전투를 힘있게 벌려 년간계획을 넘쳐수행하였다.

철도부산하 각 철도국에서는 근 1,000차량의 화차수리를 하고 신계, 미루벌에서는 천여헥타르의 새땅을 얻어냈으며 락원기계에서는 특대형산소분리기를 완공하였다. 기계공업부산하 기계공장들에서는 무려 1만 3천여건의 기술혁신안과제들을 수행하였다. 연, 아연생산을 그 어느해보다도 높이 올린 검덕광산에서는 지난 10월 전국공장, 기업소 종업원들에게 사회주의경쟁을 호소하였다.

인민들에게 이 자랑을 안겨주시기 위해 수령님께서는 년로하신 몸으로 함북북부지구에서부터 황남도분계선지역까지 멀고 먼 현지지도의 길을 걸으시였다.

인민들도 모르게 걸으신 길이 몇천리이고 남모르게 밝히신 로고의 밤이 얼마인지 모른다.

김정일동지께서 이해에 걸으신 길의 80프로이상은 비공개적으로 다니신것이였다.

하지만 이제 인민들의 갖가지 자랑이 적힌 축전, 축하편지들을 읽으시니 해를 두고 덧쌓인 시름과 피로가 한순간에 다 풀리는것 같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밤 5월10일종합공장 일군들과 로동자, 기술자들이 올려보낸 축하전보와 편지들도 읽으시였다.

그들은 수령님의 9월 1일 현지지도이후 생산에서 대비약을 일으켜 어방없이 미달되였던 생산계획을 다 보충하고 영광의 글월을 올린다고 하면서 맹세를 다지였다.

《…저희들은 앞으로도 계속 대상설비생산과제를 넘쳐수행하면서 〈HM기〉개발사업을 적극 추진해나가겠습니다. 그리하여 2000년 12월 25일에 〈HM기〉를 주런이 세워놓고 오늘처럼 어버이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21세기 첫 새해의 설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들을 축하해주고싶어 송수화기를 들어 주혁민을 찾으시였다.

5분남짓이 지나 작업현장에서 련락을 받고 달려온 주혁민의 가쁜 숨소리가 들리였다.

《주혁민이 전화를 받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새해를 축하합니다.》

새해 1991년은 3일이 남아있었으나 주혁민은 감격에 떨리는 쉰목소리로 설인사를 드리였다.

《고맙소. 목이 쉰걸 보니 몹시 고단한 모양이요. 내 동무네 편지를 보고 너무 기뻐 찾았소. 지배인이랑 다 잘 있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지배인동문…》

가뜩이나 쉰 주혁민의 목소리는 꽉 잠겨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리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죄송합니다. 지배인동문…》

《무슨 일이요?》

《지배인동문 제가 잘 돌봐주지 못해서… 사망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그이께서는 흠칫 몸을 떠시였다. 그가 보낸 새해 축전이 지금 여기 집무탁에 놓여있는데 사망하였다니 무슨 소린가.

그이께서는 떨리는 손으로 김동철이 올린 축전을 집어드시였다.

《…21세기 첫 새해의 설인사를 드리겠습니다.》라는 마지막결의대목이 눈에 밟히시였다.

《12월 26일 새벽 3시경에 심장마비로… 웃기관엔 이미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설명절을 앞두고 어버이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만은 차마…》

주혁민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이께서도 기가 막혀 송수화기를 드신채 오래도록 묵묵히 계시였다. 전기로사닥다리를 뛰여오르고 쇠물이 끓는 거푸집사이를 누비며 다니는 김동철의 모습이 눈앞에 어려오시였다. 누구보다도 21세기에 대한 꿈이 많았던 지배인이였다.

지나친 기쁨과 환희의 흥분이 그의 심장에 과중한 부담을 준것같았다. 기쁨의 격정이 고민의 감정보다 심장에 더 나쁜 영향을 주는 때가 있는것이다.

《안죽을 사람이… 아까운 사람이 갔구만.》

그이께서는 슬픔에 젖은 소리로 조용히 혼자소리처럼 뇌이시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지배인동문 사망하기 서너시간전에 저와 함께 공장마당을 돌면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이 세상 제국주의자들이 다 달라붙어도 위대한 수령님과 지도자동지께서 계시기에 조선은 끄떡없다고, 조선의 앞날은 휘황하다고… 그것이 자기의 가슴속에 굳게 자리잡은 신념이라고…》

《참 좋은 말을 남기고갔소. 우리모두 그를 잊지 맙시다. 그 말을 새겨둡시다.》

《지도자동-지!》

주혁민의 오열하는 소리가 처절한 가락을 뜯는 금선의 떨림처럼 수화기의 진동판을 울리였다.

