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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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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309회 작성일 22-08-14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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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

 

3

오성오는 사람들을 보내고 사무실로 들어가서 량수책상 아래빼람을 열었다. 거기서 아이주먹만 한 밀가루빵 두개를 넣은 흰 비닐주머니와 콩물을 담은 파란 유리통을 꺼냈다.

엎디면 코닿을 곳에 집이 있었으나(책임비서와 한동을 쓰고 살았다.)그는 원래 고양이밥처럼 소식을 하는데다 조반은 더욱 몇술 뜨지 않는터여서 늘 이렇게 사무실에서 일을 보면서 간단히 요기를 하였다.

그는 빵을 한모서리 떼여 입에 물고 조그마한 약숟갈로 콩우유를 뜨면서 《HM기》기술협의회 기록장을 번지였다.

아침 10시에 《HM기》제작단 기본성원들을 모이게 한 그는 그들이 올 때까지 지난 기간에 진행한 기술협의회자료들을 더듬어보려는것이였다.

3년이 넘도록 진행한 기술협의회가 237회나 되였다. 그것은 매달 평균 다섯번이상 기술협의회를 한것으로 되였다.

오성오는 보풀이 일지 않도록 두툼한 판종이에 붉은 천까지 씌운 기록장뚜껑을 볼 때마다 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올라 눈물이 났다.

수령님께서 그렇게도 보고싶어하신 《HM기》였다. 이 라남구역에서도 수령님의 서거에 대한 비보를 받고 정신적충격으로 하여 사망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전 기사장도 수령님의 서거이후 며칠 안있어 사망했고 강충현의 어머니 안성녀는 그 당날에 혼절하여 쓰러졌는데 종시 깨여나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갔다. 5월10일종합공장 고문지배인도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고난 이후부터 여러날 앓다가 돌아갔다.

1994년 7월 9일 5월10일종합공장 마당은 울음의 바다로 되였다. 그때 윤현덕을 비롯해서 기절해 넘어져 병원에 실려간 사람들이 여러명 되였다.

오성오는 눈물을 삼키면서 기록장뚜껑을 번지였다.

첫장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날자 : 1991년 1월 11일 금요일

장소 : 오성오기술부기사장 사무실

참가자 : 서정후부부장, 오성오, 최강철, 강충현, 독고명천, 윤현덕…

기억은 어제런듯 새로우면서도 격세의 느낌을 주는 제1차 기술협의회였다. 몇년전 일이 어찌하여 아득한 옛일처럼 생각되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금방 있었던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는지 오성오는 알수 없었다.

그는 기록장을 들여다보지 않고도 모든것을 생생하게 상기할수 있었다.

그날 제1차 기술협의회에서 오성오는 첫 시작부터 서정후부부장과 불쾌한 언쟁을 했었다.

오성오가 협의회 개회를 선언한 다음 설계조를 책임진 윤현덕설계실장이 《HM기》설계도개조안을 발표하였는데 서정후가 대뜸 성을 냈다.

오성오는 방안을 크게 울리던 서정후의 높은 목소리가 아직도 귀청을 울리는듯 하였으나 확인해보듯 기록장에 눈을 주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서정후부부장 ; (오성오부기사장을 쏘아보며)동무, 김동철지배인이 살아있을 때부터 설계도를 개조하면 21세기를 목표한 나라의 10년거사를 망쳐버린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하지 않았는가. 최고도기술을 요구하는 근 1만개나 되는 《HM기》설비, 부속품들을 제멋대로 뜯어고쳐서 무슨 파밭을 만들자는거요. 모두 똑똑히 알아두시오. 개조냐? 리용이냐? 전자는 나라에 죄를 짓고 망하는 길이요, 후자는 나라에 공을 세우고 흥하는 길입니다. (강충현 소장을 돌아보며) 참, 카나다형님이 어떻게 됐소. 조선에 온다더니?

강충현소장 ;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HM기》설빌 교섭해보겠다고 유럽으로 갔는데 소식이 없습니다.

서정후부부장 ; 거 보시오. 소장동무의 형님이 왜 유럽에 가겠소. 《HM기》설비만은 우리 나라에서 만들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 있기때문이요. 세계에서 인공위성을 제일 먼저 쏴올린 쏘련에서도 그걸 만들어보다가 시끄러워 걷어치웠소. 《HM기》의 설비란 바로 그런 물건이요. (다시 강충현소장에게 고개를 돌리며)형님은 참 애국자요. 유럽의 서방나라 과학계에 형님의 친구들이 많다니 십분 성공할수 있소.

