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암울한 시대가 나를 불렀다” 대선 출마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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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출마 발표로 민주당 내 경쟁 본격화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59)이 17일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18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손학규 상임고문에 이어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는 두 번째 출마 선언이다.
민주당 대선주자 중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 상임고문의 대선 출마는 당 안팎의 시선을 12월 대선으로 몰리게 하고 있다. 이어 정세균 상임고문이 24일, 김두관 경남지사가 다음달 중순쯤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 것으로 알려져 당내 대권 경쟁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문 상임고문은 이날 출마 선언에서 “네 편, 내 편 가르지 않고 함께 가는 진정한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시민과 동행하는 정치로 반드시 정권교체, 정치교체, 시대교체를 이뤄내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불비불명(不飛不鳴)’이라는 고사를 인용, “지금까지 우리 보통사람들은 날지도 울지도 못하는 새였다”며 “이제 몸을 일으켜 당당하게 말하고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상임고문의 대선 출마를 반대했던 딸 다혜씨가 이날 출마 선언식과 직후 경희대에서 열린 ‘스피치콘서트’에 참석해 무대 아래서 문 상임고문을 지켜봤다.
문 상임고문은 부산 경남고를 졸업하고 경희대에 입학한 뒤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1975년 유신반대를 외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돼 학교에서 제적됐고, 공수부대에 강제 징집됐다. 1980년 복학한 뒤 사법시험(22회)에 합격했지만 계엄령 위반 혐의로 구금됐다가 경찰서 유치장에서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법관 임용에서 탈락했고 부산에서 변호사를 시작했다.
2003년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맡았지만 1년 반 만에 건강 악화에다 열린우리당 측의 총선 출마 요청을 뿌리치느라 그만두고, 히말라야 트레킹을 갔다. 현지서 노 전 대통령 탄핵 소식을 듣고 귀국해 법정 대리인 간사를 맡았다. 탄핵 심판이 끝난 뒤 청와대로 복귀해 시민사회수석과 민정수석비서관(2005년)을 지냈다. 2007년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노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참여정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뒤엔 경남 양산으로 내려가 야인생활을 했지만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와 맞닥뜨렸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국민에게 알렸고 노 전 대통령의 추모기념 사업을 책임졌다. ‘노무현’의 삶과 죽음이 문 상임고문의 정치 인생을 열어 준 것이다. 평생 ‘노 전 대통령 기념사업에 몰두하겠다’고 했던 문 상임고문은 지난해 6월 자서전 <운명>을 출간하며 “노무현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 못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야권대통합에 참여하며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고 19대 총선에서는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첫 선출직을 맡으면서, 곧바로 유력 대선주자가 된 것이다.
문 상임고문은 정치적으로 장점과 한계가 중첩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무현’의 유산을 가장 많이 가진 후보이면서 동시에 ‘노무현’을 가장 많이 극복해야 하는 후보다. 출마 선언식을 노 전 대통령의 자취와 상관없는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한 것은 ‘문재인의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다짐이다. 성장전략을 강조한 것도 참여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양극화 해소에 주안점을 두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친노(무현)계 좌장인 이해찬 의원이 민주당 수장이 되면서 문 상임고문의 위상도 높아졌다. 그만큼 민주당의 자산과 비전을 안정적으로 보장받는 후보다. 하지만 이는 최대 계파(친노)의 후보라는 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탄탄한 세력 기반이 있지만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엄존하기 때문이다. ‘참모’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과제다.
문 상임고문은 18일 새벽 서울 구로 인력시장을 찾아 일용직 노동자들과의 간담회를 시작으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과의 대화 등을 진행하며 첫 행보에 나선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59)이 17일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18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손학규 상임고문에 이어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는 두 번째 출마 선언이다.
