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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예감 608] 꾸르스크의 밤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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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91회 작성일 24-11-1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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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꾸르스크의 밤이 다가온다

한호석 (정세연구소 소장, 정치학 박사) 

<차례>

1. 우크라이나군의 꾸르스크 침공

2. 미제국은 왜 우크라이나군의 전쟁전략을 변경했을까?

3. 조선이 로씨야의 반제전쟁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

4. 국제정세 뒤바꿔놓을 조선의 전략적 결정

5. 조선인민지원군은 야간전의 명수다

...................................................................................................................................

1. 우크라이나군의 꾸르스크 침공

2024년 8<개벽예감 608>월 6일 오전 8시 로씨야-우크라이나 국경에서 포성이 울렸다. 우크라이나군이 로씨야 서부 국경에 접한 꾸르스크주(Kursk Oblast)의 국경을 넘어 침공한 것이다.

로씨야 국가수비대(National Guard of Russia)가 국경을 경비하고 있었다. 무장경찰대 수준의 무장력밖에 갖지 못한 로씨야 국가수비대는 국경을 경비할 수는 있어도 국경을 방어하지는 못한다. 로씨야 국가수비대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전차, 장갑차, 방사포, 자행포, 미사일, 전투기, 무인기 등으로 중무장한 침공군의 교전상대로 될 수 없었다.

꾸르스크 국경의 방어선을 돌파한 우크라이나 침공군은 꾸르스크주를 관통하는 두 개의 고속도로를 타고 로씨야 영토 깊숙이 진격해 들어갔다. 로씨야군 수뇌부는 꾸르스크주 예비군을 동원해 침공군의 진격을 저지하려고 했지만, 로씨야 예비군의 무장장비와 전투력도 로씨야 국가수비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 지난 8월 6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이던 와중 우크라이나군(AFU)이 러시아 쿠르스크주를 급습했다

우크라이나 침공군은 국경의 방어선을 돌파한 날로부터 6일이 지난 2024년 8월 12일까지 꾸르스크의 74개 마을을 점령했고, 8월 15일에는 꾸르스크의 전략요충지 쑷자(Sudzha)를 점령했다. 침공군은 점령지를 약 1,000㎢로 급속히 확장했고, 점령지에서 군정을 실시해 로씨야 주민들을 억압했다.

로씨야군 수뇌부는 중무장한 정규군 15,000명을 전선에 긴급히 투입했다. 그러나 로씨야군 15,000명은 우크라이나 침공군 30,000명의 진격을 저지할 수 없었다. 로씨야군 수뇌부는 하루끼우(Kharkiv), 루한스크(Luhansk), 헤르손(Kherson), 자포리즈지아(Zaporizhzhia), 깔리닌그라드(Kaliningrad)에서 증원병력 15,000명을 더 차출해 꾸르스크 전선에 투입했다. 그에 맞서 우크라이나 침공군도 증원병력 10,000명을 꾸르스크 전선에 더 투입했다. 그리하여 꾸르스크 전선에서 로씨야군 30,000명과 우크라이나 침공군 40,000명이 치열한 격전을 벌였다.

군사전문가들은 로씨야군이 우크라이나 침공군 40,000명을 제압해 국경 밖으로 격퇴시키려면, 80,000명을 투입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로씨야 남부 도네쯔크(Donetsk) 전선에서 우크라이나 침공군과 격전을 벌이고 있는 로씨야군이 전투병력 80,000명을 꾸르스크 전선에 투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로씨야군은 수적으로 열세에 놓인 불리한 조건에서도 2024년 9월 10일부터 격퇴전을 본격적으로 벌여 우크라이나 침공군이 점령한 지역을 일부 탈환했지만, 침공군을 국경 밖으로 몰아내지는 못했다.

꾸르스크 전쟁상황을 살펴보기 전에 로씨야-우크라이나전쟁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전쟁은 어떤 전쟁인가?

