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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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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511회 작성일 22-08-30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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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

 

19

강충현은 호각끈을 목에 걸고 어뜩새벽부터 단조직장에 나와있었다. 이날 아침 9시부터 무동력으로 40미리메터 특수강판을 단조하기 위한 전투를 벌리게 되는것이다.

한쪽 옆에 가열로가 붙어있고 뒤켠에 구실 못하는 650톤프레스가 우울하게 서있는 넓은 작업장 한복판에 사각형의 모루형거푸집안에 바위같은 3톤함마가 거만하게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쇠함마 량쪽에는 길이가 4메터나 되는 쇠지레대가 날개처럼 달려있고 거푸집앞에는 3.5메터 높이의 나무발판이 다락처럼 네 기둥에 받쳐있었다.

강충현은 쇠함마를 보자 가슴이 두근거리였다. 전투 총지휘를 맡은 그는 발편잠을 자지 못하고 나왔다.

아침 7시가 조금 지나자 기업소 방송차가 공장 구내길을 다니며 아침 9시부터 단조직장 당원결사대원들이 무동력으로 40미리메터 특수강판을 단조하기 위한 전투를 시작하게 된다는 소식을 알리였다.

얼마후 책임비서, 지배인, 기사장이 저마끔 바께쯔를 한개씩 들고 작업장에 나타났다. 그 뒤로 푸른 운동복을 입은 당원들이 마치 경기장에 나서는 체육선수들처럼 줄을 지어 들어섰다.

책임비서가 그들을 세워놓고 《당원동무들, 오늘 전투에서 성공하길 바랍니다. 전투를 하기전에 요기를 좀 해야지. 이건 지배인, 기사장 부인님들이 동무들을 위해 성의를 표한거요.》하고 바께쯔 뚜겅을 열었다. 방금 쪄온것 같은 남새줴기밥덩이가 바께쯔안에서 하얀 김밭을 모락모락 피여올리고있었다.

지배인이 든 바께쯔에서는 남새된장국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기사장이 들고 온 바께쯔에는 늄식기와 수저들이 담겨져있었다.

지배인이 당원결사대원들의 손에 수저를 들려주며 말하였다.

《오늘 동무들에게 이런것밖에 대접하지 못하는게 정말 미안하오.》

《야 이거, 대단한 특식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돕니다.》

결사대원들은 저마다 이렇게 한마디씩 하며 기사장이 꺼내주는 그릇을 받아들었다. 생각에 잠겨 음미하듯이 천천히 먹는 사람, 게눈감추듯 하는 사람, 줴기밥을 먹는 결사대원들의 모습은 각이하였다.

《오늘 발판에는 순진이가 올라간다지?》

책임비서가 줴기밥 네덩이를 순간에 없애치우고 입을 씻고있는 순진의 어깨를 두드리였다.

《순진이, 실수없이 잘해야 돼!》

《책임비서동지, 걱정마십시오.》

순진은 안경을 추슬러올리고 허리를 쭉 펴보이면서 자기의 억센 힘을 자랑하듯 바른 팔을 들어 몇번 굽혔다 폈다 하였다.

그러다가 출입문으로 바께쯔를 량손에 들고 들어서는 아버지를 띠여보고 의아해하였다.

《아버지, 그건 또 뭐예요?》

《이게 오늘 너희들에게 제일 귀한거다.》

박준은 성근 이발을 드러내고 히죽히죽 웃으면서 바께쯔를 내려놓았다.

강충현은 호기심을 가지고 나무뚜껑을 덮은 두개의 흰 늄바께쯔를 내려다보았다. 그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두들 궁금해하고있을 때 박준이 바께쯔뚜껑을 열었다.

《이건 우리 며늘애가 될 사람이 만들어온 소다수요. 자, 전투를 하기전에 목을 추기게.》

박준이 21명 결사대원들에게 돌아가며 한고뿌씩 소다수를 대접하고 주혁민에게로 갔다.

《책임비서동지, 고맙수다. 당원도 아닌 우리 순진일 당원결사대에 넣어주구… 그것도 제일 중요한 함마잡이를 시키니… 책임비서동지가 우리 순진이 입당보증까지 서주겠다는 말도 들었어요.》

박준이 눈굽을 훔치며 목메여하자 어느 익살군인가 일부러스럽게 너스레를 떨었다.

