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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북중 신옥자 선생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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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랑크후르트=민족통신 종합]고 신옥자 선생 장례식이 오는 5월30일(수) 오전9시 후랑크후르트에 소재한 Haupt Friedhof 에서 가족장으로 진행되기로 했다고 가족측 측근이 21일 발표했다.
한편 남녘의 통일월간지의 안영민 “민족21” 편집주간을 비롯하여 재미동포 리준무 선생(우륵교향악단 단장겸 지휘자), 백승배목사(범민련재미본부 의장), 정기성선생(뉴욕거주), 유태영목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 유럽단체들(범민련유럽지역본부, 재도이치란트동포협력회), 베를린뉴스의 장일중 선생, 양은식 박사(재미동포 통일운동 지도자), 파리거주 동포통일운동가들(조덕원, 황헤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해외본부, 조국통일범민족련합 재일조선인본부, 노길남 박사(민족통신 대표), 카나다 김태졍 선생 등이 조문, 조사, 조시 등을 보내왔다.
고인을 추모하는 글들을 아래에 소개(무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추 도 사신옥자 선생님의 깁작스런 부고 소식을, 그것도 5.18광주민중항쟁 32주년을 맞이하는 날에 듣고 큰 슬픔이 몰려왔습니다.
신옥자 선생님. 12년 전 말지 기자였던 제가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망명객들을 취재하기 위해 유럽을 방문했을 때, 독일 프랑크푸르트 자택에서 만난 선생님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손수 슈바인학센 요리를 해주시며 따뜻하게 맞아주시던 모습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감당하셨던 해외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대해서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웃기만 하셨던 참 소녀같은 그 모습도...
그 뒤로도 저는 선생님을 자주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서울과 평양에서, 금강산에서.. 해외동포 대표단으로 민족공동행사에 참가하신 선생님을 남북의 조국 땅에서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안 기자, 평양도 서울도 모두 우리 조국인데 이렇게 자유롭게 오가고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정말로 통일이 다 된 것 같아."
실로 우리 민족이 통일의 길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서는 역사의 감격적인 장면들이었습니다. 과연 그 길을 개척했던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신옥자 선생님이셨습니다. 이역만리 해외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오직 통일된 조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청춘을 바쳤던 해외의 통일운동가들이었습니다.
또 2004년에는 동포들의 통일행사 때 제가 초청받아 독일을 방문했을 때도 선생님을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남과 북, 해외를 넘나들며 만나뵌 선생님의 모습은 언제나 수수한 옷차림이었지만 소녀같은 웃음에 담긴 통일의 열정만큼은 젊은 우리들보다 훨씬 강렬했고, 또 당당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쪽에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남북해외를 오가는 통일의 길도 막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리인모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장기수 선생님들의 소식을 남쪽에 전하며 통일의 전령사 노릇을 톡톡히 해오셨던 선생님의 모습을 저도 더이상 뵙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인편에 저의 근황을 묻고 건강을 기원하시는 선생님의 소식을 전해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참 따뜻해졌습니다. 이제 곧, 아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이러한 심정으로 선생님을 뵐 날을 기다렸는데 아, 뜻밖의 부음이라니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고, 찢어지는 듯한 가슴의 아픔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신옥자 선생님!
40년 한결같이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가시밭길 걸어오셨던 당신의 세월을 이제는 젊은 저희들에게 넘겨주십시오. 모자라고 부족한 것이 많은 저희들이지만 해외의 통일운동가 선생님들의 신념과 열정을 역사로 지켜봤던 저희들입니다. 독일에도 유럽에도 또 남에도 북에도 선생님의 통일유훈을 간직하고 따르려는 수많은 청년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어깨에 짊어진 역사의 무게를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영면하십시오. 어쩌면 이역만리 독일 땅에 간호사로 건너와 해외동포운동에 뛰어든 뒤로는 처음 맞이하는 편안한 휴식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쉬움도 미련도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십시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님이랑 노무현 대통령님이랑 김일성 주석님이랑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이랑 또 문익환 목사님이랑, 선생님께서 존경해오셨던 모든 통일의 선각자 분들을 만나 소녀 같은 웃음을 지어보십시오.