(곽경두에게 눈길을 보내며) 책임부원동무! 이웃나라에서 기업을 하는 친조카가 서방나라 《HM기》회사 사람들과 거래한다고 했지요?

곽경두부원 ; (매우 감동한 어조로) 접때 한번 피끗 말씀올렸는데 여태 잊지 않고계셨습니까. 지난 12월초에 조카애한테서 편지가 왔습니다. 《HM기》기술자료를 뽑아올수 있으니 저더러 한번 오라고 했습니다.

김동철지배인에게 그 사연을 말하니 몹시 반가와하며 빨리 조카애를 만나보라고 했습니다. 지배인동지가 직접 려권수속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그만 애석하게도…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함).

오성오기술부기사장 ; 서방나라에서 《HM기》기술자료와 설비를 뽑아오겠다고들 하는데 참 답답합니다. 지난해 우리가 그곳에 가서 체험하지 않았습니까. 미국의 통제를 받는 서방나라입니다. 우리한테 주고싶어도 주지 못합니다. 설사 준다해도 서방나라에 의존하면 경제예속…

서정후 ; (오성오부기사장의 말허리를 꺾으며) 동무! 한두개 설빌 가져오는데 의존은 무슨 의존이요? 왜 과장하기 좋아해. (이 사람, 저 사람 돌아보며)주체적인 공업건설이라고 해서 100프로 우리의것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런 극단주의자들은 외국의 선진기술을 도입하는것조차 주체공업건설에 어긋나는것이라고 걸고듭니다.

(오성오를 향해) 우리의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없는것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오는것이 국가적인 립장이야. 동무처럼 생각한다면 유무상통의 경제교류도 하지 말아야지. 무역기관도 다 없애버리고. 우리가 《대원군쇄국정치》를 하는게 아니란 말이야…

오성오는 불시에 기록장에서 고개를 돌리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더는 읽고싶지 않았다.

기록장에서 눈을 뗐으나 불쾌한 추억이 지꿎게 갈마들었다.

그때 서정후는 《대원군쇄국정책》이요 뭐요 하며 오성오를 아이 취급하는듯 야, 자 반말을 하였다.

체소하고 볼품이 없게 생긴 오성오를 짜장 얕잡아보고 휘뚜루 반말을 하는것 같았다. 그래서 오성오의 분노가 리성을 잃게 하였다.

《동무, 무슨 반말질인가. 나이로 보아도 내가 동무보다 한살우야! 동무에게 무슨 특권이 있어 야, 자 하며 인간을 하대하는가.》

제1차 기술협의회는 오성오의 과격한 언동으로 하여 중단되고말았다. 이 일로 해서 책임비서한테 되게 비판을 받았었다. 그때로부터 230여차의 기술협의회를 하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언쟁을 하였던가.

분노의 뒤끝엔 후회가 온다고 과격한 언쟁을 하고나서는 반성과 회오의 고통에 잠겨들기 십상이였으나 성미마른 오성오는 오늘까지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였다.

기술언쟁으로 하여 인간관계가 나빠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론쟁마당에서는 서로 적이 되여 싸웠지만 생활에서는 더없이 친근한 벗이였다.》라는 말은 허구가 허용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 자주 보게 되는 리상화된 말이고 실지 생활에서는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서로들 주장하는 과학기술적견해는 곧 그들의 운명이고 의지이고 사랑이기때문이였다.

오성오는 그후 서정후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HM기》설계도를 끝내 공장의 실정에 맞게 전면개조하게 하였다.

《HM기》제작단 설계조의 세사람ㅡ윤현덕, 탁석준, 설태섭들이 설계도개조를 끝낸것은 제1차 기술협의회가 있은 때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난 1991년 12월 25일이였다.

《HM기》에는 100여개의 기본설비들과 9천여개의 부속품들이 들어있기때문에 그 매개 부분품들을 개조하여 설계한 도면이 《승리》자동차로 한자동차나 되였다.

《HM기》제작단에서 설계도개조작업을 끝낸 1991년 12월 25일은 모스크바 크레믈리지붕에서 70년동안 휘날리던 쏘베트의 붉은기가 내리워진 비극적인 날이였다. 그러나 그 전날 12월 24일은 김정일동지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날이였다.

경사로운 민족적사변과 가슴아픈 국제적사변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고있던 시기에 설계도개조작업을 완성한것으로 하여 오성오는 그날을 더욱 잊지 못하고있다.

설계도를 개조한 이후부터 진행된 설비와 부속품 제작과정은 더욱 심각하고 어려운것이였다.

