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와 정치개혁을 이뤄야 우리 아랫세대들이 생존할 수 있다
페이지 정보
본문
또 꽃다운 나이의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열 네 살 소녀는 학교에서 45분간 앉아 있는 훈련만 한다며 절망의 목소리를 남기고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날렸습니다. 이런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합니다. 지금 세상을 사는 우리가 어떤 세상을 그들에게 물려주고 있는 것인가를 되돌아볼 때마다, 그리고 천진하게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제대로 된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있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전에 나온 주간지 '타임' 최신호(2012년 4월 16일자 http://www.time.com/time/magazine/article/0,9171,2111259,00.html) 에서는 '실직세대'라는 이름으로 미래가 없는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을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지금 세상을 자라고 있는 아이들에게 '미래'는 너무나 불투명합니다. 그들이 자립을 할 수 있는 터전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 부족한 터전에 어떻게든 발을 디디려고, 아이들은 무한 경쟁으로 내몰립니다. 그 무한 경쟁은 가장 꿈으로 가득차고 희망으로 가득차 있어야 할 아이들을 냉소적으로 만들고 비관의 수렁에 발을 담그게 합니다.
희망이라는 공동의 재산을 찾아오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들조차도 쉽지 않습니다.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했던 이른바 '버핏세' 법안은 상원 반대의 벽을 넘지 못하고 통과가 무산됐습니다. 이 법안은 연소득 1백만달러 이상의 고소득자를 대상으로 세율을 30% 이상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전면 등장 이래, 성장에만 치중하던 경제정책들이 드디어 시스템 여기저기서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 벌써 수년째입니다. 이것은 마치 고도 중증비만 환자가 계속해 단 맛에만 탐닉하다가 그 부작용들이 쌓이고 쌓여 당뇨와 동맥경화처럼 변해버린 것과도 비슷하게도 생각됩니다.
미국의 최고 부흥기였던 시절, 미국의 세제는 부자들에게 철저한 사회부담을 요구했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전쟁세 등을 포함, 부호들의 순수입 80%까지를 세금으로 물렸고, 카터 행정부 때 까지도 미국의 부자들은 지금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이 통과시키고자 하는 세율보다도 훨씬 많은 세금을 냈습니다. 그것은 미국이란 사회 자체가 번영을 구가하는 밑거름이 되어 왔습니다.
지금 들어 세계의 경제가 이렇게 삐걱거리는 것은 일단 경제 자체가 금융자본의 무한독주를 방임하고, 부유층들이 상대적으로 독식하고 있는 이른바 '지도층'이 그들이 이윤을 보다 많이 추구하며 세금은 덜 내는 제도를 만들고, 그들이 부담해야 할 세금을 중산층과 빈민층에 전가시킨 것에 크게 기인한다고 봐야 합니다. 과거에 부자들이 낸 세금은 사회 저변의 소비 여력을 높여 이를 통해 수요를 높이고, 그 수요가 생산을 자극하는 구조였습니다. 그러나 대기업들에 대한 전례없는 특혜들과 이들에 대한 대대적 감세 정책은 결국 국가의 세수 구조를 왜곡하고 이에 따른 사회적 서비스들의 감소를 가져왔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한때 국민들이 예찬했던 그 '세계 제일의 복지국가'가 더이상 아닙니다. 계속해 누적되는 사회적 불평등은 미국의 젊은이들로부터 미래를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무상으로 제공되던 많은 교육들이 유료화되거나 예산 부족으로 폐지되고 있습니다. 큰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합창반 클래스는 예산이 깎여 몇 개 학교가 모여 억지로 운영하고 있고, 급식비도 계속해 오르고 있습니다.
미국에 첫발을 디뎠을 때, 저는 무료로 ESL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혜택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런 모든 일들이, '기업 경영을 보다 원활하게' 만드는 정책들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스스로 재원을 던져버린 미국 정부는 지금 빚더미에 올라앉아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를 위해 기여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미국의 기업들은 생산비를 줄인다는 핑계로 생산 시설들을 미국 바깥으로 가져갔고, 그 공장들에서 일하고 있던 많은 미국의 가장들이 해고됐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소비력은 줄었고, 거의 소비경제에 의존해 돌아가던 미국의 경제는 어떻게든 이를 메꾸기 위해 버블경제를 키웠으나, 실물의 바탕이 없는 경제는 결국 허수에 불과하다는 것은 미국을 지금 이 지경으로까지 빠뜨린 서브프라임 사태로 나타났습니다.
과거의 어느 때에도 없었던 이런 위기는 젊은이들의 분노를 불렀습니다. 그들의 연대와 투쟁은 중동의 독재정권들을 무너뜨렸습니다. 절망은 분노를 낳고, 그 분노는 종종 이성의 상실로 나타납니다. 프랑스 젊은이들의 극우파 르펜에 대한 지지도는 '비빌 언덕이 없는 젊은이들'의 분노의 표출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과연 해답은 무엇이겠습니까. 저도 그것이 궁금합니다. 짧은 제 생각으로는 그래도 이 사회에서 가장 수혜받는 계층이 절망하고 있는 계층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가장 맞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빈부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공적인 영역에 있어야 할 것들이 사적 영역에 더 많이 가 있을수록, 이 박탈감과 분노의 크기는 커져갈 수 밖에 없고 그것은 결국 사회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기업과 사회의 부담은 지금보다는 훨씬 커져야 합니다. 증세라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해법일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40년간 세계적으로 정부들은 세금의 감소를 이야기 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세금 감소의 혜택은 절대로 일반 서민이 본 것이 아닙니다. 대자본의 성장에만 기여한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세제의 개혁이 과감하게 수술이 되어야 '함께 잘 사는 사회'는 이뤄집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가 자리잡지 않으면, 주어진 기회라는 것이 과거보다 훨씬 적은 우리 다음 세대는 더욱 비참해집니다. 부자는 부를 대물림하면 되겠지만, 가난한 이들의 아이들이 선대의 부담까지도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정말 불공평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보다 세제의 개혁, 즉 정치의 개혁이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시애틀에서...
- 이전글“난 정말 부끄러운 일 한 게 없는데 어쩌란 말이냐” 12.04.18
- 다음글"난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인 줄 알았어!" 12.04.17
댓글목록
분노의 연대님의 댓글
분노의 연대 작성일
현재의 정황을 가장 사리적으로 분석하고 그 해결 가능한 해법을 제시하는 글로 사료합니다.
최근 한국을 다녀온 바 작금의 한국 젊은이들을 바라보기가 정말 안타까왔습니다.
취업이나 혼사문제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미래가 암울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듯 했기 때문입니다.
정말이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세제개혁 즉 정치개혁이 그 어느때 보다도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시민님의 댓글
시민 작성일
맞습니다.
복지정책을 추진해야만 하고
그 재원은 부자증세에서 시작해야만 합니다.
울퉁불퉁한 세상은 좀 고르게해준다해서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래를 내다본다면 지금 크게 개혁해야만 할 것입니다.
부자가 더 작은 비율의 세금을 내는 제도?
한마디로 미친 짓거리가 아닌가요?
생각이 정상이라면 그런 법은 애초에 만들지 않았어야 하는 것이고
이제 알았으면 당장 고쳐야 할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