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의 동북아전략과 한반도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스스로 “세계최강대국”임을 선언하였다. 1945년 12월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미국 의회에 보낸 교서에서 “우리가 얻은 2차 대전 승리는 미국인에게 장차 세계를 지도할 중책이 부과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국제연합(UN)을 창설할 것을 주장하였다.
미국은 동북아시아를 매우 중요한 군사적 의의를 가지는 지역으로 중시하였다. 소련이 건재한 가운데 북한이 사회주의 국가로 새롭게 탄생하였으며 중국에서는 중국공산당의 민족해방투쟁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등, 사회주의권이 갈수록 활성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세계 패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동북아에 군사적 버팀목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한 문제였다.
미국은 특히 지정학적 위치나 사회주의권과의 세력관계를 보았을 때, 한반도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이러한 입장은 당시 언론에 의해 잘 드러나 있는데, 미국 신문인 ‘저널 오브 아메리카’는 “한국은 아시아 어떤 지역도 공격할 수 있는 태평양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전초, 전략기지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생각에 따라 진행되는 주한미군의 활동은 ‘대 공산권 전진부대’로서의 역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나 소련마저 붕괴한 지금, 주한미군은 북한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미국의 첨병이 되어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이와 같은 입장에 기초하여 한국군을 창설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다. 특히 한국군에 대한 미국의 견해는 당시 한국 주재 미 군사 고문 단장이었던 윌리엄 로버츠의 발언에 의해서도 잘 알 수 있는데, 윌리엄 로버츠는 1950년 6월 5일, 뉴욕헤럴드 트리뷴과의 기자회견에서 “미군 장병 500명을 현명하게, 결정적으로 사용하면 미군 대신에 총을 쏘아줄 10만 명의 병사를 훈련시킬 수 있다. 주한 미 군사고문단은 그의 산 증거이다. 미국의 납세자는 한국에 투하한 자본을 지키는 군대,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보인 군대를 가지고 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은 한국군을 주도적으로 창설한 데 이어 작전지휘권을 장악하고 이에 기초하여 한국군을 활용하고 있다.
2. 미군의 대북공격계획
미국이 군사전초기지인 한국에서 벌이는 군사작전은 태평양 사령부의 지휘를 받는 한미연합사에 의해 진행된다. 한미연합사는 미국이 한국에서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실제로 행사하는 기본적인 사령부로 기능하고 있다. 한미연합사는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합동훈련을 연중 실시함으로써 대북작전을 연습한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의 내용은 다름 아닌 ‘작전계획’으로서, 이를 통상 ‘작계’라고 부른다. 작계에는 해당 지역사령부와 작전지역을 나타내는 고유번호가 부여된다. 예를 들어 작계 5027-98의 경우 ‘5’는 미국 태평양사령부를, 027은 한반도를, 마지막의 98은 작계의 개정연도를 의미한다. 작계는 1∼2년마다 수정되며 세부내용은 1급 기밀에 속한다.