《HM기》의 밑틀인 베트만 하여도 무게가 10톤이나 되고 길이가 수메터인 대형정밀제품으로서 쇠물을 부을 때 거푸집에 자꾸만 변형이 생겨 수십차례나 실패를 거듭하여 반복작업을 하여야 하였다. 베트의 평면과 곡면에서 0.01~0.001미리메터의 정밀도를 보장하여야 하는데 정밀가공작업에서는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5월10일종합공장에서도 그런 대형제품의 정밀주물작업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 베트우에서 작업하는 왕복대, 굴대, 심봉과 같은 설비들 역시 전문야금기업소에서도 주강하기 힘들어하는 랭간정밀형단조강제품으로서 50여차례의 시험작업을 거쳐 완성할수 있었다.

베트나 심봉, 굴대와 같은 설비들에 비해 몇십몇백배 어려운 최고도정밀기술작업인 유압설비제작은 2년 11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거쳐 200여번이나 시험작업을 반복하였다. 웃고 울고 기뻐하고 분개하며.

《HM기》제작단 성원들의 희로애락이 깃들어있는 근 1만개의 정밀제품들을 이제 조립하면 드디여 《HM기》라는 철의 마술사ㅡ최첨단 공작기계가 된다. 물론 그것이 진짜 제구실을 하는 《HM기》로 되겠는지는 시험가동을 해보아야 알수 있는 일이였다. 성공이냐 실패냐 그것이 판결되는 운명의 날은 이제 나흘밖에 남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문기척소리에 오성오는 생각에서 깨여났다.

애기를 업은 젊은 녀인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시험소 야금기사이며 《HM기》제작단 가공조립조 성원인 고정순이였다. 2년전 1992년 가을 채탄기직장 조립작업반 반장이며 《HM기》제작단 성원인 김경복이와 가정을 이룬 고정순은 벌써 딸을 가진 어머니로 되였다.

《왜 아직 오지들 않았습니까?》

고정순은 문가에 엉거주춤 서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침 10시부터 지배인사무실에서 《HM기》제작단 성원들의 모임을 하기로 되여있어 묻는 말이였다.

《이제 오겠지. 거기 앉소. 그런데 애기는 왜 업고다니오?》

《애한테 열이 있어 진료소에 갔다오는 길입니다.》

고정순은 벽밑에 놓인 손님용걸상에 앉으면서 지친듯이 한숨을 쉬였다.

오성오는 먹던 음식들을 서둘러 빼람에 집어넣고 일어나 고정순의 등에서 칭얼거리는 애기의 손을 만져보았다.

《손이 불덩이같구만. 페염 아니야?》

《페염은 아니랍니다.》

애기의 신음소리에 오성오는 가슴이 알찌근해져 잠시 덤덤히 서있었다.

지금 공장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보다 10년이나 나이가 많은데다 대학도 졸업하지 못하고 인물도 그닥지 않은 사람을 남편으로 삼은 고정순을 배우자선택에서는 실패한 녀자로 보고있었다. 그전에 고정순이와 한 호실에 있은 합숙처녀들도 《언닌 미치지 않았어요? 무엇때문에 그 인물, 그 인격을 가지고 자기보다 10년이나 우인 대학도 졸업하지 못한 〈령감〉하고 결혼하겠다는거예요.》하고 불만스러워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고정순은 너희들 걱정하지 말라, 내 그사람하고 누구보다도 재미있게 잘 살면 되지 않아, 나를 짝사랑하며 심화병을 앓는 남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다음부터 나는 행복했어,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누구하고 결혼을 하겠니 하고 기어이 김경복이와 결혼하겠다고 고집했다는것이다. 고정순이에 비하면 공장적으로 이름있는 수재이고 유일한 학사인 설태섭을 남편으로 맞은 한정희는 합숙처녀들의 선망의 대상으로 된 인생의 승리자였다. 고정순이와 같은 해에 설태섭이와 가정을 이룬 한정희에게는 달덩이같은 아들이 생겨났었다.

고정순은 자기가 말한대로 결혼후부터 오늘까지 같은 제작단안에서 김경복이와 함께 원앙새처럼 다정하게 그리고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해왔었다. 늙은 어머니에게 애기를 맡기고 시험소에서 밤을 꼬박 새우는 때가 뜨문했었다. 결혼당시 공장대학 3학년생이였던 김경복은 대학에 갈 짬도 없이 밤낮 일에 붙들려 아직도 3학년에서 앉은 두동을 하고있었다. 명랑한 녀자익살군인 고정순은 자기 남편을 《공장대학 락제생》이라고 조롱하며 웃길뿐 조그마한 불만도 후회도 보이지 않았다.

설태섭이네 부부도 행복하게 잘 살았다.

