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파도를 타고 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정치”라고 했지만 결국은 파도를 넘지 못했다. 9일 사퇴 기자회견을 끝으로 한나라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홍준표 전 대표의 이야기다.
대표 취임 전 당 내 비주류의 대표적 인사로 인식되다가 7.4 전당대회를 통해 주류로 부상했지만 그에게 남겨진 것은 이명박 정권 취임이후 최단명 한나라당 대표라는 ‘불명예’였다. 동시에 한-미 FTA 강행처리의 오명도 그가 감당할 몫이 됐다.
| 9일 사퇴 기자회견을 가진 홍준표 한나라당 전 대표 ⓒ 한나라당 | 홍 전 대표의 사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이른바 ‘디도스 사태’였다. 10.26 서울시장 보선 당일 논란이 됐던 선관위 홈페이지의 마비사태가 다름아닌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 비서의 소행으로 밝혀지면서 이로 인해 홍 대표 퇴진론은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미 지난달 말 당 쇄신 연찬회를 통해 재신임 카드를 꺼내들며 ‘지도부 교체론’을 피해간 홍 전 대표였지만 이번만큼은 이야기가 달랐다. 홍 전 대표는 ‘디도스 사건’이 불거지자 “당이 직접 관계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공식 대응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상황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뒤늦게 사과에 나섰지만 상황을 타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유승민, 남경필, 원희룡 의원 등 3인의 최고위원들이 자진사퇴를 선택하는 와중에서도 홍 전 대표는 ‘재창당 수준의 쇄신안’을 내놓으며 버티기에 나섰지만 쇄신파들의 연이은 사퇴요구와 ‘기득권 지키기’라는 비난 속에서 사실상 ‘식물대표’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실질적인 당내 최대 주주인 박근혜 전 대표조차 “홍준표 체제로는 더 이상 안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홍 전 대표는 더 이상 버틸 힘을 상실하고 말았다. 결국 홍 대표는 9일 오후 기자회견을 끝으로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홍 전 대표는 “재창당 수준의 쇄신과 내부 정리 이후 사퇴하고자 했던 뜻도 기득권 지키기로 매도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며 “더 이상 당내 계파투쟁, 권력투쟁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와 상의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나는 한나라당 대표”라고 언성을 높인 것은 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리고 이날 홍 전 대표의 트위터에는 “척당불기(倜儻不羈, 기개가 있고 뜻이 커 남에게 눌려지내지 않음) 이젠 자유인이 됐습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출발부터 마찰음…당직인선으로 삐걱거린 ‘홍준표 호’
| 지난 7월 4일 전당대회를 통해 대표 최고위원에 당선된 홍준표 전 대표 ⓒ 한나라당 | ‘디도스 사태’가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 됐지만 사실 ‘홍준표 체제’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지난 4.27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안상수 전 대표의 뒤를 이어 7.4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 자리에 오른 홍 전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계파 활동을 하면 (내년 총선에서) 공천 자른다”는 말로 논란을 빚었다.
이어 당직 인선을 두고 최고위원들과 마찰을 빚었다. 측근인 김정권 의원을 사무총장 자리에 앉히려고 한 것이다. 사무총장이 공천에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자리인 만큼 홍 전 대표가 내년 총선 공천을 좌지우지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왔다.
원희룡, 유승민 두 최고위원은 공동전선을 펴고 홍 대표의 인선안에 반기를 들었다. 급기야 홍 전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내가 대표에 압도적으로 당선됐다”고 고함을 지르고 회의장을 나오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전당대회가 끝난지 꼭 일주일만의 일이었다. 결국 홍 전 대표는 ‘김정권 카드’를 강행했지만 앙금이 남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시작부터 홍 전 대표와 마찰을 빚었던 이들 두 최고위원은 결국 ‘디도스 사태’ 국면에서 자진사퇴를 선택해 ‘홍준표 체제’ 붕괴를 가속화 시켰다. 특히 전당대회 과정부터 홍 전 대표와 설전을 벌였던 원희룡 의원은 최고위원직을 내던지면서 끝까지 홍 전 대표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내년 총선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에서 홍 전 대표의 능력에도 의구심이 제기됐다. 8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는 투표함의 뚜껑조차 열지 못했고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패배했다. 물론, 이는 홍 전 대표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한나라당의 총체적 난국을 보여주는 단면이었지만 홍 전 대표가 리더라는 점에서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상황인식의 안일함도 문제였다. 홍 전 대표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패배했음에도 “투표율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안에 대한 여론조사치를 종합해보면 사실상 오 시장이 주민투표에서 승리한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결국 이같은 발언은 국민들의 곱지못한 시선을 이끌어냈고 이후 서울시장 재보선 패배를 부르는 단초가 됐다는 평가다.
서울시장 재보선 국면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출마설이 나돌자 홍 전 대표는 “(철수가 나오니) 영희도 나오겠네”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안 원장은 박원순 현 서울시장과의 단일화로 한나라당의 서울시정 사수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물론 ‘박근혜 대세론’을 깨고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우뚝 선 상태다.
잇따른 막말파문…그리고 한-미 FTA 강행처리
무엇보다 잇따른 ‘막말’과 ‘돌발발언’ 파문은 ‘홍준표 체제’의 균열을 가속화시킨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전부터 거침없는 발언으로 유명했던 홍 전 대표였지만 집권 여당대표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비난의 강도는 더욱 심했다. 김무성 의원은 지난 5일 “한나라당을 이지경으로 만든 다섯명이 있다”며 여기에 “집권당 대표이면서 막말을 해댔다”는 이유로 홍 전 대표를 포함시키기도 했다.
대표 취임이후 처음으로 터진 ‘막말파문’은 지난 7월 14일 참여연대 방문을 마친 후 돌아가는 길에 터졌다. 홍 대표는 민주당이 제기한 삼화저축은행 로비자금의 한나라당 전당대회 유입설과 관련, 한 여기자가 “돈을 받았느냐”고 묻자 “그런 것을 왜 묻느냐, 너 진짜...”라며 “맞는 수가 있다”는 폭언을 퍼부었다.
10.26 서울시장 재보선 패배 이후 젊은 표심을 잡겠다며 대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이대 계집애 싫어한다고 했다”, “내가 겨우 3개월 전에 주류가 됐는데 꼴같잖은 게 대들고 X도 아닌 게 대들고”, “패버리고 싶다” 등의 지나친 발언으로 당 안팎의 비난을 받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홍 전 대표는 한-미 FTA 비준안 통과와 관련,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내가 한 기자랑 내기를 했다. 이달안에 통과 못시키면 내가 100만원 주고 내가 이기면 국회 본청 앞에서 그 기자 안경 벗기고 아구통 한 대 날리기로 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져 물의를 빚었다.
그리고 홍 전 대표는 자신의 ‘호언장담’대로 지난달 22일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강행처리’했다. 이는 현재 지적되고 있는 FTA 독소조항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올 경우, 홍 전 대표가 집권 여당대표로서 행한 최악의 실수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더구나 홍 전 대표는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7년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와 관련, “어떻게 보면 한국의 사법주권 전체를 미국에 바친 것”이라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비준안 처리의 ‘1등 공신’이 됐다. 하지만 홍 전 대표는 그로부터 채 한달도 지나지 않아 대표직을 내놓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