《순진이 아버지, 그런데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당세포도 모르게 언제 며느리를 골랐습니까. 순진이도 옳지 못해. 약혼한 처녀가 있으면 먼저 당조직에 보고해야지 않는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앞에 나와 어서 보고하게.》

박순진이 조금도 수집어하는 기색이 없이 훌쩍 일어섰다.

《저의 약혼녀에 대해선 오늘 전투를 성과적으로 끝낸 다음 당원동지들앞에 정식으로 보고하겠습니다. 그대신 이 자리에선 동지들이 좋아하는 김치깍두기노랠 부르겠습니다. 여기 김치깍두기도 없고 〈만반진수〉도 차리지 못했지만 제가 노래를 불러 맛을 돋구겠습니다.》

《좋소!》

주혁민이 제일 먼저 손벽을 쳤다.

박순진은 안경을 벗어 한손에 들고 두어깨를 들썩거리며 건드러지게 소리를 뽑았다.

저 건너집 김첨지 두 량주가

아침을 먹을 때 김치깍두기 맛 참 좋시다

김치깍두기 맛 참 좋시다

김치깍두기 맛 참 좋시다

만반진수 차려놓고

김치깍두기 없으면 아주 맛없네

《잘한다!》

《멋있다!》

《재청이다!》

구경군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소리치며 두드리는 박수소리가 요란했다.

재청을 받은 박순진은 혁명가극 《당의 참된 딸》의 주제가를 불렀다.

《당원이란 어떤 사람들인가?》라는 물음이 제시되는 이 절절한 노래는 이제 결사전에 나설 20명당원들의 가슴에 당원의 자각을 새롭게 간직하게 하였다.

이 노래가 끝난 뒤 강충현이 시계를 들여다보고 《자, 이젠 결사대원을 제외한 다른 성원들은 다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전투는 말그대로 고도의 긴장성을 요구하는 결사전이기때문에 작업할 때에는 책임비서건 뭐건 누구도 있을수 없습니다. 자, 나가시오. 박준아바이도 아들이 일하는걸 보고싶겠지만 할수 없습니다. 나가야 합니다.》하고 두손을 저으며 새쫓는 시늉을 하였다. 강충현은 일부러 너스레를 치기도 하지만 실지 고도의 긴장성과 정신집중을 요구하는 작업장에 군손님이 한명이라도 들어와있으면 작업에 지장을 줄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 이거 개쫓듯 하누만. 할수 없지. 총지휘자에게 복종해야지. 하긴 우리도 여기 앉아 구경할새가 없는 사람들이요. 지배인동무, 우리도 자기 전투장으로 가봅시다.》

주혁민이 지배인에게 손짓을 하고 선참으로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박준은 맨 뒤에서 걸어나가다가 아들을 돌아보았다.

《순진아, 덤비지 말구 잘해야 한다.》

《아버지, 안심하고 가세요.》

《오냐! 자, 모두들 성공하길 바라네.》

박준은 결사대원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천천히 출입문을 나섰다. 이윽고 책임비서는 페타르를 실으려 바다로 가고 지배인과 기사장은 《HM기》시험을 하려 수봉으로 떠났다.

그들이 나간뒤 얼마 안있어 공장대학의 젊은 남교원이 작업장으로 또 들어왔다. 강충현은 이마살을 찌프리며 소리쳤다.

《나가시오! 출입금지요!》

《전 책임비서동지가 여기 계신다길래 찾아왔습니다.》

《방금 책임비서, 지배인 다 나갔소. 동무도 어서 나가시오.》

강충현은 젊은 교원의 잔등을 밀면서 출입문쪽으로 걸어갔다.

《아, 이거 오늘 소장동지가 왜 이렇게 사납게 굽니까. 전 가겠는데 이걸 책임비서동지에게 전해주십시오.》

젊은 교원은 출입문으로 밀려가면서 별모양으로 접은 종이를 강충현에게 내밀었다.

《이건 도대체 뭐요?》

그것은 어제 아침 설태섭이가 평양으로 떠나면서 책임비서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한 굴종이라고 하였다. 어제 몇번 당위원회에 찾아갔댔으나 책임비서가 없어서 전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본인한테 직접 전하라고 해서 가지고있었는데… 전 이제 낮차로 함흥에 가야 합니다.》

《좋고. 그럼 내가 책임적으로 전할테니 어서 나가시오.》

강충현은 교원을 내몰고 출입문을 열지 못한게 안으로 걸어놓았다.