2013년 11월 21일 우크라이나의 종미우익세력이 유로마이단 폭동(Euromaidan Riot)을 일으켰다. 미제국을 수괴로 하는 나토(NATO) 제국주의 진영과 젤렌스끼 종미우익정권은 유로마이단 폭동을 전환점으로 하여 우크라이나를 나토 제국주의 진영에 편입시켜 로씨야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정치군사적 대결공세의 고삐를 더욱 바짝 틀어쥐려고 광분했다. 제국주의 광란에 맞서 싸우는 전쟁을 반제전쟁(anti-imperialist war)이라고 부른다.

지난 10년 동안 반제전쟁의 험로와 고비를 넘어온 로씨야는 우크라이나군의 꾸르스크 침공이라는 난관에 부닥쳤다. 울라지미르 뿌찐(Vladimir V. Putin) 로씨야 대통령은 2024년 10월 1일까지 침공군을 국경 밖으로 격퇴하라고 명령했지만, 2024년 11월 18일 현재 로씨야군은 우크라이나 침공군을 격퇴하지 못했다.


2. 미제국은 왜 우크라이나군의 전쟁전략을 변경했을까?

의문이 생긴다. 도네쯔크 전선에서 로씨야군의 맹렬한 공격을 받아 패색이 짙어진 우크라이나군이 왜 꾸르스크를 침공해 전선을 확장했을까? 우크라이나군이 전선을 확장하면, 가뜩이나 한정된 전투력을 두 개의 전선으로 분산시켜 패전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전투력의 분산은 패전의 지름길이다. 이것은 세계 전쟁사가 입증한 전쟁의 공식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크라이나군 수뇌부는 자기들의 한정된 전투력을 두 개의 전선으로 분산시켰다. 이를 두고 군사전문가들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군사전문가들이 알지 못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크라이나군 수뇌부가 전투력을 두 개의 전선으로 분산시킨 것은, 그들 스스로 내린 결정이 아니라 그들의 배후조종자가 내린 결정이다. 우크라이나군의 전투력을 두 개의 전선으로 분산시키는 지령을 내린 배후조종자는 누구였을까? 누구나 직감하는 것처럼, 지령 하달은 미제국의 짓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젤렌스끼 종미우익정권과 우크라이나군 수뇌부를 전쟁 하수인으로 부려먹으면서 로씨야-우크라이나전쟁의 전략 문제를 결정하고 지령을 내리는 제국주의 진영의 수괴가 바로 미제국이다. 미제국은 로씨야를 적대하는 제국주의 진영의 수괴국가이고, 우크라이나는 제국주의 진영에 맹종하면서 로씨야와 전쟁을 하는 복속국가다.

제국주의 수괴국가와 신식민지 복속국가의 내밀한 상하결합관계를 알지 못하면, 우크라이나군 수뇌부가 자기의 한정된 전투력을 왜 두 개의 전선으로 분산시켰는지 알 수 없다.

원래 미제국은 로씨야-우크라이나전쟁에서 기존 전선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했다. 그래서 미제국은 우크라이나군에 넘겨준 장거리 타격수단의 공격범위를 로씨야-우크라이나 국경지대로 국한시켰다. 그런데 2024년 8월 6일 우크라이나군은 로씨야의 영토 꾸르스크를 침공했다. 이것은 미제국의 전쟁전략이 로씨야 침공 억제에서 로씨야 침공 허락으로 변경되었음을 말해준다.

