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람일보 하잠 기자]박창균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이 12일 오전 8시 별세했다. 올해 89세인
박창균 목사는 2010년 대장암 수술을 받은 후 요양을 해왔다.박창균 고문은 1990년대 강희남 전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등과 함께 남측 통일운동을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고령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 통일선봉대 총대장을 역임하며 젊은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고인은 2003년 ‘이라크 파병
저지 목포-서울 도보 민중행진단’에 참여해 20일 간 천리를 걸어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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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차 범민족대회 판문점 3자 연합대회 참가를 위해 서울대 정문으로 나오고 있는 대회 지도부와 참가단.(빨간 상의가 박창균 고문). ©사람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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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균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별세
평생 자주 민주 통일 운동에 헌신
[서울=사람일보 하잠 기자]박창균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이 12일 오전 8시 별세했다. 올해 89세인 박창균 목사는 2010년 대장암 수술을 받은 후 요양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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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균 범민련 고문 |
| 박창균 고문은 1990년대 강희남 전 범민련 남측본부 의장 등과 함께 남측 통일운동을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고령에도 불구하고 두 차례 통일선봉대 총대장을 역임하며 젊은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고인은 2003년 ‘이라크 파병 저지 목포-서울 도보 민중행진단’에 참여해 20일 간 천리를 걸어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고인은 또한 2005년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앞에서 69일 간 노숙농성을 벌이며 동상 철거와 주한미군 철수 투쟁을 전개하며 ‘영원한 청춘’ ‘영원한 통일선봉대’의 모습을 남겼다. 이상준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공동대표는 “지난달 말 화성에 면회를 갔을 때 하신 말씀이 유언으로 생각된다”며 “한미 합동군사훈련 등으로 전쟁의 위험이 닥치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꼭 이 난관을 극복하고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를 안아 와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 8호이며, 발인은 14일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희영 여사와 3남 1녀가 있다. *문의 연락처는 서울전화: (02)2227-7572 다음은 박창균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약력이다.----------------------------------- 1924년 함경북도 무산군 연사면 사지동에서 출생 1938년 함경북도 경성군 경성공립초등학교 졸업 1943년 함경북도 경성군 경성공립농업학교 4학년 중퇴 1944년 일본 동경시립제3중학교 졸업 1948년 조선신학교(한신대) 3년 졸업 1950년 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 4년 졸업 1954년 신광여자중고등학교 교목 시무 1955년 숙명여자고등학교 심리학 강사 1960년 서울행화정교회 시무 1965년 한시대학교 총동문회 회장 1966년 민주화운동 목요기도회 회원 1970년 통일사회당 간사장/ 통일운동 참가 1972년 세계 사회당 지도자 동경대회 한국대표 1978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발기인 1988년 민자통 사건으로 옥고 1997년 범민련 남측본부 통일선봉대 대장 1998년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통일선봉대 총대장 1999년 범민련 남측본부 감사/통일선봉대 총대장 2002년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연방통추 상임고문 2003년 통일연대 고문 2007년 민주노동당 중앙당 노년위원장 2008년 한국진보연대 고문 2012 현재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 련방통추 고문, 한국진보연대 고문,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코리아연대) 상임대표 역임
<하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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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사람일보 2012-03-12]
민족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