1) 기본적인, 그러나 특별한 ‘작계 5027’
한미합동군사훈련은 한반도 대북 작전계획인 ‘작계 5027’에 따라 진행된다. ‘작계 5027’은 한반도 전면전에 대비한 작전계획으로 한미연합사령부가 1년 혹은 2년마다 수정 보완하고 있다. ‘작계 5027’의 작전 목적은 2002년 12월 5일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합의된 ‘한미연합사의 작전기획을 위한 대한민국 국방장관과 미합중국 국방장관의 군사위원회에 대한 전략기획지침’에 잘 나와 있다. 이 지침은 한미연합군의 한반도 작전 목적에 대해 “유엔사령부/한미연합사령부(UNC/CFC) 작전계획 5027의 작전목적을 1) 북한군을 격멸한다. 2) 북한정권을 제거한다. 3) 한반도 통일 여건을 조성한다.”라고 명시하여 ‘작계 5027’의 대북 공격적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작계 5027’은 표면적으로 북측의 남침에 대비한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이 시나리오는 1단계로 북측 군대가 전면적으로 남침을 하면, 2단계로 휴전선 남쪽 20~30km에서 남측 군대가 저지하고, 3단계로 그 사이 미군이 증원군을 보내 반격을 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미연합사는 이 같은 3단계 시나리오 하에서 다시 다섯 단계의 작전구상을 밝히고 있다. 이들의 작전구상은 1단계로 미군의 신속억제전력 배치, 2단계로 북측의 전략목표 파괴, 3단계로 북진 및 대규모 상륙작전, 4단계로 북측 점령 및 군사통제 확립, 5단계로 한반도를 통일(무력통일)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한미연합사는 ‘작계 5027’의 내용을 개정하면서 1998년 선제타격전략을 채택했고, 2002년에는 한국과 상의 없이 북한을 폭격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특히 2004년에는 북한 미사일 공격에 대한 대비책이 추가됐다. 한반도 전쟁 발발 시 미국 증원군 69만 명, 함정 160여 척, 항공기 2000여 대가 추가 파병되도록 설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이 ‘작계 5027’은 표면상 북한의 남침에 대한 방어적 작전계획이라 알려진 것과는 달리 미군 주도로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는 계획으로 보인다.
2) 미국 단독으로 진행하는 작전계획도 있어
이 외에도 한미연합사에서 작성한 작전계획은 5026, 5029, 5030 등이 알려져 있다(그림 2). 이들 중 ‘작계 5026’은 1994년 당시 미국이 실제로 북한 영변핵시설을 포함한 주요 시설을 폭격하기 위하여 작성되어 실행 직전까지 간 바 있는 작전계획이다. 그리고 ‘작계 5030’은 소위 ‘북한 붕괴 유도 시나리오’로 알려져 있다. ‘작계 5030’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한국군을 동원하여 한반도 해상과 한국 영공에서 끊임없이 군사훈련을 진행하여 긴장을 격화시키고, 특히 정찰기와 전폭기를 이용해 북한 영공에 근접 비행하여 북한의 전투기 출동을 유도하고 항공연료를 지속적으로 소모시키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
특히 우려스러운 점은 미 태평양 사령부에서 독자적으로 작성한 대북 작전계획인 ‘작계 5028’이다. ‘작계 5028’의 내용은 자세히 알려진 바 없으나, 중요한 것은 미 태평양 사령부가 한반도 유사시 단독 판단으로 한국군을 제외한 채 개입한다는 사실이다. 한미연합사 주도로 작성된 작전계획 역시 사실상 미국의 대북 공격 작전계획임을 볼 때, 한반도의 운명은 거의 전적으로 미국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작계’를 연습하는 한미합동군사훈련
그렇다면 실제 훈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세계 최대 군사대국인 미국이 직접 주도하기 때문에, 그리고 미국과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북한을 대상으로 한 전쟁연습이기 때문에, 훈련에 동원되는 핵추진 항공모함, 스텔스기를 비롯한 최첨단 무력과 각종 장비, 그리고 인력의 규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반도 남쪽에서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벌어질 때마다 북한은 이를 두고 ‘북침전쟁훈련’이라고 주장하며 매번 강력한 비난과 군사적 조치들을 취해오고 있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작계 5027’을 기본내용으로 하여 ▲야외실전 연습 및 유사시 미군의 신속한 증원을 보장하기 위한 훈련인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지휘부 연습 및 한국 정부의 전쟁지원 훈련이 중심이 되는 ‘을지 프리덤 가디언 훈련’으로 나눠 진행되고 있다.
1) 핵무기와 본토 미군까지 동원되는 실전훈련
키리졸브(Key Resolve) 훈련은 2008년 처음 실시되었으나 그 뿌리는 196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북한의 남침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한미 양국은 ‘포커스 레티너’라는 합동군사훈련을 처음 실시하였다. 이후 71년부터는 ‘프리덤 볼트’, 76년부터는 ‘팀 스피리트’라는 이름으로 매년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진행하였다.