민주당 대선주자 중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문 상임고문의 대선 출마는 당 안팎의 시선을 12월 대선으로 몰리게 하고 있다. 이어 정세균 상임고문이 24일, 김두관 경남지사가 다음달 중순쯤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 것으로 알려져 당내 대권 경쟁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문 상임고문은 이날 출마 선언에서 “네 편, 내 편 가르지 않고 함께 가는 진정한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시민과 동행하는 정치로 반드시 정권교체, 정치교체, 시대교체를 이뤄내겠다”고 덧붙였다.
‘특전사 동지회’ 배지 달고 출마 선언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이 17일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부인 김정숙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대선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문 상임고문이 왼쪽 가슴에 단 것은 ‘특전사 동지회’ 배지다. 문 고문이 특전사 제1공수여단에서 군복무를 할 때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다는 한 실향민(76)이 기자회견 직전 문 고문에게 배지를 달아줬다. | 박민규 기자
그는 ‘불비불명(不飛不鳴)’이라는 고사를 인용, “지금까지 우리 보통사람들은 날지도 울지도 못하는 새였다”며 “이제 몸을 일으켜 당당하게 말하고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상임고문의 대선 출마를 반대했던 딸 다혜씨가 이날 출마 선언식과 직후 경희대에서 열린 ‘스피치콘서트’에 참석해 무대 아래서 문 상임고문을 지켜봤다.
문 상임고문은 부산 경남고를 졸업하고 경희대에 입학한 뒤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1975년 유신반대를 외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돼 학교에서 제적됐고, 공수부대에 강제 징집됐다. 1980년 복학한 뒤 사법시험(22회)에 합격했지만 계엄령 위반 혐의로 구금됐다가 경찰서 유치장에서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법관 임용에서 탈락했고 부산에서 변호사를 시작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1982년부터 시작됐다. 두 사람은 부산·경남 지역의 시국 사건 변론을 도맡으며 ‘40년 동지’로 한길을 걸었다.
2003년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맡았지만 1년 반 만에 건강 악화에다 열린우리당 측의 총선 출마 요청을 뿌리치느라 그만두고, 히말라야 트레킹을 갔다. 현지서 노 전 대통령 탄핵 소식을 듣고 귀국해 법정 대리인 간사를 맡았다. 탄핵 심판이 끝난 뒤 청와대로 복귀해 시민사회수석과 민정수석비서관(2005년)을 지냈다. 2007년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노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참여정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뒤엔 경남 양산으로 내려가 야인생활을 했지만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와 맞닥뜨렸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국민에게 알렸고 노 전 대통령의 추모기념 사업을 책임졌다. ‘노무현’의 삶과 죽음이 문 상임고문의 정치 인생을 열어 준 것이다. 평생 ‘노 전 대통령 기념사업에 몰두하겠다’고 했던 문 상임고문은 지난해 6월 자서전 <운명>을 출간하며 “노무현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 못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야권대통합에 참여하며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고 19대 총선에서는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첫 선출직을 맡으면서, 곧바로 유력 대선주자가 된 것이다.
문 상임고문은 정치적으로 장점과 한계가 중첩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무현’의 유산을 가장 많이 가진 후보이면서 동시에 ‘노무현’을 가장 많이 극복해야 하는 후보다. 출마 선언식을 노 전 대통령의 자취와 상관없는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한 것은 ‘문재인의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다짐이다. 성장전략을 강조한 것도 참여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양극화 해소에 주안점을 두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친노(무현)계 좌장인 이해찬 의원이 민주당 수장이 되면서 문 상임고문의 위상도 높아졌다. 그만큼 민주당의 자산과 비전을 안정적으로 보장받는 후보다. 하지만 이는 최대 계파(친노)의 후보라는 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탄탄한 세력 기반이 있지만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엄존하기 때문이다. ‘참모’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과제다.
문 상임고문은 18일 새벽 서울 구로 인력시장을 찾아 일용직 노동자들과의 간담회를 시작으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과의 대화 등을 진행하며 첫 행보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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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립님의 댓글
정립 작성일
크게 동감을 불러일으켜 나가 이후에 야권이 단일 후보를 정립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를 적극 성원해 본다