미제국이 우크라이나군의 로씨야 영토 침공을 허락한 때는 언제였을까? 이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는 2024년 8월 9일 미제국의 정치전문지 ‘폴리티코(Politico)’에 실린 탐사보도기사에 들어있다. 탐사보도기사에서 도이췰란드 외교장관 겸 정부 대변인 스테펜 헤베스트레이트(Steffen Hebestreit)가 말한 바에 의하면, 미제국의 전쟁전략이 우크라이나군의 로씨야 침공 억제에서 로씨야 침공 허락으로 변경된 시점이 2024년 5월이었다고 한다. 헤베스트레이트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내밀한 결정이 내려진 정황을 알만한 처지가 아니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도이췰란드 정부에 통보해주는 내용만 알 수 있으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2024년 5월 어느 날에 전쟁전략을 변경시켰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로씨야군이 우크라이나군의 점령지에 맹렬한 공격을 재개하면서 2024년 4월 초 도네쯔크 전선에서 챠시우 야르(Chasiv Yar)로 진격했고, 5월 10일에는 하르끼우주(Kharkiv Oblast) 북동부지역 돌출부를 점령한 전술적 승리를 상기하면, 미제국이 우크라이나군을 패전 위기에서 건져줄 구명책을 전쟁전략 변경에서 찾은 때는 2024년 5월 중순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의문이 또 생긴다. 미제국이 우크라이나군의 로씨야 침공을 사주한 것이 어떻게 우크라이나의 구명책으로 될 수 있을까? 미제국은 로씨야군이 차지한 돈바쓰(Donbass) 점령지와 우크라이나군이 점령한 꾸르스크 점령지를 교환하기 위한 종전협상을 시작하려는 계략을 움켜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크라이나군이 꾸르스크 점령지에서 철군하는 것과 동시에 로씨야군도 돈바쓰 점령지에서 철군하는 ‘동시 철군 협상’을 벌여놓으려고 획책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젤렌스끼의 안보보좌관 미하일로 뽀돌랴크(Mykhailo Podolyak)는 2024년 8월 16일 영국 ‘로이터즈통신(Reuters)’ 보도기사에서 “우크라이나는 꾸르스크 점령에 관심이 없다. (꾸르스크를 침공한 목적은) 우크라이나가 제시한 조건에 따른 협상으로 로씨야를 이끌어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우크라이나가 제시한 조건’이란 점령지에서의 동시 철군을 의미한다.

증원병력을 투입해 전투력을 증강한 로씨야군은 꾸르스크 전선에서 탈환전을 벌여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부분적으로 되찾았지만, 점령지를 장악한 채 저항을 거듭하는 침공군을 완전히 제압할 수 없었다. 우크라이나 침공군이 점령지에서 계속 버티면서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다. 우크라이나 침공군이 점령지에서 무기한으로 버티면, 미제국과 젤렌스끼 종미우익정권은 ‘점령지에서의 동시 철군 방안’을 들고 나올 것인데, 그렇게 되면 로씨야는 제국주의 진영으로부터 심한 정치적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로씨야가 ‘점령지에서의 동시 철군’이라는 미제국의 교활한 계략을 파탄시키고, 반제전쟁을 승리로 종식시킬 방도는 우크라이나 침공군을 국경 밖으로 몰아내고 꾸르스크 전선을 평정하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로씨야군은 우크라이나 침공군을 격퇴할 강한 전투력을 갖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2024년 8월 13일 미제국 대통령 조 바이든(Joe R. Biden)이 미제국 남부지방 뉴올리언즈(New Orleans)를 행차하는 중에 취재기자들에게 말한 것처럼, 로씨야는 “진짜 진퇴양난(a real dilemma)”에 빠진 것이 아닐 수 없다. 로씨야의 반제전쟁은 미제국의 계략을 파탄시키지 못하고, 우크라이나군의 침공을 격퇴하지 못한 채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3. 조선이 로씨야의 반제전쟁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

진퇴양난에 빠진 로씨야의 반제전쟁을 지원해줄 나라는 조선밖에 없다. 조선이 로씨야의 반제전쟁을 지원해야 할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로씨야가 조선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지 않아도, 조선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로씨야의 반제전쟁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첫째 이유는 국제주의 원칙에 입각한 오랜 역사적 전통이다. 조선은 1966년부터 오늘까지 58년 동안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유럽을 포괄하는 세계 반제군사전선을 적극 지원해주었다. 조선은 제국주의 진영에 맞서 싸우는 나라들, 종미우익정권에 맞서 싸우는 정당 및 단체들을 보상도 바라지 않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었다. 그 내역은 다음과 같다.