역사의 선구자이셨고, 통일의 선각자이셨던 신옥자 선생님!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통일의 길에서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당신이 가신 길, 이제는 우리가 당당히 헤쳐 나가겠습니다.
2012년 5월 20일
서울에서 민족21 편집주간 안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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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자선생을 추모하여정말 믿기지 않은 일이 현실로 되어왔습니다.
지난달 제처랑 평양에 갔을때 먼빛으로 만 보고 아무런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왔던일이 깊은 아쉬움으로 남게되었습니다.
선생은 언제나 명랑함을 잃지 않고 해외운동의 단결과 발전을 위해 고심하고 노력해오신 것을 우리는 잊지않을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항상 앞에서 조직을 선도하는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비정향 장기수 리인모선생을 가족의 품으로 송환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우신것은 남과 북, 해외에 사는 우리민족에게 오래도록 기억 될 일이고 큰 감명으로 남게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옥자선생을 비전향 장기수 송환을 성사시킨 숨은 공로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생이 이뤄 놓으신 공적은 조국통일사에 높은 귀감으로 기록될 것이며 찬란하게 빛을 뿌릴것 입니다. 남아있는 우리 해외운동 성원들은 선생의 고귀한 정신을 받들고 실천해 나갈것입니다.
부디 편안히 잠드시기 바랍니다.
2012년 5월 18일
뉴욕에서 리준무드림
(우륵교향악단 지휘자겸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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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여사님, 이제는 편히 쉬소서
왜 이렇게 가슴이 허한 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렇게 화가 치미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잘 알지도 못하는데도
왜 이렇게 슬퍼지는 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상실감 때문일 것입니다.
또 하나의 동지를 잃은 슬픔! 그리고
그 날이 아직도 멀어 보여서일 것입니다.
이명박의 속터지는 통치
지난 10년의 눈부신 업적을
뒤집은 것도 모자라
속터지는 말,
위험한 말,
막말을 쏟아내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겁없이
역주행시키며
우리 통일 동지들의 가슴을 후벼파는 이 때
하나 둘 우리의 동지들이
그날을 뒤로한 채 떠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통일은 비록 더딜지라도,
동지들을 버텨줘야하는데!!!
신 여사님, 피곤하셨지요.
외로우셨지요.
비록 열매는 보지 못했어도
당신은 훌륭했어요.
부끄럼없는! 자랑스런!
이제는 편히 쉬세요.
먼저 간 통일동지들과 함께
우리 위해 기도해 주세요.
우리 이겨야 하니까요.
기필코 통일의 그 날을 보아야하니까요.
동서남북. 단군자손들 춤추는 그날
우리의 모국 어깨 펴는 날
동방을 넘어 세계만방의
등불 밝히는 날
보아야 하니까요.
2012년 5월18일
통일동지
미국 캘리포녀 클레어몬트에서
백승배 드림
(범민련 재미본부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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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영전에 바칩니다. 로길남 선생님이 오늘 낮에 통화하시면서 우울한 목소리로 "신옥자 선생님께서 운명하셨다"고 알려 주셨을 때 참으로 허망하더군요.
평양친선병원에서 로길남 선생님과 제가 함께 뵌 적이 불과 한달도 안된 것 같은데 그 당시는 상당히 건강하신 것으로 뵜는데 그렇게 빨리 떠나 가시다니 마음이 착잡하기 그지 없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맛있는 과자랑 과일이랑 가득 사 가지고 오신 선생님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말이지요.
북녘에서의 6.15 행사나 남녘에서의 8.15 행사때 뵐 때 마다 늘 밝으시고 또 후배들에게 언제나 후덕한 격려의 말씀을 해 주시던 분이셨지요.