‘팀 스피리트’ 훈련의 특징은 첫째로, 핵전쟁 훈련이다. 이 사실은 당시 미국 민주당 소속 의원인 델모스에 의해 1976년도 미국 국방예산 심의과정에서 밝혀졌다. 1975년 5월 30일 미 국회 하원에서 진행된 심의과정에서, 미국은 한국에 1,000여 발의 전술 핵무기와 54대의 핵 적재기를 배치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배치한 핵무기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2005년 10월 9일, 열린우리당의 최성 국회의원은 주한미군이 1958년부터 1991년까지 한국 내 16곳에 11종류의 핵무기시스템을 배치해 왔다고 폭로하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 의원은 ‘주한미군 핵 수송 및 배치 현황도(1958~1991)’라는 자료를 통해 핵무기가 배치된 곳으로 서울 용산, 도봉산, 오산 공군기지, 춘천 캠프 페이지, 군산 공군기지, 대전 캠프 아메스 등 6곳을, 핵무기 배치 추정지역으로 의정부 캠프 레드 클라우드, 캠프 에세이온스, 동두천 캠프 케이시, 수원공군기지, 대구 캠프 헨리, 부산 캠프 하야리아, 광주 공군기지 등을 지적했다.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주요 대도시에 핵무기가 존재했거나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이어 최 의원은 “미국 ‘국방통계자료’에 따르면 군산 미군 공군기지의 경우 지난 1977년까지 중력탄 192개, 지대지 미사일인 어니스트존 80개 등 최소 272개, 지대공 미사일은 나이키 144개 등 최소 236개, 핵지뢰 25~50개 등 최소 453개의 핵무기가 존재했음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계획한 새로운 핵전쟁의 대상은 단연 북한이다. 실제로 미국은 북한에 대한 ‘선제 핵 공격 사용권’을 공개적으로 표명해 왔다. 이와 관련한 대표적 사례는 1983년 1월 23일 서울에서 진행된 당시 미국 육군참모총장 에드워드 마이어 대장의 기자회견이다. 그가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 북한에는 우리가 아는 한 소련이나 중공 또는 자체의 핵무기․미사일이 없다.
- 북대서양동맹(나토) 국가들에 배치된 미국 핵미사일의 발사는 그 국가들 정부와의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
- 그 때문에 유럽에서의 미국 핵미사일의 사용에는 제약이 있다.
- 그러나 한국에 배치된 핵미사일 발사 여부의 기본적 판단과 권리는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있다.
- 주한미군사령관은 그 판단과 결정을 미국 대통령에게 보고하면 된다.
이렇게 미국은 한국의 동의 여부에 상관없이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둘째로, ‘팀 스피리트’ 훈련 기간은 60~90일에 달해 세계 군사훈련에 유례가 없는 장기훈련이다. 북한은 ‘팀 스피리트’ 훈련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여 모든 정부와 민간의 활동이 국토방위태세로 전환되고, 두 세 달간의 훈련기간 동안 국가생산기능이 대체로 축소되거나 중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으로서는 한반도에서 ‘팀 스피리트’ 훈련을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북한에 상당한 경제적 타격을 입힐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로, ‘팀 스피리트’ 훈련의 규모는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 훈련 내용 중 핵심을 이루는 것은 작계 5027의 3단계에 따라(그림 1) 유사시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 4만 명, 괌과 알래스카 주둔 미군, 나아가 미국 본토 미군까지 신속히 한반도로 증원하기 위한 훈련이다. 이 훈련을 별도로 ‘연합전시증원(RSOI)훈련’이라고 한다. 실제 훈련에 동원되는 병력은 한미연합군을 포함하여 대체로 20만에 이르렀다.
수십 년을 이어온 ‘팀 스피리트’ 훈련은 북미 협상 과정에서 북한의 요구로 1992년 중단되었으나 협상 과정의 문제로 93년 한 차례 재개되기도 하였다. 한미 양국은 ‘팀 스피리트’ 훈련 중단의 공백을 보충하기 위해 94년부터 한미연합전시증원훈련(RSOI훈련)을 실시하였으며 96년부터는 군단급 기동훈련인 호국훈련을 추가 실시하였다. 한편 1961년부터 매년 가을 실시되던 한미합동 야외기동훈련인 독수리훈련(Foal Eagle)을 2002년부터 RSOI훈련과 통합하여 함께 진행하였다. 그리고 2008년, 한미연합군의 지휘체계 개편과 관련하여 RSOI훈련의 명칭을 키리졸브(Key Resolve) 훈련으로 변경하였다. 키리졸브(Key Resolve) 훈련은 내용에 있어서 사실상 ‘팀 스피리트’ 훈련인 셈이다.