1966년

제3차 중동전쟁 시기 수리아(Syria)에 군사교관 1,500명 파견, 그 중에 25명은 전투비행사

1967년

윁남전쟁에 2개 비행연대 파병

1969년

에짚트에 고사포 100문 원조

차드 반정부군에 무기 제공

1970년

수리아에 땅크병 200명, 전투비행사 53명, 미사일전문병 140명 파병

파키스탄군에 자동보총과 탄약 원조

브라질 해방혁명투쟁대에 군사자금 제공

1971년

브라질과 칠레에 좌익세력을 위한 유격전훈련소 설립하고 군사교관 파견

스리랑카 반정부유격대에 무기와 군사자금 원조

파키스탄군에 야포 30문, 포탄 3,500t 원조

에티오피아 에리트리아유격대에 무기 원조

1972년

윁남전쟁에 심리전 요원 다수 파견

남예맨에 군사교관 20명 파견

아일랜드공화군(Irish Republican Army)에 군사교관 파견

1973년

팔레스띠나에 군사교관 70명 파견

캄보쟈(Cambodia)에 군사교관 50명 파견

에짚트에 미사일전문병 30병, 전투비행사 및 항공기정비사 50명 파견

아르헨띠나에 좌익세력을 위한 유격전훈련소 설립하고 군사교관 파견

아르헨띠나 인민해방군, 볼리비아 혁명조직, 빠라과이 혁명조직에 각각 자금 지원.

