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별의 세계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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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6
김화순을 비롯한 비전향장기수가족들은 《유엔인권위원회》와 남조선의 비전향장기수북송추진본부 및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기독교교회인권위원회》를 비롯한 내외의 여러 단체들에 보내는 편지, 호소문, 비망록을 가지고가고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탄 렬차가 중도에 멎어선채 새날을 맞았다.
처음엔 송전선이 끊어지고 이어 철다리까지 끊어진것이였다.
그런데 권형일은 그것도 모르고있었다. 지어 장군님을 모시고 직승기로 날면서도 렬차가 멎어있는것을 보지 못했다. 설사 보았다해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이래 흔히 있는 렬차지연으로 무심히 스쳐버렸을것이다.
그는 괴로왔다. 갑옷을 껴입은듯 어깨가 짓눌리고 가슴이 답답해났다. 평양철도국과 련결되여있는 송수화기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맥없이 놓고말았다.
창밖의 하늘은 여전히 잔뜩 흐려있었다. 먼 하늘끝에서 웅근 우뢰소리가 구을러왔다. 폭우뒤끝의 미적지근한 위혁인듯 싶었다. 바로 권형일 그에게 《여보, 정신차리오!》라고 경고하는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정신을 차리고 늦긴 했지만 빨리 수습하지 않으면 안된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즉시 대책을 세우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다시 송수화기를 들었다. 번호를 누르자 즉시 청높은 목소리가 울려왔다.
《국장 한경호 듣습니다.》
《나 권형일이요. 국장동무, 멎어서있는 국제렬차에 당장 승용차들을 보냅시다. 비전향장기수가족들을 태우고 신의주까지 최고속을 내게 하자는거요. 거기서 사증수속을 해서 단동에 넘겨보내고 그쪽에서 렬차편을 리용하게 합시다. 회의시간전까지 꼭 가닿게 해야 하오. 왜 대답이 없소?… 아무래도 시간이?… 그러기에 서둘러야 한다지 않소. 회의예정시간이 오후 5시니까… 가능할수도 있소. 렬차가 멎어서있는 군당에도 련락하고 신의주세관에도 과업을 줍시다. 한시가 급하오!》
이렇게 하면 다 되는가? 어제 사업을 포치하던것과 무엇이 다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비전향장기수 김진서, 김병택, 한제완가족들을 베이징회의에 꼭 참가시키라고 말씀하시여 급히 사업을 포치하던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그는 손톱으로 탁자모서리를 긁으며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커다란 죄책감에 송골송골 이마에 땀이 돋았다.
이것을 단순히 실수라고만 보겠는가. 당중앙위원회 비서로서 경애하는 장군님을 보좌해드리는 그였다. 보통사람들의 실수는 작업반이나 직장 더 나아가서 공장, 기업소업무에나 국한되지만 그가 범하는 실책은 장군님의 권위와 직결되여있는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실책이 아니라 엄중한 과오였다.
그때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그는 흠칫하며 버릇처럼 옷매무시를 바로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를 찾으시는것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 권형일 전화받습니다.》
《비서동무, 지금 무얼하고있습니까?》
《예, 베이징회의때문에…》
《그럼 됐습니다. 곧 여기로 와주시오.》
《예, 알겠습니다. 장군님!》
송수화기를 놓자 책상우의 서류들을 모았다. 무엇을 가지고가야 할지 종잡을수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전화를 받고계시였다. 누군가의 보고를 들으며 손짓으로 권형일에게 가까이 와서 앉으라고하시였다.
《알고있습니다.》 그이께서 하신 말씀이였다. 《회의시간이 오후 5시라니 시간이 없습니다.》
역시 비전향장기수가족들의 회의참가문제였다. 권형일은 조각상처럼 한자리에 박혀버렸다. 목구멍이 타들었다. 조막만 하게 불거져나온 울대뼈를 움씰거리며 눈길을 떨구었다.
한순간 그는 자기 눈을 의심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집무탁우에 낯익은 사진 두장이 놓여있는것이였다. 지난해에 권형일 자기가 장군님께 올린 비전향장기수 김진서의 사진들이였다. 누렇게 색이 바랜 작은 사진은 수십년전 전선으로 떠나기전에 찍은 애젊은 모습의 김진서였고 다른 한장은 남조선의 월간지 《말》에 난 70고령의 병약한 김진서가 채석장에서 무거운 돌을 안고있는 모습의 사진이다.