몇년전 인가요, 서울의 경희대에서인가요 8.15 행사시 학교 구내에 차려진 포장마차에서 밤늦도록 같이 오신 유럽의 선생님들과 함께 여러 이야기들을 하던 때 신옥자 선생님 특유의 소탈하신 웃음소리도 생각이 납니다.
비록 몸은 멀리 조국을 떠나 있어도 평생 조국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해 오신 선배님의 고귀하신 뜻을 마음에 새기여 신옥자 선생님께서 평생 소원하신 조국통일의 그 날을 위해 저도 열심히 살 것이란 말씀을 고인의 영전에 바칩니다.
2012.5.18
뉴욕에서…
정기성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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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자여사의 영전에
그대와 만남은
범민련 민족통일 운동현장에서
오랜동안의 상봉
유럽과 미주 그리고 조국 땅에서
그대의 정결한
애국심으로
오늘
여기까지 달려 왔거니
그대의 정열적 민족애와
의기와 포부가
남달리 젊고 싱그러웠는데
내가 부르는
신옥자여
한 사람의 천명이 있을뿐인가?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그대는
소중한 한 생을 살아
그 무엇이나
아낌 없이 주었거니
이미 준것은
과거의 아름다운 역사로 간직하자
그리고
못다준 그대의 애국심은
우리 모두가
기억하리라
아 나와 우리 모두의 애국자여
신옥자여사여
우리 모두 마음의 문을 열고
애국과 애국심이 왕래하는
진실의 길에
경건히 보다 경건히
최후의 기도를 올리면서
그대의 영전에
우리 민족의 통일의 꽃 피게 하리라.
2012.5.18
미주 뉴욕에서,
유태영드림
(목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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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신옥자 여사의 영전에 올림니다.
-유가족들의 눈물과 아픔을 위로하며!...
불과 몇 일 전, 전화 통화에서도 밝은 목소리를 들려주셨다는
집사람의 말이 생전에 나눈 마지막 말이 될 줄 꿈엔들 생각했고
이렇게 어이없이 운명할 줄은 누가 생각인들 했겠습니까?
낯선 이국 땅에 와서야
분단의 실체를 알고 배우며
조국을 향한 <일편단심>이 전부였던 여사님!
그러면서도
억척스러운 어머니였고, 다정한 할머니였으며
모두의 누나였고, 언니였습니다.
함께 해온 기억들과
생전의 모습, 목소리는
떠나지 않고 남아 있듯이
못다 가신 길!
살아 있는 목숨들이 끌어안고 갈테니
발 동동거린 슬픈 역사!
두 눈 부릎뜨게 한
분노, 증오, 미움 다 내려놓으시고
편히 영면 하십시오!
2012년5월19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유럽지역본부
재도이췰란드 동포협력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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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명복을 빕니다. 재도이취란트동포협력회 전 상임위원인 신옥자 선생께서 18일 뇌출혈로 인하여 71세의 나이로 애석하게도 우리곁을 떠나 가셨습니다.
1969년에 독일에 간호원으로 도이취란트에 온 신옥자선생은 근면 성실하게 생활하여 어린 자녀들과 가족을 부양하였고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을 위한 일에도 함께하는 선량한 삶을 살아 오셨습니다.
1990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 결성된 이후 지금까지 신옥자선생님은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삶을 바쳐 오신 애국자 입니다.
신옥자 선생은 세계에서 제일 오랬동안 감옥살이를 하신 장기수 리인모 선생을 고향인 북의 가족품으로 돌려 보내는데 핵심적 역활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개인적 이익 보다 분단된 남과 북이 화해와 평화로 하나 되기를 소원 하셨습니다.
복잡한 통일운동 속에서도 언제나 웃음으로 동지들에게 용기를 주셨습니다.