그이께서는 주혁민의 흐느낌소리에서 지난 몇달동안 지배인에게 깊이 정을 붙인 그의 마음을 읽으시였다.

《주혁민동무, 그만하시오. 용기를 잃지 않고 일을 더 잘하는것이 돌아간 지배인에 대한 책임비서의 도리를 다하는것으로 됩니다.》

김정일동지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였다. 그이께서는 안경유리가 뿌옇게 흐려져 손수건으로 닦고 《주혁민동무, 사실 수령님께서 김동철을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나도 그렇고… 유가족들을 잘 돌봐주시오. 거기 기사장동무의 병은 어떻소?》하고 일부러 말머리를 돌리시였다.

《호전되지 않습니다. 백약이 무효입니다. 본인이 자기는 이미 염라대왕의 호출을 받았다고 우스개소리를 하면서 계속 해임을 제기하고있습니다.》

그이께서는 주인없이 비여있는 5월10일종합공장의 지배인, 기사장방을 그려보며 긴 숨을 쉬시였다.

(60청춘, 90환갑인 우리 세상에서 왜 이 사람들은 그렇게 일찍 가고 일찍 병약해졌는가.)

그이께서는 가슴이 아프고 쓰리시였다. 《HM기》와 더불어 큰 꿈을 품고있던 지배인이 21세기를 보지 못하고 간것이 못내 애석하시였다.

이제는 어찌할수 없이 지배인과 기사장을 새로 임명하여야 하시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지배인을 잃고 눈물을 흘리고있는 주혁민에게 그 말씀을 할수가 없으시였다.

주혁민이 또한 그이의 아픈 가슴을 헤아리고 결원된 간부들을 보충하는 문제에 대하여 아예 입밖에 내지 않았다.

며칠 지나서야 주혁민을 다시 불러 당위원회에서 토론하고 좋은 사람들로 지배인, 기사장을 물색해보라고 하시였다.

그때로부터 달포가 지난 1991년 2월초 김정일동지께서는 5월10일종합공장 당위원회에서 올려보낸 문건을 받으시였다.

문건의 첫 부분에는 《HM기》개발을 위한 전망목표가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ㅡ1991년 12월 25일까지 《HM기》기존설계도를 우리 공장의 실정에 맞게 완전히 개조하여 1992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HM기》개발사업에 착수하겠습니다.

ㅡ1994년 11월 9일 《HM기》첫 시험가동을 하겠습니다.

ㅡ1995년말까지 《HM기》를 개발하겠습니다.

저희들은 《HM기》의 그 어느 설비와 부속품도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100프로 우리의 자재와 원료로 우리 공장의 실정에 맞게 자체의 힘과 지혜로 우리 식으로 만들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5월10일종합공장의 결의목표를 만족스럽게 읽으며 지금 진척중에 있는 우리 나라의 인공지구위성개발사업에 대하여 생각하시였다.

전자공학과 기계공학, 조종학, 우주공학, 전자요소공학, 체계공학을 비롯한 현대응용과학기술의 종합체인 인공지구위성을 지금 우리 과학자, 기술자들은 다른 나라의 첨단기술과 두뇌의 반입이 없이 100프로 자체의 힘과 지혜로 개발하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생각하시였다.

최첨단기계를 개발하는데서 두가지 성공의 길이 있을수 있다. 하나는 사색과 탐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창조의 길이다. 이것은 높고 험한 길이며 따라서 힘들게 가는 길이다. 그러나 일단 성공하면 안전하고 확고한 길이다. 다른 하나는 모방하는 길이다. 이것은 낮고 평탄한 길이며 쉽게 갈수 있는 길이다. 그러나 자체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모방하면 함정에 빠질수 있는 오히려 더 위험한 길이다.

다른 나라의 선진기술을 도입하되 다른 나라의 경제와 기술에 예속되여서는 안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5월10일종합공장에서 올려보낸 문건에 《동무들의 결의를 믿습니다. 〈HM기〉시험가동을 하는 1994년 11월 9일 수령님을 모시고 가보겠습니다.》라고 쓰시였다.

문건의 다음부분에는 5월10일종합공장 지배인, 기사장 선발사업에 대한 의견이 제기되였다.

주혁민이 지배인으로 제기한 사람은 5월10일종합공장 기술부기사장 오성오이고 기사장으로 안을 잡은 사람은 생산부기사장 최강철이였다.