그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지난해에 올렸던 사진들이 지금도 집무탁에 놓여있을진대 장군님께서는 비전향장기수들이 겪고있는 고초를 두고 얼마나 마음쓰셨으랴!… 지금 돌이켜보면 지난해 장군님께서 《말》잡지에 실린 김진서의 처량한 모습을 보시다가 그것을 크게 복사해달라고, 겸해서 그의 가족들에게 젊었을적의 사진이 없는지 알아보라고하신것이 특별한 의미로 안겨왔다.
저 사진들을 보고 또 보시며 장군님께서는 무엇을 생각하시였을가. 사실 우리 장군님께서는 김진서는 물론 비전향장기수 그 누구와도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계신것이 없으시다. 하지만 혈육들이상으로 사랑과 련민과 아픔을 안고계신다.
진정 우리 장군님처럼 비전향장기수들을 한시도 잊지 않으시고 심려하시는분은 없는것이다. 그런데 그는 비전향장기수가족 몇사람도 제때에 보내지 못하였다. 가슴을 어이는듯 한 죄책감, 그의 이마언저리에 깊숙이 패운 주름살들이 사뭇 경련적으로 꿈틀거렸다.
《그러니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다?》 장군님께서 전화로 하신 말씀이였다.
《그래서 국장동문 초기계획대로 먼저 가있는 우리측 의장단성원들이 편지와 호소문들을 대신 랑독하게 하자는것입니까?》
권형일은 장군님의 근엄하신 모습을 얼핏 스쳐보고나서 또 눈길을 떨구었다. 머리속이 웅웅거렸다. 자기가 좀전에 과업을 주고도 미적지근한 느낌이 들어 망연히 서있던것을 상기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장군님께서 전화를 끊으신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그새 창밖의 하늘에서는 비구름이 거의나 가셔진듯 했다. 해살이 비쳐들고있었다. 눈부신 빛발, 집무탁우에 놓인 김진서의 사진들에도 밝고 따사로운 빛이 아낌없이 퍼부어지고있다.
마침내 장군님께서 그에게 물으시였다.
《비서동무, 멎어있는 국제렬차로 승용차들을 뛰게 한건 비서동무의 결심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걸 내게는 왜 알리지 않았습니까?》
《…》
그는 입을 열수가 없었다. 목구멍이 타들며 혀바닥까지 졸아든듯 했다. 뭐라고 말씀드린단말인가. 그럴새가 없었다고하겠는가, 아니면 그닥 자신이 없어 망설이였다고하겠는가?
《내가 알아보니.》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그런 방법으로는 도저히 시간을 맞출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회의시간을 좀 연기시켜달라고하겠는가. 내외의 수많은 기자들이 모여들고 여러 국제단체들에서 찾아오는 인사들에게 구차한 변명을 해야 하겠는가?… 그럴순 없습니다. 그렇다고 편지와 호소문을 대신 랑독하게 하겠는가?!…》
권형일은 숨도 쉬지 못하는듯 했다. 장군님의 낮고도 준렬하신 말씀에 머리를 들수 없었다.
《물론.》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가족들을 대신해서 랑독할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편지와 호소문을 처음 들고가는것도 아닌데 하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김진서로인의 경우만 해도 남조선출판물을 통해 처음 알려진 그때부터 벌써 여러해동안 그의 두 딸이 국제회의들에도 참가했고 아버지와 전화상면도 있었습니다. 그쯤하면 할수 있는껏 다했다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더우기 지금 온 나라 인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고난의 행군을 하고있는것만큼 그러한 례외도 있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문제는.》 그이께서 강조하시였다. 《문제는 우리 일군들이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는것을 선차적인 문제로 여기지 않고있거나 아직도 먼 래일에 가서나 실현될수 있는 료원한 일로 여기는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일이 잘 안되면 주춤거리고 뒤전에 밀어놓으려 하는것같은데… 아니, 그래선 안됩니다. 우리가 송환을 요구하는것은 지금 적들이 떠드는것처럼 세상에 소문이나 내는 선전공세가 아닙니다. 어머니조국이 자기의 백발성성한 아들들을 목메여 부르는 피타는 웨침이라는것을 비서동무야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있지 않습니까.