1974년

자이레에 군사교관 125명 파견

수리아에 전투비행사 교관 75명 파견

자이레-꽁고 전쟁에 T-72 땅크 30대, 고사포, 어뢰정 3척, 자동보총과 탄약 원조

나미비아 인민단결기구에 무기 원조

1976년

레바논 내전에 특공대 파병

알제리, 가이아나, 로데지아, 볼리비아, 우르과이, 꼴롬비아에 각각 군사교관 파견

수리아에 전투비행사 40명 파견

남예맨에 반땅크포 50문, 자동보총 2,000정 원조

1977년

라오스에 특공대 파병

가봉에 자동보총 60정, 경기관총 52정, 고사총 2,500정, 박격포 8문 원조

리비아, 뻬루, 에티오피아, 또고에 각각 군사교관 파견

1978년

탄자니아에 군사혁명학교 설립하고 군사훈련

뻬루 좌익단체에 군사교관 파견

수리아에 무반충포와 고사포 300문 원조

1979년

인디아 좌익단체에 군사교관 파견

팔레스띠나해방기구에 군사자금 원조

파키스탄군에 130mm 야포 20문, 포탄 15,000발 원조

1980년

이란, 알제리, 파키스탄에 각각 군사교관 파견

이란혁명수비군에 전차, 반땅크유도무기 원조

1981년

니까라과 싼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에 군사교관 50명 파견

1982년

레바논에 군사교관 300명 파견

이란에 군사교관 90명 파견

팔레스띠나에 군사교관 파견해 12,000명 군사훈련

1983년

짐바브웨에 군사교관 130명 파견

가이아나군에 무기와 탄약 6,000t 원조

이란-이라크전쟁 시기 이란혁명수비군에 8억 달러 상당 무기 원조

1984~1986년

팔레스띠나에 군사교관 75명 파견

수리아에 군사교관 50명 파견

팔레스띠나에 자동보총 3,200정, 탄약 20t 원조

이라크에 고사총 800문, 방사포 200문 원조

가나에 자동보총 1,000정, 탄약 4t 원조

1987~1989년

볼리비아 좌익단체에 군사교관 40명 파견

1988~1992년

파키스탄군에 고사포 450문, 포탄 30t 원조

수리아군에 항공폭탄 20t 원조

1989~1991년

기네 비싸우에 군사교관 48명 파견

수단에 군사교관 60명 파견

베닌에 군사교관 20명 파견

1990년

수리아에 군사교관 30명 파견

2000년

필리핀 신인민군(New People’s Army)에 고사총과 포탄 원조

2000년 이후

베네수엘라, 에리트레아, 미얀마, 타밀엘람해방호랑이에 군사 원조

위에 열거한 것처럼, 세계 반제군사전선을 58년 동안 지원해준 조선이 오늘 진퇴양난에 빠진 로씨야의 반제전쟁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둘째 요인은 조선과 로씨야가 체결한 동맹조약이다. 김정은 총비서와 뿌찐 대통령은 2024년 6월 19일 평양에서 진행된 정상회담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에 서명하였다. 동맹조약 제4조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로씨야련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하였다. 군사적 원조를 지체 없이 제공한다는 것은 즉시, 무조건적으로 원조한다는 뜻이고,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것은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를 포함하는 모든 수단으로 원조한다는 뜻이다. 조선이 로씨야의 반제전쟁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조로동맹조약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셋째 요인이자, 가장 중요한 요인은 조선의 반제자주노선이다. 2024년 8월 22일 ‘로동신문’ 기사에 의하면, “세계의 자주화는 인류의 공통된 지향이고 숙원이며 반드시 실행하여야 할 력사적 과제”이므로, 조선은 “지배와 예속, 침략과 간섭이 완전히 종식된 평화로운 세계”, 그리고 “모든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평등이 철저히 보장되여 인류가 화목하게 살아가는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자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조선의 반제투쟁노선이 로씨야의 반제전쟁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길로 조선을 이끌었다고 말할 수 있다.


4. 국제정세 뒤바꿔놓을 조선의 전략적 결정

2024년 9월 13일 김정은 총비서는 평양을 방문한 쎄르게이 쇼이구(Sergei K. Shoigu) 로씨야 국가안보회의 서기장을 접견하였다. 쇼이구 서기장은 뿌찐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그날 김정은 총비서는 쇼이구 서기장을 두 차례 접견하고 담화하였다. 조선의 언론보도에 의하면, 김정은 총비서는 쇼이구 서기장과 담화하면서 “호상 안전리익을 수호하기 위한 협동을 강화해나가는 문제들”을 논의하였다고 한다.

뿌찐 대통령은 자신의 특사를 평양에 파견해 김정은 총비서에게 매우 중대한 문제를 정중히 제의했다. 김정은 총비서는 뿌찐 대통령이 전한 매우 중대한 문제를 신중히 검토, 결정한 뒤에 쇼이구 서기장을 다시 접견했고, 그를 통해 뿌찐 대통령에게 조선의 결심을 알렸다. 조선의 결심은 뿌찐 대통령의 요청을 수락하여 조선인민군을 로씨야에 파병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국제정세를 뒤바꿔놓을 조선의 전략적 결정이었다.

2024년 10월 31일 ‘로이터즈통신’ 보도에 의하면, 우크라이나 정부 대표단이 10월 30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공식 문서에 조선인민군 군관들(military officers) 약 500명이 로씨야에 파견되었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공식 문서에 의하면, 조선인민군 대표단 명단 앞줄에 김영복 상장(별 3개), 리창호 상장, 신금철 소장(별 1개)의 이름이 적혀있다고 한다. 그 3인은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고위급 지휘관들이다.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에는 총참모장 1인, 제1부총참모장 1인, 부총참모장 5인이 있는데, 김영복 상장과 리창호 상장은 부총참모장들이다. 이런 사정은 김정은 총비서가 김영복 부총참모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선인민군 대표단을 로씨야에 파견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로씨야에 파병된 조선인민군 전투부대에 조선인민지원군이라는 명칭이 부여된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인민군 대표단은 조선인민지원군 파병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한 것으로 추론된다.