이처럼 한미연합군이 벌이는 야외기동훈련의 성격은 호전적이다 못해 핵무기와 최첨단 무기가 총동원되고 4만 명의 주일미군과 괌, 알래스카, 본토 미군까지 모두 동원되는 세계 최대, 최장의 전투실전훈련이다.
2) 지휘체계 훈련 중심의 전쟁시뮬레이션
한미연합군이 벌이는 또 하나의 중요한 훈련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지휘부 연습과 한국 정부의 전쟁지원 훈련이 중심이 되는 ‘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이다. ‘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은 야외기동 훈련과는 달리 2008년부터 매년 8월에 실시하는 정부 및 군사 분야 종합지휘소 연습으로써, 한국 정부 및 한미 연합군 관련 수뇌부가 서울 인근지역의 B-1 벙커에 들어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적용하여 ‘전쟁지휘’를 연습한다. 실제로 동원되는 병력은 한국군 5만 6000여 명과 미군 1만여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의 전신인 ‘을지포커스렌즈’ 훈련은 1954년부터 유엔군 사령부 주관 하에 시행되어 오던 군사차원의 작전계획 수행 절차를 숙달하기 위한 ‘포커스렌즈’와, 1968년 이른바 청와대 기습사건이라고 하는 1.21사건을 계기로 정부차원의 군사지원을 위한 ‘을지연습’을 통합하여 1976년부터 실시하는 한미연합연습이다. 이 연습의 통합은 1973년 유엔사의 옷을 입은 미국이 먼저 제의하였다. 그 후 1975년 9월 양국 실무자 회의를 거쳐 1975년 11월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에 대한 합의각서’를 교환하고 그해 통합 실시하면서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다.(그림 6)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종합지휘소 연습은 한미연합사의 주관 아래 일사 분란한 지휘체계를 가동하는 데 주된 초점을 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한미합동 훈련은 각종 군사정보를 입력한 작전계획 시뮬레이션을 통해 북한과의 모의전쟁을 벌여 그 결과를 가늠해 보기도 하고, 평가 결과를 작전계획에 다시 반영하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일 경우를 상정한 워게임 시뮬레이션 결과는 간혹 언론에 보도되기도 한다. 일례로, 2004년 합동참모본부가 실시한 ‘남북군사력 평가 연구’에서는 한반도 전쟁 발발 이후 24시간 이내에 수도권 시민과 한국군, 주한 미군을 포함한 사상자가 1994년 추정치 150만 명에서 230여 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나온 바 있다.
2008년부터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실시되고 있는 종합지휘소연습은 이명박 정부의 ‘국방개혁 307’에 의해 한미연합사 해체 후 신설되는 군사협조본부 체제에 따른 한미연합군의 종합작전지휘에 대하여 훈련 중이다.
4. 미국으로부터 도입된 군수산업과 첨단무기의 진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대로, 주한미군은 국군과 더불어 북한을 향해 세계 최대의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이러한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을 해마다 두 차례씩 전개하려면 그 비용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소총 실탄을 포함한 모든 물자를 미국과 일본에서 가져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1) 미국의 군사동맹국은 단지 ‘보호령’
군사운영의 효율성 증대, 운영비 전가 등을 위해 미국이 사용하는 방법들은 전통적인 무상군사원조로부터 군수산업 설비이전을 위한 차관, 그리고 무기판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미국이 제공한 무상군사원조나 군수산업 설비이전 등을 두고 그 본질을 간과한 채 미국은 한국의 은인이며, 미국의 군사원조가 한국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의 근본이 되었다는 평가가 여전히 주를 이루고 있다.
