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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7]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독일의 이종현선생과 우즈-라 여사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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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슴도치
댓글 1건 조회 5,981회 작성일 12-06-16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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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편집 시간 2012.06.17 01:54:32
남북공동선언 관철하여 조국통일 이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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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7]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이종현선생과 우즈-라 여사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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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17]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이종현선생과 우즈-라 여사 방문



[독일 보흠=민족통신 손세영/노길남 특파원]국적과 인종이 달라도 코리아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한분이 유럽의 한국민주화운동과 조국통일운동에 헌신해 온 이종현선생의 부인
우즈-라 여사이다. 60년대와 70년대의 한국상황은 박정희군사독재 정권의 민권탄압으로 할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던 암흑시대였다. 특히 박정권의 긴급조치들이 남발되었고, 의식있는 지식인들에 대한
탄압정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살벌한 시대로 회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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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보다 더 코리안이 된 이종현선생의 부인 우즈 라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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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손세영 특파원과 대담하는 이종현 선생
[독일 보흠=민족통신 손세영/노길남 특파원]국적과 인종이 달라도 코리아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 한분이 유럽의 한국민주화운동과 조국통일운동에 헌신해 온 이종현선생의 부인 우즈-라 여사이다.

60년대와 70년대의 한국상황은 박정희군사독재 정권의 민권탄압으로 할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던 암흑시대였다. 특히 박정권의 긴급조치들이 남발되었고, 의식있는 지식인들에 대한 탄압정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살벌한 시대로 회고된다.

이종현선생은 1936년 9월7일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영등포공고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일찌기 1956년 죽산 조봉암선생의 진보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진보운동에 가담하면서 이승만 자유당 정권으로부터 그리고 박정희 군사정권으로부터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이종현선생은 1965년 이른바 도망유학 형식으로 독일로 갔다. 그리고 1968년 뒤스부르크 공과대학 기계공학을 전공하며 독일대학에 재학하던 중 인연이 된 독일여성 우즈 라와 인연이 되어 1968년 결혼했고, 뒤늦게 1973년 졸업하고 그후 독일시민이 되어 줄곧 독일회사에 근무하다가 지난 1998년 은퇴했다.

그는 독일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한국민주화운동과 조국통일 운동에 참여했다. 1975부터 1990년까지 재독한인노동자연맹 창랍회원이며 위원장직을 역임했고, 77년부터 95년에는 한독위원회 창립회원으로 이사로 활동했고, 1985년에는 재유럽민주민족통일하나국인연합 회원으로 그리고 사무국장으로 활동했고, 1991년에는 재유럽민족민주운동협의회 의장, 1993년에는 코리아협의회 창립회원으로 그리고 부의장을 활약했고, 한민족유럽연대의 의장으로 오랜동안 일해오다가 3년전 최영숙선생에게 의장직을 승계시키고 지금은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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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현선생 부인,우즈 라 여사
그는 이런 애국 운동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 당국은 이러한 인물들의 고향방문을 가로 막아 왔었다. 특히 박정희 정권, 전두환정권, 노태우정권, 김영삼정권 시대에는 해외통일운동 인사들이 한국을 방문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종현선생은 1990년 7월 조국통일범민족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회의가 한국에서 열렸는데 이 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약간의 불안감을 가진 상태에서 귀국을 결심했다. 그것이 고향을 떠난지 22년만이었다. 해외동포대표들이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수십명의 사진기자들이 카메라 후레쉬를 터뜨리고 있었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 오는 줄 았았는데 알고 보니 평소에 출입금지된 해외동포들이 대거 도착하는 것을 촬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된 것은 당초 노태우정부가 북측 대표단이 판문점을 통해 남측으로 들어오도록 해 놓고 갑자기 정책을 바꾸어 북측대표들의 남측방문이 좌절되자 기자들의 관심이 해외동포들에게 쏠렸던 것이다. 김포공항 앞에는 해외동포들을 환영하는 인파들이 들끓었고, 대기했던 버스는 크리스천 아카데미로 향했다. 그곳에는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들로 둘러쌓여 있었다. 이들은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도록 경계망을 치기도 했다. 나중에 독일로 돌아온 이종현선생은 한국 동생에게 전화했을 때 제수씨가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하지 않는게 좋겠다”고 간청했다는 것이다. 정보부원들이 동생가족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한 이종현선생은 그후 전화를 걸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고향 떠난지 오랜 세월을 보냈다. 독일시민이 되어 이곳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산지가 어언 반세기에 가까워 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인 우즈 라 여사와의 사이에 낳은 자녀는 두 아들이 있는데 이들은 장성하여 큰 아들은 의사이고, 작은 아들은 물리학박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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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유럽 민민운동 원로 이종현선생
이 가정을 잘아는 주위동포들은 이종현선생의 부인 우즈라 여사를 가리켜 “코리안보다 더 코리안 같다”라고 칭찬한다. 남편 친구들(주로 통일운동권 국내외 인사들)이 집을 방문하여 밤늦게까지 있어도 전혀 불평이 없고, 손님들이 새벽이 되도록 자지 않고 있으면 손님들 뒷켠에 앉아 신문을 보고, 책을 보며 끝까지 필요한 일을 돕는다고 한다. 기자들이 방문한 날도 그렇게 처신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부인은 독일여성이면서도 우리나라 음식을 배우고 연구하여 코리안여성들 못지 않게 코리안 음식을 잘한다고 소문이 나있다. 실가는데 바늘간다고 이종현선생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우즈라 여사가 있다. 이 부부도 남과 북을 하나의 조국으로 간주하며 평화통일의 그날을 무척 고대하고 있다. 이 부부는 가정에서 한 쌍의 원앙새처럼 보인다. 우주 라 여사는 얼굴이 다르고, 우리말 구사력은 서툴지만 이미 코리안여성이 되었다. 두분의 대화속에 ‘여보’라는 우리말이 오고갈 때 이 부부는 이미 인종도 초월하고, 이념도 초월한 사랑의 부부라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남과 북도 이렇게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면 서로 사상과 이념, 신앙과 정견이 다를지라도 하나의 조국을 이룰수 있다고 확신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연락처:

049-0203-446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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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을 초대하여 대접하는 이종현선생 부인 우즈 라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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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자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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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손세영/노길남 특파원 2012-06-16]

민족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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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님의 댓글

기억 작성일

이종현 선생님과 우즈라 여사, 두 분 모두 우리가 잘 기억해야 할 애국자로군요.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통일의 그날을 꼭 보실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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