지금 일부 사람들은 비전향장기수가족 몇사람이 편지를 들고간다고 생각하는것같은데… 아니요. 지금 그들은 수백만 우리 어머니들의 눈물어린 호소를 안고가는것이요. 온 나라 어머니들과 형제자매들이 바로 그들을 통하여 세계의 량심에 호소하는것입니다. 그런데도 뭐 철길이 끊어졌으니 별수 없지 않는가 하고 말할수 있겠는가?!… 생각해보시오. 우리 어머니들과 그 자식들의 피타는 목소리를 그 누가 대신한단말인가. 어떻게 그것을 공식적인 석상에서 콤뮤니케처럼 또랑또랑 랑독할수 있겠는가, 그렇게 해서 세계의 량심을 움직이게 하고 끓게 할수 있겠는가?!…
가슴아픈 일이요. 지금도 남조선의 감옥에 갇혀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을 생각해보시오. 여기 있는 이 두장의 사진을 좀 보시오. 누가 이 등굽은 백발로인을 살아있는 생명이라고 볼수 있겠는가.
눈이 꺼지고 살빛은 꺼멓게 죽어있고 손등우엔 시꺼먼 피줄이 불거져있고… 40년전에 찍은 이 사진의 젊은이는 이처럼 잘나고 기백있는 헌헌장부였는데 지금은 살아있는 미이라처럼 처참한 모습으로 우리를 보고있습니다. 아니 나를 보고있다고 할가… 내가 왜 이 사진을 자꾸 꺼내보는지 아시오? 이 로인을 통해서 남녘에서 고통받고있는 전체 비전향장기수들의 모습을 보기때문이요. 이 로인을 통해서 그들모두와 이야기를 나누기때문이요. 누가 보는이 없고 알아주는이 없었지만 70, 80고령에 이르도록 신념과 량심을 지켜싸워온 투사들, 나의 귀중한 동지들, 우리 수령님께서 잠 못 이루며 생각하시던 이들이 아니요?… 귀중한 그들이 지금도 한사람 또 한사람 눈을 감고있는데 어떻게 철길이 끊어졌다고 구원의 걸음을 멈출수 있겠는가! 어머니는 쓰러진 자식을 보고 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천길 낭떠러지가 막아선대도 결코 주저하지 않습니다.》
권형일은 언제 어느때부터 자기가 부르쥔 손의 줌안에서 땀이 흥건하게 내배고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심각한 자책과 죄스러운 마음의 불길이 그의 얼굴을 달게 하고 입안의 침을 바싹 마르게 했다.
《인젠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장군님께서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으시였다.
《다른 방도는 없습니다. 특별비행기를 날립시다. 그것도 빨리!》
《예?!》
그때 책임서기가 소리도 없이 들어섰다. 장군님께서 눈길을 돌리시자 그는 들고들어온 서류를 올리였다. 빈틈없이 맞물려있는 새날의 사업일정표인듯 싶었다. 그리고 또 있다. 그는 장군님께서 재빨리 일정표를 훑어보시자 조용히 그리고 침착하게 말씀드렸다.
《장군님, 청천강이북지역에서 큰물피해를 입은 전체 주민들을 안전하게 소개시켰습니다. 신의주일대에서는 1만여명을 위험에서 구원하였는데 주민대장에 등록된 인원수보다 한명이 더 늘어났다고 합니다. 직승기에서…》
《아, 알고있소.》
그이께서 미소를 그리며 전화기에로 손을 내미시자 책임서기는 물러갔다. 방금 들어설 때처럼 거의나 소리없이, 재빨리 문을 열고나갔다.
《민항국장을 찾으시오.》
처음으로 그이께서는 시계를 보시였다. 시계의 문자판에서 잠시 눈길을 떼지 못하시는데 순간 권형일은 그이의 눈가에 실린 무거운 피로를 알아보았다. 무엇인가 심장을 물어뜯는듯 뻐근한 아픔이 그를 뒤흔들었다.
《민항국장동무입니까?》 그이께서 갈린듯 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베이징으로 날아갈 특별비행기를 준비해야겠습니다. 비전향장기수가족 3명… 아니 4명을 태워보내야 합니다. 음ㅡ 4명, 아니 그뿐입니다.》
저쪽에서 알았습니다! 라고 대답올리는듯 했다.
《베이징항공역과도 련계를 가지시오. 오전중으로 뜰수 있으면 좋겠는데… 뭐 본래 시간표대로?… 좋습니다. 그렇게 해주시오.》
전화가 끝나자 그이께서는 권형일에게로 머리를 돌리시였다.
