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우륵교향악단 2월11일(토) 99회 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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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시간 2012.01.21 00:27:02 |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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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음악 전도사, 리준무 선생 100회 연주회 앞두고 감개무량
그는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면서 지내 온 세월도 이제 40년이 되었다. 통일음악에 관심을 갖고 남북을 오가며 음악활동을 한 역사도 오래되었다. 뉴욕에서 교향악단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시작한지도 어언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통일운동 때문에 동포사회에서 별별 수난도 겪어야 했다. 심지어는 수구세력으로부터 직장생활까지 위협을 받아야 했다. 가족이 당한 수난도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는 "민족분열주의 세력으로부터 당한 고통과 아픔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고 회고하면서 "이역 땅 미국에서 통일운동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고 회고한다. 이같은 환경에서도 그는 과감한 인생길을 걸어왔다. 리준무 선생은 뉴욕에서 이북 음악을 소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북에 가서 북녘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등 음악활동을 통해 남북이 하나의 조국임을 내외에 과시해 온 인물이다. 그는 또 1997년 우륵교향악단의 전신 <뉴욕서울교향악단>을 운영하면서 ‘김일성 장군’ 노래를 뉴욕에서 공연해 동포사회에서 파문을 일으켰고,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98년에 ‘김정일 장군’ 노래를 연주해 동포사회에 지대한 관심을 모은바 있었다. 음악인으로서 이렇게 활동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뉴욕동포사회에서 처음으로 교향악단을 만든 것은 1981년이었다. 2000년에 이 교향악단의 이름을 <우륵 교향악단>으로 바꾸었다.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지만 미국에 이민 와서는 지휘자로 활약해 왔다. 그는 대학시절 안용구 교수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뉴욕 컨덕팅 인스티튜트>에서 게리 패이건 교수로부터 지휘를 배웠다. 지휘자 리준무 선생은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 서울대음대 기악과에 입학하여 바이올린을 전공하게 되었고 졸업 후 국립교향악단에 입단하여 직업음악가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72년 1월에 미국에 이민 온 후 부인 전화심 선생과 뉴저지에 정착해 살았다. 그의 아들 다니엘 훈 군은 프린스턴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카나다 토론토에서 정치학 교수로 활악하고 있다. [출처 : 우륵교향악단 2012-01-23] 민족통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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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찬사님의 댓글
찬사 작성일참으로 귀하고 대단한 사람들이 많이 있네요.
대단님의 댓글
대단 작성일
정말 대단한 분이군요.
음악으로 이미 통일을 이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