1) 조선인민군 대표단은 파병에서 제기되는 정치적, 실무적 문제들을 로씨야군 대표단과 협의, 결정했다. 조선인민지원군의 파병 규모, 작전지휘권, 작전범위, 편제, 무장장비 조달, 군수물자 보급에 관한 문제, 그리고 조선인민지원군과 로씨야군의 협동작전에 관한 문제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2) 리창호 부총참모장은 정찰총국장을 겸직하였다. 정찰총국장이 조선인민군 대표단 주요 성원으로 로씨야에 파견된 것은, 조선인민지원군이 로씨야군 정찰부대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정찰부대를 운용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독립적인 정찰부대를 운용하는 것은 조선인민지원군이 자체적으로 작전계획을 세우고, 독자적인 작전지휘권을 행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3) 김영복 상장은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직책을 맡기 이전에 특수작전군 사령관이었다. 신금철 소장은 특수작전군 야전지휘관이다. 이런 사정은 조선인민지원군이 특수작전군에서 차출된 전투원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2024년 11월 3일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조선인민지원군은 60mm 박격포, AK-12 자동보총, RPK/PKM 기관총, SVD/SVF 저격총, 피닉스 반땅크미사일, RPG-7 반땅크 발사관 등으로 무장했다고 한다. 이런 무장은 조선인민지원군이 전차, 장갑차, 자행포, 방사포, 미사일로 중무장한 야전기동부대가 아니라, 신속하고 은밀히 기동하기에 적합하게 경무장한 특수전부대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2024년 10월 31일 ‘로이터즈통신’이 보도한, 우크라이나 정부 대표단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공식 문서에 의하면, 조선인민지원군은 2,000~3,000명으로 구성된 5개 부대로 편성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조선인민지원군이 5개의 연대급 부대로 편성되었음을 말해주는데, 조선인민지원군 전체 병력은 약 12,000명으로 추산된다. 미제국 국방부 대변인 싸브리나 씽(Sabrina Singh)은 2024년 11월 7일 펜타곤 언론설명회에서 조선인민지원군 전체 병력이 10,000~11,000명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5. 조선인민지원군은 야간전의 명수다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은 대규모로 전선에 포진하고 보병전, 기동전, 화력전, 진지전 같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작전하는 군대가 아니다. 그들은 소규모 부대로 적진 후방에 침투해 적이 대응하기 힘든 비정규전을 벌이는 군대다. 이를테면, 지상, 지하, 공중, 해상, 수중에서 적진 후방에 은밀히 침투해 군사시설을 파괴하고, 적군 지휘관을 제거하고, 적군을 포위, 섬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침투전술, 매복전술, 습격전술, 파괴전술, 포위전술을 전문적으로 훈련받았다. 2010년 11월 29일 ‘뉴데일리’ 보도에 의하면,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전투원들은 맨손으로 적병 여러 명과 싸우는 격술훈련을 매일 3시간 이상 받았고, 단검 투척훈련을 매일 30분 이상 받았고, 200m 밖에서 움직이는 적병 여러 명을 저격총으로 15초 안에 사살하는 저격훈련을 받았고, 25kg의 군장을 메고 120km를 밤낮없이 주파하는 강행군훈련을 받았고, 적진의 주요시설을 습격, 점거하거나 폭파하는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이 집중적인 정치사상교육을 받고 ‘총폭탄정신’과 ‘자폭정신’으로 무장하였다는 사실이다.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은 전투명령을 관철하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려는 투철한 사상무장을 갖추었다.