드디여 9시가 가까와오고있었다.

강충현은 호각을 불었다.

《자기 위치로!》

강충현인 손을 들며 소리치자 쇠함마에 련결된 량쪽 지레대에 각각 다섯명의 단조공들이 달라붙었다. 그들의 뒤에는 교대할 단조공이 줄을 섰다. 그들과 때를 같이하여 박순진이도 사닥다리를 타고 발판우에 올라섰다.

강충현이 작업준비가 다 된것을 보고 단조공들에게 말하였다.

《동무들 명심하시오. 〈쇠가 단김에 두드리라!〉 10분동안에 220번 쇠함마를 쳐야 합니다. 220번, 이게 운명이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장동지!》

바른쪽 지레대 맨 앞에 서있는 작업반장이 손을 흔들며 자신있게 대답하였다.

《함마를 열번 치면 내가 호르레기를 불테니 그때 제꺽 교대하시오. 열번 치고 교대! 그리구 순진이! 동무가 잘해야 돼. 알겠소?》

《소장동지! 이 순진일 믿으십시오.》

박순진이 발판대우에서 주먹을 쳐들어보이였다.

강충현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시간을 톺아가는 초침소리를 그가 이때처럼 의미깊이 들어본적은 없었다.

9시, 마침내 강충현은 호각을 불며 푸른 신호기발을 들었다.

그와 함께 열명의 단조공들이 일제히 얏! 하고 소리치며 지레대를 내리눌렀다. 거푸집안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시커먼 3톤함마가 공중에 떠오르고 대신 그 자리에 천정기중기로 가열로에서 물어온 시뻘겋게 단 쇠덩이가 놓이였다.

박순진이 발판우에서 시계추처럼 흔들거리는 집채같은 함마를 그러안으며 얏차-하고 소리치자 열명의 단조공들이 잇달아 얏차 하고 화답신호를 울리였다.

순간 함마가 윙-소리를 지르며 거푸집안에 들어있는 시뻘건 쇠덩이를 무섭게 내리쳤다.

쾅! 작업장 세멘바닥이 진동하면서 치직치… 소리를 낸다. 쇠내가 풍기고 수백점의 불꽃이 불보라처럼 날리였다.

다시 단조공들이 웨치는 함성, 박순진이의 얏차 소리 윙-쾅! 푸지직… 단조공들의 웨침과 함마의 노호성과 3톤주먹에 두드려맞는 붉은 쇠덩이의 신음소리는 련속되였다.

단조공들의 이그러진 얼굴에서는 비지와 콩죽같은 건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눈에서는 퍼런 불이 펄펄 일었다.

그것은 끓는 피가 차있는 심장에서 타오르는 사랑과 증오의 불빛이였다. 조국에 대한 사랑, 미제에 대한 증오! 몇달동안 강낭죽이나 강낭밥으로 하루 한두끼씩 에우며 지낸 몸이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단조공들이 결사적으로 벌린 이 격전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울것이다.

단조공들은 정확히 9분 30초동안에 함마를 220번 내리쳤다. 초인간적인 힘이였다.

두께가 0.5메터이던 쇠덩이는 40미리메터의 납작한 강판으로 되여버렸다.

놀랄만 한 기적이고 큰 성공이였으나 격전을 치른 단조공들은 기운이 빠져 승리의 환호성도 울리지 못하고 눅눅한 콩크리트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힘쓰는 일을 하지 않은 강충현이도 긴장으로 하여 10분동안에 땀을 한동안이라 흘려서 아래다리가 휘친거리고 머리가 휭휭 돌아갔다.

《순진이! 너도 이젠 내려와서 좀 드러누워라. 용하다, 용해. 수고했다.》

강충현은 발판우에 주저앉아있는 박순진에게 소리치고 전화를 걸려 단조직장옆에 있는 공업시험소 소장방으로 갔다. 책임비서와 지배인에게 성공의 소식을 알려주려는것이였다. 그러나 전화기앞으로 다가서는 순간 빈혈증이 일어나서 긴 나무걸상에 드러누웠다. 그는 잠시 안정을 하고 일어서려고 했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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