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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시대 다시 나오는북한의 ‘통미봉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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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샘샘
댓글 1건 조회 1,601회 작성일 12-01-0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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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핵 협상을 두고 벌어진 일들은 북한에는 추억으로, 남한에는 트라우마(외상)로 남아 있다. 미국과 통하고 남한 참여는 봉쇄하는 북한의 외교전략인 ‘통미봉남(通美封南)’ 얘기가 다시 나오고 있다.

김정은 체제 출범 후 북한 행보는 외견상 통미봉남 모습을 띤다. 국방위원회 성명과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민간인 조문을 제한적으로 허용한 이명박 정부에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그보다 높지 않은 수준의 조의를 표한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에는 비난을 삼갔다. 오히려 미국 선전방송까지 인용하며 미국 측이 북·미 대화에 관심을 보였다고 소개했다.

이런 북한 전략은 1994년 김일성 사망과 2011년 김정일 사망 당시의 유사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1994년 당시 북한은 미국과 제네바에서 고위급회담을 열던 중이었고, 남한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었다. 정상회담 상대가 사라진 상황에서 김영삼 정부는 북한이 곧 망할 것으로 판단하고 대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자극했다. 반면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김 주석에게 조의를 표하고, 로버트 갈루치 협상대표를 제네바 북한 대표부에 보내 조문했다. 당시 한국 측은 미국에 ‘악행을 저지른 사람 죽음에 공식 애도를 표한 것’에 항의했지만, 북·미회담을 막을 수 없었다. 한국은 대북 강경론을 펴다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고 북·미는 제네바 기본합의를 도출했다. 

이 합의는 북한 외교 사상 큰 승리로 기록됐다. 하지만 한국 외교엔 상처로 남았다. 그래서인지 이후 미국과의 조율을 거쳐 ‘빛 한 줄기 새어나올 틈 없는’ 공조를 과시하는 게 외교부의 중요한 임무가 됐다. 이번에도 정부는 북한의 통미봉남 시도에 신경을 쓴다. 다만 한·미 동맹이 역사상 가장 공고하다고 보고, 학습효과도 있기 때문에 1994년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김정일 사망 이전에 정부 내에는 남북회담 없이 3차 북·미대화로 가는 것에 ‘미국이 너무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속히 6자회담으로 넘어가 본론을 다루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는 논리가 부상하며 북·미대화 국면이 만들어졌다.

김정일 사망 이후 통미봉남이 불거지며 대북 협상파의 입지가 다소 좁아졌다. 1994년을 복기하며 정부가 얼마나 교훈을 얻었는지 볼 일이다. 북한도 자존심 싸움에 집착할지, 김정일 사망 전 북·미 간 식량지원과 비핵화조치를 이뤘듯이 실리에 기반을 둔 공감대를 이어갈지 두고볼 일이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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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했나님의 댓글

머했나 작성일

사실인지는 모르나 김정은이 대학을 졸업하면서 선대 세대인 김일성/김정일을
포함한 혁명 1,2세대를 싸잡아 강하게 비판했다는 설이 있다.

해방후 반백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적화통일이니 이밥에쇠고기국이니 하며
미국놈들 핑게대며 불쌍한 인민들 굶기고 자빠져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는게
그 주장의 요지였다고 한다.

"선군정치를 한다면서도 만날천날 미국놈들 바짓가랭이나 잡고 늘어져 미국놈
타령이나 하고... 노동당.. 그간에 통일안하고 밥굶기며 지난 50여년 동안 머했나 이겁니다!"

마치 작전권 이양건으로 군장성들의 나태함을 나무라던 고 노무현 대통령 어투를
그대로 흉내낸듯한 과감하고도 격정적인 지적이었던 셈이다. 

그러고보면 이전 부모세대들과는 다르게 김정은은 소위 미군철수와 연계한 남북통일
과업과 관련하여 미국과 남한에 대한 엄청난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며
만약 그런 작업이 여의치 못할시에는 노통처럼 불시에 죽게되는 상황이 생기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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