그런데 지금 로씨야군은 지평선이 보이는 대평원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은폐물과 엄폐물이 없는 야지에서 대규모 전투부대가 기동하면, 우크라이나군 무인정찰기에 노출되어 공습을 받는다. 지상에서 기동하는 전투부대가 공습을 받으면, 혹심한 피해를 입는다. 로씨야-우크라이나전쟁에서 교전 쌍방의 인명피해가 많이 발생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래서 조선인민지원군은 소규모 특수전부대로 출전하게 된다. 그들은 평원의 수림 속을 은밀히 통과해 적진 후방에 침투하거나, 강물 속을 은밀히 잠수해 적진 후방에 침투한다. 후방 침투에 성공하면 매복전, 습격전, 포위전으로 우크라이나군 지휘부를 간단히 제거해버린다. 조선인민지원군이 그런 비정규전 전술을 운용하려면, 우크라이나군 무인정찰기에 자신들이 노출되지 않게 우크라이나군이 잠든 한밤에 작전해야 한다. 야간전이다. 조선인민지원군은 ‘야간전의 명수’다.

2024년 11월 3일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조선인민지원군은 야간투시경, 열화상 카메라, 분광조준기, 망원경 등을 지급받았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보면, 조선인민지원군이 침투전술, 매복전술, 습격전술, 포위전술을 사용하는 야간전으로 우크라이나군에 치명적 공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조선인민지원군이 상대해줄 우크라이나군은 어떤 군대인가? 그 군대는 동원령에 의해 억지로 입대한 신병들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군사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변변한 무기도 갖지 못했고, 전투의지도 박약하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2024년 8월 15일 ‘월스트릿저널’ 보도에 의하면, 우크라이나군은 전투 중에 사상자가 발생하면, 사상자의 약 20%만 신병으로 보충하기 때문에, 전투에서 살아남은 전투원들의 평균 연령은 40살 이상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예비군에서도 받아주기 힘든 늙은이들이 우글거리는 노인군대다.

2024년 9월 8일 ‘CNN’ 보도에 의하면, 전투진지에 들어갔다가 용케 살아남은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은 다시는 진지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면서, 상관의 전투명령을 거부하거나 전선에서 도망칠 탈영 기회를 엿본다고 한다. 그런 난장판 속에서 지난 4개월 동안 우크라이나군 병사 약 19,000명이 탈영범으로 체포돼 군사법정에 끌려갔다고 한다. 우크라이나군이 군사형법을 개정해 처음 탈영한 병사들은 체포하지 않고 눈감아주고, 두 번째 탈영부터 체포할 정도로 탈영병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런 오합지졸들은 총폭탄정신과 자폭정신으로 무장하고, 변화무쌍한 전술을 사용하는 조선인민지원군이 전투를 개시했다는 소문만 들어도, 무서워 벌벌 떨다가 총을 내던지고 우르르 야반도주하거나 구차한 목숨을 건져보려고 두 손을 하늘 높이 쳐들고 투항할 것이다.

2024년 11월 9일 ‘로이터즈통신’ 보도에 의하면,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 올렉싼드르 씨르스끼(Olexandr S. Syrskyi)는 조선인민지원군이 전투 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고를 최근에 여러 차례 받았는데, 그 정보를 미제국 유럽사령관 겸 나토군 총사령관 크리스토퍼 카볼리(Christopher G. Cavoli)에게 전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을 보면, 조선인민지원군은 아직 전투를 시작하지 않은 것이다. 조선인민지원군이 아직 전투를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지레 겁을 먹은 우크라이나군은 조선인민지원군 속에서 사상자가 나왔다느니 탈영병과 포로가 생겼다느니 하는 허무맹랑한 헛소문을 퍼뜨리며 소동을 피웠다.

머지않아 김정은 총비서가 공격명령을 내리면, 조선인민지원군은 “백두산 번개처럼 돌격해 적의 심장부에 멸적의 비수를 꽂을 것”이며, 오합지졸 우크라이나군은 조선인민지원군의 신출귀몰 야간전으로 궤멸될 것이다. 꾸르스크의 밤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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