《시간이 없습니다. 비서동무가 직접 조직사업을 해주시오. 멎어선 렬차에서 가족들을 데려오고 동시에 필요한 수속들을 맞물리고… 모든 사람들이 뛰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때문에 몇사람을 특별비행기로 보내는지 알게 해야 합니다.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는 사업이 동지적사랑과 의리의 문제인 동시에 조국통일의 대문을 여는 사업이라는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예, 장군님!…》
권형일은 목이 메여 이렇게 부르짖듯 했으나 그 소리는 치밀어오른 오열에 삼켜지고말았다.
×
끊어진 철다리복구사업에 군안의 전체 주민들이 떨쳐나선듯 했다. 군인들이 돌격전투의 앞장에 섰다. 방송차에서는 전투적인 음악과 선동연설이 그칠새없이 터져나왔다.
그런데 돌연 방송차가 산기슭에 멎어서있는 렬차에로 달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차에 타고있는 손님들도 불러내려는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정은 달랐다. 처녀방송원의 목소리가 거센 전류의 흐름을 타고 기차를 휩쓸었다.
《한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차안에 계시는 손님들중에 비전향장기수가족들이 있으면 즉시 짐을 들고 내려주십시오. 승용차가 대기하고있습니다. 비전향장기수 김진서, 김병택, 한제완선생님들의 가족들은 즉시 평양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때 김화순은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같은 침대칸에 타고있던 일행모두가 서로 마주 보며 굳어져버렸다. 맨 처음 동생 정순이가 숨넘어가는듯 속삭이였다.
《우릴 찾구 있어. 빨리 내리라는거야. 언니, 들었지요? 김진서, 김병택, 한제완… 또 불러요.》
《그래.》 화순이 역시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빨리 내려야겠어.》
그들이 서둘러 차에서 내리자 숱한 사람들이 《비전향장기수》, 《비전향장기수》 하고 떠들었다. 마치 김화순과 그의 일행이 비전향장기수들인듯 했다.
군당책임비서가 방송차곁에 서있었다.
《아, 동무들이요? 김진서선생의 두 딸과 김병택선생의 아들…》
《예, 우리들이예요.》 성미가 활달한 정순이 대답했다. 《4명입니다. 다 내렸어요.》
《됐소. 빨리 저 차들에 타시오.》
《저 그런데 우린…》
김병택의 아들 김룡수가 마른 입술을 혀로 추기며 떠듬거렸다.
그러자 군당책임비서는 그의 가방부터 빼앗아들었다.
《시간이 없소. 빨리 타시오. 빨리!》
승용차에는 군당선전부원이라는 젊은이가 타고있었다. 상고머리를 한 패기있는 청년이였는데 팔목시계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나도 모릅니다. 어쨌든 당중앙위원회지시로… 예, 10시반까지 평양으로 올려보내라는것밖엔… 예. 운전사동무, 빨리!》
차들이 내달렸다. 가로수들이 련이어 날아들기 시작했다. 화순은 아직 이처럼 고속으로 내달리는 차에 타본 일이 없다. 장마비로 패워진 홈타기들을 사정없이 날아넘으며 감탕을 쥐여뿌렸다.
놀랍게도 동생 정순이가 차멀미를 했다. 화순이 동생을 꼭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조금만 참아. 원 유치원 원장선생이 이게 무슨 꼴이람. 그래도 의사랍시구 처녀앨 치료하던게 언젠데.》
《못견디겠어, 언니. 나 막 죽을것 같애.》
《무슨 소리! 비전향장기수의 딸이라는게.》
고속도도로에 들어서자 평양에서 내려온 승용차들이 대기하고있었다.
급히 옮겨탔다. 사정이 없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의 무섭게 생긴 참사가 마구 다몰아쳤다. 화순이와 정순이 자매는 얼나간듯 했고 김병택의 아들 룡수는 눈먼 사람처럼 끌려다녔는데 한제완의 조카는 탐정영화에라도 찬조출연하는듯 무척 재미나하는 표정이였다.
고속도도로 중앙선을 타고 바람같이 날아갔다. 무슨 일로 이렇게 미친듯 차를 몰아대는지 알아볼념도 못했다. 아까의 젊은이처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의 참사 역시 시계바늘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그처럼 채칵거리는 초침소리를 조바심치며 안타깝게 그리고 무섭게 듣고있는 사람도 아마 다시 없을것이다.
시간을 앞질러가는 쾌속의 질주는 1시간반동안 계속되였다. 눈을 뜨기가 무서울 지경이였다.