생명이 약동하는 이 이름다운 계절에 우리의 동지이자 언니와 누나였던 신옥자 선생을 작별해야 하는 마음 마음은 참으로 아픕니다.
우리의 영원한 동지 신옥자 선생님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2012년 5월 19일
장일중
코리아뉴스 www.c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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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자동지의 영전에 애도의 인사를 올립니다.해외에서 살아 간다는것은 외롭고 고달픔의 연속입니다.그런데 신옥자동지의 삶은 운동가의 표본이 될만한 생애었습니다.
간호원으로 독일에 오자 고달픈 생활을 승화하여 반세기의 세월을 온몸을 바쳐 조국의 통일에 이바지 한것, 평상인이 못할 일입니다.
많은 운동가들이 있지만 신옥자동지는 운동의 어렵고 험한일을 찾아서 낮은데서 몸을 바쳐 살아온 분이었습니다. 이점 해외운동사에 높이 평가되고 기억되어야 할 점입니다.
6.15 선언실천 유럽위원회, 범민련 유럽지역위원회, 재도이치란드 동포협력회등에 헌신하면서도 재독여성모임, 재독양심수후원회, 유럽한국민주통일연합, 이인모선생 비롯해서 비전향 장기수 귀향촉진운동에 성의를 바쳐 살아온 생애 였습니다.
여러해 전 독일에 갔을때 미국에서 간 우리일행을 집에 초대하여 정성를 다해 받은 대접, 기억이 생생합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대하던 모습도 잊을수 없습니다.
해내외에서 있는 행사때면 으례 유럽의 동지들과 함께 오시고 함께 하는 모습을 보아 왔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수입에서 여행비로 쓴돈이 산더미 같을 듯 합니다.
이제는 우리 곁에서 신옥자여사의 순박한 웃음을 다시 보지 못할것이지만 우리에게 남기고 간 그 교훈은 영원할 것입니다.
2012년 5월 21일
6.15 미국위원회
양은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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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애국인사 신옥자선생님의 명복을 비옵니다그간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헌신하신 통일애국인사 신옥자선생님의 부고를 접하고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조의를 표합니다.
범민련남측본부의 조사에 나오듯이 이인모선생의 송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시고 최근 태양절행사에 참가하시는 등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성실하셨던 신선생님을 다시 뵐 수 없다고 하니 비통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자주 뵙지는 못했어도 늘 시원시원하시고 후배통일일군들을 아끼시던 다정다감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반드시 멀지않은 장래에 조국통일의 염원을 실현하도록 우리 젊은일군들이 앞장서겠습니다.
삼가 명복을 비옵니다.
2012년 5월21일
조덕원, 황혜로 등 통일일군들 일동
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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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신옥자 여사의 영전에 드립니다우리는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하여 바쳐오신 신옥자 여사가 뜻 밖에 서거하였다는 비보에 접하여 애석함을 금치 못하며 유가족분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지난 4월 태양절에 평양에서 종전과 똑같이 건강하시며 환한 웃음을 보이신 여사께서
이렇게 갑짜기 운명하실줄이야 꿈에도 생각했겠습니까.
신옥자 선생은 조국통일운동의 구심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 결성된 이후 오늘까지 조국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오시였습니다.
특히 여사께서 비전향장기수들을 조국의 품으로 돌아가게 하는데 이바지 한 특기한 공로는 지금도 해내외 동포들의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신옥자 여사는 조국의 자주와 평화, 통일을 위한 애국위업에 헌신해 온 여성 혁명가이시며 열렬한 통일애국지사였습니다.
역사적인 6.15공동선언 발표 12돌을 맞이한 오늘 조국통일의 앞길에 여전히 커다란 장애가 가로놓여 있는 때에 선생님을 잃은 것은 범민련운동에 있어서 커다란 손실로 됩니다.
