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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같은 집에 살면서 느낀 미국경제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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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1건 조회 3,429회 작성일 12-04-3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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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계절의 여왕 5월이 됐겠군요. 여긴 아직 4월의 마지막 저녁입니다. 매달 초엔 내야 하는 모기지 페이먼트, 그리고 아멕스 카드 쓴것들 고지서 정리하면서 이곳 말로는 '빌빌 bill bill 거리는 인생'(bill 은 고지서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의 오늘치를 정리합니다.


아, 그리고 보니 지금 우리가족이 사는 이 집에 살게 된 것이 오늘로 딱 10년째 된다는 이야기군요. 햇살 좋던 2002년의 5월, 저희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작고 아담하고 코지한 집에 입주했습니다. 당시 오리건 주에서 살던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워싱턴주로 올라왔죠. 그때 저는 주정부 리커 수사관 시험과 타코마 경찰 시험을 치렀고, 국경수비대 시험에도 패스해서 어딘가로 옮겨가긴 옮겨가야 하는 시점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전혀 뜻하지 않게, '우체부'가 됐군요. 그리고 지금은... 시애틀 거리를 열심히 걷는 8년차 우체부로서 나름 제 삶을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 한 집에 10년을 살았더니 여기저기 손볼 곳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미 지붕은 아예 새로 바꿨고, 집안의 카펫도 나무로 된 마루로 바꿨고 포셋 몇 개도 손봤고... 아이들 짐도 하나둘씩 늘었습니다. 지원이가 아직 채 돌이 되지 않았을 때라, 아기가 설설 기어다니던 집에서 지금은 주말마다 애들 친구들이 놀고 뛰는 상태. 정리가 안 되지요. 그 10년동안 뭘 그렇게 쌓아 놓은 것이 많은지...


사실 5년 전에, 다른 집으로 이사갈 것을 한번 고려했었습니다. 집값은 한참 천정 높은 줄 모르고 뛸 때, 집을 사면 무조건 돈을 번다는 생각이 팽배하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주위에선 집들을 몇채식 굴리면서 돈을 번다는 사람들의 성공담이 넘쳐났고, 자기 집을 담보로 잡혀 대출받은 돈으로 또 다른 집을 사서 세를 주면서 이 돈으로 페이먼트를 붓는다는 식의 재테크 방법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될 때였습니다. 아내는 그때 제게 아이들이 커 가니 새로 집을 한 채 장만하자고 했습니다. 저는 처음엔 그래 보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제 오지랍이 그정도가 되지도 못하는데다, 과연 지금 이렇게 집값이 뛴 상태에서 보다 큰 집을 산다면 한달에 얼마나 더 들어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안했던 것은 아닙니다.


맘에 든다는 집을 찾긴 했는데, 지금까지 우리가 집 모기지 페이먼트 붓던 것의 두 배 이상을 내야 했습니다. 아내가 결정한 것에 대해 평소 별 말을 안했는데, "이건, 그만두자"고 했을 때 아내의 실망감은 꽤 컸던 듯 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버는 걸로 누리는 행복이 있어. 그 행복만큼의 크기를 집값으로 부어버리고 싶진 않아." 잠시 숙고하던 아내는 "그래..." 하면서 제 말에 수긍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작은 집에서 계속 살게 됐습니다.


이곳의 부동산 중개 전문 싸이트인 zillow.com 을 통해서 집값을 들여다보니, 한때 34만달러까지 올라갔던 우리 집의 가격은 20만달러가 채 안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5년 전, 아내가 집을 사자고 했던 그 해에 거의 50만달러까지 올라갔던 집들도 30만달러가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그런 집들 중에서도 20만달러 초반이나 심지어는 20만달러가 되지 않는 매물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집을 샀을 그 당시의 가격에서 몇 천 달러를 잃은 셈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투기 목적으로 집을 산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 그대로 반토막이 났습니다. 모기지 페이먼트를 감당하지 못해 집을 '던져버린'사람들이 줄줄이 나오면서 부동산 시장은 꽁꽁 얼어붙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기 부양책이라고 나오는 것들도 약빨이 없었습니다. 그나마 이건 단독주택의 경우고, 시애틀 다운타운 내에 있는 콘도미니엄(우리나라의 아파트 개념)들은 3분의 1까지 폭락한 곳들도 나왔습니다.


결국 그때 그 사람들이 본 허상들. 그것은 소비경제에만 의존하고 있는 미국 경제를 어떻게든 떠받쳐 보려고 만들어 놓은 버블 쿠션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집을 못 사게 되고, 그때 어떻게든 집을 구했던 사람들은 말 그대로 폭삭 망하고, 집을 담보로 대출해 돈을 물쓰듯 펑펑 쓴 사람들은 그때의 그 소비의 달콤한 맛에 중독됐다가 헤어나지 못하고 폐인이 되어 버린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때의 그 거품이 만들어 낸 돈으로 생긴 파생상품들은 사기임이 드러났고, 그것 때문에 결국 미국은 거의 국가도산 직전까지 간 거죠. 이른바 서브프라임 사태라고 하는 쓰나미가 몰려왔을 때, 그것 때문에 부서져나가는 가계경제들과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참 복잡했습니다. '부자가 되겠다'는 욕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환상을 심어주며 계속 집을 사라고 유도했던 것은 분명히 대자본과 또 정부의 책임이었습니다.


다행히 그때 욕심 한번 안 부린(솔직히 말하면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몰라서 멍청했기 때문에 선택을 유보했던) 것이 우리에겐 오히려 나름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집을 사자는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이제 아이들이 커서 대학교에 가고, 기숙사로 떠나게 되면 오히려 큰 집을 갖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더 큰 부담이 될 뿐입니다. 지금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이 작은 집, 손님 모시기엔 불편하고 그저 우리 부부나 살기에 좋은 집이지만, 이 공간이 우리에겐 지난 10년의 행복을 담아 온 공간이었습니다.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우리도 이사를 해야 할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게 될 지도. 하지만 지금까지는 괜찮습니다. 아내가 또 조른다면, 그때는 한번 생각해봐야겠지요. 여기서 산 세월이 10년. 그러나 그 10년 동안 미국의 경제는 엄청난 회오리를 겪었고, 근본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는 이상 이런 식으로 연명하며 넘어갈 것입니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정치에의 적극적인 참여, 그것을 통한 공정한 조세 방안의 확립과 경제정의의 실천. 사실 세계화는 우리에게 장미빛 미래를 가져다줄 것처럼 선전하며 다가왔지만, 사실 투기자본들에게만 미래를 안겨줬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자본을 여기저기로 도피시키며 세금을 안 낼 동안 서민들은 열심히 세금 뜯겨 가면서 나라살림까지 해야 했습니다. 이런 현실을 바꾸는 힘, 역시 정치 참여인 듯 합니다. 올해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모두 대선이 있는 해군요.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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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님의 댓글

장래 작성일

한국에 있는 분들이 이런 글을 보고 무언가 교훈을 얻으리라 생각합니다.
미국도 미국이지만.. 한국의 장래가 매우 염려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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