그러나 그들의 간부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오성오는 우에 올라가 한 일군과 초벌 간부담화를 하는 장소에서 일곱가지 머리아픈 질문을 받았다.

첫째 질문은 어째서 동무는 그렇게 체소하고 몸이 약한가 하는것이였다. 이것은 외적인 인격, 다시 말해서 간부다운 위풍이 없기때문에 지배인재목이 될수 없다는 암시였다. 두번째는 동무는 왜 주간대학을 나오지 못했는가 하는 질문이였다. 이것도 역시 그 리유를 알고싶어 물은것이 아니라 통신이나 공장대학간판을 가지고는 지배인자리에 올라앉을수 없다는것이였다. 이와 같이 받은 질문이 무려 일곱가지나 되였지만 오성오는 기분이 언짢아 어떤것은 도전적으로 입을 다물고 돌아앉았다.

최강철은 담화조차 변변히 하지 못하고 기가 죽어 돌아왔다. 전일본군 라남제19사단의 마사원의 아들이라는 그의 출신성분이 간부료해를 하는 사람을 아연하게 만들었던것이다.

마사원이면 피지배계급이고 로동자이지만 악명높은 라남제19사단에서 복무한것으로 하여 문제가 있다는것이였다.

이런 내용이 밝혀진 문건에 최강철의 자서전과 가계표가 부표로 달려올아왔다.

그이께서는 문건을 다 읽고나서 주혁민을 전화로 부르시였다.

《오성오, 최강철동무에게 지배인, 기사장의 책임을 맡기자는데 대해 나는 찬성합니다. 나는 20여년전부터 그들을 알고있으며 그들의 실력과 충실성을 믿고있습니다. 〈HM기〉개발을 위한 10년전망계획서에 의하면 동무들이 1994년 11월 9일 첫 〈HM기〉시험가동을 하게 됐는데 그날에 수령님을 모시고 가보겠습니다. 이 날자를 잊지 않고 기다리겠소.》

그후 여러가지 사변이 련달아 일어났다.

1991년 12월 25일 쏘련은 드디여 붕괴되였다.

불패의 강군을 일떠세울 결심을 한듯 12월 24일 조선에서는 김정일동지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시였다.

1992년 4월, 평양의 하늘에서 뢰성처럼 울린 사회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평양선언》, 날로 첨예화되는 조미대결, 적들의 《핵의혹》소동, 공화국을 압살하기 위한 미국주도하의 다국적무력세력의 강도적인 《특별사찰》강요, 1993년 3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준전시상태선포,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 이러한 력사의 흐름속에서 드디여 조미대결은 극한점에 이르렀다. 세계인민들은 인구와 면적상에서 대비도 되지 않는 두 나라의 대결무대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중과부적으로 조선이 패하게 될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였다.

그무렵, 김정일동지께서 수령님께 보고를 올리시였다.

《수령님, 우리 식 미싸일을 세계에 공포하겠습니다.》

《력사가 요청하는 때에 세상에 알리겠다고 하더니 빈말이 아니였군.》

그리하여 1993년 5월 조선의 정의의 불덩이가 비상한 속도로 특이한 탄도선을 그리면서 목표물에 명중하였다.

미국은 정찰위성을 통해 우리 미싸일의 발사과정을 낱낱이 관찰하였다.

북조선을 와해시키기 위해 수많은 정보망들과 수천명의 간첩망원들을 내몬 《미중앙정보국》장관 제임스 을지는 이것을 보고 속도가 느리고 명중률이 낮은 패트리오트요격미싸일은 속도가 몇배나 더 빠르고 명중률이 높을뿐아니라 독특한 탄도선을 그리는 북조선의 미싸일을 막을수 없다고 비명을 질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적들의 명줄을 거머쥐고 이리 끌고 저리 끌며 조미대결의 운명적인 투쟁을 주도해나가시였다.

그리하여 1994년 6월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가 평양에 찾아오게 되고 이어서 조선의 50년 분렬력사이래 처음으로 북남최고위급 회담을 할데 대한 문제가 합의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1994년 7월초 이 력사적인 통일회담준비사업을 지도하시는 그 바쁜 속에도 5월10일종합공장 지배인 오성오(1991년 3월 오성오는 지배인으로, 최강철은 기사장으로 임명되였다.) 에게 전화를 하시였다.

《수령님께서 통일의 새 국면을 열어놓으셨소. 이제부터 수령님의 사업은 더 바빠질거요. 그러나 11월 9일에는 꼭 라남에 가보시겠다고 말씀하시였소.》

언제나 멀리 앞을 내다보시는 그이께서도 1994년 7월 8일에 민족최대의 국상이 있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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