드디여 비행장에 도착하였다.
《다 왔습니다. 제때에!》
이렇게 말하는 참사의 목소리는 신음소리에 가까왔다. 우는것인지 웃고있는지 알수 없는 괴이한 표정으로 화순이를 돌아보며 그가 또 말했다.
《저기 당중앙위원회 비서동지가 나와있습니다.》
권형일비서가 급히 마주 왔다.
《아 화순동무, 드디여 왔구만. 그런데 정순동문 어떻게 된거요. 영 녹초가 돼버렸구만. 응?!》
보통사람들이 당중앙위원회 비서와 안다는것은 드문 일이다. 그러나 비전향장기수 김진서의 딸들인것으로 하여 그들은 권형일과 잘 알고있었다. 권형일비서자신이 화순이의 집에 들려 젊었을적에 찍은 김진서의 사진을 골라가기도 했었다.
《안녕하십니까, 비서동지.》
화순이가 차에서 정순이를 부축해내리며 깍듯이 인사했다. 노죽이 있는 정순이는 엄살을 부렸다.
《비서동지, 난 정말 죽는줄 알았습니다.》
여느때 같으면 너털웃음을 터뜨릴 권형일이였지만 오늘은 몹시 초조한 기색이였다. 김룡수와 한제완의 조카가 다가오자 그들모두를 끌어안을듯 팔을 벌려 등을 떠밀며 말했다.
《빨리 비행기에 오르시오.》
《예?! 비행기말입니까?》
눈이 휘둥그래진 네사람을 둘러보며 권형일도 입을 벌렸다.
《그럼 아직 모르고있소? 아무도 대주지 않았단말이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우람한 체구를 흔들며 앞서가던 권형일이 또 걸음을 멈추었다. 비행기사다리밑에 이르렀을 때였다. 네 사람을 차례차례 둘러보는 그의 눈빛은 벌써 젖어있었다.
《기차가 서있었지. 폭우가 쏟아지구 산사태가 일구… 그래서 철다리가 끊어지구… 한쪽에선 수천수만명이 집과 함께 물에 잠겼소. 동무들이 직접 겪었지. 정말 무서운 밤이였소. 이런 자연재해때문에 동무들에 대해선 누구도 생각을 돌리지 못했소. 동무들이 회의에 참가못하면 베이징에 먼저 가있는 우리측 의장단성원들이 대신 랑독해도 된다고 생각했드랬지. 솔직히 말해서 나부터도 이런 란리통에 그게 무슨 큰일이겠는가고 생각했던거요. 그런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무슨 일이 있어도 회의에 참가시켜야 한다고하시면서 몸소 동무들 4명을 위해 이 특별비행기를 마련해주시였소.》
《예?!》
《나를 여기로 내보내시면서 장군님께선 자신께서 직접 나와 비행기에 태워보내고싶지만 시간이 허락치 않아 나가지 못한다고, 회의에 가면 온 나라 전체 인민의 마음으로 세계의 량심에 호소해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시였소.》
먼저 오열을 터뜨린것은 정순이였다. 처음 자매가 부둥켜안고 다음은 비전향장기수들의 네 아들딸들이 권형일비서에게 매달리며 눈물을 쏟았다.
《이게 바로 우리 장군님의 뜻이요.》 권형일이 목쉰 소리로 계속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비전향장기수들을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시려는 확고한 결심이시오. 지금 온 나라가 고난의 행군을 하고있지만 비전향장기수들을, 바로 동무네 아버지들을 위해서라면 천만금도 아까울게 없다고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오. 이걸 알고 떠나시오.》
권형일이 그들을 사다리우에로 떠밀었다. 우에서는 기장과 안내원이 기다리고있었다.
한발자국 또 한발자국 사다리로 오른다. 오르면서 자꾸만 머리를 돌려본다. 경애하는 장군님, 아버지장군님!… 지금 어데선가 비행기에 오르는 우리를 보고계시지 않을가?… 화순이는 핑 눈물이 어린 눈으로 저 멀리 수도의 하늘가를 우러러보았다. 그리고는 머리숙여 인사를 올렸다.
《장군님, 저희들은 장군님의 사랑에 실려 떠나갑니다. 회의에 가서 아버지장군님의 위대한 사랑을 전하겠습니다. 세계의 량심을 뜨겁게 울리겠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비행기사다리로 올라갔다. 비구름이 개인 하늘, 유난히도 맑고 푸른 하늘로 올라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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