같은 해에 결혼식을 한 이 두 가정이 외견상으로는 서로 가깝게 지내고있는것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알수 없는 간격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것은 설태섭에게서 김경복을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업수이보는것 같은 태도가 가끔 고정순의 눈에 뜨이군 하기때문인지도 몰랐다. 고정순은 성미가 쾌활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녀자였다. 그는 지난기간 기술협의회에서도 설태섭이와 여러번 다투었었다.

그래서인지 고정순은 오성오의 책상우에 놓인 기술협의회기록장을 류다르게 지켜보다가 웃음기를 띠고 물었다.

《지배인동지, 그 기록장에 지난기간 제가 발언한것들도 다 적혀있습니까?》

《물론 적혀있지. 그건 왜 갑자기 묻소?》

《제가 엉터리없는 발언을 한게 많기때문이예요. 그런건 지워버리면 안됩니까?》

《허허허…》

오성오는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제끼고 크게 웃었다. 지우고싶은 생각으로 말하면 오성오에게 더 많았다. 그러나 지우고싶어도 지울수 없는것이 기술협의회기록장이였다. 그것은 법적문건이였다. 먼 후손들까지 읽게 될 공장의 력사자료이기도 하였다. 후대들은 그 글을 읽으면서 오늘의 매개 사람들을 평가하게 될것이다.

《전 자기 인격을 떨구는 싸움을 많이 했지요. 설태섭동무와 말입니다. 그 동무와의 사이가 점점 벌어집니다. 그러다보니 한정희와도 어성버성해지고요. 지배인동지, 왜 이렇게 될가요?》

지배인앞에서 괴로운 마음을 터놓던 고정순은 문기척소리에 흠칫 놀라며 돌아섰다. 설계조성원들인 윤현덕, 탁석준, 설태섭이들이 들어서고 뒤따라 시험소 소장 강충현이와 김경복, 곽경두가 들어섰다. 맨 나중에 들어선 최강철기사장이 지배인책상곁으로 다가와 팔걸이걸상에 몸을 실었다.

오성오는 그제야 협의회기록장을 덮어버리고 여기저기 널려 앉아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한가지 알려줄것이 있어 모이라고 하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지시에 의하여 중앙의 많은 간부들이 우리의 〈HM기〉를 보러 온답니다.

장군님께서는 여태 11월 9일이라는 날자까지도 잊지 않고계셨다고 합니다.

국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장군님께서 수령님을 모시고 오셨을텐데.》

오성오는 갑자기 목이 메여올라 무중 입술을 깨물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윤현덕이 쿨렁쿨렁 기침을 깇었다. 모두가 수령님을 잃은 슬픔과 수령님을 잘 받들지 못한 자책으로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오성오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씻고 입을 열었다.

《김경복동무, 11월 9일에 시험가동을 해야겠는데 그때까지 조립을 해낼것 같소?》

《예, 운수직장에서 오늘중으로 설비운반을 끝내겠다고 하니 제가 래일부터 유능한 조립공들을 데리고 수봉작업장에 올라가 전투를 하겠습니다. 11월 9일 오후 첫시간에 시험가동을 할수 있게 하겠습니다.》

김경복은 군인들처럼 똑바로 서서 절도있게 대답하였다.

《사흘동안에 총조립을 끝낸다는게 간단치 않소. 원래는 지금쯤 조립이 다 돼서 우리끼리 먼저 시험을 해본 다음 손님들을 청해야 하는건데 기계를 맞추자마자 손님들앞에서 시험가동을 하게 되니 매우 불안합니다.》

오성오는 《HM기》설계도를 전면개조하는데 대해 한사코 반대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제일 두려운것이 서정후였다.

오성오는 쏘파에 앉아있는 윤현덕에게 시선을 돌리였다.

《설계조에서도 래일 같이 올라가서 조립작업을 보아주어야 하겠습니다. 제일 미타한것이 유압설비들입니다. 유압을 맡은 설동무, 유압뽐프, 배관, 조절변들을 다시한번 다 검토해보라고 했는데 했소?》

《예, 안심하십시오. 설계엔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설태섭은 무엇인가 말하려다가 맞은편 벽가에 애기를 업고 앉아있는 고정순을 흘겨보더니 한숨을 쉬며 쏘파에 주저앉았다.

《뭐가 문제요? 왜 하던 말을 끊어버리고 주저앉소.》

《그만두겠습니다. 사실을 말하면 또 싸움을 할수 있습니다. 이젠 진절머리가 납니다.》

설태섭은 빈죽거리며 고개를 창문쪽으로 돌리였다. 방안사람들은 그것이 고정순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였다. 방금 고정순이도 말한것처럼 지난 기간 그들이 자주 다투었기때문이였다.