군사동맹국 무상군사원조 등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르다. 군사원조에 대한 진실은 미 국방장관 출신 맥나마라의 발언을 보면 알 수 있다.
- “…미국은 라틴아메리카나 극동 및 유럽의 군대에게 미국 무기를 증여하거나 판매함으로써 그들을 펜타곤에 비끄러매었다.”
- “미국은 6억 이상의 인구를 갖는 1,500만 평방마일의 영토에 걸친 40개 이상의 국가에 대한 ‘보호권’을 장악한 것이다. 이 ‘보호령’들의 위성군대(satellite army)를 조종함으로써 미국 체제에 비우호적인 정부를 타도할 수 있다.”
- “이들 ‘보호국’들을 세력권에 매어두기 위해서는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는 ‘점령’할 필요가 없다. 대외 원조, 차관 공여, 군사 및 무기원조를 통해서, 그리고 ‘위성군대’를 조종함으로써 같은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
- “이들 국가를 지배하에 두기 위해서 미국 군대를 파견한다면 미국인 병사 1인당 연간 4,500달러의 비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의 전초 군사기지망의 유지전략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500만 명의 동맹국 군대는 병사 1인당 연 540달러로 유지할 수 있다. …… 우리는 미국인 병사 1인분의 비용으로 ‘보호국’의 ‘위성군대’ 병사 8명을 고용하고 있는 셈이다.”
고 리영희 교수는 위와 같은 맥나마라의 발언을 두고 그의 비평집을 통해, “이 얼마나 솔직한 자백인가! 그가 말하는 ‘극동’의 ‘보호령’ 중의 하나가 남한(한국)임은 너무나 분명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맥나마라는 미국 군수대기업 출신이며 베트남전쟁을 주도했던 인물인 만큼, 그의 발언은 사실상 미국 군산복합체가 미국의 군사동맹국들과 그들에게 제공하는 군사원조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잘 드러내준다.
2) 군사동맹국에 대한 군사원조의 한계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 대결하는 전략적 지점을 확보하기 위하여 ‘마셜플랜’을 실시하고 동북아에 대하여 대규모 군사원조를 제공하였다.
<표 1>의 자료에 근거하여 미국이 제공한 군사원조대상 지역을 크게 세 지역으로 구분하여 보면, 우선 미국은 유럽의 나토(NATO)체제 참가 국가들, 둘째로 동북아의 대 공산권 전략지역, 셋째로 그리스나 터키와 같이 전쟁 전 영국의 세력권 안에 있었으나 미국의 영향권으로 새롭게 편입된 지역에 원조하였다.
미국은 60년을 전후한 패권의 위기,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 대하여 1964년부터 무상군사원조를 줄였다.(표 1) 1969년 베트남전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던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결국 1969년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여, 분쟁이 발생했을 때 분쟁 당사자가 좀 더 많은 몫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 하였다. 미국은 패권 유지에 소모되는 ‘무상군사원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닉슨 독트린’을 통하여 ‘대외군사판매(FMS, Foreign Military Sale)’차관을 통한 ‘무기 수출 체제’로 전환하였다. 또, 베트남전쟁의 패배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었던 미국은 세계적 범위에서 미군 주둔을 감축시켰다. 한국에서도 1971년 주한미군 7사단이 철수하였으며, 동시에 한국에 대한 무상군사원조도 막을 내렸다. 본격적인 군수산업 설비 이전의 시작이었다.
3) ‘위성군대’를 위한 무기 수입
박정희 군사정권은 군 현대화, 자주국방의 명분으로 미국으로부터 대대적인 군수산업 설비 도입, 무기 수입에 착수하였다. ‘율곡사업’으로 명명된 사업은 1974년에 처음 시작되어 방위사업 비리가 적발된 1993년까지 계속되었다. <표 2>에 의하면, 한국이 90년대 초반까지 ‘율곡사업’으로 들어간 차관의 원금과 이자, 그리고 직접구매 비용은 총 461억 달러에 달한다.