우리는 유가족분들이 큰 슬픔을 이겨내고 여사의 통일유지를 새겨 고인이 그처럼 염원하던
자주통일의 그 날을 하루빨리 앞당겨오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리라는 기대를 표명합니다.
고 신옥자 여사께서는 비록 우리곁을 떠났으나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고결한 생을 바친 여사의 애국애족의 넋은 범민련과 우리 겨레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2012년 5월 20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해외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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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옥자 여사의 서거에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범민련 재일조선인본부는 조국의 평화와 자주 통일, 민족대단결을 위해 한생을 다 바쳐 살다 가신 신옥자 선생님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인사를 드립니다.
조국의 자주, 통일을 위해 멀리 독일에서 간호원으로 종사하면서도 개인의 이익과 가족들의 행복을 희생시키면서 오늘까지 투쟁하시었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 실천의 앞장에 계셨던 선생님께서 우리의 곁을 떠나시였다는 뜻밖의 비보에 접한 우리는 참으로 비통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습니다.
신옥자 여사께서는 애석하게 서거하셨지만 한평생 “통일의 꿈”을 키우며 자주와 민주, 통일을 위한 길에 바치신 공적은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사와 함께 길이 길이 전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유가족분들께서 오늘의 슬픔을 하루빨리 이겨내 주실 것과 고인이 그토록 바라시던 조국통일위업 성취를 위하여 더욱 매진하여 줄 것을 충심으로 바랍니다.
2012년 5월 20일
조국통일범민족련합 재일조선인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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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명복을 빕니다! 반세기 이상 이국땅에서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분단조국의 하나됨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시다가 생을 마감한 신옥자 여사님의 운명에 대하여 슬픔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토록 염원하시던 조국의 통일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먼저 떠나신데 대하여 애석한 마음 무어라 표현할 길 없습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살아 남은 저희들이 그 염원을 위해 온 정성을 다하여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습니다.
여사님, 편히 잠드소서~
멀리서 소식듣고,
로스엔젤레스에서 노길남 올림
(민족통신 대표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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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동지여! 편히 잠드소서
김태정 불과 한달전 평양 태양절 100주년 축하행사에서 그토록 건강한 미소와 활달하시던 통일애국지사 신옥자여사가 작고를 하시다니요.
앞으로 15년은 넉근히 더 사실 71세 연세에 그토록 원하시던 통일을 못보시고 급서를 하시다니 애석하기 그지 없습니다.
고 신옥자여사님을 알기로는 80년대 중반때이며 90년도 범민련결성준비를 위한 베르린회담을 비롯 범민족대회등을 위해 평양에서도 몇번 만나 뵌 다정다감한 여성분이셨습니다.
저의 사정상 지난 4월 17년만에 만나게 되어 동지의 정이 얼마나 반가웠고 또한 반겨주던지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립니다.
마지막 평양을 떠나오던 날 새벽 숙도 뒷마당에서 홀로 중국체조<다이찌>을 하는것을 창문넘어로 보았는데 너무 이른 새벽이라 인사도 못했는데 이럴줄을 알았다면 나가서 마지막 악수라도 나누고 올것을...
고 신옥자 통일애국 여전사여~
조국을 위해 자주를 위해 수고하셨습니다.
애쓰셨습니다.
승리는 우리의 것, 님의 뜻 반드시 이루어질지니~
다정한 동지여!
편히 잠드소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캐나다 밴쿠버에서
김태정 통곡 통곡
*장례관계 연락문의:
Sung-Yee Pennekamp(박성예)
Jahnstr. 9c, 46414 Rhede
Tel.02872-3470, H.0163 133 1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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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자칭 <자유민주주의>라고 선전하면서도 알권리를 차단해 왔습니다. 남측 당국은 한국에 거주하는 독자들이 이 보도 자료들을 볼수 없도록 인터네트 열람을 봉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족통신>은 한국 독자들이 twitter 와 facebook을 통하여 이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 주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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