그 눈치를 알아챈 곽경두가 《여보 여보, 사내대장부가 녀자의 응석섞인 몇마디 푸념에 속이 꼬부라져가지구 그래, 쬐쬐스레. 쯔쯔.》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떠들며 혀를 찼다. 공장직맹위원장이며 업무부 책임부원이며 《HM기》제작단 후방조 책임자인 곽경두는 혼자서 세몫을 담당하여 일하는 헌신적인 일군으로, 호남아로 소문을 내고있었다.

곽경두가 떠들며 졸장부라고 시까스르는 바람에 설태섭은 화김에 입을 열었다.

《문제는 설계의 기술적요구대로 유압설비들을 가공했겠는가, 또 조립을 할수 있겠는가 하는것입니다. 유압설비들의 정밀도는 미크론이상의 수준에 이르러야 합니다. 우리 공장에 있는 미니메터, 마이크로메터도, 윤박람아바이의 손도 나노나 피코적인 정밀도는 측정하지 못합니다.》

설태섭은 그러면서 앞으로 반드시 조립조의 력량을 강화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HM기》의 조립공은 기계기능만이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기계리론과 수물학지식을 가지고있어야 한다는것이였다. 이것은 물론 김경복을 념두에 두고 하는 소리였다.

이때 고정순이의 잔등에서 갑자기 애기의 울음소리가 터지였다. 고정순이가 왈카닥 일어서는 바람에 곤하게 자던 애기가 놀라서 깨여난것이였다.

《제가 다시는 설태섭동무와 다투지 말자고 결심을 했었는데 정말 참을수 없어요.》

《여보! 앉소, 앉아!》

김경복이 실색하여 고정순에게 소리쳤으나 그 녀자는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동무, 너무 수재연하면서 냄새를 피우지 말아요. 여기에 동무만한 수재는 많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모두 얼마나 겸손합니까. 제가 공장대학 락제생인 김경복동무를 모욕한다고 해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고정순은 갑자기 울먹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였다. 오성오가 급히 손을 흔들며 일어섰다.

《정순이! 됐소. 앉으라, 앉아.》

《용서하세요. 제가 수양이 없는 녀자이다보니 또 리성을 잃었댔습니다.》

고정순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 앉았다.

《설태섭동무!》

오성오가 고정순이 자리에 앉는것을 보고 태섭에게 눈길을 돌리였다. 사람들은 저으기 긴장되였다. 성미 마른 지배인이 설태섭에게 욕을 퍼부을것 같아 모두 조마조마해하였다.

오성오는 방안사람들의 심정을 리해하고 태섭에게 타이르듯 부드럽게 말하였다.

《태섭동무, 가공조립에 대해선 걱정하지 마오. 설계가 운명적인거요. 설계만 잘하면 돼!》

오성오는 방안사람들을 쭉 둘러보고 걸어나와 설태섭의 잔등을 두드리였다.

《영화를 만드는데서 배우의 연기, 음악, 효과도 중요하지만 기본은 영화문학이라고 하지 않소. 〈HM기〉개발에서도 가장 중요한것은 설계입니다.》

오성오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책상과 마주 앉았다. 그는 실지 설태섭이가 설비의 정밀도를 걱정하고있지만 나노나 피코의 수준에까지는 오르지 못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고있었다. 설사 그러한 정밀도를 요구한다 하여도 무서울것이 없었다. 설계, 그것이 무서웠다. 서정후부부장과 계속 다투어온것도 설계문제였다.

《지배인동지! 저의 설계에 대해선 걱정하지 마십시오.》

《좋아!》

오성오는 자기 설계에 신심이 있어하는 설태섭의 말에 기분이 밝아져 주먹으로 책상을 쳤다.

《태섭이, 그렇다고 너무 자만하진 말라. 래일부턴 기사장도 여기 일을 생산부기사장한테 맡기고 수봉에 올라가니 기계조립을 하면서 한쪽으로 설계도를 꼼꼼히 검토해보시오. 마지막전투를 잘합시다.》

《직맹사업, 업무사업을 다 아래사람에게 맡기고 저도 래일은 후방물자를 꾸려가지고 수봉으로 올라가겠습니다. 자, 모두 흥을 돋구고 기운을 냅시다.》

곽경두가 지배인의 선동에 호응하듯 방안이 들썩하게 소리치며 일어섰다.

오성오는 쏘파에 나란히 앉아있는 윤현덕, 탁석준, 설태섭을 애틋이 지켜보았다. 귀중히 여겨야 할 세사람이였다.

《설계조에서 오늘은 푹 쉬고 래일부터 최후돌격전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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