그런데 이 중 미국이 한국에 제공한 대외군사판매차관은 대체로 이자가 10%를 넘나드는 사실상의 고리대금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이 미국에 해마다 갚아야 할 이자는 1987년부터 원금보다 많아졌다. 1971년부터 1990년까지 20년간 도입한 차관의 원금과 이자는 각각 23억 9500만 달러와 18억 1900만 달러였다. 한국은 원금에 육박하는 이자를 갚아나가기 위해 특별세인 ‘방위세’를 신설하고 특히 국민방위성금을 걷는 등 국민의 고혈을 짜내어야 했다.
지금도 각종 신무기 도입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국은 대외군사판매차관과 일반 상업 구매를 통해 적게는 1조 9316억 원에서 많게는 6조 8460억 원에 이르는 무기를 도입하고 있다.(표 3) 지난 5년간 한국의 무기 도입 비용은 15조원을 넘었으며, 이들 중 전투기를 비롯한 주요 무기는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방미 중 15조 원에 이르는 미국 무기 구매계약을 전격적으로 체결하여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4) 미국에서 하청 받은 군수산업
미국이 제공하는 대외군사판매(FMS)차관은 한편으로는 미국무기 구매비용으로 사용되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무기체계 운영과 보수를 담당할 수 있는 각국의 군수산업 건설에 사용되었다. 미국의 재래식 군수산업 설비를 뜯어 군사동맹국에 제공한 것이다.
한국은 71년부터 미국으로부터의 대외군사판매(FMS)차관을 받아 군수산업 육성에 나서게 되었다. 이 과정은 박정희 군사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자주국방’ 의지로 포장되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1970년대부터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내걸고 철강, 제철, 비철금속, 기계, 전자공업 등이 전략과제로 채택되었는데, 사실상 그 핵심은 군수산업의 발전을 도모한 것이었다. 특히 포항제철로 대표되는 제철공업 육성은 군수산업의 핵심적 과제였다.
미국은 한국으로의 고급군사기술 이전을 제한하였고, 대체로 생산설비를 그대로 이전한 후 한국에서 제한된 수량을 조립 생산하는 형태로 차관을 제공했다. 일례로 80년대 중반 삼성정밀과 대한항공이 제네럴 일렉트릭(GE)으로부터 하청 생산한 ‘F-5’의 개량형인 ‘제공호’는 계약된 68대의 전투기를 조립생산한 후 아무런 기술이전효과 없이 생산설비 자체가 폐쇄되었다.
70년대부터 미국의 군사설비차관을 받아 탄생한 한국의 군수산업 대표기업은 삼성탈레스(전 삼성항공, 프랑스 탈레스와 합작), 삼성테크윈, LIG넥스원(전 금성정밀), 현대로템(전 현대차량), 두산인프라코어(전 대우종합기계), 한국항공우주산업(대우중공업,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 통합), 현대중공업, 한진중공업(전 대한조선공사) 등이 있다.
미국의 군수기업은 대외군사판매(FMS) 차관을 통해 낡은 설비를 비싼 값에 팔아넘기는 동시에 새로운 설비로 교체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미국의 군사동맹국은 자연스레 미국의 무기체계와 군사기술체계에 종속되었다. 실제로 미국의 시설을 이전받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자국 내 무기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오히려 미국으로부터의 무기관련구매가 더 크게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한국은 이와 관련한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5. ‘위성군대’라는 오명을 벗어나야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주한미군은 미국의 동북아 패권 유지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행사하여 한국군을 대북군사작전에 동원하고 있다. 맥나마라가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은 한국군을 단지 그들의 ‘위성군대’로 여기고 있을 따름이다.
한국군은 ‘위성군대’의 오명을 벗기 위하여 전시 작전지휘권을 하루빨리 환수받고, 미국에 대한 무기체계 의존을 줄여야 한다. 그러나 전시 작전지휘권이 환수되고 무기체계를 새롭게 마련한다고 하여 자주국방이 온전하게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민족인 남과 북이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 해소되는 것, 통일을 이루는 것만이 외세로부터 자기 민족을 방어하는 자주국방의 본래적 의미를 더욱 온전하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